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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명사의 집] "우리 집에 있는 건 책과 먼지뿐"
고양 夫婦번역가 김난주·양억관씨
하루키등 日 최고작가 작품 수백편 번역
아내는 집에서, 남편은 오피스텔서 작업
"서로 무슨 작품 번역하는지 잘 몰라요"
김연주 기자 carol@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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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번역가인 김난주(49)씨와 양억관(51)씨의 아파트에 들어서니 복도 벽을 가득 채운 책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주방으로 가는 거실 왼편 복도에도 책이 꽂혀있고, 식탁에 앉으면 보이는 작은 방 속에도 책이 빼곡하다. 김씨는 "우리 집에 있는 것은 책과 먼지뿐"이라고 농담 섞어 설명했다. 유독 한쪽 책장의 책들은 갓 나온 듯 말끔하다. 김난주씨가 번역한 책들을 모아둔 곳이다. 당대 최고 일본 소설가들인 에쿠니 가오리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름 옆에 김난주씨의 이름이 나란히 적혀 있다.

부부는 일본 유학 중 만나 가정을 이루고, 출국 직후 번역을 시작해 지금까지 수백 편의 작품을 냈다. 특히 하루키와 요시모토 바나나 등 인기 작가의 작품을 대부분 번역해온 김씨는, 일본 소설 팬들이 "김씨의 이름을 보고 책을 고른다"고 할 정도로 사랑받는 번역가다.








▲ 번역가 김난주씨와 양억관씨 부부가 화정동 자택 거실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양씨는 두 딸에게 하늘을 뜻하는‘하느리’, 땅을 뜻하는‘소스리’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김건수 객원기자 kimkahns@chosun.com
부부는 12년 전부터 고양시 덕양구 화정동의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집은 김씨의 일터이자 생활 공간이다. 남편 양씨는 7년 전 일산의 오피스텔에 작업실을 마련해 출·퇴근한다. 아이들이 등교하고 남편이 출근한 오전 9시쯤 김씨의 작업은 시작된다. 오후엔 집안일과 저녁 준비를 하기 때문에 일은 대부분 오전에 이뤄진다. 빨래와 설거지, 밥짓기 사이에서 맛깔스러운 번역 작품이 나오는 셈이다. 김씨는 외출도 거의 하지 않고 붙박이처럼 집에 붙어 지낸다. 가끔 밤에 동네 친구들과 맥주를 한잔 하든지 장을 보러 가는 게 고작이다. 하지만 김씨는 오히려 '여행과 밖으로 나가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는' 성격이다. 작품을 시작하면 시간이 없고, 작품이 끝났다고 해도 다음 일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마음 편히 여행갈 시간이 없다. 유학 후 부부가 함께 일본 여행을 떠난 것이 한번뿐일 정도. 의외로 쉴 때 즐겨 보는 것은 '미드(미국 드라마)'다. "번역가는 소설과 교감해야 하니까 일본 드라마는 잘 안 봐요. 또 보면 단순히 감상으로 그치지 않고 자꾸 뭔가를 비판하게 돼요. 즐기는 선에서 안 끝나는 거죠."(김난주씨)

부부는 "한국어를 잘 다뤄야 번역을 잘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씨는 "번역가는 소설가보다 더 정확하게 우리말을 구사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국어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고 했고, 양씨는 "번역은 번역가가 가진 것(모국어 능력) 안에서만 나온다. 독자가 번역 작품을 읽고 느낌이 안 오면 번역가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16년간 소설을 주로 번역하다 보니 김씨도 질릴 때가 있다. "지겹죠. 번역 요청이 들어오면 '이번에도 바나나야?' '또 유미리야?' 한다니까요. 그래도 하나라도 새로운 점을 발견하려고 해요. 얼마 전에 작업한 '내 남자'라는 작품은 홋카이도가 배경인데, 그걸 번역하면서 일본의 자연에 대해 새삼 놀랐어요. 겨울에 오호츠크해의 빙하가 녹아 홋카이도 해안에 들어오고, 다시 봄에 철새처럼 돌아가는 장면이었어요. 거길 꼭 가봐야 하는데…." 김씨는 앞으로는 일본 근대문학이나 예술 관련서를 번역하고 싶다고 했다.

에쿠니 가오리와 쓰지 히토나리의 '냉정과 열정 사이'를 한 권씩 번역하기도 했던 부부지만, 서로의 일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편이다. 김씨는 "남편이 무슨 작품을 하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가끔씩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은 남편 양씨. 인터넷 검색이나 순간적으로 생각나지 않는 단어가 있을 때 김씨에게 묻는다. "난 번역을 하다가 적당한 단어가 안 떠오르면 '☆' 표시로 비워둬요. 여유롭게 생각하는 거죠. 근데 남편은 성격이 급해서 당장 그걸 알아내려고 해요. 참 다르죠." 부인의 말에 양씨는 가만히 웃고 있었다.

오후 2시쯤 양씨는 "나 출근할게" 하고 집을 나섰고, 김씨는 집에 머물러 배웅했다. 김씨는 에쿠니 가오리의 '장미 비파 레몬' 중 '옮긴이의 말'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책 속의 주인공인 그녀들은) 부부 싸움을 하고서도 남편이 보내주는 꽃다발에 웃음지을 만큼 너그럽고, 자식의 아픔에는 한 없이 약하며, 자신의 고독에는 눈물을 삼키는, 여자들 모두의 모습, 바로 우리 안에 있는 여자의 모습입니다.'



김난주·양억관씨는…

김난주씨는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 석사를 수료하고 일본에서 일본 근대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김씨는 1992년 무라카미 하루키의 '육각수의 꿈'을 시작으로 번역가의 길에 들어섰다. 이후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 '재즈 에세이', '렉싱턴의 유령', 요시모토 바나나의 'N.P', '키친', '티티새', 에쿠니 가오리의 '울 준비는 되어 있다',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 등을 번역했다. 양억관씨는 경희대 국어국문학 석사 수료 후 일본에서 일본경제사상사 박사 학위 과정을 중퇴하고 출국해 번역을 시작했다. 무라카미 류의 '69', '교코', '엑소더스', 오쿠다 히데오의 '한밤중의 행진', 쓰지 히토나리의 '냉정과 열정 사이'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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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12-21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두 분이 부부였군요! 일본책 번역서로는 두 분 이름이 참 많은데 부부였다니 신기하네요.

달빛푸른고개 2008-12-21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백 편이라네요. 이 분들이 번역하면 우선 믿을만하더군요. 가끔 다소 실망스러운 번역이 보이면, 아마도 출판사가 출간시기 때문에 작업시간을 종용해서 그런가보다 생각할 정도로... ^^

BRINY 2008-12-22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두 분이 부부셨군요.

소나무집 2008-12-22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에서 이 분들의 이름을 발견하면 믿음이 갔는데 부부였군요.
번역가도 이렇게 만날 있 있어 반갑네요.

달빛푸른고개 2008-12-23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도 창작이라는 말이 새삼 떠오릅니다.
 

“고전 소리내어 몸으로 읽는 현대판 서당 만들 것”
입력: 2008년 02월 18일 17:33:18
 
ㆍ경복궁 옆 책방 ‘길담서원’ 여는 박성준 교수

3호선 경복궁역에서 내려 2번 출구로 나가면 자하문으로 향하는 큰 길이 나타난다. 그 길을 따라 걷다보면 왼쪽에 인왕산, 정면에 북악산이 보인다. 이따금 지나는 곳이라 새로울 것도 없지만 이날 따라 저 산들의 나이는 얼마나 됐을까 궁금해진다. 그렇게 200~300쯤 걸었을까. 우리은행 주차장을 끼고 왼쪽으로 들어가는 작은 길. 그 ‘길’ 끝은 옛 서울의 모습을 간직한 한옥집 ‘담’으로 막혀 있다. 통인동 155번지. 이곳이 바로 책방 ‘길담서원’이 터를 잡은 곳이다. 평화운동가인 박성준 성공회대 겸임교수(68)는 기자를 보자 면구스러워했다. 찾아오는 사람을 막지는 않았지만 갑작스러운 인터뷰가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탁자 위에는 얼 쇼리스의 ‘희망의 인문학’이 놓여 있었다.


“그냥 작은 옹달샘 하나 판다는 생각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직 문도 열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고 오셨습니까?”

성공회대 NGO대학원에서 ‘평화학’을 강의하는 박교수는 이달 25일 인문학 책방을 열기 위해 이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한명숙 전 총리의 남편인 그는 소문대로 자상했다. “제가 끓이는 커피 맛있습니다”라며 손수 커피를 끓여 내왔다. 책방은 아직 어수선했다. 집에서 가져온 그의 책장과 책들이 한쪽 구석에 쌓여 있었고, 내부 수리가 진행 중이었다. 책방 이름이 왜 ‘길담’일까.

“‘길’이는 우리 아이 이름이고, ‘담’이는 제 친한 후배의 아이 이름입니다. 둘을 합한 거지요. 그 댁에서 먼저 제안했고 ‘길담서원’이라고 소리내 불러보니 울림이 좋아서 동의했습니다. 다양한 의미로 읽히더군요. ‘길에 관한 담론’ 또는 길(吉)한 이야기(談), 즉 ‘굿 뉴스(복음)’로도 읽히더군요. 오시면서 보셨겠지만 이 동네엔 ‘길’과 ‘담’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경복궁 담을 따라 가면 ‘길’은 자하문 밖으로 열립니다. ‘길‘과 ‘담’은 떠남과 머무름, 열림과 닫힘, 비움과 채움입니다. 우리는 길을 떠나야 하지만 언제나 길 위에서만 살 수는 없고 담으로 둘린 안식처가 필요하지요. ”

길담서원에서는 인문·사회과학과 문학, 예술, 아동 분야의 책들을 다룰 생각이다. 생태, 생명, 우정과 자치를 강조하는 책들을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비치해 둘 생각이라고 했다.

“물론 제가 좋아하는 책만 취급할 순 없겠죠. 전문 연구자들의 자문을 받아 좋은 책을 선별하고, 특별히 ‘이달의 책’ 코너를 운영할 생각입니다. ‘책방 하면 망한다던데…’라며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내는 지인들이 많지만 아름다운 가게의 박원순 변호사, 원불교 서울교구장 이선종 교무, 녹색평론의 김종철 대표, 창비의 백낙청 교수, 김지하 시인 같은 분들께 책방 일을 의논드렸고 따뜻한 격려를 받았습니다.”

박교수는 이곳을 단순한 서점으로 운영할 생각이 아니다. 대화가 있는 공부방, 그리고 차와 음악이 있는 문화공간으로 만들고 싶어한다.

“우리 조상들이 했던 것처럼 고전을 소리내 몸으로 읽어야 합니다. 그래서 문리(文理)가 트인다는 게 어떤 것인지 체득할 수 있는 현대판 서당이 될 겁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영어교육만 하더라도 생활영어, 영어회화가 마치 영어교육의 본령인 것처럼 여기는데, 고전적 가치가 있는 인문·사회과학의 양서를 풍부하게 읽는 가운데 덩달아 귀도 열리고 입도 열리고 생각도 깊어지는 공부가 진정한 영어공부가 돼야 합니다.”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책방 주인이 된 것은 어쩌면 그에게 숙명인지도 모른다. 그는 전쟁통에 부모와 헤어져 남의 책을 베끼며 독학으로 공부해 대학에 진학했다. 1968년에는 통혁당 사건으로 구속돼 13년 반 동안 감옥살이를 하는 등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다. 그렇게 지난한 세월을 보내는 동안 ‘책’은 늘 인생의 동반자였다.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수업 도중에 영양실조로 쓰러졌습니다. 학교의 보호를 받으며 심부름 하는 아이로 일하면서 겨우 졸업했어요. 중학교 진학은 못했어요. 어느 여자중·고등학교의 급사로 일하며 숙직실에서 기거했지요. 남의 책을 빌려 밤새워 베꼈어요. 그런 식으로 내가 만든 책들을 몸에 지니고 다니며 틈틈이 공부했습니다. 4·19 나던 해에 대학에 들어갔는데요, 금지된 사회과학 책들을 접하며 충격을 받았어요. 그 책들도 베끼기 시작했어요. 저는 책을 베끼는 데 비범한 능력이 있었거든요(웃음). 그러다 사건에 연루돼 구속되니까, 내가 베껴 쓴 책들이 모두 증거품이 됐어요. 그래서 과도하게 무거운 15년형을 받았죠. 감옥에 있을 때에도, 출옥한 후에도 책을 벗삼아 살았어요. 그러니 책방주인이 되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 합니다.”


3년 전부터 그는 책방을 여는 꿈을 실행에 옮기려 했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실현되지 않았다. 한번은 계약금을 치렀다가 돈을 날리기도 했다. 그러다 지난해 12월 심한 감기를 앓은 것이 결심을 굳힌 계기가 됐다.

“한달 가까이 감기에 걸려 외출도 못하고 누워만 있었어요. 오직 할 수 있는 건 책 읽기뿐이었습니다. 그때 주로 읽은 책들이 녹색평론의 책들이었습니다.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고미숙 선생의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 ‘호모 쿵푸스’ 같이, 공부에 대해 쓴 책들도 아주 재미있게 읽었고요, 부산의 ‘인디고서원’에서 매달 추천하는 책들도 봤습니다. ‘아, 참 좋구나, 감기를 앓는 것도 이렇게 좋을 수가 있구나’ 생각했어요.”

감기가 낫자마자 녹색평론의 ‘이반 일리치 읽기모임’에도 가보고, 부산의 인디고서원과 ‘수유+너머’를 찾아갔다. 부산에만 3~4차례 내려갔고, ‘수유+너머’에 가서 젊은 사람들과 탁구를 치며 어울렸다. 그러다가 결국 아내인 한명숙 전 총리에게 ‘책방 개업’의 도움을 요청했다.

“이렇게 작은 책방이지만 돈이 드는 일이죠. 빚을 얻었는데 저의 신용만으론 어렵고 그 사람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도 처음엔 가뜩이나 어려울 때 하필이면 장사도 안 되는 책방이냐고 했지만, 제가 행복해하니까 싫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그는 13년 넘는 복역기간 중 문학, 역사, 철학, 종교 등 다방면의 독서 편력을 거쳐 차츰 신학에 집중했고, 이 공부가 기반이 돼 81년 출소 후 일본에서 민중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으로 가 유니언신학교와 퀘이커 공동체 ‘펜들힐’에서 ‘평화’를 화두로 공부하고 수행에 정진했다. 그는 “나를 포함해 우리 모두가, 이제야말로 진정한 공부가 필요할 때”라고 말했다.

“민주정부 10년의 경험 이후 우리는 이제 재충전이 필요한 시기인 것 같습니다. 생각이나 지혜가 동날 때도 됐어요. 진정한 공부가 없이는 이제 안 됩니다. 독서가 없는 마음공부는 공허합니다. 인문학적 책읽기가 정말 필요한 때입니다. 논어 위정편에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무의미하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子曰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는 말이 나옵니다. 옳은 말입니다. 90년대 사회주의권이 붕괴되면서 사람들이 사회과학책을 손 놓아버렸지요. 명상, 영성, 마음공부 이런 쪽으로 기울어지는 사람들이 생겨났어요. 그것은 당시로서는 의미있는 일이었고 자기 성찰이라는 점에서 일면 발전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릇’만 있고 ‘내용’이 없으면 진정한 성찰이 아닙니다. 그게 바로 ‘사이불학(思而不學)’에 가까웠습니다. 그런 유행에 편승해 요즘 처세술이나 명상법 같은 책들이 범람하는데, 그런 책들만 읽으면서 독서를 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한바퀴 돌아서 다시 원점으로 왔다고 봅니다. 개인의 삶도 그렇고 우리 사회도 그렇습니다. 숭례문이 불 타버린 것이 ‘때의 징조’를 나타내는 상징적 사건입니다. 이제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박교수는 ‘길담’이 위치한 통인동을 “서울에서도 기운이 좋은 곳”이라고 했다. 환경운동연합, 참여연대, 아름다운가게, 희망제작소 등 주요 시민단체뿐 아니라 청와대, 정부종합청사를 비롯한 주요 관공서들도 모두 걸어서 5~10분 거리에 있다. 그는 “이 좋은 기운에 가장 어울리는 게 바로 책방”이라며 웃었다. 대학가에서도 사라져가는 인문사회과학 책방을 경복궁 근처에 내는 그의 의중이 읽히는 대목이다.

“그분(공무원)들인들 어찌 목마름이 없겠습니까. 저는 그분들을 존중하고 신뢰합니다. 우리 시대가 경박하고 오염됐다면 저도 그 한 부분입니다. 큰 강물도 시원(始原)은 산속에 숨겨진 작은 옹달샘이거든요. 목마른 길손이 우연히 찾아왔다가 목을 축이고, 잠시 쉬었다 돌아가 친구들에게 알리고 싶고, 그 길을 지날 때 다시 들르고 싶어지는 곳. 그런 곳이 됐으면 합니다. 부산에 ‘인디고서원’이 있다면 서울에는 ‘길담서원’이 있습니다. 다른 곳에는 그 지역 특색에 맞는 또 다른 ‘서원’들이 생겨나길 기대합니다.”


박성준 교수는
1940년 경남 통영에서 태어났다. 한국전쟁 때 부모와 생이별한 그의 어릴 적 소원은 “밥 한 그릇 배불리 먹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졸업 후 중학교 급사생활을 하며 독학으로 서울대 상대에 입학, ‘경제복지회’라는 동아리를 만들었다. 김근태 의원과 부인 한명숙 전 총리가 동아리 후배다. 67년 한전총리를 미팅으로 만나 결혼한 박교수는 결혼 6개월 만에 통혁당 사건으로 구속됐다. 출소 후 신학박사 학위를 받아 2001년부터 성공회대에서 ‘평화학’ 강의를 해오고 있으며 비폭력평화물결과 아름다운가게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 글 손제민·사진 우철훈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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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8-02-20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넷 서점이 주는 편리성 때문에 오프라인 서점에 가서 직접 책을 뒤적이고
품에 안고 오는 맛이 사라졌습니다. '서원'이라는 표현이 절실하게 와 닿네요

글샘 2008-02-21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습니다. 표지만 보고 작가만 보고 제목만 보고 책을 사게 되기 쉽죠.
적어도 머릿말이나 목차만이라도 읽고 나면 안 샀을 책들도 말입니다.
하기야... 온라인 서점 없었다면, 그나마도 안 봤을 공산이 크지만요.^^
아, 이분이 한명숙 총리 속썩였다던 그 분이군요. ^^

소나무집 2008-02-21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생각을 품는 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저도 일반 서점에는 안 가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주인의 정성이 깃든 이런 서점이라면 들러보고 싶네요.

달빛푸른고개 2008-02-21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들께..
그간 제가 가본 서점 중에는 지금도 있을런지 모르겠지만 여수 중앙서점(입구쪽을 바라보면 포구가 보이는... 그리고 선창가에 있던 중앙동우체국...), 서귀포 우생당서점(고개를 내려가면 역시 바다가 펼쳐지는), 그리고 충주에 있는 '책이있는글터' 서점이 인상적이더군요. 글터서점은 지역에서 인문학과 좋은 아이들 책을 널리 읽혀보려는 주인장의 생각이 구석구석 배어있는 서점이었다는 기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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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고 한다. 책의 영향력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말이다. 책의 힘은 정말 세다. 한 순간 사람을 빨아들여 정신세계를 지배하기도 하고, 나아가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좋은 책을 한 권 읽고 제 것으로 만드는 것은 인생의 나침반이 되어 주는 훌륭한 스승을 만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금 국내 독서시장에서는 한 권의 책이 조용하지만 무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이 책은 단지 일부 사람에게 말을 건네지 않는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당신’에게 귀 기울여 줄 것을 나지막하게 권유하고 있다. 책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척 매력적이다. 아니 마력적이다. 당신의 인생을 당신 마음대로 만들 수 있는 ‘비밀’을 속삭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제목 자체가 ‘시크릿’(The Secretㆍ살림출판사 발행)이다. 정관사 ‘The’가 붙은 데서 짐작하겠지만 이 책은 여러 가지 비밀 중에서 한 가지 비밀을 전하는 게 아니라 세상에 감춰져 있는 ‘유일한 비밀’을 펼쳐 보인다. 생각해보라. 세상에서 가장 은밀하면서도 가장 큰 힘을 얻을 수 있는 비밀이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당장 움켜쥐지 않겠는가.
‘시크릿’의 저자는 전직 TV 프로듀서인 호주 여성 론다 번(Rhonda Byrne)이다. TV 프로그램을 만들던 어느 평범한 여성이 어떻게 세상에서 가장 큰 비밀을 발견할 수 있었을까. 아마 궁금할 것이다.
사실 그 비밀은 그녀가 처음 발견한 것이 아니다. 인류가 탄생한 이래로 이미 존재해 왔고 일부 사람들은 그 점을 알고 있었다. 단지 그 비밀의 문을 저자 번이 열심히 노크했고 그 정성에 비밀이 문을 열어준 것이다.
번은 서언에서 이렇게 말한다. “1년 전 모든 일이 힘겨웠다.(중략) 그 때 나는 ‘위대한 비밀’, ‘삶의 비밀’을 어렴풋이 보게 되었다. 내게 ‘비밀’을 어렴풋이 알려준 것은 딸아이 헤일리가 준 100년 된 책이었다. 나는 역사를 추적하며 ‘비밀’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믿어지지 않는 사실을 발견했다. 플라톤, 셰익스피어, 뉴턴, 위고, 베토벤, 링컨, 에머슨, 에디슨, 아인슈타인.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인물들이 이 ‘비밀’을 알고 있었다니.(이하 생략)”
독자들도 놀랄 것이다. 아니 어떤 비밀이기에, 서로 다른 시대, 서로 다른 나라에 살던 많은 위인들이 똑같은 비밀을 알고 있었을까. 그리고 대체 그 비밀은 무엇일까.
번이 밝혀낸 비밀은 어찌 보면 비밀이 아니다. 잔뜩 기대했는데, 맥이 빠지는가. 그럴 이유는 없다. 비밀은 아닌데 그게 진짜 비밀이다. 생각해보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에게는 수많은 교훈이 주어졌다. 그 중에는 사람들이 실천하는 교훈도 있고 그렇지 못한 교훈도 있다. 분명 뼈와 살이 되는 영양분임에도 그저 흘려 들어 섭취하지 못하는 교훈이 있는 것이다.
번은 서로 다른 현자들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말한 교훈에서 한 가지 일관된 공통점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것이 바로 ‘시크릿’이 말하는 비밀인데, 저자 번은 이를 ‘끌어당김의 법칙’이라고 정리했다. 물론 그녀에게 비밀을 말해준 당대의 선각자들도 법칙의 명명에 대해 동의한다.
‘시크릿’은 232페이지의 분량을 초지일관 이 법칙을 풀어내고 설명하고 예시하는 데 몽땅 할애하고 있다. 매우 다양한 정의와 사례가 나오지만 모두 ‘끌어당김의 법칙’으로 압축된다.
그렇다면 대체 ‘끌어당김의 법칙’은 무엇인가. 베스트셀러 저자이자 기업 컨설턴트인 존 아사라프는 이렇게 말한다. “끌어당김의 법칙을 바라보는 가장 쉬운 관점은, 나 자신을 자석이라고 가정하는 것이다. 자석은 물체를 자신에게 끌어당긴다.”
저자 번은 책의 초두에서 이 법칙을 더 쉽게 설명하고 있다. “당신의 인생에 나타나는 모든 현상은 당신이 끌어당긴 것이다. 당신이 마음에 그린 그림과 생각이 그것들을 끌어당겼다는 뜻이다. 마음에 어떤 생각이 일어나든지, 바로 그것이 당신에게 끌려오게 된다.”
낯설지 않은 말처럼 들리지 않는가. 우리가 어린 시절에 배워 거의 100% 잊지 않고 살아가는 과학적 명제를 떠올려 보라. 바로 만유인력(萬有引力ㆍUniversal Gravitation) 말이다.
뉴턴이 1665년 발견하고 아인슈타인이 1915년 그 원인을 일반상대성 이론에 근거해 밝혀낸 만유인력은 ‘우주의 모든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서로 끌어당기는 힘’을 말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체는 서로 끌어당기고 있다는 것이다.
‘끌어당김의 법칙’은 이 위대한 과학적 발견의 ‘정신적 적용’을 통한 ‘실체(實體)적 구현’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사람의 생각과 감정, 의지 등이 그에 해당하는 어떤 현상을 실체화한다는 뜻이다.
6년 전 한국의 여름을 용광로처럼 뜨겁게 달군 월드컵을 한 번 기억해보자. 그 때 붉은 악마의 슬로건이 ‘꿈은 이루어진다’였다. 거스 히딩크 감독과 태극전사의 ‘4강 다짐’과 온 국민의 ‘염원’이 말 그대로 꿈 같은 일을 현실로 만들어내지 않았는가. 과학적 증명은 불가능하지만 그 때 그 열망과 의지가 4강신화를 창조했던 것은 분명하다.
‘끌어당김의 법칙’의 요체는 단순하고 명쾌하다. 사람의 ‘생각’은 우주에 그 내용에 해당하는 ‘주파수’를 날리고 그 주파수를 접수한 우주는 이를 ‘현실’로 구현해준다는 것이다.
언뜻 황당한 궤변 같지만,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은 늘 부정적인 상황에 직면하게 되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은 항상 긍정적인 상황을 즐길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될 것이다.
주목할 것은 이 단순명료한 비밀에 많은 사람들이 빨려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크릿’은 2006년 말 미국에서 출간돼 최단 기간 500만 부 판매라는 신기록을 세우는가 하면 무명의 저자 론다 번은 단숨에 ‘타임’지가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의 반열에 올라섰다.
한국의 독자들도 ‘시크릿’에 열광하고 있다. 별다른 홍보 없이도 한 명의 독자가 또 다른 독자에게 권하는 입소문 방식으로 퍼져나가 부지불식 중에 베스트셀러로 부상했다.
지난해 6월 출간된 후 9월 첫 주에 한국출판인회의가 집계하는 주간 베스트셀러 1위에 처음 오른 후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에 딱 2주만 1위를 내준 것을 빼고 19주째 정상을 지키고 있다. 그 여세로 교보문고, 예스24 등 주요 서점들이 선정하는 ‘2007년 올해의 책’에 수 차례 오르는 영광을 차지하기도 했다.
‘시크릿’의 주 독자층이 젊은 층이라는 점은 특히 눈여겨볼 대목이다. 예스24에 따르면 ‘시크릿’을 구매하는 독자 중 20~30대가 74%로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나고 있다. 또 자기계발서가 통상 남성들에게 많이 팔려나가는 흐름과 달리 여성들의 구매 비율이 54%로 좀 더 높게 나타난 점도 특징이다.
그렇다면 전문가들은 ‘시크릿’ 신드롬의 비결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임수정 예스24 마케팅팀 파트장은 “성공과 행복을 끊임없이 갈구하는 현대인에게 부와 성공과 행복 등이 특정인에게만 허락된 행운이 아니라 누구든지 성취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내용이 호응을 얻어낸 바탕”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또 “최근 몇 년간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긍정’의 키워드가 2007년 ‘시크릿’을 통해 보다 폭 넓은 독자와 만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은 보다 거시적인 시각으로 ‘시크릿’ 돌풍의 원인을 분석했다.
그는 “미국인이 ‘시크릿’에 빠진 것은 9ㆍ11테러 이후 서양문명의 합리성에 대한 믿음이 많이 약해져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를 추구하기 시작한 흐름과 관련이 있으며, 국내에서 젊은이들이 ‘시크릿’에 몰입하는 이유는 ‘88만 원’ 세대로 불릴 만큼 꿈과 희망을 잃어버린 현실에 대한 탈출구를 찾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시크릿’을 읽은 독자들은 과연 삶의 비밀을 얻어냈을까. 놀라운 것은 실제 상당수 독자들이 이 책을 만난 뒤 인생이 바뀌는 경험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직장인 이준석(가명ㆍ38) 씨는 “동양사상에 심취한 친구로부터 모든 심오한 사상의 완결판이라며 선물을 받았는데 책을 읽고 난 뒤 오랜 정신적 방황을 그만두고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며 “실제 긍정적인 생각에 집중하고 또 이를 믿으니까 놀랍게도 현실이 달라졌다. 인생을 ‘선택 당하며’ 사는 게 아니라 ‘선택하며’ 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게 가장 큰 소득”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작가로 활동 중인 나성미(가명ㆍ32) 씨는 “지인의 소개로 ‘시크릿’을 접했는데 처음에는 좋은 말만 짜깁기한 허접한 책으로 판단했지만 읽을수록 그 비밀에 빨려 드는 것을 느꼈다”며 “지금은 내게 성경이나 다름없다. 뭔가 일이 풀리지 않을 때는 다시 읽으며 ‘시크릿’의 비밀을 곱씹는 게 습관이 됐다”고 말했다.
론다 번은 “인생을 창조할 모든 힘을, 당신은 다름아닌 ‘지금’ 사용할 수 있다”고 충심어린 조언을 한다. 그 방법은 간단하다. 먼저 원하는 것을 ‘찾고’, 그 소원이 이미 이뤄졌다고 ‘믿고’, 마지막으로는 소원이 이뤄진 것처럼 ‘느끼기’다. 이 3가지가 비밀의 문을 여는 열쇠다.


 


■ "독자들 입소문이 베스트셀러 만든 일등공신이죠"
인터뷰 살림출판사 강훈 기획주간


2007년 초가을 독서시장에 혜성처럼 나타나 지금껏 베스트셀러 1위로 롱런하고 있는 '시크릿' 신드롬의 애초 진원지는 미국이다. 이 책을 번역 출간한 살림출판사 측은 은근히 기대를 하기는 했지만 '대박'까지는 예견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만큼 '시크릿' 돌풍은 다소 뜻밖이며 또한 강력하다. 강훈 기획주간으로부터 '시크릿' 출간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봤다.
-시크릿을 국내 번역 출간하기로 기획한 동기는.
"미국 인터넷서점 아마존에서 장기간 베스트셀러이다 보니 한국의 여러 출판사에서도 관심을 가졌다. 원서를 받아보기 전에는 그저 그런 자기계발서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책을 읽고는 완전히 매료됐다. '이거다' 싶더라.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적인 문장들과 독특한 디자인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내용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결국 판권을 따낼 수 있었다."
-미국 출판시장에서 대단한 선풍을 일으켰다고 하던데.
"미국에서 2006년 11월말에 출간됐는데 그 즉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지난해 2월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소개된 후에는 판매가 더욱 증가했다. 방송 후 네티즌들의 접속이 폭주해 홈페이지가 마비될 지경에 이르자 '오프라 윈프리 쇼'는 이례적으로 바로 다음 주에 '시크릿, 그 거대한 반응'이란 제목으로 2차 특집방송을 내보냈을 정도다. 당시 출판계의 최대 관심사였던 '해리포터' 마지막 편보다 독자들의 관심을 더 끌면서 시크릿은 '가장 짧은 기간에 가장 많이 팔린 책'으로 불리며 경이적인 판매기록 행진을 시작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큰 인기를 끌 것으로 예상했는지.
"솔직히 베스트셀러가 되리라 기대는 했어도 이만큼 반응이 폭발적일 줄은 짐작하지 못했다. 30만부를 1차 판매목표로 설정하고도 예상이 어긋나면 어쩌나 하며 마음을 졸였던 것도 사실이다. 다만 우리의 마음을 흔들었던 것처럼 독자들에게도 어필할 것이라는 확신만큼은 있었다. 독자들의 성원에 깊이 감사를 드린다."
-시크릿이 베스트셀러가 된 비결과 이 책의 가장 큰 덕목은.
"시크릿은 광고나 홍보에 의해 만들어진 베스트셀러가 아니다. 독자들의 간절한 소망을 정확히 읽어내고, 그 소망을 이루고 싶은 욕구를 스스로 찾아 나서도록 해주는 책 내용이 원동력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꿈과 희망을 안고 살아가고 있으며 성공하고 싶다는 나름의 절박함도 갖고 있다. 시크릿의 성공 비결이라면 실패를 경험했지만 다시 삶의 원동력을 찾으려는 사람들, 그리고 책에서 느낀 감동과 용기를 주위의 소중한 사람들과 나누고자 했던 독자들의 정성이 아닐까 한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독자들의 입소문이 일등 공신인 셈이다."
-책의 디자인, 편집 방식도 독특하다는 평가가 많다.
"한국어판은 원서의 분위기를 최대한 살렸다. 제목에서도 비밀스러움이 느껴지지만 표지와 본문 디자인에서도 이런 특징을 최대한 부각시킨 것이 유효했던 것 같다. '수 세기 동안 단 1%만이 알았던 부와 성공의 비밀'이라는 신비로운 느낌을 그대로 전달하기 위한 붉은색 시크릿 인장, 고풍스러운 색채와 손글씨, 다양한 문양들이 독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줬을 것이다."
-시크릿의 내용 중 가장 핵심적인 '비밀'과 그 메시지는 무엇인가.
"시크릿에는 인생의 많은 비밀이 곳곳에 숨어 있다. 그래서 읽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른 부분에 강조점을 두게 된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항상 감사하라', '소원을 마음에 그려라' 등등. 개인적으로는 그것들을 하나로 관통하는 메시지가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가 아닐까 한다. 마음을 닫고 들으면 "늘 하는 피상적인 소리 아니야" 하고 무시할 수도 있겠지만, 진심으로 무언가를 갈망해봤던 사람들,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경험해봤던 사람들은 그 안에 감춰진 진실의 의미를 느낀다고 생각한다. '내 인생은 어디서부터 꼬였을까'라는 고민에 사로잡혀 있는 이들에게,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힘은 바로 '당신' 안에 있다는 것을 알려줌으로써 '그래, 다시 한번 해봐야지'라는 용기를 심어주는 게 바로 시크릿이다. 전 세계의 수많은 독자들이 공감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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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푸른고개 2008-02-04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본문이 잘리는 걸 어떻게 방지할지... 쩝!

마노아 2008-02-04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 구성을 3단이 아니라 2단으로 쓰시면 본문 너비가 넓어져요~

달빛푸른고개 2008-02-05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꾸벅.
 

인문 출판의 위기? 우리는 돌파한다
좀더 고민이 필요할 뿐, 널리 유포되고 있는 출판의 위기에 관한 담론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열정적인 출판인들을 만났다. 소신 있는 기획으로 유명한 이들이 내놓은 해법은 무엇일까.
 

[19호] 2008년 01월 21일 (월) 13:02:20 노순동 차형석 기자 cha@sisain.co.kr
 

‘출판계 불황’이라는 말은 해마다 반복된다. 상투적 뉴스에 가깝다. 그 중에서도 ‘출판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인문·학술 출판은 역설적으로 위기라는 말이 더 자주 들려온다. 해마다 꾸준히 인문·학술 서적 20여 종 안팎을 출판하는 4개 출판사 대표와 기획자가 모였다. <인물과 사상> 시리즈를 펴낸 바 있는 개마고원은 그동안 고종석·손석춘·강준만 등 비판적 지식인의 책을 펴냈다. 그린비는 연구 공동체 ‘수유+너머’와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인문·철학 서적을 주로 출간한다. 도서출판 길은 묵직한 학술서적을 주로 펴내왔고, 이매진은 정치학자 손호철 교수의 책과 젊은 연구자들의 ‘젊은 인문서’를 출간하고 있다. 각 출판사의 올해 출간 방향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 출판사별로 올해 출간 방향이나 계획이 어떻습니까?



   
 
ⓒ시사IN 한향란유재건 (그린비 대표)  “출판이 만약 어렵다면, 돌파할 다양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인문·사회과학 출판도 오디오북이나, e-러닝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콘텐츠 자체의 쇄신도 필요하지만 미디어적 관점에서 고민을 병행해야 한다.”
 
 
유재건 (그린비 대표)
: 인문 출판이 힘을 발휘하려면 종수가 늘어야 한다. 인문서의 판매 부수가 2000~3000부 수준이라고 볼 때, 매출을 높이려면 종수를 늘리는 것도 방법이다. 그린비는 올해 34종을 출간하고, 향후 2~3년 안에 한 해 50종 정도 내는 출판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주마다 한 권씩 책을 펴내 단행본의 깊이를 갖되 현실 문제에 답하는 순발력을 발휘하고 싶다. 올해 출간의 주요 방향은 ‘근대’이다. 근대는 어떻게 생겨났고, 근대를 넘어서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근대의 원점부터 비판적으로 살펴보려고 한다. 현안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것은 인문 출판이 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대신 저변에서 이론적 기반을 제공하는 작업을 지속하고 싶다.

이승우 (도서출판 길 기획실장) : 우리 출판사가 생긴 지 5년 정도 되었다. 지난해 19종을 냈고, 올해 40~50종 정도 출간할 계획이다. 현재 기획된 책이 200종쯤 되는데, 올해부터 본격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출판사의 색깔을 확실히 드러낼 책들을 내고 싶다. 중역을 하지 않고, 전공자에 의한, 주해가 충실한 엄밀한 결정판본을 내자는 생각이다. 마르크스의 <자본론> 독일어 원전 번역본이나 동서양 고전을 집중해서 번역 출판할 계획이다.

장의덕 (개마고원 대표) : 두 출판사는 모색기를 거쳐 자기 색깔을 확실히 잡은 것 같다. 개마고원은 <인물과 사상> 이후 몇 년 동안 방향을 잃었다. 그동안 국내 기획서 중심으로, 학술서보다는 사회과학적 문제의식을 대중적으로 접근하는 작업을 해왔는데, 쉽지 않았다. 독자 대상에 관한 고민이 크다. 인문·사회과학 출판사들은 ‘이제 대학생은 독자층에서 사라진 것 아닌가’ 걱정한다. 대학생 개인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가 있다. ‘인문적 소양이 먹고사는 데 도움이 안 된다’고 사회가 강요하는 형국이다. 개마고원의 주 독자층은 386세대(30대 후반, 40대 초반)이다. 그런데 눈높이를 386으로만 잡아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이제는 ‘10대 좌파’를 발굴하는 기획을 중심에 두고 있다(좌파가 별건가? 세상에 대한 문제의식을 말하는 거다). 10대들이 사회에 대해 진취적이고, 진보적 의식을 갖게 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을 준비 중이다. 20종 내외를 펴낼 계획이다.

정철수 (이매진 대표) : 2004년부터 시작한 젊은 출판사로 그동안 60종을 냈다. 작은 출판사가 생존을 해야 하니까, 종수는 20~25종으로 늘릴 것이다. 학술출판 종수를 늘리거나 동서양 고전에 천착하는 방식은 선택하지 않기로 했다. 이미 그런 책을 내는 출판사가 있기 때문에. 인문·사회과학 출판의 틈새를 찾아 다양성을 확보하자는 게 목표다. 20대 후반, 30대 초반 젊은 연구자들을 신진 필자로 키우는 전략을 택했다. 석사 학위자를 포함해 필자를 발굴하는 데 관심을 갖고 있다.

유재건 : 4개 출판사가 차이가 많다. 경쟁하지 않아서 좋다(일동 웃음).

- 각 출판사가 종수를 늘리려는 경향이 눈에 띈다. 그런데 인문·사회과학 출판이 어렵다고 하지 않는가?

유재건 : 인문·사회과학 출판이 힘들다고 하는데…아니다, 저는 어렵지 않다. 다만 위기론 같은 담론이 유포되는 것이 문제라고 본다(일동 웃음). 판매 부수 때문인지, 종수가 적어서 어려운지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그린비에서는 인문학 서적이 1000부 정도 팔려도 출판사 운영이 되는 구조를 만들고 싶다. 출판이 만약 어렵다면, 돌파할 다양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인문·사회과학 출판도 오디오북이나, e-러닝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콘텐츠 자체의 쇄신도 필요하지만 전달 방식 등 미디어적 관점에서 고민을 병행해야 한다. 미디어적 실험이 함께 가야, 인문학 출판의 희망을 말할 수 있다.
그린비에서는 연구자를 모시고 내부 강의를 많이 한다. 그거를 전부 녹음하고 홈페이지를 통해 독자에게 제공할 계획이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 4~5년 후에 ‘원 소스 멀티 유스’의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시사IN 한향란이승우 (도서출판 길 기획실장)  “인문서는 그 책의 주제를 전공한 전공자가 번역하는 출판 문화가 필요하다. 비전공자가 번역을 하는 경우, 번역이 엄밀하지 못하고 황당한 오역이 생긴다. 출판 편집자나 기획자가 번역자를 찾는 노력이 중요하다.”
 
 
이승우
: 13년째 출판계에 몸담고 있는데, 우리 출판사는 완전히 복고주의다(일동 웃음). 한국 출판이 100년이 되었는데도, 정통·정도·중심을 잡아주는 출판사가 없다. 별처럼 빛나는 출판사들이 경영 세습 등 변화를 겪으면서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우리 출판사는 책 출간 여부를 결정할 때 몇 부 팔릴까 생각 안 한다. 품질이 보장된다면 출간한다. 400~500부만 팔려도 낸다. 책만 잘 만들면, 진정한 독자는 본다.

장의덕 : 두 사람과 조금 의견이 다르다. ‘좋은 책을 내면 독자는 본다’는 말은 말문을 막아버리게 만든다. 책이 안 나갔을 경우에 할 말이 없게 되는 거다. 개마고원처럼 인문 대중서를 펴는 출판사로서는 부수에 대한 고민 없이 책을 출간할 수 없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인문·사회과학 책 가운데 재판을 찍는 비율이 떨어지고 있다. 심각한 수준이다. 게다가 초판 부수도 적다. 이전에 3000부 초판을 찍다가 지금은 1500~2000부 발간한다. 대중에게 다가가려고 하는 데 실패하는 것이 기획력의 부족이라 할 수도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답답함이 있다. 책 읽는 풍토의 문제인지, 교육제도의 문제까지 거론해야 할지… 해답이 잘 안 보여 답답하다.

정철수 : 이매진의 주 독자층도 개마고원과 비슷하다. 인문 출판의 위기가 매출의 감소도 있지만 책 만드는 사람들의 문제도 있다. 젊은 층이 독자층에서 사라지고, 더불어 편집자도 그 세대에서 배출되지 않고 있다. 현재 외국에서 나오는 최신 이론을 소화할 만한 젊은 편집자가 없다. 그렇게 되면 교정이나 교열도 불가능하다. 30대 중반인 우리 세대가 50대까지 현역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출판 동료들과 말을 나눈 적이 있다(웃음). 이렇게 되면 ‘1인 출판’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고민스러울 지경이다.

유재건 : 한국에서 인문·사회과학 출판은 새로움과 독창성으로 발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예를 들어 <자본론>을 독일어 원전 번역하는 것은 새로운 일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한국 사회에 그런 새로움이 필요한 시기다.
독자를 키워내야 한다. 인문 출판이 살아남으려면 판을 키워야 한다. 고용을 창출하고, 우수한 인재들이 인문 출판을 하겠다고 들어올 수 있게 해야 한다. 경영을 합리화하고, 규모를 일정 정도 늘려야 한다.
지금 상태에서는 초판 2000부만 팔리는 것을 전제로 사업 모델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자기 일관성을 가지고 시장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다. 보이지도 않는 시장성을 생각하면 답이 없다. 우리 출판계의 실력이라면 독자 2000명은 포착할 수 있다. 충성 독자를 500명, 확산 독자를 3000명 잡고서 사업모델을 잡는 것을 고민한다.

- 2007년 인문·사회과학 출판에서 주목할 만한 화두나 출판사가 있었다면?


   
 
ⓒ시사IN 한향란장의덕 (개마고원 대표)  “인문·사회과학 책 가운데 재판을 찍는 비율이 떨어지고 있다. 심각한 수준이다. 대중에게 다가가는 데 실패하는 것이 기획력의 부족이라 할 수도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답답함이 있다.”
 
 
장의덕
: 지난해 한국의 사회과학 출판사 체면은 후마니타스가 다 세웠다고 본다. 후마니타스가 없었다면, 한국 사회과학 출판은 정말 ‘쪽팔렸겠다’. <법률사무소 김앤장> 같은 책은 현실 밀착적이다. 이런 책이 나온 것은 매우 의미가 크다. 또 <88만원 세대>는 중학생, 고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쉽게 쓰였다. 어렵지 않으면서도 내용의 함의가 깊다.

유재건 : 강명관 교수가 쓴 <조선의 책벌레들>이 인상적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지식 생산과 수용의 문제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저자는 지난해 학술서 4권을 냈는데, 그 책을 다 읽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좋은 책은 찾아 읽게 하고, 독자가 지식의 세계에 한껏 욕심을 내게 만드는 책이다. <88만원 세대>에 대한 평가에 동의한다.

이승우 : 강명관 교수의 다른 연구들이 인상적이었다. 실학 담론에 대한 본격 문제 제기였는데, 학계에서 반응이 없는 것이 이상했다. 김동춘 교수가 쓴 <1997년 이후 한국 사회의 성찰>은 ‘기업 사회’ 문제를 다루었다. 그로부터 10개월 만에 삼성 문제가 터졌다. 한국 사회가 기업사회화하는 것을 예리하게 짚었다.
정철수 : 꼽는 책들이 겹친다. 저도 <88만원세대>이다.

- 꼽는 책들이 주로 국내 필자가 쓴 것이다. 그런데 2008년 출간 예정작 리스트를 보면 국내 필자가 쓴 책의 비중이 크지 않다. 개마고원이 참석한 다른 출판사에 비해 국내서 비중이 높은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장의덕 : 국내 기획서는 초안을 잡아서 청탁하고 책이 나오기까지 품이 많이 든다. 지난해 낸 책 가운데 한 권은 기획하고, 필자 찾고, 청탁하고, 출간까지 5년이 걸렸다. 청탁하고 나서 원고 펑크나고, 또다시 청탁하고. 필자가 서너 번 바뀌었다. 그런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교수들은 자기 논문을 묶어내면 폼도 나고 실적도 쌓인다. 전공서는 낸다. 그런데 인문 대중서는 기피한다. 쓰는 데 품이 많이 들어서다. 전공서를 쓰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그렇게 힘들게 써도 기껏 2000~3000부 나가는 상황이다. 그러니 책을 쓰려고 하겠는가? 그러다 보니 필자를 구하기가 너무 힘들다. 지난해 국내 필자가 집필하는 시리즈 12권을 내기로 했는데, 딱 한 권 나왔다. 필자가 없어서다.


   
 
ⓒ시사IN 한향란정철수 (이매진 대표)  “인문 출판의 위기가 매출의 감소도 있지만 책 만드는 사람들의 문제도 있다. 젊은 층이 독자층에서 사라지고, 더불어 편집자도 그 세대에서 배출되지 않고 있다. 최신 이론을 소화할 만한 젊은 편집자가 없다.”
 
 
정철수
: 올해 젊은 연구자들을 필자로 발굴하려는 것을 주요 방향으로 잡은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다. 교수나 박사 이상 필자를 고집할 게 아니라 다양하게 찾아보려고 한다. 예를 들어 시민사회의 활동가들. 이게 잘되면, 국내 인문·사회과학 출판이 살 수 있는 활로가 되지 않을까.

장의덕 : 현장 활동가들, 워낙 바빠서… 출판사로서는 아주 괴롭다(일동 웃음).

유재건 : 국내서 비중이 낮은 것이 걱정할 문제일까 싶다. 한국 사회에 영향을 미칠 만한 책이면 굳이 국내서인지 번역서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처럼. 외국은 작가 인프라가 두터운 것이 사실이다. 한 사회가 갖는 힘이다.

- 올 한 해 인문·사회과학 출판계가 해결했으면 하는 과제가 있다면?

이승우 : 인문서는 그 책의 주제를 전공한 전공자가 번역하는 출판 문화가 필요하다. 이전에 비해 우리 사회에 인재 풀이 생겼다. 비전공자가 번역을 하는 경우, 번역이 엄밀하지 못하고 황당한 오역이 생긴다. 출판 편집자나 기획자가 번역자를 찾는 노력이 중요하다.

장의덕 : 인력 구조 문제가 염려스럽다. 메이저 출판사가 인력을 키워서, 그들이 작은 출판사로 유입되어 활력이 되면 좋은데. 지금은 오히려 작은 출판사가 사람을 키우면 메이저 출판사들이 쏙쏙 빼간다. 임프린트 제도가 시행되면서 인력을 빨아들이는 구조가 되어가고 있어 걱정스럽다.

유재건 : 시장에 휘둘리면 방향이 흔들리고, 그러면 독자가 떨어져나간다. 자기 방향을 명확히 설정해 흔들리지 않고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인문·사회과학 출판사들은 기획 예고제를 했으면 좋겠다. 독자들이 새 책을 기다리고, 출판사들도 서로 참조할 수도 있다. 큰 틀에서 독자와 저자를 더불어 키우지 않고, 자기만 살려고 하면 결국 그게 자기 무덤을 파는 일이다.

진행·정리/노순동·차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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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페이퍼>의 김원 대표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산다. 그가 원했던 일은 “내 마음대로 한번 잡지를 만들어보는 것이었다.” 1995년 <페이퍼>를 창간한 이유다.

‘마음대로’ 만든다고 하지만 <페이퍼>는 개성이 뚜렷하다. 밝고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문화집단이 만드는 문화종합잡지가 스스로 규정한 정체성이다.

실제 11월호로 창간 12주년을 맞은 <페이퍼>는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물게 성공한 문화종합잡지다. 당연히 영화, 음악, 연극, 만화 등 ‘정통’ 문화 장르를 다룬다. 사람에 대한 관심의 폭은 넓다. 영화배우 조승우, 가수 거미, 김창렬, 재즈보컬 말로 등 잘나가는 예술가들 뿐 아니라 직장을 그만두고 훌쩍 세계 여행을 떠난 여성이나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소녀 등 보통 사람도 등장한다.

대담이나 특집은 더욱 도드라진다. 잡지는 솔로, 외로움, 나쁜남자 못된여자 등 살아가면서 누구나 겪게 되는 일상을 문화적 프리즘을 통해 살펴본다. 냉장고를 문화적으로 들여다본 특집을 내기도 하고 그와 다른 기자들이 꿈꾸는 학교를 상정하고 교칙과 졸업시험지까지 만들어 실은 적도 있다. “지하철에서 잡지를 보다 낄낄거리는 사람은 우리 독자일 가능성이 큽니다”

기존 잡지의 형식의 파괴가 형식처럼 보일 정도로 편집방향조차 없이 어수선해 보이지만 <페이퍼>를 관통하는 철학이 엄연히 있다. 다름아닌 소통. 콘텐츠의 10~20% 가량을 독자들이 직접 참여해 만들도록 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페이퍼>에는 이 잡지 홈페이지(www.PAPERda.com)에서 활동하는 독자들의 카툰이 실린다. ‘페이퍼 패밀리의 클립보드’라는 코너는 독자들이 다른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영화, 공연, 앨범. 책, 게임 등에 대한 소개와 감상을 담은 글로 꾸며진다. ‘그 집이 맛있다더라’에 소개되는 맛집도 독자들이 홈피에 추천한 집들이다.

<페이퍼> 패밀리 사이의 소통은 책 밖에서도 이뤄진다. 편집진과 독자들은 1년에 한 차례씩 바자회를 열어 모은 돈으로 다달이 100만원이상씩을 소외된 이웃을 돕는데 쓴다. 이런 소통의 결과 이 잡지의 홈페이지(www.paperda.com)에서 활동하는 회원만 3만명이 넘는다.

 


상대에 대한 존중이 소통의 출발인만큼 <페이퍼>는 디자인에도 그런 철학을 담고 있다. 김 대표는 “읽기를 강요하는 편집 대신 편안하게 글과 만날 수 있도록 잔잔하게 디자인을 한다”고 했다. 12년 동안 지속된 그런 노력의 결과 <페이퍼>는 문화계에서는 이름난 잡지가 됐다. 발행부수에 대한 물음에 김 대표는 “월간지 가운데 선두 그룹일 것”이라고 했다.

편집장 포함 4명이 다달이 132쪽 분량의 책을 만드는 게 쉽지는 않을 터. 김 대표는 일인다역을 한다. 기자, 사진기자, 아트디렉터로 제작에 참여하고, 회사 대표이자 발행인으로 경영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마감 때를 빼면 여유롭게 지낸다”고 했다.

김 대표가 잡지를 만들게 된 계기는 단순하다. 행복해지고 싶어서였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뒤 남들이 부러워하는 한 중앙일간지의 아트디렉터로 일했다. 꽤 많은 월급을 받았고, 생활은 안정됐지만 즐겁지 않았다. 서양화를 전공한 그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없었다. 일도 재미가 없었다. 몸과 마음을 쥐어짜내 쏟아낸 디자인은 잘 모르는 이들에 의해 쉽게 뒤집어졌다. 괴로웠다. 그 시절, 술이 약이었다.

그렇게 5년을 보낸 뒤 1989년 보름 동안 휴가를 얻어 유럽으로 여행을 떠났다.

“유럽이 주는 문화적 쇼크를 경험했습니다. 건축물은 물론이고 문고리 하나하나가 독특한 디자인 작품이더라구요. 남자 화장실 소변기도 비슷한 게 없었어요. 건물 옥상에서 내려다본 도시는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철물점, 빵집, 생선가게 주인들의 밝고 환한 얼굴에서는 삶의 여유가 묻어났다. “돈을 못버는 사람들도 삶과 예술을 즐기며 살았다.” 한국에 돌아와 1년 뒤 사표를 던지고 가족과 함께 프랑스로 떠났다. 주위에서는 정신이 나갔다고 했다. 그렇게 입학한 미술대학에서는 또 다른 충격이 기다리고 있었다.

“스스로 천재라 굳게 믿고 있었는데 프랑스에 저와 비슷한 그림을 그리는 작가가 이미 있었어요. 더욱 놀라운 것은 19살 쯤 된 청년들이 가진 해박한 인문학적 지식이었습니다. 그 친구들에게 작품은 자신이 관심을 갖고 축적한 지식의 총합이더군요.”

맥이 빠졌다. 미술가로서의 성공 대신 유럽 여러 나라를 다니며 다양한 문화를 경험했다. 1992년 돌아와서도 충격의 여진은 계속됐다. 프리랜서로, 월간지 아트디렉터로, 처남이 운영하는 의류회사의 디자인 실장으로 일했지만 마찬가지였다. 재미도 없었다.

무엇을 할까. 무엇을 하면 행복할까. 아니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인가? 대학 졸업 뒤 가장 오래 한 일이 잡지를 만드는 일이었다. 그래 문화잡지를 만들어보자. 사업가인 처남이 돕겠다고 나섰다. <페이퍼>는 그렇게 탄생했다.

물론 시작은 쉽지 않았다. 처음 3만부를 뿌렸다. 잡지를 차에 싣고 사흘간 서울을 돌며 주로 카페에 잡지를 쌓아뒀다. 수백통의 독자편지가 쏟아질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하지만 유일한 수익원인 광고는 들어오지 않았다. 6개월만에 폐간하려 했다. 이 소식을 듣은 카페 주인들이 구독료를 내겠다고 했고, 김창환, 최신실, 홍진경, 전유성씨 등 문화계 인사들도 수백 만원을 모아 보내왔다.

그 힘으로 다시 시작했지만 적자 행진은 계속됐다. 97년 아이엠에프 사태 때는 “정말 그만두려고 했다.” 종이값을 현찰로 갖고 가지 않으면 인쇄조차 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주위에서 유가지로의 전환을 권했다. 고민을 거듭한 끝에 “소심하게“ 1천원에서 시작한 <페이퍼> 운영은 2006년 잡지값을 5천원으로 올린 뒤 안정이 됐다.

그럼에도 김 대표는 지난 날이 행복했다고 한다. 행복? 그는 어려움이 많았지만 아무도 <페이퍼>를 떠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거로 들었다.

“한 독자가 서점에서 우리 잡지를 사서 가슴에 안았을 때 너무 행복하고 감사했다는 얘기를 전해왔어요.” 오래된 친구같은 잡지. 그가 가장 듣고 싶어하는 말이다. 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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