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훈 소설 ‘남한산성’ 남성을 사로잡다
  • “이처럼 부지런히 사전 찾아가며 책 읽은적 없어”
    … ‘남한산성’ 독자
  • 박해현 기자 hhpark@chosun.com
    입력 : 2007.05.07 00:25
    • 김훈씨의 소설 ‘남한산성’이 출간 2주 만에 베스트셀러 종합 순위 3위에 오른 것은 한국 문학에 내린 또 하나의 ‘벼락 같은 축복’이다. 실용서뿐만 아니라 일본 소설의 융단 폭격 아래 놓였던 한국 소설이 모처럼 남성 독자층을 사로잡고 있기 때문이다.

      동인문학상 수상작가이자 30대 작가 그룹을 대표하는 김연수씨는 6일 “우리 사회를 지배해온 실용과 명분의 싸움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됐는가를 보여주는 소설이란 점에서, 역사 소설이라기보다 당대의 발언을 하는 소설에 가깝기 때문에 30~40대 남성 독자들이 그 진정성에 동감하는 것 같다”라고 평가했다. “진지하게 쓰면 잘 안 팔린다는 통념을 우리 젊은 작가들이 갖고 있지만, 김훈 선배의 소설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입증한다”고 한 김씨는 ‘남한산성’ 성공이 젊은 작가들에게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반겼다.

    • ▲병자호란의 치욕을 재구성한 소설‘남한산성’으로 요즘 30~40대 남성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는 작가 김훈씨. 사진작가 이강빈씨 제공.
    • 문학평론가 박철화씨는 ‘칼의 노래’ 연장선상에서 ‘남한산성’을 분석했다. “극적인 장면 몇 개가 ‘칼의 노래’의 경우처럼 전체 서사를 받쳐주고 있기 때문에, 재료가 덜 다채롭다는 아쉬움을 느꼈다”고 지적한 박씨는 “하지만 워낙 김훈의 문장과 생을 바라보는 특유의 시선이 역시 압도적”이라고 평했다.

      인터넷 서점 YES 24에는 잇달아 김훈 마니아를 자처하는 독자들의 서평이 뜨고 있다. “김훈, 과거에는 이태준이 문장의 으뜸이라 했다지? 오늘날은 김훈이 아닐까?”(아틀리에) “책장을 넘기면서 이처럼 부지런히 사전을 찾아가며 읽어본 적이 없다. 모처럼 단어장이 만들어졌다.”(훗)

      출판 시장에서 열띤 반응의 주체가 ‘남성’이란 것에 대해 작가 김훈 씨는 “나는 남성주의자가 아냐, 그걸 주의라고 할 수 있나”라면서도 “오랫동안 독서 문화에서 완전히 소외됐던 중년남성들을 책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이 소설에서 흔히 생각하는 ‘국가의식’보다 ‘개인들의 구체적 필연성’을 더 강하게 그렸다고 강조했다. “국가가 성안에 갇힌 비정상적인 상태에서 현실에 대한 태도가 극단적으로 달랐던 여러 사람들의 입장에 각자 정당성과 필연성을 부여하려고 했다. 소설 속의 민족반역자, 그놈에게도 필연성을 그려주려고 했다.”

    • 당시 주전파와 주화파의 대립에 대해 김씨는 “둘 다 옳기 때문에 둘 다 옳지 않을 수 있다는 모순 속에서 현실이 전개된 것이고, 양대 담론의 축이 부딪쳐 무화(無化)되는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주화파는 화친하자고 좋은 말을 썼지만, 사실 투항하자는 것이었고, 주전파는 그 고귀한 명분에도 불구하고 군사적 현실을 망각했기 때문에 둘 다 딜레마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허무주의가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허무주의라기보다는 삶의 구체성의 편에 선 것”이라고 단언했다. “국가를 대표하는 개인인 임금이 거대한 치욕을 받아들여 국가를 구했다”고 당시를 평가한 김씨는 “이 소설에 정치적 외연(外延)을 설치해서 읽는다면, 그것은 문학을 손상하는 위태로운 책 읽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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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日 역사왜곡 '후소사' 책, 한국에서는 베스트셀러(?)

    판권·인세 상당부분 日출판사 금고로…우익 자금줄 역할 논란

    [ 2007-05-23 오전 11:42:55 ]

    국내 독자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책값이 일본 우익세력의 자금줄이 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일본 우익의 자금줄, 한국에서 나온다?

    위안부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등 역사 왜곡을 일삼아온 일본의 후소사(扶桑社) 출판사가 내놓은 책들이 국내에서 베스트셀러로 버젓이 팔리고 있는 것으로 CBS 취재결과 확인됐다.

    지난 2월 출간되자마자 부동의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아동교육서. 국내 굴지의 한 출판사가 내놓은 이 책은 젊은 학부모들의 입소문을 타고 최근까지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 10일 나온 이 책의 후속작도 전작의 명성에 힘입어 국내 유명서점에서 판매 1위를 차지하며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하지만 이 책들의 원래 출판사는 일본의 후소사 출판사다. 위안부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내용의 역사교과서를 펴내며 일본의 역사왜곡 움직임을 주도해온 바로 그 출판사다.

    문제는 후소사 출판사의 책들을 한국의 출판사가 사들여 국내에서 재발행하는 과정에서 적지않은 돈이 후소사 출판사로 흘러간다는 점이다.

    계약금과 국내 판매 수익의 일부가 이미 후소사로 건네졌다.

    허미선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국제협력부장은 "아직 한국에는 위안부 할머니가 살아계시지만 후소사판 교과서의 등장으로 일본의 모든 교과서에서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내용이 삭제됐다"며 "이같은 상황에서 한국에서 베스트셀러를 팔아서 끊임없이 후소사로 자금이 유입되면 역사왜곡이 더욱 정교해지고 단단해질 수 밖에 없지 않겠냐"고 지적했다.

    후소사 책을 들여온 국내 출판사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하진 않았다고 설명했다.

    출판사 관계자는 "처음 발간을 결정하고 그랬을 때는 '후소사'라는 저작권자에 대한 생각이 별로 없었다"며 " '그 후소사'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현재도 이 출판사의 책은 한국에서 이미 많은 출간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독자들이 낸 책값이 역사왜곡을 일삼는 일본 우익세력의 자금줄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후소사 출판 책 잇따라 한국 상륙

    이처럼 일본 후소사 출판사 책들이 국내에서 잇딴 성공을 거두면서 후소사의 다른 출판물도 잇따라 국내출간을 앞두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렇게 하다가는 역사왜곡을 담은 책까지 국내에 유입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올해 들어 일본 후소사의 책을 두 권이나 출간해 쏠쏠한 재미를 본 국내 한 출판사는 앞으로도 후소사에서 출판될 예정인 책들을 국내에 계속 펴낼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 출판사 기획자는 "해당 작가가 올해만 해도 10권을 기획 중인데, 우리가 적극적으로 출간을 먼저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출판사 뿐만 아니라 다른 출판사들도 후소사의 책들을 출간할 것으로 보인다.

    후소사 국내 판권계약 대행사 관계자는 "후소사가 역사왜곡 교과서를 낸 곳이다. 그래서 후소사가 원래 한국이랑 별로 거래가 많지 않았던 곳인데 이번 후소사 책을 낸 후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판권 계약 대행사들이 후소사 판권 계약사실을 숨기는 점, 그리고 출판사들이 알아보기 힘든 영문 등으로 판권을 교묘히 바꾸는 점을 들며 국내 출판 시장에 상륙한 후소사의 책이 알려진 것보다 더욱 많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럴 경우 왜곡된 역사의식을 담은 후소사 출판사의 책들도 본격적으로 국내에서 출간될 수 있다는 경고마저 나오고 있다.

    지성의 풍향계라는 출판계가 베스트셀러라는 이윤을 쫓는 대신 위안부 문제 등 일본의 역사왜곡 문제에 눈감고 있지는 않은지 되물을 때이다.

    일본 역사왜곡의 첨병…'새역모' 지고 '후소사' 뜬다
    산케이 계열의 출판사인 후소사가 '새역모'와 결별하며 우익 교과서 작업의 전면에 나서는 등 최근 일본 우익 교과서를 둘러싼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일본 우익 교과서 발간을 주도하는 후소사를 어떻게 볼 것인지 일본 역사왜곡 교과서 문제 전문가인 허미선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국제협력부장을 직접 만나봤다.

    다음은 허미선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국제협력부장과의 일문일답을 요약 정리했다.

    ▶후소사와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갈라섰다?

    지난 11일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홈페이지에는 후소사와 새역모의 결별을 알리는 글이 떴다. 발표된 후소사의 입장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이렇다.

    * 교과서 전문 자회사 5월 중순 설립, 회사명은 육붕사로 한다.
    * 교과서명은 바꾼다.
    * 편집위원회를 새롭게 만들고 거기에서 집필자를 선정한다.
    * 교과서 내용을 전면적으로 바꾼다.
    * 교과서 개선모임의 사무국은 교육 재생기구에 둔다.
    * 현행 '새로운 역사교과서', ' 새로운 공민교과서'는 차기검정, 채택까지의기간은 후소사에서 발행한다.

    ▶후소사와 새역모의 결별이 새역모의 실패로 보는 시각도 있다?

    앞서 말했듯이 후소사는 별도의 자회사를 만들었다. 결국 역사왜곡을 강화하게 되는 것이다.

    후소사가 앞으로 함께 한다고 발표한 교육재생기구는 일본 아베 정권의 교육정책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최악의 경우 새역모와 후소사가 갈라지면서 왜곡 역사를 내는 모임이 두 곳으로 늘어가게 된 것이다.

    ▶후소사와 새역모가 갈라진 배경, 왜?

    아베 정권이 들어서면 일본 우익은 미일 동맹을 강화하고 있다. 그런데 새역모 일부 극우 인사들은 이런 입장에서는 걸끄러운 것이 사실이다.

    새역모 일부 인사들은 일본 지상주의를 내세우는데 이런 입장 자체가 미국과의 밀월을 꿈꾸는 일본 우익에게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 결과 일본 우익들은 친미적이면서도 일본의 역사왜곡을 충족시킬 교과서를 낼 수 있는 조직을 구상한 것이다.

    최근 일본의 보수화가 지금까지 새역모 뒤에 숨어있던 산케이 계열의 후소사 출판사를 전면에 나서게 했으며 이 회사가 직접 자회사를 만들도록 하고 있다. 앞으로 일본 역사 왜곡 움직임은 더욱 정밀해지고 교묘해질 것이다.

    ▶앞으로 전망과 대응방식은?

    새역모의 우익 교과서가 실패하면서 후소사 측 등 일본 우익은 새로운 전략을 찾고 있는 상황이다.

    "새 술은 새부대에 담는다"는 후소사의 결별 입장을 보면 이런 사실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후소사 측 등 일본 우익은 기존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새역모와 결별한 뒤 보다 새로운 논리와 여러 가지 대응 논리로 포장된 교과서를 새로 만들 것이다.

    이에 대해 우리들은 예의주시하고, 비단 교과서 채택시기뿐 아니라도 지속적으로 이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나가야 한다.

    ▶후소사 출판사 책이 국내에서 베스트셀러로 팔린다?

    최근 출판계에서 드러난 후소사 출판사 판매 등에 대해서는 끊임 없이 문제제기를 해나갈 생각이다.

    예전에는 후소사 지원기업 제품 불매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일본 작가들과 함께 후소사 출판사에서 책 안내기 등도 고려하는 등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시민들 입장에서는 후소사 출판사 책을 사지 않는 것이 결국 아직까지 고통을 받고 있는 위안부 생존자들을 도와주는 일이 될 것이다.

    시민들은 우리 역시 역사왜곡의 당사자이자 피해자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CBS사회부 육덕수 기자 cosmos@cbs.co.kr
    CBS사회부 육덕수/윤지나 기자 cosmos@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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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ntitheme 2007-05-25 0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뉴스 봤는데 많이 씁쓸하더군요.
     
    브라질에서 보물찾기 세계 탐험 만화 역사상식 12
    곰돌이 co. 지음, 강경효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06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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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팡인가 보물을찾는다.

    내가재일궁금한게있다.

    브라질에가서 직접확인하고싶다.

    이책에서 황금두꺼비가나온다 그걸확인하고싶다.

    당현히 브라질하면 생각나는것은 축구지만 팡이는 보물을찾으러온것이다  그런대 축구를하러간다.

    팡이는 꿈을모르겠다.

    난 축구선수가꿈이다.

    하지만 나도 어쩔땐 바뀐다 정확한나에 꿈은 무엇일까??

    퀴즈!

    브라질에서 보물찾기를 보신분은 잘아실꺼에요.

    브라질에는 분홍돌고래가 있다! 없다!     1있다      2없다

    만약있다면 그돌고래에 이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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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진이, 비극적 혁명가의 슬픈 연인
    소설가 홍석중과 장윤현 감독이 해석한 그녀는...
    텍스트만보기   홍성식(poet6) 기자   
    ▲ 영화 <황진이> 포스터.
    ⓒ 시네마서비스
    먼저 1980년대 민중주의자들 사이에서 떠돌던 농담 같은 이야기 한 토막. <춘향전>의 결말에 관한 것이다.

    "이 도령이 과거 급제해 높은 벼슬에 올라 옛 연인 춘향이를 구한다는 설정은 부르주아들의 환상유포에 불과해. 진정 핍진성 있는 대중소설이 되려면 변학도의 학정에 시달려온 기층민중이 낫과 곡괭이를 들어 관아를 깨부수고, 탐관오리를 처단하는 걸로 이야기가 결말나야해. 물론, 이 도령은 이 민중봉기의 중심에 서야할 테고."

    이 드라마틱하고도 흥미로운 전복적 상상력을 '황진이 이야기'에 대입해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2004년 남한 출판사 창비(창작과비평)가 주관하는 만해문학상을 북한 작가가 수상하는 보기 드문 일이 발생했다. 수상자가 월북한 작가 벽초의 손자라는 사실까지 더해져 그해 만해문학상은 이런저런 화제를 낳았다. 수상작은 <황진이>. 남한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소재요, 인물이다.

    바로 그 소설이 <접속>과 <텔 미 썸딩>의 감독 장윤현에 의해 영사막 위로 옮겨졌다. 주연배우는 유지태와 송혜교. 이전 영화들 속에서 묘사된 교태와 재기 넘치는 매력적인 기생 황진이가 아닌 혁명가의 연인으로 재탄생한 황진이를 만나게 된 것이다.

    북한 작가와 정식으로 저작권 계약을 맺고 제작된 첫 남한 영화.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할
    제작에 얽힌 뒷이야기도 재미있다.

    북한 작가와 정식 저작권 계약을 맺고 만들어진 최초의 영화

    북한과의 교류를 위해 설립된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이사장 국회의원 임종석). 재단의 신동호 이사는 보다 대중적인 남북교류를 위한 수단의 하나로 영화를 생각한다.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북한 작가 홍석중의 소설 <황진이>. '저 작품을 남한에서 영화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지만, 영화 제작이란 적어도 수십억원의 자본이 필요한 일. 제작자를 찾는 일이 급했다.
    그때 신 이사가 떠올린 사람이 1980년대 학생운동 동료였던 씨즈엔터테인먼트(<마리 이야기> 제작사) 조성원 대표. 둘은 수 차례 북한을 오가며 홍석중을 직접 만났고, <황진이>의 판권을 10만 달러(9500만원)에 사게된다.

    완성된 시나리오를 본 홍석중은 만족감을 표시했고, "상업영화이니 만치 약간의 러브신이
    들어갈 수도 있다"는 설명에도 "그 정도는 나도 이해할 수 있다"며 동의를 표했다고 한다.
    곧 열릴 금강산에서의 시사회에 그가 참석해 영화화된 자신의 소설을 접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 의적들의 우두머리 '놈이'로 분한 유지태.
    ⓒ 시네마서비스
    교태 넘치는 기생이 아닌, 혁명가의 연인 황진이

    여하튼 만만찮은 우여곡절 끝에 뚜껑은 열렸다. 홍석중 원작·장윤현 연출의 <황진이> 기자시사회가 23일 열린 것.

    사실 우리에게 '황진이 이야기'는 너무나 익숙하다. 기생이 될 수밖에 없었던 기구한 사연에서부터 위선적 선비 벽계수를 희롱한 일화, '기일원론(氣一元論)'을 바탕으로 '이선기후론(理先氣後論)'의 퇴계와 학문적 자웅을 겨루던 화담 서경덕과 주고받은 고담준론까지.

    익숙한 이야기를 식상하지 않게 만드는 건 새로운 변주다. 하여, 장윤현 선택한 변주법은 앞서 언급한 민중주의적 방식. 교태 넘치는 웃음과 기가 막힌 거문고 연주, 거기에 더해진 타고난 아름다움으로 사내들을 홀리는 황진이가 아닌 혁명가의 연인 황진이를 탄생시킨 것이다.

    새로운 변주법과 함께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은 황진이 역을 맡은 송혜교와 불합리한 반상(班常)의 질서를 거부한 의적들의 우두머리 '놈이'로 분한 유지태의 연기다.

    연인에 대한 개인적 사랑의 감정에서부터 궁핍의 삶을 겨우겨우 이어나가는 민초들에 대한 연민까지를 눈빛으로 보여주긴 쉽지 않은 일. 하지만, 두 사람은 이 난제를 피해가지 않고 어렵잖게 소화해낸다. 주연과 함께 호흡한 조연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호연은 영화의 사실감과 감동지수를 높인다.

    영화가 절정을 향해 내달릴 무렵. 놈이가 황진이를 향해 토해내는 대사가 의미심장하다.

    "난 사람들과 함께 섬으로 갈 겁니다. 양반과 상놈이 없고, 착취도 없는 곳. 모든 사람이 서
    로를 아끼며 평등하게 사는 섬으로 말입니다."

    영화의 핵심메시지가 담긴 이 대사에서 만적 혹은, 임꺽정과 장길산의 그림자를 본 것은 비단 기자 만이었을까?

    평생을 한 여자만 사랑해온 남자. 그 남자 외에 다른 사내에겐 몸을 줬을 뿐, 마음을 준 적이 없는 여자. 세상이 강제한 규범과 허위의 틀 탓에 단 한번도 서로에게 품은 애틋한 심사
    를 고백하지 못했던 놈이와 황진이는 '섬'으로 갈 수 있었을까? 거기서 평등하고 아름답게
    살 수 있었을까?

    질문에 대한 해답은 영화관에서 얻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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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파서 우는 게 아닙니다 - 소외된 삶의 현장을 찾아서
    박영희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07년 4월
    품절


    (몽골 탄광의 아이들) 무슨 말을 하더라도 그가 알아들을 수 없다는 것이 차라리 천만다행처럼 여겨졌다. 설령 할 말이 있어도 한국의 내 딸과 동갑내기인 그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바이샤와 술드몽크의 시커먼 얼굴을 보며 나는 한없는 막막함을 느꼈다. 빚을 내어 몽골을 떠난, 한국에서 만난 이주노동자들이 부러울 뿐이었다.-120쪽

    (부안 사람들) 40여 년을 계화 갯벌과 함께 살아온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이런 의문이 생겼다. 국가가 제시하는 미래와 갯벌지킴이가 내다보는 미래가 왜 이렇게 다를까 하는... 성형수술을 할 때와 하고 나서의 모습이 너무 다르다는 생각도 들었다. 뜯어고치긴 했는데 그 몰골이 너무 흉해 보였다.
    "방조제 완공 이후 산 너머 산이 되고 말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하지는 않습니다. 그 산 너머 어딘가에 고통 받고 죽어가는 생명들이 바로 머잖아 보게 될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취재를 다녀오고 1년이 지났다. 부안 군수가 항소심에서 유죄가 확정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착잡한 심정이다. 그보다는 어민들의 생계가 걱정이다.-134쪽

    (탄광 사람들) 그런 그에게, 손바닥만 한 구멍가게를 지키며 사는 병든 남편과의 세월을 물어 무엇하랴. 차라리 12만 명에 육박했던 태백시의 인구가 현재 5만 7000명(2004년 2월 당시)으로 추락해 버린 사실 하나만으로도 설명은 충분하리라. 지금 태백에서는 그곳 인구의 절반이 넘는, 옛 광부의 아내들이 병든 남편을 먹여 살리느라 악전고투하고 있다. 그런데도 없다, 일할 곳이. 탄광들이 문을 닫으면서 형편이 기울대로 기울어 버린 태백시의 현주소는 그 도시마저 진폐증에 걸린 듯하다. 날이 풀리면 발품을 팔아 목구멍에 풀칠이라도 해 보련만 간간이 불러 주던 식당들마저 자고 나면 문을 닫아 겨울나는 일이 고통의 연속이다.-152쪽

    (탄광 사람들) 광산이 합리화로 접어들 무렵 나는 소리 소문 없이 일본에 갔었다. 그들의 합리화 이후 어느 곳에도 버려진 광부는 없었다. 그들은 그것을 '후생복지'라고 말했다. 광부들이 열심히 탄을 캐서 추운 겨울 국민들을 따뜻하게 살도록 했으니 그들의 이후 생활을 국가가 보장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었다.
    허나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아내마저 도망을 가 버린 김창선 씨를 만나고 나오는 발길이 천근만근이었다. 진폐에 합병증 증세가 나타나지 않아 사랑의 도시락 한 개로 세 끼니를 때우고 있는 그를 보았을 때는 연민에 앞서 화가 치밀었다. 병원에 입원한 진폐환자들과 재가 환자들을 번갈아 만나는 도중에는 어떤 의구심이 고개를 쳐들기도 했다. 내 눈으로 보아 집에서 치료를 받아도 될 환자가 병원에 입원해 있고, 병원에 있어야 할 환자가 집에 있었던 것이다.
    광부들을 불러들인 그곳에 광부들을 쫓아내고 카지노를 지은 정부.
    그 휘황찬란한 카지노 불빛 아래 병들어 떠나지도 못한 채 가쁜 숨을 몰아쉬는 진폐환자들.
    기름과 물의 관계를 우리는 '비극'이라고 말하던가. 한국 탄광 70년의 역사를 안고 그들은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157쪽

    (진부장 사람들)
    "이 무 보래요. 이 무는 이쁜 것도 1000원이고 못생긴 것도 1000원이래요."-174쪽

    (전국의 빈민촌) 2007년 현재 우리나라 기초생활수급자는 150만 가구, 의료수급자는 180만 세대. 보험료를 납부하지 못해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빈곤층만도 200만 명에 이른다. 여기에 비수급 빈곤층과 잠재적 빈곤층을 합하면 우리 사회는 대통령의 발언대로 근근이 생계를 꾸려가는 빈곤층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전체 국민의 15퍼센트가 암보다 더 무서운 생계 문제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236쪽

    (대구 지하철 참사)
    "엄마 숨이 막혀요. 숨을 쉴 수가 없어요. 무서워요. 아빠, 살려주세요!"
    그리고 며칠 뒤 취재가 시작되었다. 모든 잘못과 죄를 두 기관사에게 뒤집어씌우고 있을 때라서 기관사들의 입을 여는 일이 몹시 힘들었다. 아주머니들의 영정이 놓인 장례식장을 찾아갔을 때는 참담한 광경 앞에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취재를 하는 동안 김순자, 김정숙, 정영선 씨 등 세 아주머니의 이름을 수없이 불렀다. 얼마나 열심히들 살다 간 이 땅의 어머니들인가. 하지만 그들의 최후는 초라하고 비참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죽음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저 죽음은 사람의 죽음이 아니라 '개죽음'이라고!-277쪽

    (소록도 환우의 시 <간호야, 비가 온다>의 일부분)
    가을엔 지붕에 널린 붉은 고추만 봐도 내 피눈물 같고. 낸들 아무리 고통스러웠어도 어머니 가슴만 했을까. 병든 딸 안고 죽 떠먹이며 우시던 그 눈물이 내 얼굴에 떨어질 때면 어찌 그리 뜨겁던지... 지금에야 그 눈물이 피눈물인 걸 알았제.
    소록도에 와서는 지나가는 배에서 들려오는 노랫가락에 또 눈물이 나고... 사람 맘이 그렇단다, 간호야. 그나마 간호들이 없었으면 외로워서 어찌했을꼬. 간호야, 얼른 얼른 시집가서 윤기 나는 대청마루에 앉아 애기나 어르고 살아야제.-285쪽

    (소록도 천사 허옥희 씨) 물론 허옥희 씨가 그러는 데는 이유가 있다. 몇몇 간호들처럼 자신도 손가락 하나 남아 있지 않은 몽당손에 호미를 붕대로 칭칭 동여매 농사짓는 한 한센인의 마늘을 먹고 있는데, 차마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받은 것은 그분이 살고 있는 집을 방문해서였다.
    "가서보니까 알이 굵은 마늘은 저한테 다 주시고 그 환우 분은 가장 보잘것없는 마늘을 잡수고 계셨어요. 순간 어찌나 죄스럽던지요. 이런 것 하나만 보더라도 소록도 환우들과 함께하려면 간호 역할만으로는 어렵습니다. 700명에 가까운 환우들 대부분이 가족이 없기 때문에 자식이 되어 주고 손녀가 되어 주어야 해요."-294쪽

    (소록도 천사 허옥희 씨)
    "한 번도 소록도가 직장이라는 생각을 안 해 봤어요. 제 집이라고 여기며 살아왔어요. 앞으로도 그렇게 살겠지만. 그동안 슬프고 아팠던 기억들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보다는 감사한 기억들이 더 많아요. 하지만 우리 딸 '솔'이 하고 '강산'이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시댁 식구들하고 8년을 함께 살 때는 애들한테 많이 미안했어요. 외식 한 번 못했거든요. 그 다음은 잘 모르겠네요."
    그러나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올해 대학에 진학한 큰딸과 소록도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딸이 제 엄마를 쏙 빼닮았다는 것을. 나도 소록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통해 엿들은 이야기지만 자매도 엄마를 닮아 봉사를 우선에 두는 아이들이라고 했다. 눙이 감긴 할아버지를 찾아가서는 성경을 읽어드리고, 숟가락질이 불편한 할머니에게는 음식이 뜨거울까 봐 호호 불어가며 조심스럽게 입에 넣어 드리고, 청소하는 것마저 버거우신 분들한테는 방 청소를 해 드리고, 외로운 분들한테는 말벗이 되어 드리고... 자매는 그 일을 엄마 몰래 초등학교 시절부터 해 왔다고 했다.-301쪽

    (소록도 천사 허옥희 씨) 허옥희 씨 집에 잠시 들러 커피 한 잔을 나누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운전을 하다 말고 친구 녀석이 이런 얘기를 했다.
    "친구야! 내도 교회 집사라는 직분 땜에 쪼매 봉사 좀 한다고 생각?는데 소록도 그 집에 가 보니까네 내는 헛살았다는 생각이 들더라. 와 그란 줄 아나? 그 간호사는 사람이 아니라 천사더라."-3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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