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리봉동 거리에서 문학을 논하다
  • ‘서울속 문학 투어’ … 첫 초대작가 신경숙·방현석
    “하루하루 먹고 사는 것을 고민하며 걷던 가리봉 시장
    이제는 새로운 문학적 형상화를 요구하는 것 같다”
  • 김태훈 기자 scoop87@chosun.com
    입력 : 2007.04.22 23:06
    • 1980년대 공단에서 2000년대 최첨단 테크노 단지로 변모한 서울 가리봉동이 문학의 향기를 피워 올렸다.

      장편소설 ‘외딴 방’과 소설집 ‘풍금이 있는 자리’를 통해 1980년대 초 구로공단 여공생활의 경험을 문학의 꽃으로 피워낸 신경숙(44) 씨, 그리고 소설집 ‘내일을 여는 집’으로 1980년대 노동문학을 대표했던 소설가 방현석(46) 씨가 22일 오후 20년 전 두 작가에게 문학의 샘터였던 서울 가리봉동 일대를 독자들과 함께 찾았다.

      서울문화재단이 주최하고 문학나눔사업 추진위원회(위원장 김치수)가 주관하는 ‘서울 속 문학투어’의 첫 초대 작가인 두 소설가는 이날 오후 3시부터 두 시간 동안 가리봉 시장과 첨단 산업체들이 들어선 옛 공단 터 일대를 문학 애호가 30여명과 함께 걸었다.

    • ▲서울 구로공단에서 노동자로 생활하면서 문학의 싹을 틔웠던 소설가 신경숙(왼쪽)씨와 방현석씨가 22일 오후 독자들과 함께 공단 일대를 돌며 각자의 문학세계를 설명하고 있다. /이태경 객원기자ecaro@chosun.com

    • 신경숙 씨가 구로공단 여공생활을 한 것은 1979년부터 3년간이다. 신 씨는 “고향인 전북 정읍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뒤 구로공단 여공으로 들어가면 산업체 고교에서 학업을 계속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상경했다”고 공단과 인연을 맺게 된 사연을 들려줬다. 가리봉동 벌집에 살며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학교에 다니면서 문학을 꿈꾸던 16세 소녀의 삶은 ‘외딴 방’을 통해 형상화됐다. 신씨가 이날 독자들에게 읽어준 부분도 그녀의 작업장이던 구로1공단에서 숙소가 있는 구로3공단까지 퇴근 후 걸어가던 장면. 신씨는 “하루하루 먹고 사는 것을 고민하며 걷던 가리봉 시장이 지금 와서 보니 중국어가 상점 유리창을 점령한 조선족 거리가 됐더라”고 말했다.

      방현석 씨가 구로공단에서 활동하던 시기는 1980년대 중반. 그는 “내게 가리봉 시장은 데모를 하다가 경찰에 쫓길 때 숨어들던 장소로 기억된다”고 말했다. 소설집 ‘내일을 여는 집’에 수록된 ‘새벽출정’은 1987년 민주화 운동 시기 노동운동 현장을 그린 단편이다. 방 씨는 이 단편에서 “우리가 원했던 돈은 인간다운 삶을 이어나가기 위한 것이었을 뿐 돈에 대한 탐욕은 아니었습니다”는 부분을 읽었다. 방 씨는 “노동운동을 하느라 공장에서 일했지만 인간적으로는 솔직히 그곳에 가고 싶지 않았다”고 고백한 뒤, “20년이 지난 뒤 다시 와보니 우리 사회의 변화를 몸으로 실감하게 된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구로공단이 갖는 문학적 의미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방현석 씨는 “우중충한 공단으로만 기억되던 공간에 와보니 디지털·테크노·IT라는 낯선 단어가 눈길을 끈다”며 “근대화의 모습을 담은 거울로서의 구로공단이 이제는 새로운 문학적 형상화를 요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신경숙 씨는 “구로공단이 새로운 문학공간으로 변신한다면 그것은 박범신 소설 ‘나마스테’처럼 외국인 노동자 문학의 터전이 되거나 강영숙의 장편 ‘리나’에서 실험한 국적불명의 낯선 곳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문학나눔사업 추진위원회는 6월과 9월, 10월 넷째 주 일요일에도 서울을 무대로 작품을 쓴 문인들을 초청할 계획이다. 행사 참가 신청은 사이버문학광장(www.munjang.or.kr)으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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