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전
김규항 지음 / 돌베개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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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息日의 본디 의미) 쉬는 날은 그것이 정해져 있지 않다면 제대로 쉴 수 없는 사람들에게 의미가 있는 것이다. "엿새 동안 힘써 네 모든 생업에 종사하고 이렛날은 너희 하느님 야훼 앞에서 쉬어라. 그날 너희는 어떠한 생업에도 종사하지 못한다. 너희와 너희 아들딸, 남종 여종뿐 아니라 소와 나귀와 그 밖의 모든 가축과 집안에 머무는 식객이라도 일을 하지 못한다. 그래야 네 남종과 여종도 너처럼 쉴 것이 아니냐?(신명 5:13~15) 그런데 바리사이인들은 안식일에도 일하지 않으면 굶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삶의 조건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안식일을 어기니 죄인이라 말했다. 안식일은 '쉴 수 없는 사람을 죄인으로 만드는 날'이 되어 버린 것이다.
(중략)
예수에게서 뭔가 꼬투리를 잡을 기회를 노리던 바리사이인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에게 왜 안식일을 지키지 않느냐 따졌다. 예수는 그들에게 정면으로 반박한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생겼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생기지 않았습니다."(사람을 괴롭히고 옥죄는 율법은 더 이상 하느님의 율법이 아니다)-55쪽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로 전제하고 복음서를 읽는 건 예수의 절절한 삶을, 다시 말해서 복음서를 읽는 이유나 가치를 내팽캐치는 일이다. 복음서는 '한 평범한 시골 청년이 어떻게 하느님의 아들로 여겨지게 되었는가'를 증언한 책이지 '하느님 아들의 인간 흉내 쇼'를 적은 책이 아니다.-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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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정리 편지 (양장)
배유안 지음, 홍선주 그림 / 창비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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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을 물리고 장운이 얼른 설거지를 했다. 난이가 그릇을 닦아 살강에 얹었다.
"장운아, 이리 앉아라."
장운이 방으로 들어서자 아버지가 옆자리를 가리켰다.
오복과 난이도 나란히 앉았다. 장운은 어리둥절했다. 어째 좀 이상한 분위기였다.
"장운아, 한양 가거라."
"예?"
"한양, 가거라."
"아버지, 그걸 어떻게.."
"낮에 점밭이 다녀갔다."
"점밭 아저씨가요?"
"그래, 정 어려운 형편인가 와 봤다고. 참 고마운 사람이다."
그러고 보니 점심 먹고 나서 일터에 점밭 아저씨가 내내 안 보였던 것 같았다.
'우리 집엘 왔었구나.'
"좋은 기회라고 하더라. 갔다 오면 여기서도 석수로 인정해 주고. 네가 손이 매워서 한 재목 할 것 같다면서 웬만하면 한양엘 데려가고 싶다더구나. 내가 그 말을 듣고 어찌나 고맙고 마음이 뿌듯하던지..."
아버지는 거의 눈물이 글썽한 얼굴이었다.-147쪽

장운은 다시 돌 앞에 반듯하게 앉았다. 이 큰 돌 안에 꽃이 가득 들어 있다는 생각을 했다. 안에 감춰진 연꽃을 피어나게 하려면 꽃을 덮고 있는 돌을 깨 내야 한다. 장운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가슴에 두 손을 모았다가 조심조심 불필요한 부분을 깨 나가기 시작했다.
돌이 한 점 한 점 떨어져 나가자 천천히 꽃잎 형태가 드러났다. 둥글불룩하게 꽃잎을 다듬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까다로웠다.
"딱딱한 돌로 그저 꽃 모양을 낸다는 생각은 말고 정말 꽃잎을 피운다고 생각해야 된다. 마음속에 꽃잎이 하늘하늘 흔들리는 느낌을 가지고 있어야 그런 꽃잎을 다듬을 수 있어."(판돌이 아저씨)-171쪽

"누가 그랬는지 찾으려 하지 마라. 너를 해코지한 사람이 있다면 그것도 네 책임이다. 미움을 못 풀어 준 건 너일테니까."-179쪽

(누이의 편지) 장운아, 일 잘하고 있지? 집사 아저씨가 주인어른 심부름으로 한양에 간다기에 급히 몇 자 적는다. 한 달 전에 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유언으로 그동안 정성스럽게 수발한 나를 집으로 돌려보내라 하셨다. 그래서 사십구재 지내고 이달 스무날에 집으로 돌아간다. 아버지께는 봉구 아저씨 편에 벌써 일러두었다. 마음은 벌써 집에 가 있는 것 같다. 어서 만나고 싶구나.-181쪽

"걸어오는 너를 보고 알았느니라. 장운아, 그새 많이 컸구나. 그런데 네가 어떻게 여기에 있는고?"
"서, 석수들을 따라와서 돌을 깨고 있습니다."
"그래, 네 아비가 석수라 했지. 아비가 아프다고 했는데 요즘은 어떠하냐?"
"예, 전보다 많이 낫습니다."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종이 책이 네 것이란 말이지?"
"예, 배운 것을 이, 잊지 않으려고 적어 두었습니다."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종이 책을 천천히 뒤적였다. 종이 책에서 뭔가 툭 떨어졌다. 편지 두 통이었다. 장운이 얼른 주웠다. 할아버지가 손을 내밀자 장운이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레 건넸다.
"무엇인고?"
"누이가 쓴 편지입니다. 그리고 하나는.."
할아버지가 펴서 읽었다. 그러고는 눈을 크게 뜨고 장운을 보았다.
"이, 이게..."
"빚 때문에 누이가 어떤 집에 종살이를 하러 갔습니다. 그동안 누이와 편지로 소식을 주고받았습니다."
"편지를? 새 글자로 편지를 주고받았단 말이지? 그랬구나. 그래, 그동안 누이 때문에 애가 많이 탔겠구나."

(중략)

"이런, 이런. 이건 내가 초정에서 쓴 편지 아니냐?"-1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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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정리 편지 (양장)
배유안 지음, 홍선주 그림 / 창비 / 2007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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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등) 아이들에게 '한글' 창제의 의미를 일깨워주는, 생동감 있는 동화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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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령을 위한 연가 - 문정희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겨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뉴스는 다투어 수십년 만의 풍요를 알리고 

자동차들은 뒤퉁거리며 

제 구멍들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였으면.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이윽고 날이 어두워지면 풍요는 

조금씩 공포로 변하고, 현실은 

두려움의 색채를 드리우기 시작하지만 

헬리콥터가 나타났을 때에도 

나는 결코 손을 흔들지는 않으리. 

헬리콥터가 눈 속에 갇힌 야생조들과 

짐승들을 위해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시퍼렇게 살아 있는 젊은 심장을 향해 

까아만 포탄을 뿌려대던 헬리콥터들이 

고라니나 꿩들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자비롭게 골고루 뿌릴 때에도 나는 결코 

옷자락을 보이지 않으리 

 

아름다운 한계령에 기꺼이 묶여 

난생 처음 짧은 축복에 

몸둘 바를 모르리.  

 

* 출처 : 미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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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푸른고개 2010-01-04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이 많이 내리고 있는 1월 첫 출근날, 후배가 메신저로 보내온 시를 옮겨보다. 모처럼 눈이 많이 쌓여 온 세상이 하얗다. 서설이려나...
 

시인들이 술 마시는 영안실 - 정호승 

 

희미한 영안실 형광등 불빛 아래 

시인들이 편육 몇 점에 술을 마신다 

언제나 착한 사람들이 먼저 죽는다고 

죽음은 용서가 아니라고 

사랑도 어둠이었다고 

누구는 컵라면을 국물째 들이켜며 

철없는 짐승인 양 술에 취한다 

꽃이 죽어서도 아름답더냐 

왜 발도 없이 인생을 돌아다녔나 

겨울 나뭇가지 끝에 달린 이파리처럼 

어린 상주는 꼬부라져 영정 앞에 잠이 들고 

뒤늦게 누가 보낸 화환인가 

트럭에 실려온 흰 백합들이 

하는 수 없이 눈물을 보이고 있다 

달 없는 하늘에 별들만 푸른데 

영안실의 밤은 깊어가는데 

 

-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창비.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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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푸른고개 2009-11-22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뵙게 되는 분입니다. '아이들에게 추억을 많이 만들어주는 아버지가 되라'는 말씀이 다시 생각납니다. 가장 후회없는 일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몇 개월째 방치했던 서재를 다시 꾸리며, 옮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