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 이성복

밤하늘 하도 푸르러 선돌바위 앞에

앉아 밤새도록 빨래나 했으면 좋겠다

흰 옥양목 쳐대 빨고 나면 누런 삼베

헹구어 빨고, 가슴에 물 한번 끼얹고

하염없는 자유형으로 지하 고성소까지

왕복했으면 좋겠다 갔다 와도 또 가고

싶으면 다시 갔다 오지. 여태 살았지만

언제 살았다는 느낌 한번 들었던가

- <아, 입이 없는 것들> 문학과지성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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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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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삼백 아흔 네 편의 리뷰가 달린 책에 '흔적'을 남기는 이유는 단순하다. 삶의 현장을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배낭에 넣고 갈만한 책이라는 기억을 새겨두기 위한 것이다.

자기 의지를 갖고 태어난 사람이 없듯, '자아의 실현'이란 바로 삶에 주어진 의무가 아닌가. 인간의 숙명... 그 과정에 잠시 다리쉼이 생각날 때 곁에 두어야 할 책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한다.

연금술은 이미 인류의 역사상 천년 동안 존재했던 직업이다.

'7세기에 이르러서는 쇠나 구리같은 금속을 금으로 바꿔보려는 시도까지 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도를 연금술이라고 부르는데, 연금술은 전 유럽에 전파되어 17세기 뉴턴 같은 천재까지도 이에 가세했으나 끝내 금을 만들지는 못했다.'(윤석철, [경제,경영,인생 강좌 45편], 위즈덤하우스, 2005)

작가 후기를 보니 저자도 그러한 시도에 심취했던 적이 있다고 하니, 인간의 한계와 숙명 등을 되새겨봄직한 역사적 '직업'인 것이다. 신화 속에 나오는 시지프스나 이카루스와는 달리 인간 역사에 뚜렷하게 남은 집념의 기록. 소설에서의 연금술사는 중요한 순간에 쉽게 금을 만들어 내지만, 이 또한 하나의 역설이 아닐런지.

'읽고 나서 싫다고 하는 사람 없을 것 같네요' 라는 다른 분의 표현이 가장 적합할 듯도 하고... 충분히 그럴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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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록 말도록 소년한길 동화 21
안미란 지음, 김종도 그림 / 한길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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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화가의 조화가 잘 어울려진 작품이다. 본문 55쪽의 작은 분량이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그리 가볍지 않다. 아니, 아이들의 시각에서 이 책을 읽고 나면 부모나 선생님들을 보면서 혼자 '푸하하' 하고 웃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학교에 못 갈 만큼 아팠으면.' 생각하는 주인공(나)은 자기가 그린 그림에서 튀어나온 귀여운 괴물에 의해 환상 속에 빠져든다. 그 공간은 또한 학교이며, 이름이 '하도록말도록'인 괴물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하도록말도록 괴물은 쉴새없이 잔소리를 늘어놓았어요. 깨끗이 하도록! 더럽히지 말도록! 입 예쁘게 하도록! 침 흘리지 말도록! 공부 하도록! 뛰지 말도록!'(19쪽)

여기서 주인공 '나'의 생각은 참으로 기발하다.

'괴물은 그 말밖에 할 줄 모르나 봐요. 얼마나 선생 노릇을 하고 싶으면 저럴까요. 난 조금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하도록말도록이 하자는 대로 해 주기로 마음먹었어요.'(20쪽)

괴물은 햄버거 가게로 향한다. 그 가게에 붙은 푯말 '말 잘 듣는 어린이를 가져오면 상품 증정', '100점 시험지가 있습니까? 엄청 큰 콜라를 서비스로 드립니다.' 하도록말도록 괴물들은 어른들의 기준, 100점과 말 잘 듣는 태도를 기준으로 교환가치를 발생시킨다. 햄버거와 콜라로 교환할 수 있는...

'난 말 잘 듣는 애 아니야!'(43쪽)

그러나 주인공의 이 말은 반항이 아니다. 단지 규격화된 어른들의 기준이 만들어 낸 '괴물'에 대한 공세일 뿐이다. 꿈에서 깨어난 주인공은 엄마의 배웅 속에 씩씩하게 학교로 향한다. 밝고 명랑한 모습으로... 왜? 이제 더 이상 머리가 아프지 않으니까. 한 뼘쯤 자란 모습으로..

(초등 1학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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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해줘
기욤 뮈소 지음, 윤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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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모처럼 지인들을 만나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다 이 책이 궁금하다는(물론 출판사의 홍보,광고 등에서 자극받은 것이겠지만) 말이 오갔다. 마침 주말이라 '그럼 내가 주말에 먼저 읽어보고 소감을 말하겠다'고 하고, 궁금증과 의무감으로 습도 높은 주말을 이 책과 함께 보냈다. 그리고는 몇 가지 평가와 함께 카페에 남긴 글은, '나 좀 구해줘'였다. 프랑스에서 장기 베스트셀러라고 하는데 나는 이해못할 것 같으니 누가 읽어보고 내 혼란스러움을 구해달라는 것이었다.

소개에 따르면 34살의 작가 기욤 뮈소는 두 번째 소설 <그 후에(Et  Apres)>로도 1백만 부가 팔려나갔으며, 세계 20여 개 국에서 출간되어 화제를 불러 모았다고 한다. 요즘 전세계적으로 인기몰이를 한다는 팩션과 판타지 장르에 해당하는 책이 아니면서도...

과연 무얼까?

소설에서의 '우연'은 언제, 누구에게나 '현실로 닥칠 가능성이 있는'  현실가능성을 전제로 두고 있다. 사실과 허구의 절묘한 '팩션적' 결합도 그 현실가능성 때문에 관심을 갖게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의 우연적 장치는 두 발을 땅에 딛고 있지 못한 것 같다.

폭설 속에서 자칫 사고를 낼 뻔한, 반대로는 당할 뻔한 두 주인공의 우연한 만남은 그날부터 수일간의 '짧고도 강렬한' 인연을 맺게 된다. 그리고 기약을 미처 맺지 못하고 헤어지고, 헤어진 직후의 후회로 인해 이륙 직전의 비행기에서 내렸는데, 그 비행기는 폭파되고... 그 행위로 인해 테러범으로 오인되나 오해는 곧 풀리고...

그리고는 '전설의 고향'에서 자주 보았던 캐릭터, '저승사자'의 등장.

'비행기사고로 죽었어야 했던 사람이 죽지 못했으므로 다시 데려가려고 왔다'는 인물(?)의 등장. 그리고는 마약에 빠진 사자의 딸을 구해내고, 결국의 사자의 옛애인이 천상의 명령을 어기고, 주인공을 대신하여 산화(?)한다는 기본구성.

이 책에서 '프랑스적'인 요소를 기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듯 하다. 아주 짧은 대목(여주인공의 어머니가 공항에 마중나왔다가 허탕친 장면)을 제외하면 시종 뉴욕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주인공들의 대화에서도 '이국적'이라는 호감을 제외하면 미국과 프랑스의 문화적 차이를 확인할 만한 대목도 없다. 굳이 따져본다면 소설 구성에서 마약밀매단 두목이 저승사자의 딸을 뉴욕 워싱턴광장에 수백 명을 몰살시킬 수 있는 폭탄장치를 두르게 하고 내보낸 장면을 통해 9.11을 환기시키는 정도라고 할까. 물론 전개만 있을뿐 그러한 의미가 내비쳐지지는 않아서 '미국식 문명'에 대한 비판으로 보기에도 힘들다.

현대 프랑스인들의 관심과 애정이 담겼다는 평가를 존중하더라도, 여기서 공감을 얻어내지 못한 것은 내 자신의 한계가 아닐까. 해서 지인의 평가를 기다리며 소포를 준비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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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출판인의 일본나들이 - 여정일기 범우 윤형두 문집 7
윤형두 지음 / 범우사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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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일까. 또 어떠한 자세와 태도로 일하고 있을까 하는 궁금해하다 읽어본 책이다. 올해로 40년 출판경력을 갖고 있는 한 노출판인의 일본교류기이다.

'책'의 물성과 관련된 정보 하나.

'아직은 일본은 책의 나라인 것 같다. 일본의 현대출판은 모토키 쇼죠 本木昌造라는 사람이 1849년에 오란다(현 네델란드) 상선이 스탠호프 인쇄기 및 활자 등을 싣고 온 것을 알고 동료 통역사들과 공동으로 이 기자재를 사들여 활판인쇄 연구를 시작한 것이 그 시초가 되었다. 그후 150년 동안에 일본은 세계최상의 출판대국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1883년에 일본에서 인쇄기와 활자를 들여와 박문국에서 한성순보를 창간하고 일반 출판물은 1884년 광인사에서 <충효경 집주합벽>을 간행하였다. 현대출판은 일본보다 약 30년 늦게 시작한 셈이다.'(169쪽)

일본의 출판정황을 알기 위해, 또는 공적인 교류 내지는 저자와의 협의 등과 관련해서 일본교류가 잦았던 저자의 80년대부터 지금까지의 교류기이다. 전반적으로는 현장에서의 메모를 중심으로 한 일기형식에 충실한 책이다.(<...중국 나들이>도 있다고 한다) '출판인'의 책인데, 288쪽을 비롯하여 교정이 미흡한 부분이 있어 아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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