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새로운 한 해가 온다는 것

정용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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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용주
치악산 속에서 겨울을 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땔감이다. 햇살이 퍼지면 움막 뒤편 숲으로 가서 말라죽은 잣나무나 계곡 물가에 뿌리 뽑혀 있는 나무들을 톱으로 베어 부엌에 들여놓는다. 그리고 미리 해놓은 나무토막을 도끼로 쪼개 장작을 만들기도 하는데 이럴 때 빈 계곡에 쿵쿵 하고 울리는 소리는 외따로 떨어져 사는 내 삶의 방식을 자신에게 일러주는 메아리와 같다.

지게를 지고 고요한 나무들 사이를 이리저리 다니다 보면 잎이 무성할 때에는 눈에 잘 띄지 않던 짐승의 흔적을 종종 보게 된다. 새끼를 키워 나간 새집이 앙상한 가지에 드러나고, 말라비틀어진 칡넝쿨 아래는 토끼 똥이 방울방울 모여 있다. 껍질이 허옇게 벗겨진 어떤 소나무 에는 까칠한 털이 엉켜 붙어 있는 진흙이 묻어 있다. 진드기 때문에 가려움을 참지 못한 멧돼지가 진흙탕에 뒹굴고 남긴 자국이었다. 순간 무섭기도 했지만 피가 나도록 몸을 긁어댄 멧돼지가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흔적을 남긴 멧돼지는 지금 어느 숲 속을 헤매고 있을까.

모든 현재는 흔적을 남기고, 그것은 추억이 되어 우리에게 되돌아온다. 현재의 고통에만 집착해 행동한 일들을 돌이켜본다. 이제 내 몸에 나이테 하나를 더 늘리고 또 한 해가 간다. 새로운 한 해가 온다는 것은 훗날 아프지 않을 추억을 만들어갈 기회가 온다는 뜻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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