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보이는 교실 창비시선 65
정일근 지음 / 창비 / 198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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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는 교수 정일근이 한때 중학교 교사로 있던 시절의 작품 [바다가 보이는 교실] 연작시가 실려 있다.

 

바다가 보이는 교실 9 첫눈

 

잠시 교과서를 덮어라

첫눈이 오는구나

은유법도 문장성분도 잠시 덮어두고

저 넉넉한 평등의 나라고 가자

오늘은 첫눈 오는 날

산과 들과 바다 위로 펼쳐지는

끝없는 백색의 화해와 평등이

내가 너희들에게 준 매운 손찌검을

너희들 가슴에 칼금을 그은 편애를

스스로 뉘우치게 하는구나

잠시 교과서를 덮어라

눈결의 첫눈을 함께 맞으며

한 칠판 가득 적어놓은

법칙과 법칙으로 이어지는

죽은 모국어의 흰뼈를 지우며

우리들 사이의 먼 거리를 하얗게 지우자

흰 눈발 위로 싱싱히 살아오는 모국어로

나는 너희들의 이름을

너희들는 나의 이름을

사랑과 용서로 힘차게 불러 껴안으며

한몸이 되자

한몸이 되어 달려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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