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슬옹 책이다. 다른 것보다 읽기 편하다.

 

 

 

 

 

 

 

 

 

 

 

 박영준, 시정곤, 정주리, 최경봉 등이 따로 또 같이 쓴 책들.

 

 

 

 

 

 

 

 

 

 

 

 

 

 

 

 

 

 

 

 

 

 

 

 

 

 

 

 

 

 

 

 

 

 

 

 

 

 

 

 

 

 

 

 

 

 

 

윤동주를 좋아했던 일본 여자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의 한글 사랑. 일본인의 시각을 볼 수 있어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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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바라기 노리코의 한글로의 여행
이바라기 노리코 지음, 박선영 옮김 / 뜨인돌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일본의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 그녀는 한국을 사랑해서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의 시를 번역했다. 그의 책 한글로의 여행을 통해, 일본어와 한국어, 일본 문화와 한국 문화에 대해 섬세한 비교를 읽을 수 있다. 또한 일본인이 나쁜 게 아니라 조선을 침략했던 일본 위정자가 나빴을 뿐이라는 묘한 친일(?) 감정을 느끼게 해준다. 모국어(일본어)뿐만 아니라 이웃나라의 언어(한국어)를 사랑하는 일본시인을 만나는 건 흔치 않은 기쁨이다.

 

* 1917년생 윤동주가 1926년생 이바라기 노리코와 사귀었다면 혹시 변절하지 않았을까? 하는 불온한 상상을 해본다ㅋㅋ

 

<밑줄>

한국의 여류 시인 홍윤숙 씨가 일본에 와서 만나고 싶다는 연락을 해와 긴자에서 뵌 적이 있다. 나와 거의 같은 세대의 분으로 일본어 실력이 뛰어나고 내 시도 많이 읽으셨는데, 내 쪽에서는 홍씨의 시를 전혀 몰랐다.

일본어를 정말 잘하시네요!”

그 유창함에 감탄하자, 그녀가 이렇게 대꾸했다.

학창시절에 줄곧 일본어 교육을 받았으니까요.”

아차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내 불찰이 부끄러웠다.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화했던 36년간, 언어를 말살하고 일본어 교육을 강제한 사실을 머리로는 잘 알고 있었지만 지금 눈 앞에 있는 청초하고 아름다운 한국 여인과 직접 연결 짓지 못한 것은, 내가 아직 그 아픔까지 함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홍씨 역시 1945년 이후, 자신들의 모국어를 다시 배운 세대이다. 그녀를 보면서 새삼 일본인으로서의 죄책감이 느껴졌다. 이번에는 일본사람들이 나서서 식은땀, 진땀 뚝뚝 흘리며 일심불란하게 한글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되는 차례라고 통감했던 것이다. 언젠가 반드시 한글을 배우자, 홍씨와의 이런 경험도 한국어를 배우게 된 동기 중 하나이다.

 

관동대지진 당시, 한국어의 이런 특징을 역이용, 수상한 자를 불러 세워 “55전이라고 말해 봐하고 시키고선, “코쥬 고젠 [kozyuu-gozen]”이라고 대답한 자를 붙잡아 학살한 일은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불쾌한 기억이다.

 

關係라는 한자는 관계라고 읽는다. 일본에서도 옛날에는 관케이라고 발음했던 모양으로, 미키 다케오 전 수상 같은 사람은 뻔질나게 연발했다. 하지만 지금은 일반적으로 칸케이라고 발음하는 등 음의 구조가 점점 단순해지고 있다.

 

원조인 중국에서도 한자의 극단적인 약자화가 진행되고 있는 터라 이러다가는 자국의 고전조차 제대로 읽지 못하게 될 젊은이들이 많아지는 건 아닐까, 깊이 우려될 정도이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진 것일까. 중국과 조선 모두 과거제도에 오랫동안 시달려 한자가 덜덜 떨릴 정도로 싫어져 버린 것일까? 근대화에 뒤쳐진 원인이 번거로운 한자 공부 때문이라고 오해한 것일까. 일본은 한자를 받아들였으되, 과거제도는 채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거부 반응에서 한결 자유로운 것일까?

 

가혹한 역사 속에서 오늘날까지 자신들의 언어를 지켜 냈다는 것은 누가 뭐라 해도 훌륭한 일이다. 내세워도 될 일임이 틀림없다. 만주족을 보라. 만주족은 이제 없는 것과 마찬가지지만, 그것은 만주어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청을 세운 만주족은 한문화, 한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동화되었고, 만주어도 완전히 그 속으로 흡수되면서 결국 사라지고 말았다. 전후 얼마 되지 않아 일본에서도 일본어를 버리고 프랑스어를 쓰자거나 한자와 가나를 버리고 로마자를 쓰자라고 주장한 사람들이 있었다. 섬나라였기 때문에 그리 고생을 하지 않고 언어를 순도를 유지해 올 수 있었지만, 만약 이웃 나라처럼 기원전부터 대국에게 직접 대습격을 받는 입장이었다면 과연 일본어는 오늘날까지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고생하지 않았던 만큼 모국어를 생각하는 마음은 일본이 이웃 나라에 비해 훨씬 덜할지도 모른다...... 이 지구 어딘가에 모국어의 날을 만들어 기념하는 나라가 또 어디 있을까?

 

사실 내가 윤동주의 시를 읽기 시작하게 된 계기는 그의 사진에 있다. 이렇게 맑고 단아한 얼굴의 청년이 어떤 시를 썼을까에 대한 흥미, 고백하자면 조금은 불순한 동기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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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삐딴 리 오발탄 탈향 판문점 창비 20세기 한국소설 17
전광용.이범선.이호철 지음, 최원식 외 엮음 / 창비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일제침략기엔 친일, 소련군 점령기엔 친소, 미군 점령기엔 친미로 변신을 거듭하는 의사 이인국 박사. 전광용 소설 꺼삐딴 리의 주인공이다. 그는 항일투사나 가난한 사람의 치료를 거부하고 오로지 부자와 권력자에게 아부하는 처세로 성공가도를 달린다.

 

평생을 가난한 사람, 힘없는 사람을 위해 살았던 백남기 농민은 사악한 권력에 의해 살해당한다. 그런데 서울대 병원의 백모 의사는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맞아 죽은 게 아니라 병으로 죽은 거라며, 외인사가 아니라 병사라며 사악한 권력을 옹호한다.

 

1962년 발표된 소설 꺼삐딴 리의 주인공 이인국 박사가 2016년에 환생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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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보이는 교실 창비시선 65
정일근 지음 / 창비 / 1987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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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는 교수 정일근이 한때 중학교 교사로 있던 시절의 작품 [바다가 보이는 교실] 연작시가 실려 있다.

 

바다가 보이는 교실 9 첫눈

 

잠시 교과서를 덮어라

첫눈이 오는구나

은유법도 문장성분도 잠시 덮어두고

저 넉넉한 평등의 나라고 가자

오늘은 첫눈 오는 날

산과 들과 바다 위로 펼쳐지는

끝없는 백색의 화해와 평등이

내가 너희들에게 준 매운 손찌검을

너희들 가슴에 칼금을 그은 편애를

스스로 뉘우치게 하는구나

잠시 교과서를 덮어라

눈결의 첫눈을 함께 맞으며

한 칠판 가득 적어놓은

법칙과 법칙으로 이어지는

죽은 모국어의 흰뼈를 지우며

우리들 사이의 먼 거리를 하얗게 지우자

흰 눈발 위로 싱싱히 살아오는 모국어로

나는 너희들의 이름을

너희들는 나의 이름을

사랑과 용서로 힘차게 불러 껴안으며

한몸이 되자

한몸이 되어 달려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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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풍금
하근찬 지음 / 바다출판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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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총각 선생님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 이미자의 노래로 리뷰를 시작하려고 했는데 그 제목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단편 수난이대로 등단한 소설가 하근찬의 단편 여제자내 마음의 풍금이란 영화로 만들기 위해 같은 제목으로 개작한 장편소설이다. 하근찬이 소설을 쓰고, 이영재와 시나리오와 영화를 만들었다. 단편소설, 장편소설, 시나리오, 영화로 변화하는 과정이 흥미롭다.

    

이라고 무미건조한 독서기록을 남기려했다. 그런데....

혹시 남들은 어떻게 썼나 보다가 딱 내가 쓰고 싶었던 글이 보인다. 심상치 않은 필력이다. 타고 들어가보니 역시나 대단한 사람이다. 그런데 최근글들이 예사롭지 않다. 알고 보니...

 

물만두란 필명으로 알라딘에서 리뷰를 써온 홍윤이란 분인데. 고인이 되셨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였는데 참 마음이 아프다... 늦게 나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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