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이 술 마시는 영안실 - 정호승 

 

희미한 영안실 형광등 불빛 아래 

시인들이 편육 몇 점에 술을 마신다 

언제나 착한 사람들이 먼저 죽는다고 

죽음은 용서가 아니라고 

사랑도 어둠이었다고 

누구는 컵라면을 국물째 들이켜며 

철없는 짐승인 양 술에 취한다 

꽃이 죽어서도 아름답더냐 

왜 발도 없이 인생을 돌아다녔나 

겨울 나뭇가지 끝에 달린 이파리처럼 

어린 상주는 꼬부라져 영정 앞에 잠이 들고 

뒤늦게 누가 보낸 화환인가 

트럭에 실려온 흰 백합들이 

하는 수 없이 눈물을 보이고 있다 

달 없는 하늘에 별들만 푸른데 

영안실의 밤은 깊어가는데 

 

-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창비.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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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푸른고개 2009-11-22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뵙게 되는 분입니다. '아이들에게 추억을 많이 만들어주는 아버지가 되라'는 말씀이 다시 생각납니다. 가장 후회없는 일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몇 개월째 방치했던 서재를 다시 꾸리며, 옮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