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도 쓸쓸한 당신
박완서 지음 / 창비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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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님의 글의 장점 중의 하나로 사회를 보는 눈, 사회 통념을 비웃거나 뒤집는 시각이 항상 글에 배어있기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글 하나 하나에는 강한 메시지들이 고동치고 있다. 그 메시지는 어느 계층의 삶의 한 편린을 적나라하게 그려내는 과정에서 드러나기도 하고, 삶의 한 아이러니를 통해 역설적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정공법으로 주연이나 조연의 입을 빌려 직소하기도 한다.

한번 보자. '마른 꽃'은 정욕이 결여되어 있어 연애가 겉멋에 불과해 보인다는 한 할머니의 사랑을 다루고 있다. 할머니가 섹스는 할 수 없어도 정욕의 빈자리는 느낄 수 있고, 아무리 할머니일지라도 사랑에서 이의 빈자리의 역할이 크다고 함을 통해서 할머니의 세계를 이렇게 묘사할 수 있는 작가가 또 있을까.

기억 상실 속에서도 평화가 올 수 있음을 역설하며, 기억 상실을 질곡으로 규정하고 있고 또 이러한 질곡을 양산해내는 것은 오히려 합리를 내세운 현대인들이다라는 것을 질타하는 듯한 '환각의 나비'...

자신이 수십 년 동안의 세월을 통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되었던 어머니조차도 사실은 '난해한 영화'와 같음을 얘기하며 인간과 인생에 대한 겸허한 성찰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얘기하고 있는 '길고 재미없는 영화가 끝나갈 때'...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작위적이지 않는 것은 얘기 전개의 무리한 확장 없이 한 주제를 통해 그 주제에서 볼 수 있는 작가만의 시각을 물 흐르듯 전개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부분에 대한 무리스럽고 작위적인 결말로 이끌지도 않고, 그렇다고 사변 나열식이지도 않아 주제의식이 곳곳에 배어 있다.

요컨대 글에 주제의식과 주장이 있으되 이러한 것이 상당한 통찰력과 문제의식에 기반하고 있으면서도 무리없는 전개로 이끌고 있어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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