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수업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 외 지음, 류시화 옮김 / 이레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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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내가 더 살도록 선택 받았다면, 난 지금 과연 제대로 살고 있는가?'(121쪽)

이러한 질문을 반복해서 받는다면, 좀처럼 이를 외면하는 사람들조차 숙연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게다가...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감정은 오직 두 가지뿐입니다. 사랑과 두려움이 그것입니다. 모든 긍정적인 감정은 사랑으로부터 나오며, 모든 부정적인 감정은 두려움에서 나옵니다. 사랑으로부터는 행복, 만족, 평화, 기쁨이, 두려움으로부터는 분노, 미움, 걱정 그리고 죄의식이 나옵니다.'(159쪽)

글은 그 사람의 인생궤적으로부터 배어나온 글이 그 울림을 크게 한다고 볼 때, 이 책은 저자들의 인생내력을 감안한다면 충분한 그 울림을 갖고 있다. 줄곧 문장마다에 밑줄을 그으며 책을 읽다보니, 마치 수업시간에 국어교과서에 밑줄 긋고, 토를 달던 기억이 되살아날 정도로 진정 '수업' 받는 느낌을 주는 책이었다. 물론 호스피스로서, 심리학 전공의 상담자로서 만나게 되는 숱한 임상기록의 반복에 의해 당연히도 이 책의 주장은 단 몇마디 단순하지만 옳은 진리를 반복적으로 되새기는 형식의 책이다. 삶의 행로 속에서 고단하고 지칠 때 언제든지 다시 꺼내 읽으면 위안과 생기를 회복케하는 좋은 책이다. 죽음과 관련된 저자들의 종교관이 보편적이지 못하다는 한계는 있지만, 죽음을 상기하면서 살아있는 시간의 고귀함을 새긴다는 일은 어쩌면 종교를 초월하는 일이겠다.

고속도로나 지하철 화장실에 자주 나붙는 격언... '나의 오늘은 어제 죽은 자가 그토록 갈망하던 내일이다.' 단순하지만 되짚어보면 매우 큰 울림을 주는 이 말이 많은 사람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하여 풍성한 울림을 주는 좋은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을 전시해놓은 교보문고 중앙복도 매장에서의 느낌을 사족처럼 덧붙인다면...

요즘 경쟁이 심해진 탓인지, 한 권을 사면 한 권을 더 주고, 또는 5,000원 짜리 문화상품권도 주고, 책값보다 더 비싼 두 장 짜리 영화티켓도 주고 하는 행태를 보면, 또 그런 상술에 '혹' 해서 덤으로 받은 책에 실망하다 보니, 요즘 출판계가 어려운 건지, 아니면 예전보다 세련된 것인지 사뭇 헛갈리기도 하는 요즘이다. 그런데 이 책 <인생 수업>은 남들보다 사뭇 점잖은 듯 그냥 모든 구매자들에게 2,000원 정도만 준다. '군계일학'일까?

숱하게 발간되는 새로운 책들을 독자들이 스스로 선택해가는 과정에서, 독자 스스로는 올바른 감식안을 갖춰가는 일인진대, 왜 비단 몇몇 대형서점에서만 이러한 행사들을 하는가? 사뭇 씁쓸하기만 하다. 고객에 대해서 남들이 하지 못한 특별한 혜택으로 흔히 이야기하는 '차별화'를 꾀하는 것일까? 아니면, 단지 남들이 하니까?

좋은 책은 오래토록 사랑받게 되어있다. 단순한 사탕발림으로 책을 사보는 경우는 그리 오래 갈 수 없다. 이 책 <인생 수업>은 그러한 가벼운 상술에서 벗어나도 좋은 가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다. 단지 대형매장의 베스트 순위를 올리려고, 또는 유지하려고 하는 '위기감'에서 충분히 벗어날 수 있는 책이다. 정말 독자를 생각한다면 교보 등을 방문할 수 없는 지방독자들이나, 인터넷에 가깝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서 아예 책값을 내려서 제공하는 '큰 걸음'을 할 수는 없는지... 말도 안되는 소리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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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인삼색 미학 오디세이 1 - 진중권.현태준과 함께 떠나는 원시~근대 미와 예술의 세계
진중권 원작, 현태준 글.그림 / 휴머니스트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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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로 보수언론에게 예리한 칼끝을 겨누며 맞섰던 논객 진중권,(물론 보수언론의 닳고닳은 대응전략은 무관심이다) 지금까지의 여러 저서 가운데 가장 빛나는 책이 아마도 이 3인3색의 원작은 <미학 오디세이>일 것이다.

이름 탓일까. 이 책은 마치 '오디세이'처럼 출판사를 이리저리 옮겨다녔다. '새길'을 거쳐, '현실과과학'을 거쳐, 이제 '휴머니스트'라는 출판사본으로 나왔다.(몇 번 옮기면 혹시 또.. 하는 우려도 생긴다)

인터넷 검색이나 관련자료를 돌이켜 볼 일은 아니겠지만, 국내에서 '미학'이라는 개념이 도입되고, 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되는(대중화) 현상을 그리 먼 과거의 일이 아니었다. 80년대 후반에 번역되어 나오던 '미학' 관련서들이 있었던 것 같고, 번역서가 갖는 생뚱함을 크게 덜어준 책이 바로 <미학 오디세이>로 기억된다. 하지만 인류 역사와 함께 한 미의 개념, 예술의 개념을 정리한다는 것이 어디 쉬울 일인가. 그래서 더욱 반가웠던 책이었다.(다 읽었다는 것은 아님)

이제 현태준, 이우일, 김태권(곤?) 등 3인이 <미학 오디세이>를 각 시대구분별로 정리한 만화책이 나왔다고 했는데, 우연히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어서 읽게 되었다. 책을 덮은 후, 누구를 대상으로 만들 책일까. 중고생, 아님 대학생, 일반인.... 읽어본 결론은 단지 하나 '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 누구나'가 아닐까? 수능이나 논술을 위해서든, 아님 교양을 위해서든... 그리 오래된 기억은 아닌데, 서점에서 <뿌지직 행진곡>을 들춰보았다.(다행히 랩핑이 되어 있지 않았던..) '이걸 돈 주고 사서 보나' 하는 게 만화에 대한 솔직한 내 식견이었다. 하지만 그 그림을 그린 현태준 작가의 글과 그림으로 되살아난 <미학...>은 (비너스와 손양 이야기만 빼고... 아니, 어쩌면 그런 우려도 너무 낡은 것은 아닐지) 상당한 공력이 느껴진다. 글을 어려우면 더 어렵게 해서 넘어가버리면 되지만, 만화는 그런 수작이 안되는 장르 아닌가.

빨개벗은 눈/심심풀이와 일 그리고 마술/피그말리온/알폴론과 디오니소스/레오나르도와 미켈란젤로/바로크(루벤스)와 신고전주의(푸생)/칸트.... 

머리를 식힐 만한 '만화'책은 아니지만, 언제든 펼쳐볼 수 있는 좋은 책이 나왔다. 내 연령에 맞는지는 스스로 선택해서 확인해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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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일, 카리브 해에 누워 데낄라를 마시다
이우일 지음 / 예담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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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오후 6시 이후에는 노상강도가 많으니 나다니지 말라는 것이고, 폭스바겐 비틀 택시도 문이 두 짝이라 택시강도를 만났을 때 탈출하는 방법이 없으니 타지 말라는 것이다. 여기저기 강도가 출몰하니 부티 나게 입지도 말고, 값비싼 물건도 지니고 있지 않는 것이 좋다. 그리고 돈을 조금은 가지고 다닐 필요가 있다. 돈이 없으면 강도에게 괜히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 맞을 수도...^^-20쪽

(멕시코) 아즈텍족이 피라미드 위에서 인신공양을 한 후 피라미드 아래로 던져버렸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테우티우아칸의 피라미드는 아스텍족이 만든 것이 아니다. 기원전에 세워진 이 도시는 아스텍족이 도시를 건설하기 훨씬 이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 도시를 건설한 사람들은 아스텍족이 아니었다. 그들은 지금은 알 수 없는 다른 종족이었다. 그들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전혀 없다. 그들의 출신, 생활 방식 그리고 어떻게 사라졌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들이 멸망한 후 아스텍족이 폐허가 된 이 도시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거대함에 놀란 거인이 이 도시를 세웠다고 믿고 신성시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1864년부터 발굴을 시작한 이곳은 아직까지도 발굴이 진행 중이다.-41쪽

(멕시코) 1519년 에스파냐의 에르난 코르테스가 아스텍을 침략했을 때 놀란 이유는 그들의 놀라운 문명 때문이었다. 그러나 더 충격적인 것은 아스텍족의 끔찍한 종교의식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피라미드 위에서 인신공양을 일삼는 그들을 에스파냐인들은 악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좋은 빌미가 되었다. 침략자들은 원주민들을 모조리 카톨릭으로 개종시켜야 한다는 의무감에 불탔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루아침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아스텍족의 토착 신앙과 에스파냐인의 카톨릭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달랐기 때문이다.

; 아스텍족의 '놀라운' 문명에 대한 소개가 있어야...
; 디에고 리베라, 프리다 칼로, (한 시간가량..^^), 여행전문서 <론리 플래닛>, 영화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45쪽

(멕시코) 여행을 준비하기 전에는 칸쿤이라는 도시의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었다. 도착해보니 이 도시는 멕시코지만 멕시코가 아니었다. 분명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도시지만 미국의 도시 같았다. 꽤 오래 전부터 이곳은 미국인들이 점령했던 것이다. 휴양지로서.
마야의 리비에라에는 세계적인 최고급 호텔 체인이 즐비하다. 어디서나 영어가 통하고 달러를 사용할 수 있다. 관광객들의 90% 이상이 미국인이다. 이 도시는 애당초 관광산업으로 일어난 도시이므로 모든 것은 여행객을 위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 칸쿤을 과연 멕시코인들의 도시라고 불러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생길 정도이다.-92쪽

(쿠바) 아바나에서 먹을 것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다만 멕시코처럼 쿠바의 전통적인 음식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왜냐면 아예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역시 재료만은 안심해도 좋을 듯하다. 쿠바는 세계적인 유기농 선진국이기 때문이다. 쿠바는 경제 제재로 비료 수입을 하지 못한 지 십여 년이 되었다. 덕분에 쿠바 정부는 비료 없이 농사를 지을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결국 지금은 세계 최고의 유기농 국가로 변신했다.
지금 유럽과 일본, 남미의 많은 나라들이 그들의 유기농을 배우기 위해 연구팀을 쿠바로 보낸다. 아이러니컬한 일이 아닐 수 없다.-1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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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일, 카리브 해에 누워 데낄라를 마시다
이우일 지음 / 예담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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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창에 저자 이름을 띄워보다 잠시 깜작 놀랜다. 최근에 그가 관여해서 발간된 책이 제법 많다. 물론 쓰는대로 족족 출간되는 것은 아니고, 여러 절차가 따르겠지만 10년전 추억을 되살린 <...신혼여행기>, 진중권의 글을 풀어그린 <미학 오디세이>, 마치 예전의 '월리시리즈'를 보는 듯한(꽤 공들였을..) <..도시탐험> 등등... 그리고 이 책. 교통정리나 호흡조절이 필요한 건 아닌지...^^

폭우와 이어지는 폭염에 '피서용' 책을 고르다가 뉴스에서 다뤄진 이 책을 골랐다. 그리고는 일요일 아침, 부산스레 내 할 일 뚝딱 해치우고 아직 아침기운이 가시지 않은 공원에 앉아 역시 '뚝딱' 읽었다. 가벼운 여행서를 읽는 것은 잠시 책밖의 현실에서 탈피할 수 있어서 '피서용'으로 적합하다. 유용한 정보를 꾹꾹 눌러담은 여행정보서가 아닌 바에야, 그저 저자의 발걸음을 뒤따라 걸어보는 편안함이 있다. 굳이 많은 정보를 얻으려고 한다면 관련한 책들이나 저자가 제공하는 싸이트 주소 몇 군데를 순회해보는 편이 오히려 유익할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여행사 패키지도 아니고 초등학생 아이와 아내, 셋이서 떠나는 여행기록이니 저자의 말대로 눈에 보이는 것보다 마음 속의 걱정과 우려 때문에라도 많은 것을 담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저자의 태도는 일반 여행서에서 보기 힘든 뷰파인더의 각도에서 잘 보여진다. 아내와 딸 은서를 중심으로 한 사진들이 무척이나 많은 것이다. 그렇듯 가족적인 분위기와 그에 충실한 기록과 편집이 이 책을 가볍지 않게 만드는 것일게다. '여행이 일상일 수 있다'는 생각을 다시 키우게 되고, 책을 덮는 순간 우리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들게 하는 것만으로도 유익했던 책.(가족이 함께 엮은 책이라는 장점에 치중하다보면 독자에게 불친절한 면이 역으로 발생하는 것은 인지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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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눈은 진실을 알고 있다(전 2권)

발행일 : 2006.07.08 / Books D1 면 기고자 : 김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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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르지오 팔레띠 장편소설|이승수 옮김|한스미디어|각권 9000원

이탈리아 로마의 여형사 모린은 악당에 의해 애인을 잃고 자신의 눈마저 잃는다. 미국에서 발생한 연쇄살인사건의 희생자로부터 각막을 이식 받은 모린은 그 후 범죄의 현장을 보는 신비한 능력을 갖게 된다. 눈은 연쇄살인범의 과거를 보여주고, 그 비밀을 풀어나간 모린은 악당에게 정의의 심판을 내린다.

이 소설은 범죄 스릴러로서 통속적 재미에 충실하다. 그러나 작가는 이야기 이상의 의미를 곱씹게 하는 화두를 곳곳에 던진다. 삶의 의미는 각자의 실존적 행위에 있지 않고 타자의 기억 속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남에게 기억되지 못한 자의 인생은 “눈에 보이는 현실의 거짓된 이미지에 의해 만들어진, 금방 사라지고 마는 고상한 섬광들로 이루어진”(1권 18쪽) 허상이다.

작가는 미국 추상표현주의 화파(?派)의 액션 페인팅, 제리코(Gericault)의 그림 ‘메두사의 뗏목’ 같은 고급문화를 끌어온다. 그 위에 만화 피너츠의 캐릭터, 팝아트의 아이콘 같은 것들을 적적히 배치해 가며 중첩된 무늬의 추리소설을 완성했다. 작가는 TV 코미디언으로 시작해, 산레모 가요제(1994년)에서는 가수로 참가해 비평가상을 받았으며, 2002년 ‘나는 살인한다’를 발표하며 범죄추리소설에 뛰어든 이색 경력의 소유자다.

소설에는 세 번의 살인사건이 등장한다. 첫 번째 희생자의 이름은 제리 코(Jerry Kho). 19세기 프랑스 화가 제리코의 이름을 딴 그는, 뉴욕시장의 아들이자 몸으로 그림을 그리는 행위예술로 이름을 떨친다. 소설의 도입부는 제리 코가 ‘정사(情事)로 그린 그림’으로 시작한다. 그는 거리에서 만난 여자와 함께 온 몸에 물감을 바르고, 바닥에 펼쳐진 커다란 캔버스 위에서 뒹군다. 시간의 흐름 속에 표현된 몸의 움직임을 캔버스에 남기고, 여자의 몸과 캔버스 위에 정액을 흩뿌리는 것으로 그림을 완성한다.

캔버스가 없고 몸에 바른 물감이 없었다면, 행위라는 이름으로 펼쳐진 삶은 어디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 제리 코는 마치 유언처럼, 자신의 삶을 캔버스에 펼친 뒤 피살된다. 범인은 제리 코의 손을 입 속에 쑤셔 넣고는 접착제로 고정시켜, 시신을 만화 피너츠의 캐릭터 ‘라이너스’의 모습으로 만들고는 사라진다.

두 번째 희생자는 그의 대학동창이자 철강 갑부의 딸인 샹델 스튜어트. 제리코의 그림 ‘메두사의 뗏목’ 습작이 걸린 벽 아래서 그녀 역시 피너츠의 캐릭터인 ‘루시’의 모습으로 죽어 있다. 죽음으로 노를 저어가는 ‘메두사의 뗏목’에 오른 마지막 탑승자는 먼저 희생된 두 사람의 친구인 소설가 엘리스테어 캠벨. 그는 연쇄살인범의 다음 표적이 자신임을 깨닫고 공포에 질린 끝에 스스로 심장이 멈춘다. 그들을 죽인 범인으로 지목된 줄리어스 황은 대학시절 피너츠 캐릭터 가면을 쓰고 이들 셋과 함께 은행강도 범행을 저질렀던 사실이 밝혀진다.

사건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형사 모린은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등장하는 예지자(豫知者)들처럼 이들 네 명과 얽힌 범죄의 현장을 본다. 모린이 그 장면을 볼 수 있었던 것은 각막의 기증자가 제리 코였기 때문이다. 자막 없는 영상을 퍼즐처럼 꿰어 맞추며 그녀는 “눈앞에 펼쳐진 세상은 거짓이며, 죽은 자의 각막으로 보는 환상이 오히려 진실할 수 있다”는 역설에 당혹해 한다. “어딘가에 또 다른 진실한 세계가 있으며, 그들 주변에서 움직이고 있는 모든 것은, 때때로 그녀의 눈에 비친 것을 제외하고 어느 것도 진실하지 않은, 단지 피상적인 현상에 불과할지도 몰랐다.”(2권 177쪽)

소설은 이처럼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조롱한다. 보이는 것은 진실을 담보하지 못하는 ‘현상’일 뿐이기 때문이다.

(김태훈기자 (블로그)scoop87.chosun.com)



 
기고자 : 김태훈 
본문자수 : 2004
기사유형 : 서평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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