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光州를 넘어 아시아로] 와다 하루키 “아시아 민주화 네트워크…한국이 그 중심에 서라”
입력: 2007년 05월 18일 18:17:12
 
5·18 민주화항쟁 27주년 기념행사 전야제가 열리고 있던 17일 저녁 광주 금남로 인근의 한 커피숍. 와다 하루키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69)가 절친한 사이인 브루스 커밍스 미국 시카고대 교수와 함께 담소를 나누며 들어섰다. 구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열린 전야제 행사에 참석하고 오는 길이었다는 와다 교수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27년 전의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아직도 도청 앞 광장에 몰려나와 젊은 세대들에게 기억을 전하는 모습을 보며 그때 열기가 지금도 느껴지는 듯합니다.” 와다 교수는 광주의 경험이 한국의 민주화로 이어졌고, 이제는 그 성취가 아시아 민주주의와 평화로까지 이어질 때라고 말했다.

와다 하루끼 교수는 17일 광주 금남로 한 커피숍에서 가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광주항쟁을 통해 경험한 민주화, 인권에 관한 생각을 아시아에 펴뜨려야 하는 도덕적 책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광주/김영민기자
80년 5월 광주는 와다 하루키 개인에게 무엇인가. “나는 70년대부터 일본에서 김대중·김지하씨 구명운동을 하며 한국 민주화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내 전공이 소련사였기 때문에 학문적으로는 한국과 친하지 않았다. 1년간 소련 생활 후 79년 10월23일 일본으로 돌아오기 무섭게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김대중씨 등이 정치활동을 재개한 것에 대해 무척 기뻤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듬해 5월17일 전두환의 쿠데타가 일어나 계엄령이 선포됐다. 광주 소식을 들은 것은 5월20일이었다. 학생들과 시민들이 쿠데타군에 저항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큰 충격을 받았다. 오에 겐자부로 등 일본 내 동지들과 함께 지식인 15명이 쿠데타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5월27일 ‘자유 광주’는 무참하게 진압당했다. 5월 광주를 지켜본 소감을 ‘자유 광주’라는 주제로 ‘세카이(世界)’ 7월호에 썼다. 그걸 계기로 한국 관련 논문을 쓰기 시작했으며 나의 연구는 한국 현대사로 본격 전환됐다. 5월 광주는 내 공부의 물줄기를 바꿨다.”

-27년이 지나서 5월의 광주에 온 느낌은.

“위험 인물로 찍혀 한국 입국을 계속 거절당하다 90년에 한국 땅을 처음 밟았다. 한국 연구를 하려 해도 접근할 수 있는 정보가 너무 적었기에 사실 한국의 맨 얼굴이 무척 궁금했었다. 광주는 이번이 두번째다. 지금은 80년 당시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고들 한다. 지금 젊은 분들에겐 그때 당시의 열정이 없지 않을까 예상도 했다. 하지만 오늘 거리를 거닐며 5·18 행사 전야제를 보고 굉장히 놀랐다. 도청 앞 광장에는 그 당시 일에 대한 기억을 잊지 않은 분들이 많이 참여하셨더라. 그렇게 기억은 세대를 넘어 전승된다. 민중가요와 함께 애국가가 울려퍼지는 모습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텔레비전에서 봤던 당시 광주의 모습이 오버랩됐다.”

-‘5월 광주’ 내 학문 물줄기 바꿔-

-광주 이후 한국 민주주의에 대해 평가한다면.

“민주화라는 것은 노태우 정권이 직선제를 수용할 때까지 3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피 흘리며 싸워온 결과였다. 이후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권에 이르기까지 민주화가 무르익어 왔다고 본다. 나는 그것이 ‘민주 혁명’이었다고 부르고 싶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가 성숙하지 못하고 오히려 후퇴했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최근 10여년간 한국사회는 신자유주의의 도도한 흐름 속에 뉴라이트 열풍 같은 현상도 일어났다. 많은 진보·개혁세력들의 노력과 고민으로 한국 민주주의의 형태는 훌륭하게 갖춰졌다. 그러나 그 틀 안에서 내용이라는 것을 어떻게 채워야 하는지 생각할 때가 됐다. 사실 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이 있지 않나. 12월 대선 때에도 이 점이 가장 큰 화두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솔직히 지금 한국 정치를 이끄는 분들이 이런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 듯하다. 그분들은 민주주의의 틀을 다시 짜는데 좀더 집중해야 한다.”

-광주에서 태동한 인권의 가치가 다른 아시아 지역으로까지 흘러넘칠 수 있으리라고 보나.

“아시아 국가에서는 각각의 민주화운동이 존재해 왔다. 필리핀의 혁명, 타이·미얀마의 민주화 운동 등. 그 중에서도 가장 성공적인 것이 한국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이 중심이 된 아시아 네크워크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이 경험해온 민주화와 인권에 대한 생각, 그리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해온 행동들을 아시아 네트워크를 통해 각국에 퍼뜨리는 것이 한국의 책임임을 알아야 한다. 단 그 방향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다. 네트워크라는 게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거다.”

-한국사회는 그간 먹고사는 문제에 치중하느라 그랬는지 아시아에 대한 기여를 제대로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다.

“한국은 과거 일본의 식민지로서 힘든 시기를 겪었고, 뒤늦은 경제개발과 민주화를 급속도로 경험했다. 그럼에도 한국은 여러 측면에서 크게 성공했다. 그렇다고 거만해 하거나 뽐내서는 안된다. 아시아를 향한 한국의 역할은, 한국의 경험을 아시아의 어려운 국가에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또 설득해야 할 책임을 갖고 있다. 네트워크를 통한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 그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역시 한국은, 북한을 먼저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어떤 나라에 앞서 한국의 경험을 북한에 전할 수 있어야 하며, 그로 인해 북한 상황이 나아질 수 있도록 하고, 북한의 성공을 바탕으로 아시아에 눈길을 돌리는 자세가 필요하다.”

-오늘 마침 56년간 막혀있던 남북한 철로가 뚫렸다. 한반도의 화해 분위기를 어떻게 보나.

“‘자유 광주’에서 시작한 민주 혁명의 가장 큰 성과는 대북정책의 결정적인 전환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약속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비록 부분적인 개통이긴 하지만 역사적인 성과다. 햇볕정책 이후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분위기가 조성됐음이 확인됐다. 설사 한나라당이 집권하더라도 이제 대북정책은 돌이킬 수 없다. 6자회담은 문(門)과 같다. 그 문을 열면 방 안에서 빛이 새어 나오는 그런 문이다. 그런 미래의 모습이 그려져야 한다. 지금 그런 분위기가 어느 정도 연출되고 있지 않나 한다.”

-‘한국 진보 위기’ 대선 화두둬야-

-동아시아 평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은.

“동아시아 지역만큼 전쟁투성이인 지역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 1894년(청일전쟁 시작)부터 1975년(베트남전쟁 종전)까지 80년간 부단히 전쟁을 계속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지역은 단순히 평화롭다는 말로는 만족할 수 없다. 화해하지 않으면 공생할 수 없다. 가해자는 사죄하고 희생자의 슬픔과 아픔은 치유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 과정에 ‘두 개의 코리아’(남북한)가 중심이 돼야 한다고 본다. 우선 한국은 지난 30년간 노력으로 민주혁명을 이룬 역량을 갖고 있다. 또한 한국은 북한을 설득하고 이끌어 내는 열쇠를 갖고 있다. 한국이 주도적으로 북한을 끌어들이고 안나오면 불러들여서 아시아 평화로까지 이어지도록 중심 역할을 해야 한다.”

-‘동아시아 공동의 집’이라는 표현을 즐겨 쓰시는데.

“95년 ‘창작과 비평’에 ‘동북아 공동의 집과 한반도’라는 제목의 글에서 비롯됐다. 그때는 학자 개인적인 발상이었지만 이제는 현실정치적으로도 그 때가 무르익었다고 본다. ‘동남아국가연합(ASEAN)+3’ 정상회담에서 장기적인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 ‘동북아 공동의 집’은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해 기능할 수도 있고, 동시에 북핵문제 공동대응이 동북아 공동의 집 형성에 기여할 수도 있다. 동아시아 공동의 안보, 공동의 성장, 공동의 환경보호, 공동의 복지를 추구할 때가 됐다.”

-‘동아시아 공동의 집’에서 미국은 어떤 존재인가.

“6자회담에는 미국이 들어가 있는 상황이고, ASEAN+3에는 미국이 빠져 있다. 미국은 사실상 ‘동북아 공동의 집’에 들어와 있지만, 동아시아 공동의 집에는 들어오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미국이 빠져있는 상태에서 아시아 국가들이 무언가를 도모하기보다는 미국을 끼워서 함께 하는 게 현명하지 않을까 한다.”

-일본의 역할은.

“일본은 납치 문제의 함정에 빠져버린 상태여서 큰 기대를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우경화도 강화되고 있어 동아시아 평화에 협력적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다. 동북아에서 일본의 지위가 있긴 하지만 일본 정부는 어떤 역할도 못할 것이라고 본다.”

-시민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말인가.

“나도 일본 시민사회에서 일·북 수교운동을 벌이고 있고, 예전부터 남한의 시민사회와 교류를 해오고 있는데 번번이 느끼는 점은 일본 사람들은 아직 한국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는 거다. 일본인들은 한국인들이 정치·사회적으로 어떤 과정을 겪어왔는지, 먹는 것에 대해 애정을 많이 갖고 있다든지 등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아주 피상적인 이해에 불과하다. 그것은 한국인들의 일본 이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그 간격을 좁히는 데서 시작했으면 한다.”

〈광주|손제민기자〉

-와다 후루키?-

와다예교수는 일본의 대표적인 사학자이자 행동하는 지성으로 평가받는다.

오사카 태생으로 1960년 도쿄대 문학부를 졸업한 뒤 66년부터 강단에 섰다. 전공은 소련사 및 북한 현대사. 공산권에 대한 연구, 반전, 인권으로 대표되는 학문적 성과는 군사정권 시절의 한국에서 한때 판매금지되는 등 오해를 받기도 했다. 박정희 정권 시절 한국 민중과 연대해 민주화 운동에도 적극 참여했으며 특히 70~80년대에는 일본 지식인 사회에서 김대중, 김지하씨 등의 구명운동에 앞장섰다.

98년 정년 퇴임한 뒤에는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통칭 아시아여성기금) ‘북·일 국교촉진 국민협회’ 활동을 통해 일본의 전후 보상 문제, 민간차원의 북·일관계 정상화에 일조하고 있다. 저서로는 ‘역사로서의 사회주의’ ‘조선전쟁 전사(全史)’ ‘일본, 한국, 북한-동북아’ 등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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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새 ‘문법’을 갖다



《김훈(59) 씨의 역사소설 ‘남한산성’은 출간 한 달 만에 교보문고와 인터넷서점 예스24, 알라딘의 베스트셀러 집계 종합 2위에 올랐다. “이달 말이면 무난하게 10만 부 판매를 돌파할 것 같다”는 게 출판사의 예상이다.

스타 작가 신경숙(44) 씨의 역사소설 ‘리진’도 이달 말께 나올 예정이어서 역사소설 열풍이 이어질 참이다.》

○ 사회상 닮은 ‘남한산성’ 베스트셀러 2위

계간 ‘창작과비평’ 2007년 여름호 특집 ‘한국 장편소설의 미래를 열자’에서 평론가 서영채(46) 씨는 ‘뉴에이지 역사소설’이 등장했다고 밝히면서, “이들은 (과거의 역사소설과 달리) 역사 속으로 뛰어들기보다는 생생한 현재성의 광장으로 역사를 끌어내는 쪽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이전의 역사소설은 박종화의 ‘금삼의 피’ 같은, 흥밋거리를 찾아 역사에 뛰어드는 사담류와, 홍명희의 ‘임꺽정’으로 대표되는 이념의 투영체로 분류됐지만, 최근의 역사소설은 과거의 다양한 시대를 배경으로 현재적인 문제의식을 표현해 내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남한산성’의 경우 ‘지금의 한국 사회와 한 치의 차이도 없어 보인다’ ‘주어진 삶을 사는 오늘날 사람들의 모습과 맞닿아 있다’는 독자 리뷰가 이어진다. 신경숙 씨의 ‘리진’도 구한말 궁중무희 리진의 삶을 다뤘지만, 리진을 친딸처럼 여기는 왕비와의 시공을 초월한 모녀지정과 내면 묘사가 특히 주목할 만하다. 평론가 신수정(42) 씨는 “거시적인 역사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적으로 이입 가능한 인물을 창조하는 게 요즘 역사소설의 흐름이며 ‘리진’은 그 사례”라고 말한다.

이뿐 아니다. 올해 출간될 김연수(37) 씨의 장편 ‘밤은 노래한다’는 1930년대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한 유격대의 내분에 관한 이야기다. 짤막한 자료에서 김 씨가 착안한 것은 같은 종(種)끼리 치고받고 싸우는, 현재까지도 내림 되는 양상이다. 춘원 이광수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을 다룬 ‘올보리 선생 말년 수난기’를 문예지에 연재하는 이기호(36) 씨는 “정신으론 닥쳐 온 새로운 시대를 열망하지만 몸은 지난 시대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간의 고뇌가 주제”라고 밝혔다. 올해 초 나온 노희준(35) 씨의 ‘킬러리스트’는 항일 빨치산을 소재로 삼았으면서도 1980년대적으로 이데올로기를 투사하는 게 아니라 보편적인 ‘폭력’의 문제를 다룬다.

○ “이야기 위해 역사 빌릴 뿐… 역사물과 달라”

김연수 씨는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는 게 아니라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 역사를 차용하는 게 요즘 역사소설”이라고 말한다. 표준 국사로서의 역사를 소설화하는 게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의 소재를 역사에서 찾아낸다는 것이다. ‘파리의 조선궁녀 리심’ 등 역사소설에 매진해 온 소설가 김탁환(39) 씨도 “교과서 역사가 아닌 ‘대중 교양으로서의 역사’가 부각되면서 소설뿐 아니라 TV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한 문화 장르에서 역사를 ‘거대 담론’이 아니라 ‘콘텐츠’로 보는 분위기”라고 밝혔다.

문단에서는 역사소설을 이미 갖춰진 서사에 소소한 에피소드만 더하는 것으로 여겨 ‘역사소설을 쓰면 작가로서의 창의적 수명은 끝난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왔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의 역사소설은 작가의 상상력이 풍요롭게 개입되는 새로운 이야기 형식으로 각광받는 분위기다. 서영채 씨는 “소설의 새로운 시도를 통해 역사는 다양한 개성과 스타일의 장편 서사가 뛰어놀 수 있는 신선한 영역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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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리봉동 거리에서 문학을 논하다
  • ‘서울속 문학 투어’ … 첫 초대작가 신경숙·방현석
    “하루하루 먹고 사는 것을 고민하며 걷던 가리봉 시장
    이제는 새로운 문학적 형상화를 요구하는 것 같다”
  • 김태훈 기자 scoop87@chosun.com
    입력 : 2007.04.22 23:06
    • 1980년대 공단에서 2000년대 최첨단 테크노 단지로 변모한 서울 가리봉동이 문학의 향기를 피워 올렸다.

      장편소설 ‘외딴 방’과 소설집 ‘풍금이 있는 자리’를 통해 1980년대 초 구로공단 여공생활의 경험을 문학의 꽃으로 피워낸 신경숙(44) 씨, 그리고 소설집 ‘내일을 여는 집’으로 1980년대 노동문학을 대표했던 소설가 방현석(46) 씨가 22일 오후 20년 전 두 작가에게 문학의 샘터였던 서울 가리봉동 일대를 독자들과 함께 찾았다.

      서울문화재단이 주최하고 문학나눔사업 추진위원회(위원장 김치수)가 주관하는 ‘서울 속 문학투어’의 첫 초대 작가인 두 소설가는 이날 오후 3시부터 두 시간 동안 가리봉 시장과 첨단 산업체들이 들어선 옛 공단 터 일대를 문학 애호가 30여명과 함께 걸었다.

    • ▲서울 구로공단에서 노동자로 생활하면서 문학의 싹을 틔웠던 소설가 신경숙(왼쪽)씨와 방현석씨가 22일 오후 독자들과 함께 공단 일대를 돌며 각자의 문학세계를 설명하고 있다. /이태경 객원기자ecaro@chosun.com

    • 신경숙 씨가 구로공단 여공생활을 한 것은 1979년부터 3년간이다. 신 씨는 “고향인 전북 정읍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뒤 구로공단 여공으로 들어가면 산업체 고교에서 학업을 계속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상경했다”고 공단과 인연을 맺게 된 사연을 들려줬다. 가리봉동 벌집에 살며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학교에 다니면서 문학을 꿈꾸던 16세 소녀의 삶은 ‘외딴 방’을 통해 형상화됐다. 신씨가 이날 독자들에게 읽어준 부분도 그녀의 작업장이던 구로1공단에서 숙소가 있는 구로3공단까지 퇴근 후 걸어가던 장면. 신씨는 “하루하루 먹고 사는 것을 고민하며 걷던 가리봉 시장이 지금 와서 보니 중국어가 상점 유리창을 점령한 조선족 거리가 됐더라”고 말했다.

      방현석 씨가 구로공단에서 활동하던 시기는 1980년대 중반. 그는 “내게 가리봉 시장은 데모를 하다가 경찰에 쫓길 때 숨어들던 장소로 기억된다”고 말했다. 소설집 ‘내일을 여는 집’에 수록된 ‘새벽출정’은 1987년 민주화 운동 시기 노동운동 현장을 그린 단편이다. 방 씨는 이 단편에서 “우리가 원했던 돈은 인간다운 삶을 이어나가기 위한 것이었을 뿐 돈에 대한 탐욕은 아니었습니다”는 부분을 읽었다. 방 씨는 “노동운동을 하느라 공장에서 일했지만 인간적으로는 솔직히 그곳에 가고 싶지 않았다”고 고백한 뒤, “20년이 지난 뒤 다시 와보니 우리 사회의 변화를 몸으로 실감하게 된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구로공단이 갖는 문학적 의미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방현석 씨는 “우중충한 공단으로만 기억되던 공간에 와보니 디지털·테크노·IT라는 낯선 단어가 눈길을 끈다”며 “근대화의 모습을 담은 거울로서의 구로공단이 이제는 새로운 문학적 형상화를 요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신경숙 씨는 “구로공단이 새로운 문학공간으로 변신한다면 그것은 박범신 소설 ‘나마스테’처럼 외국인 노동자 문학의 터전이 되거나 강영숙의 장편 ‘리나’에서 실험한 국적불명의 낯선 곳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문학나눔사업 추진위원회는 6월과 9월, 10월 넷째 주 일요일에도 서울을 무대로 작품을 쓴 문인들을 초청할 계획이다. 행사 참가 신청은 사이버문학광장(www.munjang.or.kr)으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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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T가 자동차를 만났을 때 운전자는 웃는다 ^^
  • 130개 넘는 음악·정보채널의 ‘위성라디오’ 벤츠에 장착
    운전자와 대화하는 광고판엔 무선인식 전자태그 기술 적용
  • 김종호 기자 tellme@chosun.com
    입력 : 2007.05.03 22:29
    • 자동차와 전자·정보통신 기술의 결합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센서와 컴퓨터를 이용한 성능향상뿐만 아니라 위성방송 수신, 운전자와 대화하는 광고판, 졸음운전 방지 등 다양한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내년까지 미국에서 판매하는 차종의 90%에 ‘시리우스 위성 라디오’를 장착하겠다고 최근 발표했다. 시리우스 위성 라디오는 미국의 양대 위성 라디오 방송 중 하나로, 130개가 넘는 채널을 통해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을 공급하고 있다.

      광고가 없는 음악 채널 69개, 스포츠·뉴스·토크쇼·오락·교통·날씨 등 생활정보 채널 65개를 운영 중이다.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미식축구와 자동차 경주(NASCAR), 프로농구(NBA) 등 경기도 실시간 중계한다.

      벤츠 미국법인은 연말까지 미국에서 판매하는 벤츠 차량의 80%에 시리우스 위성 라디오를 장착할 예정이다. 내년에는 이 비율을 90%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시리우스 위성 라디오를 장착하는 차종도 확대, S클래스와 CLS클래스에 기본 품목으로 장착할 계획이다. 현재 벤츠 미국법인은 벤츠 SL클래스, CL클래스, AMG 등에 시리우스 위성 라디오를 기본 품목으로 장착, 판매하고 있다.

    • ▲BMW 미니가 미국에서 시험 운영하고 있는‘운전자와 대화하는 광고판’. 미니를 탄 운전자가 광고판 근처에 접근하면 인사말(사진 윗부분)이 나온다. /BMW 제공

    • 벤츠 미국법인이 시리우스 위성 라디오 장착을 확대키로 한 것은 운전자들의 요구 때문. 위성 라디오는 CD 수준의 음질을 제공한다. 미국 전역이 단일 주파수를 사용하기 때문에 지역을 이동해도 방송국 주파수를 다시 맞출 필요가 없다. 벤츠 관계자는 “미국은 며칠씩 차를 타고 장거리 이동을 하는 운전자들이 많아 다양한 프로그램을 깨끗한 음질로 들을 수 있는 위성 라디오가 큰 인기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시리우스 위성 라디오 요금은 월 12달러95센트(약 1만2000원)이다. 개인적으로 위성 라디오를 들으려면 별도 수신기가 있어야 한다.

      위성 라디오가 수요가 늘어나면서 벤츠·BMW·아우디·폭스바겐·포드·크라이슬러·도요타 등 대부분 자동차 업체도 차량에 위성 라디오를 장착, 판매하고 있다. 기아차는 내년에 판매하는 2009년형 모델이 시리우스 위성라디오를 장착할 계획이다. 현대차는 작년부터 미국에서 출시하는 차종에 ‘XM 위성 라디오’를 장착하고 있다. XM 위성 라디오는 시리우스와 별도의 미국 위성 라디오 방송이다. 두 회사는 올 2월 합병계획을 발표하고 절차를 진행 중이다.

      BMW가 생산하는 ‘미니(MINI)’는 요즘 미국에서 ‘운전자와 대화하는 광고판’을 시험 운영 중이다. 이 광고판이 설치된 지역으로 미니 운전자가 차를 몰고 가면 “안녕 수전, 생일 축하해요” “안녕 마이크, 오늘은 오픈카를 타기에 참 좋은 날이죠”와 같은 인사말이 나온다. 이 광고판은 미국 시카고·마이애미·뉴욕·샌프란시스코 등 4개 도시에 설치됐다.

    • ▲볼보의‘시티 세이프티’장치. 교통량이 많은 도심에서 저속으로 차를 운전할 때 앞차와 충돌할 것이 감지되면 자동으로 브레이크를 작동해 차를 멈춘다. /볼보 제공

    • 이 서비스를 받으려면 ‘미니’ 운전자가 인터넷 홈페이지에 접속해 본인과 차량의 이름이나 별명 등 간단한 신상정보를 입력하고, 몇 가지 질문에 답을 해 놓으면 된다. 이 정보를 토대로 미니 미국법인은 지역과 시간에 맞춰 각각의 운전자에게 어울리는 문장을 광고판에 올려준다.

      현재까지 ‘대화하는 광고판’에 등록한 미니 운전자 수가 4000명이 넘는다. 미니 미국법인은 “미니 소비자의 상당수가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젊은 사람들이어서 ‘대화하는 광고판’ 아이디어를 냈다”면서, “1년간 시험 운영한 다음, 미니 운전자들에게 개인별로 보다 많은 ‘맞춤형 정보’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운전자와 대화하는 광고판’에는 주파수를 이용한 무선인식 전자태그(RFID) 기술이 적용됐다. 전자태그 칩은 미니 자동차의 열쇠에 장착돼 있다. 차량이 광고판의 150m 거리까지 접근하거나, 운전자가 열쇠를 주머니에 넣고 광고판 근처를 걸어가면 인사말이 나온다.

    • ▲'시리우스 위성 라디오'의 모습. 메르세데스 벤츠는 내년까지 미국에서 판매하는 차량의 90%에 이 라디오를 장착하겠다고 발표했다. /시리우스 위성라디오 제공

    • 운전자의 안전과 관련된 정보통신 기술도 잇따라 개발, 자동차에 장착되고 있다. 폭스바겐의 ‘졸음운전 방지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이 시스템은 운전자가 눈꺼풀을 움직이는 빈도와 속도를 계속 체크해 운전자가 졸고 있는지 파악한다.

      운전자가 맑은 정신으로 운전을 할 때에는 눈꺼풀을 움직이는 회수가 적고 움직이는 속도도 빠르다. 반면 졸음이 오면 눈꺼풀을 자주 움직이고, 속도도 느려진다. 자동차 내부의 카메라는 운전자의 눈꺼풀을 계속 체크해 졸음운전을 할 경우 경고와 함께 잠시 쉴 것을 제안하고 내비게이션을 통해 가장 가까운 휴게소의 위치를 알려준다. 폭스바겐은 “자동차 사망사고의 25%가 운전자의 졸음 운전으로 발생한다는 통계에 따라 졸음운전 방지 시스템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폭스바겐의 ‘차로 이탈 경고 시스템’은 차량에 장착된 카메라로 도로 위에서의 차량 위치를 감지, 차량이 원래 가고자 했던 차로에서 심하게 이탈할 경우 경고음을 통해 운전자에게 알려준다. 도로에서 차량 위치를 감지하기 위해 센서 카메라가 도로 경계선의 상태, 차체와 좌우 차선과의 거리, 차로의 넓이, 차체의 속도 등을 자동으로 조사한다.

      폭스바겐의 ‘자동 비상 브레이크 시스템’는 안전장치의 완결판이다. 이 시스템은 레이저 센서를 이용, 전방 120m, 16도 이내의 물체 정보를 확인한다. 이어 운전자의 힘으로 충돌을 막을 수 없을 때 자동 브레이크 시스템이 작동, 차를 멈춘다.

      볼보는 최근 첨단 충돌 방지장치 ‘시티 세이프티 (City Safety)’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교통량이 많은 도심에서 저속으로 차를 운전할 때 앞차와 충돌할 것이 감지되면 자동으로 차량속도를 줄이거나, 브레이크를 작동해 차를 멈추는 장치다.

      볼보는 자동차 충돌 사고의 75% 이상이 시속 30㎞이하 속도에서 발생한다는 교통사고 통계에 따라 ‘시티 세이프티’ 장치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이 장치는 차량 앞 유리 상단에 달린 광학 레이더를 통해 전방 6m 이내의 차량을 1초에 50번 체크해 브레이크를 작동시킨다. 극심한 도시 교통정체 및 느리게 움직이는 교통 상황에서 흔히 일어나는 저속 충돌을 방지할 수 있는 획기적인 시스템이다.

      볼보는 이 장치를 향후 2년 안에 생산차량에 장착할 계획이다. 볼보 안전센터의 잉그리드 스콕스모 이사는 “시티 세이프티가 작동하면 상대방 차량이 내 차에 충돌하는 경우에도 그 강도를 최소화해 탑승자 부상과 차량 파손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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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스닥 리서치] 능률교육,영어교육 한우물…콘텐츠 최강
    [2007.05.06 14:23]
    90년대 중·고등학교 시절을 거쳐 200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이라면 영어교재인 리딩튜터와 리딩VOCA, 토익교재인 ‘토마토(토익을 마구 올려주는 토익)’를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상당수는 이 교재들과 씨름하며 야간 자율학습 시간을 보낸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한때 중고등학교 출판시장을 강타했던 이 교재들은 모두 능률교육 이찬승 대표의 작품이었다. 이 대표는 한때 영어강사로 활약하기도 했으며 고등영어 교과서를 개발하는 등 영어교육 외길을 걸어온 사람이다.

    이제 출판업을 벗어나 e-러닝, 오프라인 학원, 영자 신문 등 영어교육에서 새로운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있는 능률교육을 찾아가 봤다.

    ■e-러닝에서 가시적인 성과

    능률교육은 ‘ET-house(www.Et-house.com)’라는 이러닝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이티하우스에서는 MP3콘텐츠, 동영상 강의, 영어훈련 코스 등 유료 콘텐츠를 판매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이티하우스는 론칭 초기 월 1만원 정액제 온라인 영어교육 사이트라는 파격적인 전략을 내세워 업계에서 높은 인지도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1만원을 내면 사이트에 있는 모든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었던 것.

    하지만 저렴하게만 콘텐츠를 이용하는 것은 콘텐츠 품질의 저하로 이어질 우려가 있어 방향을 대폭 수정했다. 능률교육은 지난 4월 사이트 전면 개편을 통해 개별과금제로 전환하고 콘텐츠 및 서비스 품질을 고급화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현재 단과반과 종합반이라는 차별화된 컨셉트로 승부해 다양한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능률교육은 지난 1·4분기 이러닝 사업 매출 11억을 달성, 전년 동기에 비해 178.1%나 큰 폭의 성장을 기록했다.

    능률교육 기획홍보팀 강주현 대리는 “그동안 적자를 기록하던 이러닝 부문이 흑자로 돌아섰고 수익실현도 기대하고 있다”면서 “출판전통 업체에서 종합 영어기업으로의 변신에 성공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신규사업 분야 개발 박차

    능률교육의 새로운 사업은 전화영어, 영어 신문까지 확장되고 있다.

    지난 2월 KT와 제휴해 화상·전화영어 ‘Hello-ET(www.hello-et.com)’를 론칭했다. 원어민 콜센터를 구축하고 회원과의 전화 통화를 통해 영어회화를 향상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이 헬로이티는 3개월 만에 유료회원 수 1000명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으며 업계 다른 서비스와 비교해 품질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러닝은 오프라인 학원으로 확장됐다. 능률교육은 지난해 2월 말 디지털대성과 제휴하여 오프라인 학원사업을 위한 에듀피플 법인을 설립하고 초중등생 대상 I-CELP 어학원 서울 대치본원을 오픈했다. 그리고 오는 5월 중 서울 압구정동에 압구정점을 개원할 예정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6∼8월 초등학생 및 대학생 대상의 영어캠프 운영, 국내 연수 및 필리핀 연수 등 다양한 커리큘럼을 제공하고 있다. 또 지난달 영타임즈 흡수를 통해 10대 대상의 영자신문 사업에 뛰어들기도 했다.

    이 대표는 “이러한 신규사업 참여를 바탕으로 기존의 안정적인 교재출판 사업과 e러닝, 오프라인 학원사업, 화상·전화영어 사업, 영어캠프, 10대 대상 영자신문사업까지 아우르는 체계적인 영어교육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게 됐다”면서 “올해 이러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바탕으로 사업 간의 본격적인 시너지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고 자신했다.

    ■영어 교육에서만 한우물

    능률교육의 강점은 콘텐츠의 질에 있다.

    전체 임직원의 50%가 넘는 100여 명 규모의 연구개발(R&D) 인력이 매일 새롭고 질 높은 콘텐츠 개발에 힘쓰고 있다. ‘열 권의 평범한 교재보다는 한 권의 뛰어난 교재를 만든다’는 장인정신이 높은 수준의 서비스와 제품을 만들 수 있는 능률교육의 비법이다.

    능률교육 직원들은 이러한 정신은 이 대표에게서 전수받았다고 입을 모았다. 이 대표는 늘 뚜렷한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영어교육 분야에서 탁월한 1등 제품을 만들고자 한 우물을 파온 인물이다.

    능률교육에는 기업이 지향하는 가치와 원칙을 달성하기 위한 ‘NE way’라는 독특한 법이 있다. 기업의 비전인 1등주의, 투명경영, 윤리경영을 달성하기 위해 기업이 추구하는 핵심적인 가치들을 정하고 그에 따르는 13가지 원칙을 지정, 임직원 모두 따르도록 했다.

    이 대표는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교육사업을 해왔다면 오히려 힘들었을 것”이라며 “정도 경영과 탁월성으로 승부한다는 핵심가치 아래 오직 1등 제품을 만든다는 목표로 달려온 덕분에 지금의 능률교육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또 영어 분야에서 한 우물만 파는 전략으로 승부하겠다고 강조했다.그는 “영어와 관련된 다양한 사업 분야에서 모두 탁월성을 갖춰 품질로 승부하는 것이 변함없는 기본 전략”이라며 “영어에서만큼은 어느 누구보다 제일 앞서가는 기업이 되기 위해 주력할 것”이라 말했다.

    /seilee@fnnews.com 이세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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