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 이성복
밤하늘 하도 푸르러 선돌바위 앞에
앉아 밤새도록 빨래나 했으면 좋겠다
흰 옥양목 쳐대 빨고 나면 누런 삼베
헹구어 빨고, 가슴에 물 한번 끼얹고
하염없는 자유형으로 지하 고성소까지
왕복했으면 좋겠다 갔다 와도 또 가고
싶으면 다시 갔다 오지. 여태 살았지만
언제 살았다는 느낌 한번 들었던가
- <아, 입이 없는 것들> 문학과지성사,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