무지개와 프리즘 - 반양장
이윤기 지음 / 생각의나무 / 199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이윤기 님을 접한 것은 80년대 후반 <장미의 이름>을 통해서 였다. 그래서인지 나에게 이윤기님은 소설가로보다 잡학다식한 번역가로 다가왔다. 90년대에 열린책들에서 <장미의 이름>이 재번역되어 나왔을 때 다시 <장미의 이름>을 읽은 것은 순전히 이윤기님의 '고집스런 작가정신' 때문이었다.

최근 이윤기 님이 동인문학상을 수상했을 때에야 번역가가 아니라 소설가임을 알았고, 그 뒤에 첫 산문집까지 내었다 했을 때는 두말 없이 사보게 되었다.

<무지개와 프리즘>을 읽다보면 한 지성인의 정제된 세상 읽기를 접하게 된다. <장미의 이름>에서 윌리암 신부가 봉건제의 어둠과 우상에 대해 근대정신으로 이의 껍질을 한꺼풀 벗겨내듯이 이윤기 님은 우리 시대의 문화와 인간에 대해 한꺼풀 먼지를 걷어내고 있다.

이미 움베르토 에코 작품을 많이 번역해낸 데서 알 수 있듯이 이윤기님이 많이 천착하고 있는 지점은 신화다. 이윤기 님에게 신화는 인간세계를 그물망처럼 엮고 있는 미니어쳐로 보이는 모양이다. 이 신화에서 이윤기 님이 건져올리는 것은 현 인간세상에 대한 혜안이다. 재밌는 신화 이야기 속에서 냉철한 이성이 꿈틀거리고 있다.

그러나 이윤기님의 글에서 가장 강렬하게 느껴지는 것은 뭐니뭐니 해도 '서권기 문자향'(書卷氣文字香)이다. 책을 좀 읽은 듯한 분위기와 문자를 좀 아는 사람의 향내라는 뜻인데, 이윤기님은 이 책에서 자신은 서권기 문자향이 나지 않는 글이나 작품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말을 받아서 말하면 <무지개와 프리즘>은 서권기 문자향이 느껴지는 글이다. 1부 '내가 사랑하는 인간들'에서 거론하고 있는 15명의 선각자에 대한 이윤기 님의 평이나 3부에서 얘기하는 문화에 대한 담론들은 풍부한 지적 기반과 이를 푹 발효시킨 문자향이 아니고서는 이렇게 씌어질 수 없는 글들이다.

선인들의 책을 모두 읽지 못하여 그들의 짧은 선문답이라도 엑기스 정도는 읽어보고 싶다거나, 신화들을 섭렵할 시간은 없지만 신화의 재밌고 유익하고 가슴에 쩌릿한 대목만은 풍월로 옮겨듣고 싶은 사람은 이 책이 많은 것을 충족시켜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에만 천착하지 말고, 그 선문답과 신화 뒤에 숨겨진 내용을 자신의 인생으로 녹여내고 있는 이윤기 님의 시각에 천착하는 것도 값진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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