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새로운 한 해가 온다는 것

정용주·시인




Url 복사하기
스크랩하기
블로그담기











▲ 정용주
치악산 속에서 겨울을 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땔감이다. 햇살이 퍼지면 움막 뒤편 숲으로 가서 말라죽은 잣나무나 계곡 물가에 뿌리 뽑혀 있는 나무들을 톱으로 베어 부엌에 들여놓는다. 그리고 미리 해놓은 나무토막을 도끼로 쪼개 장작을 만들기도 하는데 이럴 때 빈 계곡에 쿵쿵 하고 울리는 소리는 외따로 떨어져 사는 내 삶의 방식을 자신에게 일러주는 메아리와 같다.

지게를 지고 고요한 나무들 사이를 이리저리 다니다 보면 잎이 무성할 때에는 눈에 잘 띄지 않던 짐승의 흔적을 종종 보게 된다. 새끼를 키워 나간 새집이 앙상한 가지에 드러나고, 말라비틀어진 칡넝쿨 아래는 토끼 똥이 방울방울 모여 있다. 껍질이 허옇게 벗겨진 어떤 소나무 에는 까칠한 털이 엉켜 붙어 있는 진흙이 묻어 있다. 진드기 때문에 가려움을 참지 못한 멧돼지가 진흙탕에 뒹굴고 남긴 자국이었다. 순간 무섭기도 했지만 피가 나도록 몸을 긁어댄 멧돼지가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흔적을 남긴 멧돼지는 지금 어느 숲 속을 헤매고 있을까.

모든 현재는 흔적을 남기고, 그것은 추억이 되어 우리에게 되돌아온다. 현재의 고통에만 집착해 행동한 일들을 돌이켜본다. 이제 내 몸에 나이테 하나를 더 늘리고 또 한 해가 간다. 새로운 한 해가 온다는 것은 훗날 아프지 않을 추억을 만들어갈 기회가 온다는 뜻도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탐방, 명사의 집] "우리 집에 있는 건 책과 먼지뿐"
고양 夫婦번역가 김난주·양억관씨
하루키등 日 최고작가 작품 수백편 번역
아내는 집에서, 남편은 오피스텔서 작업
"서로 무슨 작품 번역하는지 잘 몰라요"
김연주 기자 carol@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Url 복사하기
스크랩하기
블로그담기






부부 번역가인 김난주(49)씨와 양억관(51)씨의 아파트에 들어서니 복도 벽을 가득 채운 책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주방으로 가는 거실 왼편 복도에도 책이 꽂혀있고, 식탁에 앉으면 보이는 작은 방 속에도 책이 빼곡하다. 김씨는 "우리 집에 있는 것은 책과 먼지뿐"이라고 농담 섞어 설명했다. 유독 한쪽 책장의 책들은 갓 나온 듯 말끔하다. 김난주씨가 번역한 책들을 모아둔 곳이다. 당대 최고 일본 소설가들인 에쿠니 가오리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름 옆에 김난주씨의 이름이 나란히 적혀 있다.

부부는 일본 유학 중 만나 가정을 이루고, 출국 직후 번역을 시작해 지금까지 수백 편의 작품을 냈다. 특히 하루키와 요시모토 바나나 등 인기 작가의 작품을 대부분 번역해온 김씨는, 일본 소설 팬들이 "김씨의 이름을 보고 책을 고른다"고 할 정도로 사랑받는 번역가다.








▲ 번역가 김난주씨와 양억관씨 부부가 화정동 자택 거실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양씨는 두 딸에게 하늘을 뜻하는‘하느리’, 땅을 뜻하는‘소스리’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김건수 객원기자 kimkahns@chosun.com
부부는 12년 전부터 고양시 덕양구 화정동의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집은 김씨의 일터이자 생활 공간이다. 남편 양씨는 7년 전 일산의 오피스텔에 작업실을 마련해 출·퇴근한다. 아이들이 등교하고 남편이 출근한 오전 9시쯤 김씨의 작업은 시작된다. 오후엔 집안일과 저녁 준비를 하기 때문에 일은 대부분 오전에 이뤄진다. 빨래와 설거지, 밥짓기 사이에서 맛깔스러운 번역 작품이 나오는 셈이다. 김씨는 외출도 거의 하지 않고 붙박이처럼 집에 붙어 지낸다. 가끔 밤에 동네 친구들과 맥주를 한잔 하든지 장을 보러 가는 게 고작이다. 하지만 김씨는 오히려 '여행과 밖으로 나가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는' 성격이다. 작품을 시작하면 시간이 없고, 작품이 끝났다고 해도 다음 일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마음 편히 여행갈 시간이 없다. 유학 후 부부가 함께 일본 여행을 떠난 것이 한번뿐일 정도. 의외로 쉴 때 즐겨 보는 것은 '미드(미국 드라마)'다. "번역가는 소설과 교감해야 하니까 일본 드라마는 잘 안 봐요. 또 보면 단순히 감상으로 그치지 않고 자꾸 뭔가를 비판하게 돼요. 즐기는 선에서 안 끝나는 거죠."(김난주씨)

부부는 "한국어를 잘 다뤄야 번역을 잘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씨는 "번역가는 소설가보다 더 정확하게 우리말을 구사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국어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고 했고, 양씨는 "번역은 번역가가 가진 것(모국어 능력) 안에서만 나온다. 독자가 번역 작품을 읽고 느낌이 안 오면 번역가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16년간 소설을 주로 번역하다 보니 김씨도 질릴 때가 있다. "지겹죠. 번역 요청이 들어오면 '이번에도 바나나야?' '또 유미리야?' 한다니까요. 그래도 하나라도 새로운 점을 발견하려고 해요. 얼마 전에 작업한 '내 남자'라는 작품은 홋카이도가 배경인데, 그걸 번역하면서 일본의 자연에 대해 새삼 놀랐어요. 겨울에 오호츠크해의 빙하가 녹아 홋카이도 해안에 들어오고, 다시 봄에 철새처럼 돌아가는 장면이었어요. 거길 꼭 가봐야 하는데…." 김씨는 앞으로는 일본 근대문학이나 예술 관련서를 번역하고 싶다고 했다.

에쿠니 가오리와 쓰지 히토나리의 '냉정과 열정 사이'를 한 권씩 번역하기도 했던 부부지만, 서로의 일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편이다. 김씨는 "남편이 무슨 작품을 하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가끔씩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은 남편 양씨. 인터넷 검색이나 순간적으로 생각나지 않는 단어가 있을 때 김씨에게 묻는다. "난 번역을 하다가 적당한 단어가 안 떠오르면 '☆' 표시로 비워둬요. 여유롭게 생각하는 거죠. 근데 남편은 성격이 급해서 당장 그걸 알아내려고 해요. 참 다르죠." 부인의 말에 양씨는 가만히 웃고 있었다.

오후 2시쯤 양씨는 "나 출근할게" 하고 집을 나섰고, 김씨는 집에 머물러 배웅했다. 김씨는 에쿠니 가오리의 '장미 비파 레몬' 중 '옮긴이의 말'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책 속의 주인공인 그녀들은) 부부 싸움을 하고서도 남편이 보내주는 꽃다발에 웃음지을 만큼 너그럽고, 자식의 아픔에는 한 없이 약하며, 자신의 고독에는 눈물을 삼키는, 여자들 모두의 모습, 바로 우리 안에 있는 여자의 모습입니다.'



김난주·양억관씨는…

김난주씨는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 석사를 수료하고 일본에서 일본 근대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김씨는 1992년 무라카미 하루키의 '육각수의 꿈'을 시작으로 번역가의 길에 들어섰다. 이후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 '재즈 에세이', '렉싱턴의 유령', 요시모토 바나나의 'N.P', '키친', '티티새', 에쿠니 가오리의 '울 준비는 되어 있다',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 등을 번역했다. 양억관씨는 경희대 국어국문학 석사 수료 후 일본에서 일본경제사상사 박사 학위 과정을 중퇴하고 출국해 번역을 시작했다. 무라카미 류의 '69', '교코', '엑소더스', 오쿠다 히데오의 '한밤중의 행진', 쓰지 히토나리의 '냉정과 열정 사이' 등을 번역했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노아 2008-12-21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두 분이 부부였군요! 일본책 번역서로는 두 분 이름이 참 많은데 부부였다니 신기하네요.

달빛푸른고개 2008-12-21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백 편이라네요. 이 분들이 번역하면 우선 믿을만하더군요. 가끔 다소 실망스러운 번역이 보이면, 아마도 출판사가 출간시기 때문에 작업시간을 종용해서 그런가보다 생각할 정도로... ^^

BRINY 2008-12-22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두 분이 부부셨군요.

소나무집 2008-12-22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에서 이 분들의 이름을 발견하면 믿음이 갔는데 부부였군요.
번역가도 이렇게 만날 있 있어 반갑네요.

달빛푸른고개 2008-12-23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도 창작이라는 말이 새삼 떠오릅니다.
 

[아침햇발] 이명박 1년 / 정석구
아침햇발
 
 
한겨레 정석구 기자
 








 

» 정석구 논설위원실장
 
벌써 한 해다. 이명박 후보가 압도적 표차로 대통령에 당선된 뒤 우리 사회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어떻게 변했고, 앞으로 우리 삶은 얼마나 달라질 것인가?

겉으로 드러나는 건 권력지배층의 전면 교체다. 정권이 바뀌었으니 지배층 교체는 당연하다. 하지만, 10년 만에 정권을 잡은 보수·우익 정권의 권력지배층 교체는 몇 가지 점에서 과거 정권과 다르다.

우선 교체 방식이 대단히 폭력적이었다. 장차관 등 정무직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현행법에 임기가 정해진 공공기관장 같은 경우도 ‘정권이 바뀌었다’는 이유만으로 쫓겨나야 했다. 이는 명백히 법과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다. 완성된 것처럼 보였던 절차적 민주주의는 한순간에 무너졌다. 그 대가로 이 정부는 지지층의 충성도를 높이는 효과를 얻었다.

새로운 지배층의 충원 범위도 매우 협소했다. ‘고소영’ ‘강부자’ 인사라는 지적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것이 인재풀의 한계였든 대통령의 인사스타일이었든, 이는 국민 통합을 저해하고 무능한 국정 운영 등으로 지지율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불렀다. 반면에 집권층에서 보면 그들의 이념과 정책을 일관되게 펴나갈 탄탄한 토대를 마련했다는 의미도 된다.

내면적인 변화로는 우리 사회의 수구·보수화에 전력을 기울이는 점을 들 수 있다. 정권 초기에 내세웠던 실용이라는 개념이 무색하게 대대적으로 보수이념 확산에 나섰다. 이념 논쟁에 관한 한 한치의 양보나 타협도 없다. 역사교과서 파동, 과거회귀법 강행 등이 대표적이다. 이는 심각한 사회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는데, 그 정도가 격화하면 우리 사회가 자칫 이념 대결 마당이 될 가능성도 있다. 이런 보수화 경향과 맞물려 악화하고 있는 남북관계도 획기적인 계기가 없는 한 이 정부 임기 안에 풀리기는 어려워 보인다.

또다른 변화는 국가정보원·검찰·경찰·국세청·감사원 등 이른바 권력기구의 정권 사유화 경향이 심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촛불집회 탄압에서 보듯 일차 폭력 수단인 경찰력을 이용해 반대 세력을 물리적으로 억압하고, 검찰이나 국세청 감사원 등을 정권 유지에 노골적으로 동원하고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국정원의 전면 등장이다. 국정원은 이미 활동 범위를 우리 사회 전반으로 넓히고 있는데, 이를 합법화하기 위한 국정원법 개정 움직임 등이 계속되고 있다. 이는 박정희 정권 시절의 정보정치 부활로 이어질 수 있다.

한마디로 이명박 1년은 경제살리기란 구호 뒤에서 소수의 보수·우익 지배계층과 ‘2% 부자’들의 이익 기반을 구축한 한 해였다고 할 수 있다. 이 정부는 올 예산국회 등을 통해 이런 목표를 상당 부분 성취했다. 핵심 지지층의 이해를 대변하는 종부세 무력화 등을 비롯한 ‘부자 감세’ 등이 그것이다. 앞으로 관련법 개정 등을 통해 소수 기득권층의 이익 지키기는 더욱 공고화될 것이다. 반작용으로 지지율은 추락했지만 이 정권은 자신들의 이익기반 확장과 기득권 유지를 위해 이를 밀어붙이고 있다.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는 20년 전으로 후퇴하고, 냉혹한 시장에서 밀려난 힘없는 중산·서민층의 삶은 갈수록 곤궁해지고 있다.

이명박 집권 1년 만에 이렇게 변했는데, 4년 뒤 우리 사회는 얼마나 더 변해 있을까? 지금처럼 정치적 야당의 존재가 미미하고, 시민사회와 중산·서민층의 자각 정도나 결집력이 미약하다면 이 정부는 변화의 강도와 속도를 더 높일 게 뻔하다. 그러면 우리 사회는 이념적으로나 사회경제적으로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재편될 것이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굴욕 한국영화’ …점유율 6년만에 41% 추락
스크린쿼터 축소 여파…“5년내 20%대 축소 예상”
미국영화 50%대 육박…한국서 매출 4000억원대
 
 
한겨레 이재성 기자
 








 
우리나라 영화시장에서 한국영화의 점유율이 6년 만에 처음으로 40%대로 추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화진흥위원회가 10일 발표한 ‘한국 영화산업 통계’(2008년 1~11월)를 보면, 한국영화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41.6%였다. 이는 2007년의 50.8%는 물론이고 2006년의 63.8%에 견줘 크게 떨어진 수치다. 한국영화 점유율이 50% 이하로 떨어진 것은 2002년 48.3% 이후 처음이다. 한국영화의 침체와 더불어 스크린쿼터 축소의 여파가 본격적으로 몰아닥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올해 미국영화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49.6%로 2007년의 49%(2007년 이전은 서울지역 통계)와 비슷했으나, 2006년의 34.9%보다는 크게 늘어났다. 스크린쿼터가 146일에서 73일로 축소된 시점이 2006년 7월1일부터였음을 감안하면, 스크린쿼터 축소 이후 미국영화의 점유율이 본격적으로 높아진 사실을 알 수 있다. 금액으로 따졌을 때 미국 영화사들이 올 한해 우리 영화시장에서 올린 매출(직배+수입)은 4271억원이었다.

이에 대해 양기환 스크린쿼터문화연대 사무처장은 “한때 한국영화 배급 파워가 할리우드와 대등해지면서 한국영화 의무상영일수였던 146일을 넘어갔는데, 이제 한국영화는 그런 힘을 급속하게 잃어가고 있다”며 “한국영화 점유율은 앞으로 5년 안에 지금의 절반인 20%대로 더 내려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영화의 위기가 더욱 깊어지면서 경쟁력 있는 영화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배급력이 그만큼 더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할리우드 영화에 시장지배력을 완전히 빼앗길 것이라는 주장이다.

올 한해 가장 흥행에 성공한 영화는 668만5742명이 관람한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었으며, 그 다음은 <추격자>(507만1578명), <쿵푸팬더>(467만3009명), <맘마미아>(448만6235명) 등의 순서였다.

한편, 외국영화의 배급사별 점유율은 파라마운트와 드림웍스의 국내 배급을 대행하는 시제이엔터테인먼트가 24.5%로 1위를 차지했고, 유피아이코리아(18.8%), 한국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12.7%), 워너브러더스코리아(10.4%)가 뒤를 이었다. 20세기폭스는 6.7%로 꼴찌였다. 올해 외국영화 흥행작 10편 중에도 폭스의 작품은 하나도 없었다.

업계 관계자는 폭스의 부진에 대해 “한국 지사의 사장이 자주 바뀌고 베테랑 직원들이 회사를 나간 뒤 마케팅 능력이 많이 약화됐다”고 말했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미야자키 하야오 '벼랑위의 포뇨' 키워드로 前作과 비교
① 변신 - 저주·세상과의 단절보다 사랑의 쟁취위해
② 환경 - 환경의 역습·위협서 인간과 친화에 역점
③ 동화 - 비극아닌 희극으로 종료… 밝음·긍정 지향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변신 '하울의 움직이는 성'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수 있습니다
변신 '하울의 움직이는 성'




환경 '원령공주'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수 있습니다
환경 '원령공주'




동화 '천공의 성 라퓨타'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수 있습니다
동화 '천공의 성 라퓨타'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 한국에서도 설명이 필요없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이다. 18일 개봉하는 그의 신작 '벼랑 위의 포뇨'는 여전히 대중의 취향을 꿰뚫는 그의 창의력이 녹슬지 않았음을 확인시켜준다.

일본에서는 10월말 기준 1,200만명이 관람, 역대 흥행 2위인 '하울의 움직이는 성'(1,500만명)의 기록을 뛰어넘을 것으로 기대된다.

'벼랑 위의 포뇨'는 미야자키의 근작 중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가장 부드럽고 드라마의 굴곡도 완만한 작품이다. 그만큼 전작들보다 어린이의 눈높이에 한층 가까워졌다. 그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변신'과 '환경'과 '동화' 세 가지를 키워드로, 전작들과 닮았으면서도 다른 '벼랑 위의 포뇨'를 살펴본다.

■ 변신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주인공인 18세 소녀 소피는 마녀의 질투 때문에 하루아침에 90세 노파로 전락한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는 주인공의 부모가 돼지로 변신하면서 극의 진폭이 커진다. '붉은 돼지'에서도 변신은 주요 소재다. 파시즘의 발호에 환멸을 느낀 포르코 롯소는 스스로 주문을 걸어 돼지로 변한다.

'벼랑 위의 포뇨'도 변신을 극의 주요 계기로 삼고 있다. 사람 얼굴을 한 특별한 물고기인 포뇨는 다섯 살 소년 소스케를 만나면서 소녀가 되기 위한 욕망에 사로잡힌다. 포뇨는 마법의 힘으로 개구리가 되는 올챙이처럼 손과 발이 쑥 튀어나오는 과정을 거쳐 인간으로 변모한다.


하지만 '벼랑 위의 포뇨'에서의 변신은 전작들과 결이 다르다. 전작의 캐릭터들이 저주와 단죄, 세상과의 단절이라는 부정적인 변신을 겪었다면 포뇨는 사랑의 쟁취라는 긍정적 목적을 위해 변신을 꾀한다.

■ 환경

'벼랑 위의 포뇨'에서 포뇨의 아빠는 포뇨를 찾아 나섰다가 바다 속 오물에 기겁을 한다. "또 환경 문제야"라는 다소 볼멘소리가 나올 대목이다. 하야오는 젊은 시절 공산당 기관지 '아카하타(赤旗)' 청소년판에 만화를 기고했을 정도로 좌파, 특히 아나키즘과 환경운동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왔다. '벼랑 위의 포뇨'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천공의 성 라퓨타'나 '원령공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의 전작들이 인류에 대한 환경의 역습과 위협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면, '벼랑 위의 포뇨'는 환경과 인간의 친화에 방점을 찍는다.

바닷가 마을을 덮치는 쓰나미는 인간에게 고통을 주기보다 삶을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주고, 인간과 환경의 사랑을 이어주는 역할에 충실하다. 어린이를 통해 현실에 대한 통렬한 비판보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말하고자 한 미야자키의 연출 의도가 엿보인다.

■ 동화

동서양의 다종다양한 신화와 동화 등을 교직해 새로운 상상력을 발현해내는 게 미야자키의 특기. '천공의 성 라퓨타'는 조나단 스위프트의 소설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하늘을 나는 섬나라' 편에, '이웃집 토토로'는 일본의 전설에, '원령공주'는 일본의 고대 신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벼랑 위의 포뇨'는 한스 안데르센의 고전 동화 '인어공주'를 원형질로 삼고 있다. 사랑 때문에 인간이 되고 싶은 사람 모양의 물고기가 사랑을 얻지 못하면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설정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단 영화는 '인어공주'와 달리 비극이 아닌 희극으로 막을 내린다. 어둠보다 빛을, 부정보다 긍정을 지향하며 어린이들을 위한 밝은 동화를 완성하려 한 미야자키의 선택인 셈.

참, 포뇨의 물고기 시절 본명은 '브륀힐데'다. 게르만족의 영웅 서사시를 오페라로 옮긴 리하르트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의 '발퀴레' 편에 나오는 이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