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공간 디자인 산책 - 우리가 몰랐던 교육 공간의 변화와 혁신을 디자인하다
김지호 지음 / 슬로디미디어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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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 씌우다, 틀에 박히다란 표현이 있다. 여기서 프레임(frame)은 뼈대, 틀은 격식이나 형식 등을 의미한다. 키가 더 이상 크지 않는다는 말은 뼈가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는 말이다. 즉 뼈가 살과 피를 규정한다는 얘기니, 프레임을 씌우면 그 프레임 밖으론 더 이상 클 수 없다는 말이다. 틀이란 격식, 형식에 박히면 그 이상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프레임, 틀이란 공간은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우리는 초중고 12년을 학교라는 공간에서 지낸다. 그런데 십년이 넘는 동안 우리가 묶여 있는 공간은 어떤가? 어디를 가든 똑같다. 그렇게 똑같은 이유는?

 

알고 보니, 일제강점기 조선총복부가 일본 군대의 병영 건축을 모델로 만든 보통학교교사표준설계도 때문이었다. 즉 통제를 위한 건축물이었다.

 

그리고 왜 그렇게 좁은지, 이유를 알고 보니 간접적으로 학원법의 영향인 듯 하다. 우리나라의 학원 공간 규제는 학원법에 근거하는데 학생 1인당 최소 면적 기준은 학생 1인당 최소 1라고 한다. OECD 국가들의 평균은 약 2.5~3수준인데 반해서 말이다.

 

통제를 위해 최소한의 공간으로 만든 학교에서 학생들의 인권은, 복지는, 감성은, 생각은 더 이상 자랄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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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건축가 알바 알토Alvar Aalto는 학교를 아이들의 첫 번째 집이라고 했고, 핀란드의 교육학자 키모 투오미넨Kimmo Tuominen학교 건물 자체가 교사라고 했다.

 

푸코는 학교가 감옥이나 병원처럼 사람들의 행동을 통제하는 기관이 되었다고 했다. 시간표에 맞춰 움직이기, 종소리에 반응하기, 줄 맞춘 책상에 앉기, 시험으로 평가하기와 같은 통제적 방식이 이루어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교육 공간에 파놉티콘Panopticon’ 개념이 적용된 것이다.

 

1920년대 조선총독부가 발표한 보통학교 교사(校舍) 표준설계도는 일본 군대의 병영 건축을 모델로 했다. 이 표준설계도에는 학생들을 쉽게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는 편복도식 a single loaded corridor 구조가 도입해 있다.

 

교육 공간의 실질적인 변화는 1969, 당시 문교부가 표준설계도를 도입하면서부터다. 표준설계도는 전국 어디서나 동일한 형태의 학교 건물을 빠르게 지을 수 있게 했고, 효율성과 경제성을 중시한 설계였기에 결과적으로 학교 공간의 획일화를 가져왔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4층 높이의 콘크리트 건물, 녹색 칠판, 교단을 향해 일렬로 놓인 책상이 이 시기의 산물이다.

 

1995년은 김영삼 정부의 추진으로 5.31 교육개혁이 이루어진 중요한 때다. 교육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강조한 열린교육이라는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이 도입되었고, 교육 공간도 이에 맞춰 변화해야 한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구체적으로 기존의 폐쇄적이고 경직된 교실 구조에서 탈피해 유연하고 개방된 열린 교실(벽을 허물거나 교실 간 이동이 가능하게 설계된 교실)’ 형태가 제안되었다.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시범 운영된 교과 교실제는 교육 공간에 다양성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었다.

 

2010년대에 들어서는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고 학생 중심 교육이라는 패러다임이 생기며 교육 공간의 혁신이 일기 시작했다. 특히 2014년 시작된 학교 공간 혁신 사업은 기존 학교 공간을 학생 중심으로 재해석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이 사업의 핵심은 학생과 교사가 함께 공간을 디자인하는 참여 설계에 있었다.

 

2021년에 시작된 그린스마트 미래학교사업은 우리나라 교육 공간의 대대적인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2025년까지 약 2,835개 학교를 디지털, 친환경, 공간 혁신의 관점에서 재구성하는 이 사업은 18.5조 원이라는 대규모 예산이 투입될 예정이다.

 

문제는 미래학교 구상에 대한 합의가 충분치 않다는 점이다. 학생들에게 태블릿 PC를 나눠주고, 교과서를 전자책으로 바꾸고, 분필 가루 날리는 칠판 대신 전자칠판을 쓴다고 해서 교육의 질이 높아질까? 첨단 시설이 완비된 교실에서 첨단 기자재를 사용해 스마트한 수업을 한다 해도 아이들이 성장하지 못하면 공연물일 뿐이다. 학생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건 창밖을 멍하니 바라볼 수 있는 시간, 친구들과 함께 무언가에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다. , 공간의 혁신도 필요하지만 시급한 건 아이들에게 시간을 돌려주는 것이다. 그리고 교육의 질은 시설이 아니라 사람에게 달려 있다.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공간은 첨단 시설을 갖춘 공간이 아닌, 마음 맞는 친구가 있는 공간 그리고 좋은 교사가 있는 공간이다. 그러면 아이들은 힘든 학교생활도 견뎌내고, 스스로 학교에 오고 싶어 할 것이다. 미래의 학교는 상호작용이 더 활발히 이루어지는 곳일 것으로 생각한다.

 

필자가 핀란드와 덴마크, 스웨덴의 학교를 방문했을 때 가장 놀라웠던 점은 학교의 내부 공간과 디자인 배치였다. 우리나라의 학교처럼 긴 복도를 중심으로 교실이 일렬로 배치된 형태가 아니라, 마치 아이들의 2의 집처럼 설계된 공간들이 눈에 띄었다. 복도의 구석구석에는 아이들이 몇 명씩 모여 대화하거나 책을 읽을 수 있는 작은 소파와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교실 내부도 일자형 책상 배열이 아닌 팀별 활동이 가능한 원형이나 모둠형 배치가 대부분이었다. 많은 북유럽 학교가 가정과 사회가 융합되는 교육 환경을 적극적으로 실천한다. 교육을 민주주의, 행복, 복지의 상징으로, 그리고 학교를 경쟁하는 곳이 아닌 협동을 배우는 장으로 생각하여 좋은 시민을 길러내는 데 목적을 두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유럽 국가들은 학교의 건축과 디자인에 관심과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핀란드의 한 교장은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학교를 지을 때 아이들에게 가장 먼저 물어봅니다. ‘너희가 가장 있고 싶은 공간은 어떤 곳이니?’라고 말이죠. 그리고 아이들의 대답은 건축가들에게 직접 전달되고, 실제 설계에 반영됩니다. 학교의 주인은 아이들이니까요

 

학교 건물이 가르친다라는 이탈리아 건축가 조르조 폰티Giorgio Ponti의 말처럼 잘 디자인된 건축은 그 자체가 교육이 된다.

 

OECD 국가 중 환기 시스템 설치율이 가장 낮은 나라 중 하나가 바로 우리나라다. 유럽이나 북미 국가 학교 90% 이상이 기계식 환기 시스템을 갖춘 반면, 우리나라의 기계식 환기 시스템은 20%에 머문다. 우리 사회가 아이들의 건강과 학습권에 얼마나 무관심한지를 보여주는 지표일 것이다.

 

교실 내 주요 오염물질은 이산화탄소이다. 일반적인 실외 이산화탄소 농도가 약 400ppm인데 반해, 교실은 1,000ppm을 가뿐히 넘어서고, 환기가 부족한 교실은 2,000~3,000ppm까지도 상승한다. 이런 교실에서 학생들은 어떤 모습일까? 우선 이산화탄소 농도가 1,000ppm을 넘어서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2,000ppm이 넘으면 두통, 졸음, 인지 능력이 저하된다. 하버드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이산화탄소 농도가 1,400ppm일 때 950ppm 때보다 인지 기능이 약 50% 저하되었고, 2,500ppm일 때는 무려 70%까지 저하되었다. 이는 아이들에게 졸지 말라고, 수업에 집중하라고 하면서 집중하기 어려운 환경을 제공하는 것과 같다. 아이들이 교실에서 졸음이나 집중력 저하와 싸우고 있다면 개인의 의지력 문제라고 하기보다 환경부터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학습 효율이 가장 좋은 교실 온도는 겨울철 20~23, 여름철 23~26도라고 한다. 그리고 교실 온도가 24도에서 30도로 상승하면 수학 성적이 최대 13% 하락한다는 결과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학교는 적절한 냉난방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게 현실이다. 냉난방기가 설치해 있어도 중앙난방 시스템이어서 학생이 직접 조절할 수 없다.

 

핀란드는 모든 교실에 기계식 환기 시스템을 의무적으로 설치하고, 이산화탄소 농도를 800ppm 이하로 유지하도록 법적으로 규제하고 있다.

 

색온도에 따른 조명 효과를 살펴보면, 석양과 비슷한 주황빛의 따뜻한 빛(2,700~3,000K)은 편안함과 안정감을 주어 휴식과 창의적 활동에 적합하고, 자연스러운 백색광인 중간 온도의 빛(3,500~4,500K)은 일반적인 수업 활동에 적합하며, 푸른빛을 띠는 백색광쿨화이트인 차가운 빛(5,000~6,500K)은 집중력과 주의력이 필요한 활동에 적합하다. 그래서 교육 공간의 조명을 계획할 때, 교실 내부는 차가운 빛을 사용하고, 복도 등의 공용 공간에는 중간 빛, 그 외 특활실이나 화장실, 도서관 등에는 따뜻한 빛을 사용하고는 한다.

 

한국아동안전연구소는 교육 시설에서 발생하는 사고 중 문 관련 사고가 약 15%를 차지한다고 보고했다. 이 중 대부분이 경첩 부분에 손이 끼이는 사고였다. 이 통계는 아이들을 위한 문 디자인에서 안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최근 개발된 교육 시설용 문은 경첩 부분에 특수 고무 제품을 사용해 손가락이 끼이면 자동으로 문틈이 벌어지게 하거나, 문이 너무 빨리 닫히지 않게 하는 속도 조절 장치가 내장되어 있다.

 

그간 옥상은 학교 공간에서 화장실 다음으로 부정적으로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일탈의 장소, 위험한 장소로 여기거나 관리가 어렵다고 여겨 옥상 출입을 금지하는 학교도 많다. 한국도예고등학교도 원래는 옥상을 개방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옥상 정원을 만든 후 학교는 다양한 방면에서 만족감을 드러냈다. 우선 옥상 개방 후 아무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으며, 학생들이 책임감을 느끼고 옥상 정원을 돌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옥상은 학부모 모임과 교사들의 회의 장소로 사용되며 소통의 장소로 활용되었다. 교장은 아이들은 옥상에서 자유롭게 바비큐 파티를 하고 대화도 나눕니다. 평상에 눕기도 하고 차를 마시기도 하죠. 외부에서 손님이 오면 제일 먼저 모시고 가는 장소이기도 해요. 외부인들이 보면 얼마나 부러워하는지 우리 학교의 자랑거리예요라고 말했다. 일상을 축제로 만드는 공간이 있다는 건 정원이 선사하는 또 하나의 기쁨일 것이다.

 

알트스쿨의 실패는 우리의 미래 교육이 갈 방향에 대해 중요한 교훈을 남긴다. 우선, 미래 교육에도 교육학Pedagogy’ 중심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아무리 첨단 기술로 무장한다 해도 건전한 교육 이론에 바탕을 두지 않으면 그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또한, 교사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미래 교육에서 교사는 기술의 보조인이 아니라 여전히 학습 가이드이자 코치로서 존재해야 한다. 교사의 지도, 영감, 관계 형성 능력은 어떤 기술로도 대체할 수 없다.

 

공항고등학교는 마을결합형 학교로서 지역 사회와의 연계성을 높이면서, 학교의 면학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균형을 추구했다. 사실 공공기관 발주의 설계 공모 지침은 기존 지침을 짜깁기하거나 두루뭉술하게 내려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공항고등학교의 경우에는 지침이 간결하지만 명확했다. 학교 공간을 마을결합형 시설과 학습 시설을 구분하고 몰 타입의 공간으로 연결할 수 있었던 것도 명확한 지침 덕분일 것이다. 구체적으로, 공항고등학교의 출입문은 시간대별로 개폐되며 도서관, 체육관, 다목적 홀 등은 마을결합형 시설에 포함되어 방과 후나 주말에는 지역민들에게 개방된다. 특히 체육관은 지역민을 위한 공공체육관의 역할을 겸하고 있어, 학교와 지역 사회의 경계를 허무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옥상 정원과 생태 학습장 또한 지역민에게 개방되어 도심 속 자연을 경험할 수 있게 하고, 소중한 휴식 공간을 제공한다. 이는 단순한 시설 공유를 넘어 학교와 지역 사회가 함께 성장하는 공유된 경험의 장을 만든다.

 

우리나라의 학원 공간 규제는 학원법에 근거한다. 핵심은 학생 1인당 최소 면적 기준이다. 현행 규정은 보통교과 학원은 학생 1인당 최소 1, 예체능 학원은 활동 특성에 따라 1.5~3의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언뜻 보면 합리적인 기준 같다. 그러나 이 규제는 면적에 관한 기준이 지나치게 낮고, 교육적 효과나 학습 경험의 질은 기대하기 어렵다. 1는 어른 한 명이 양팔을 벌리면 벽에 거의 닿는 수준이며, 강남의 한 입시학원 원장은 신규 학원 인허가 미팅에서 담당 공무원이 가장 먼저 하는 말이 이 평수면 교실당 학생 수가 몇 명이에요?’예요. 창의적 학습 환경이나 학생 복지에는 관심 없고, 오직 수용 인원만 따져요라고 토로한 바 있다.

 

핀란드의 교육 공간 규제는 마치 다른 행성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헬싱키 교외의 한 초등학교에 방문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만난 교장은 핀란드에서는 모든 교실이 자연광을 직접 받아야 하고, 학생들이 숲이나 녹지를 볼 수 있도록 창문이 설계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학생 1인당 최소 3.5의 공간을 확보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첫째, 최소 면적 기준의 현실화가 필요하다. 현재 우리나라의 1인당 1면적이라는 기준은 국제 표준에 미치지 못한다. OECD 국가들의 평균은 약 2.5~3수준임을 고려하여, 우리나라도 최소 2이상으로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 교육 환경의 질을 결정짓는 요소들에 대한 기준 도입이 필요하다. ‘모든 주요 공간에 창문을 통한 자연관 접근성 확보하기’, ‘CO농도, 유해물질, 환기 횟수 등에 대한 기준 설정해 공기 질 확보하기’, ‘적정 소음 데시벨, 반향 제어, 음성 명료도 등에 관한 기준 설정하기’, ‘최소 두 가지 이상의 학습 활동을 지원하는 공간 구성하기’, ‘전체 면적을 10~15%를 비교과 활동 및 휴식 공간으로 구성하기와 같은 규제를 적용해야 할 것이다. 셋째, 덴마크의 사례와 같이 달성해야 할 교육적 목표를 제시하고, 그 실현 방법을 교육자와 설계자에게 맡기는 접근법을 선택한다. 결과 중심 규제로 전환하는 것인데, ‘모든 학생이 편안하게 협업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할 것’, ‘디지털 기기와 아날로그 자료를 함께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을 구성할 것’, ‘학생들의 심리적 안정감과 소속감을 촉진하는 요소를 포함할 것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넷째, 일률적인 규제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우수한 환경을 조성하는 기관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도 방법이다. 교육 환경 인증제도를 도입해 일정 기준 이상의 공간 품질을 갖춘 기관에 인증을 부여하거나, 교육 환경 개선에 투자하는 기관에 세액공제 등의 혜택을 제공하거나, 우수 교육 환경 조성을 위한 임대료 부담 완화 지원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다섯째, 규제 준수 여부를 관료적으로 점검하기보다 실사용자(학생, 교사)의 평가를 반영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교육 환경 만족도 조사 의무화’, ‘학생 참여 디자인 리뷰 프로세스 도입’, ‘사용 후 평가 실시 및 결과 공개하는 방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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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학교를 만드는 공간 혁신 - 학교 공간 개선 솔루션
서예식 외 지음 / 해냄에듀(단행본)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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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공간의 재구성을 교육청이나 교장 마음대로 하지 않고, 구성원들의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친 실제 사례가 포함된 점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아쉬운 건 그런 과정에서 안전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듯하다. 예를 들어, 교문을 리모델링하면서 아치형으로 만들었는데 그럴 경우 소방차 진입에 어려움이 있다. 그리고 그냥 보기에도 큰 바람에 쓰러질 것 같은 위태한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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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학업 성취도와 건축 연령 및 건물 상태와의 관계를 연구한 자료를 보면, 건물이 최악의 상태인 학교와 가장 좋은 상태의 학교 학생 간의 학업 성적은 4~9% 차이가 나고, 가장 오래된 학교와 가장 최근에 지어진 학교 학생 간의 학업 성적은 5~9%의 차이가 난다.

(아마도 여기 자료? https://nap.nationalacademies.org/read/11574/chapter/8)

 

낡은 교문을 새롭게 시공할 때에는 소방법이 정하는 높이를 확보해야 한다. 어느 학교의 경우 교문 제작 당시 4.3m 높이의 구조물로 시공을 하였으나 소방 점검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대형 소방차의 진입에 문제가 없는 높이 4.5m를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을 받아 구조물을 재시공하는 일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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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카인드 (리커버 특별판) - 감춰진 인간 본성에서 찾은 희망의 연대기
뤼트허르 브레흐만 지음, 조현욱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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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선설과 성악설을 두고 논쟁을 하면 예전에 속으론 성악설을 지지하지만 겉으론 성선설을 주장한다. 즉 도덕적으로 접근해서 성선설을 주장해야 남부끄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표리부동한 위선적 태도야말로 비도덕적인 행동이니 오히려 남부끄러운 일이다.

요즘엔 성악설을 주장하는 쪽이 많다. 당당하게 자신의 속마음을 얘기하니 적어도 위선적이지는 않다. 즉 오히려 도덕적이다. 그러나 과학적이지는 않다.

본성이 선한가 악한가의 문제는 예전의 도덕적 윤리적 철학적 논쟁의 장을 벗어나 과학의 영역이 되었다. 과학적으로 보았을 때 인간의 본성은 선할까 악할까? 저자는 어마어마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과학적인 분석을 해내고 있다. 기존에 우리가 알았던 상식들을 모두다 깨버리고 있다. 예를 들어 성악설의 대표적인 근거였던, ‘파리대왕’, ‘이스터섬’, ‘스탠퍼드 교도소’, ‘스탠리 밀그림의 전기 실험’, ‘캐서린 제노비스의 죽음등등이 모두 잘못 알려진 이야기라는 것이다.

인간은 도덕적으로 선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선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것은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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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미디어의 광란은 일상에 대한 공격 그 자체이다. 왜냐하면 솔직히 말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누리는 삶은 예측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그러면 좋기는 하지만 지루하다. 따라서 우리는 지루한 삶을 살고 있는 훌륭한 이웃을 더 좋아하지만, ‘지루함은 당신을 주목하게 만들 수 없다. ‘좋다로는 광고를 팔 수 없다. 그래서 실리콘밸리는 어느 스위스 작가의 재담처럼 뉴스가 마음에 미치는 영향은 설탕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과 같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면서도 우리에게 점점 더 선정적인 클릭베이트를 계속 제공하는 것이다.

 

인간 본성이 이기적이라는 교리는 서구에서 종교적으로 신성시되는 전통이다. 위대한 사상가들의 목록이 이를 뒷받침한다. 루키디데스, 아우구스티누스, 마키아벨리, 홉스, 루터, 칼뱅, 버크, 벤담, 니체, 프로이트,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과 같은 위대한 사상가들은 각각 문명의 껍데기 이론에 대한 그들만의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침팬지와 오랑우탄은 모든 인지 능력 검사에서 인간의 두 살 아기와 동등한 점수를 받았다. 그러나 학습에 관해서는 유아들이 매우 수월하게 이긴다. 대부분의 유아는 100퍼센트, 대부분의 유인원은 0퍼센트의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은 초사회적 학습 기계로, 우리는 배우고 유대감을 형성하며 놀기 위해 태어났다.

그렇다면 인간만이 얼굴을 붉히는 능력을 갖춘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있다. 어쨌든 얼굴을 붉히는 것은 전형적인 사회적 형태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관심을 갖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는 신뢰를 증진시키고 협동을 가능케 한다.

우리가 서로의 눈을 바라볼 때도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인간에게는 또 다른 특이한 특징이 있기 때문인데 우리는 눈에 흰자위를 가지고 있다. 이런 특징 때문에 우리는 다른 사람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좀 더 사회적인 동물로 진화하면서 우리는 내면의 생각과 감정을 더 많이 드러내기 시작했다.

네안데르탈인은 천재와 비슷하다. 개개인의 뇌는 더 컸지만 집단으로서는 똑똑하지 못했다.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는 개별 호모 사피엔스보다 더 똑똑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피엔스는 더 큰 집단을 이루어 모여 살았고 한 집단에서 다른 집단으로 더 자주 이주했으며, 아마 모방도 더 잘했을지도 모른다. 네안네르탈인이 초고속 컴퓨터였다면 우리는 구식 PC이지만 와이파이를 이용할 수 있던 셈이다. 우리는 더 느렸지만 더 잘 연결되었다.

 

우울한 책인 이기적 유전자? 이것은 뉴욕이라는 잡지에서 자기중심시대로 칭송되던 1970년대 사고방식과 맞아떨어진다. 1990년 후반 리처드 도킨스의 열렬한 팬이 도킨스의 아이디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실천에 옮기기로 결정했다. 이 책은 CEO 제프리 스킬링에게 거대 에너지 기업인 엔론 전체를 탐욕의 메커니즘으로 운영하도록 영감을 주었다.

스킬링은 엔론의 업무 평가를 위해 랭크 앤드 양크(Rank and Yank 등급 매겨 쫓아내기)’를 도입했다. 1등급을 받은 사람은 최고 실적을 달성했으므로 두둑한 보너스를 받았다. 반면 최하위인 5등급을 받은 사람은 시베리아로 유배 가는 집단에 속하게 되고 망신을 당할 뿐 아니라 2주 내로 사내의 다른 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해고되었다. 그 결과 직원들 간의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홉스식의 기업 문화가 탄생했다. 2001년 말 엔론이 대규모 회계 부정을 저질렀다는 뉴스가 보고되었다.

과학은 1970년대 이래 눈부시게 발전했다.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후속판에서 인간의 천성이 이기적이라는 기존의 주장을 수정했으며, 그 이론은 생물학자들 사이에서 신뢰를 잃었다. 투쟁과 경쟁이 생명체의 진화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하지만 협동이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이제 생물학과 1학년이면 누구나 배우게 된다. 우리의 먼 조상들은 공동체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으며 개인을 우상화하는 일은 드물었다. 가장 추운 툰드라에서 가장 뜨거운 사막에 이르는 세계 모든 곳의 수렵채집인들은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다른 모든 동물, 식물 그리고 대지와 연결된 휠씬 더 큰 무언가의 일부라고 보았다.

우리의 몸이 음식을 갈망하듯이 우리의 영혼은 유대를 갈망한다. 우리는 적어도 혼자가 아니다. 우리에게는 서로가 있다.

 

우리 조상들은 불평등에 알레르기가 있었다. 결정은 집단의 권한이며 구성원 모두가 발언권을 가지고 오랜 시간 숙고한 끝에 내려졌다. 미국의 한 인류학자가 무려 339건의 현장 연구를 바탕으로 확증한 사실에 따르면 떠돌이 수렵채집인들은 일반적으로 타인의 권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데 관심을 갖는다

동시에 이 사회는 구성원들을 겸손하게 유지하기 위해 수치심이라는 단순한 무기를 사용했다. 캐나다 인류학자 리처드 리는 칼라하리 사막의 쿵족과 함께 생활한 자신의 경험을 통해 수치심이 우리 조상들 사이에서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보여준다.

쿵족의 일원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우리는 자랑하는 사람을 거부한다. 언젠가는 그의 자존심이 누군가를 죽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그가 잡은 고기를 쓸모없다고 말한다. 그런 식으로 우리는 그의 마음을 가라앉히고 온화하게 만든다

수렵채집인들 사이에서의 금기사항은 쌓아놓기와 몰래 숨겨놓기였다. 우리는 역사의 대부분 동안 물건이 아니라 우정을 쌓았다. 이에 대해 유럽 탐험가들은 언제나 대경실색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난 사람들의 너그러움에 불신을 나타냈다. 콜럼버스는 자신의 일지에 당신이 그들에게 가진 것을 달라고 요구하면 결코 거절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어느 누구와도 나누겠다고 제안한다라고 기록했다.

 

과학자들은 남녀평등이 호모 사피엔스를 네안네르탈인과 같은 다른 호미닌보다 우세하게 만들어준 핵심 장점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장 연구에 따르면 남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남성은 대부분 형제 및 남성 사촌과 어울린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권위가 여성과 공유되는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보다 다양한 사회관계망을 갖는 경향이 있다. 사람은 친구가 많을수록 궁극적으로 더 똑똑해진다.

 

수렵채집인들도 그들의 연애 생활에 대해 꽤 느긋했다는 뚜렷한 징후가 있다. ‘연속적 일부다처제는 일부 생물학자들이 오늘날의 우리를 묘사하는 방식이다. 평생 파트너가 평균 2,3명이고 여성이 선택권을 가진 탄자니아의 하드자족을 예로 들어보자. 또는 여성이 평생 동안 평균 12명의 남편을 두는 파라과이의 산에 거주하는 아체족을 생각해볼 수 있다. 잠재적인 아버지들의 이처럼 거대한 네트워크는 모두 자녀 양육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도움이 될 수 있다.

17세기의 한 선교사가 이누 부족의 일원에게 외도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의 지각이 없다. 프랑스 사람들은 자기 자식만을 사랑한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우리 부족의 모든 자녀를 사랑한다

 

정착지와 사유재산의 출현은 인류 역사에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1퍼센트가 99퍼센트를 억압하기 시작했고, 달변가는 지휘관에서 장군으로 그리고 족장에서 왕으로 등진했다. 자유, 평등, 형제애의 시대는 끝났다.

 

인류학자들은 수렵채집인들이 일주일에 평균 20시간에서 30시간 일하면서 매우 편안한 삶을 살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농부들은 들판에서 땀을 흘려야 했다.

사유재산과 농업의 부상은 원시 페미니즘의 시대를 종식시켰다. 결혼 적령기의 딸들은 소나 양 같은 물물교환용 상품에 불과한 수준으로 추락했다. 그들의 새로운 집안에서 이 신분들은 의심을 받았으며, 아들이라는 선물을 낳은 뒤에야 비로소 어느 정도 지위를 인정받았다. 합법적인 아들을 말이다. 여성의 처녀성에 대한 집착이 생긴 것은 우연이 아니다. 가부장제가 탄생한 것이다.

유목민으로서의 우리는 운동도 많이 하고 비타민과 섬유질이 풍부한 다양한 식단을 즐겼다. 그러나 농부로서 우리는 매끼마다 단조로운 곡물 메뉴를 먹기 시작했다.

도한 우리는 더 좁은 구역에서 우리가 버린 쓰레기 근처에서 살기 시작했다. 우리는 소와 염소 같은 동물들을 길들여 우유를 마시기 시작했는데, 이는 마을을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를 변이시키는 거대한 배양접시로 만들었다. 우리는 소를 통해 홍역에 걸리고, 독감은 인간과 돼지, 오리 사이의 미생물이 모두 한곳에 사는 삼자 동거에서 발생하며 지금도 새로운 변종이 출현 중이다. 성병도 마찬가지다. 유목시대에는 사실상 없던 질병이 목축을 하면서 만연하기 시작했다. 인간이 가축을 기르면서 수간도 이루어졌다.

 

모리스는 몇 주 동안 독일군 포로를 한 명씩 차례로 심문했다. 똑같은 답변이 반복되었다. 그들을 이끈 것은 나치 이데올로기가 아니었다. 여전히 자신들은 어떻게든 이길 수 있다고 착각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세뇌된 적도 없었다. 독일 군대가 신기에 가까운 전투를 할 수 있었던 진짜 이유는 훨씬 더 단순했다. 바로 전우애였다.

수백 명의 제빵사, 정육점 주인, 교사, 재단사 그리고 연합군의 진격에 맞서 필사적으로 저항한 모든 독일인들은 서로를 위해 무기를 들었다. 본질적으로 그들은 동료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전투에 임했다.

이와 같은 사실은 미군도 마친가지였다. 1949년 사회학자팀들이 미국의 참전용사 약 50만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방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이에 따르면 이상주의나 이념은 참전용사들의 주된 동기가 아니었다. 이들이 싸운 것은 조국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자신들의 전우를 위해서였다.

 

우리는 텔레비전과 영화산업에 속아 넘어갔다. ‘왕좌의 게임같은 시리즈나 스타워즈같은 영화는 다른 사람을 꼬챙이로 찌르는 것이 식은 죽 먹기라고 믿게 만든다. 그러나 실제로 다른 사람의 몸을 찌르는 것은 심리적으로 매우어렵다. 그렇다면 지난 1만년 동안 전쟁에서 발생한 수억 명의 사상자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의 사망 원인을 예로 들어보겠다.

기타 1퍼센트, 화학 2퍼센트, 폭발/압착 2퍼센트, 지뢰/부비트랩 10퍼센트, 총알/대전차 지뢰 10퍼센트, 박격포/수류탄/공중포폭탄 75퍼센트.

이 희생자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대부분이 원격으로 제거되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병사들은 적이 너무 가까워지면 양심적 병역 거부자가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만일 강제로 소를 도살해야 하는 입장에 처하게 되면 즉시 채식주의자가 되는 것과 같다

어느 시대엥서나 대부분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방법은 멀리서 최대한 많은 사람을 쏘는 것이었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15,16세기에 아메리카를 정복한 방법이자 오늘날 미군이 무장 무인기 편대로 행하는 일이기도 하다.

 

군대는 장거리 무기 외에도 적과의 심리적 거리를 넓히는 수단을 추구한다. 오늘날 학자들은 만일 독일 군대가 메스암페타민 알약(일명 크리스탈 메스, 극도의 공격성을 유발할 수 있는 마약) 3500만정을 먹이지 않았다면 1940년 파리가 함락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군대는 군인들을 조건화할 수 있다. 베트남전쟁에 참전할 신병들은 신병훈련소에서 전우애뿐만이 아니라 가장 잔인한 폭력성도 고취되어 병사들은 죽여! 죽여! 죽여!’라고 목이 쉴 때까지 외쳐야 했다. 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들(대부분 죽이는 법을 배운 적이 없었다)은 이런 종류의 훈련 이미지를 보여주자 충격을 받았다.

타고난 뿌리 깊은 감정인 폭력에 대한 혐오감을 근절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현대 군대에서 전우애는 작아졌다. 그 대신 미국의 한 참전용사의 말을 인용하자면 우리는 만들어진 경멸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기법으로 훈련을 받은 병사들과 구식 군대를 마주치게 하면 구식 군대는 매번 박살이 나고 만다.

미군은 발사율을 높이는 데 어렵사리 성공해 총을 쏘는 병사의 비율을 한국전쟁에서는 55퍼센트, 베트남전쟁에서는 95퍼센트까지 높였다. 그러나 여기에는 대가가 따랐다. 수백만 명의 젊은 병사들을 훈련 중 세뇌시킨다면 베트남 전쟁 이후 많은 젊은이들이 실제로 그랬던 것처럼 이들이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가지고 돌아오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수많은 병사들이 다른 사람들을 죽였으며, 이때 그들 안에 있는 무엇인가도 함께 죽었다.

적과의 거리를 쉽게 유지할 수 있는 집단이 있다. 바로 지도자들이다. 높은 곳에서 명령을 내리는 군대나 테러 조적의 지휘관은 적에 대한 공감의 감정을 억누를 필요가 없다. 테러전문가와 역사학자들이 일관되게 지적하는 바에 따르면 권력을 가지 사람들의 심리학적 상태는 독특하다. 아돌프 히틀러와 요제프 괴벨스 같은 전쟁범죄자들은 권력에 굶주린 편집증적 나르시시스트의 전형적 사례이다.

 

1513년 겨울 술집에서 또다시 긴 밤을 보낸 빈털터리의 시청 서기가 군주론이라고 일컬은 소논문을 쓰기 시작했다. ‘군주론은 프랑스의 황제 샤를 5, 루이 14, 구소련의 서기장인 스탈린의 침대 옆 탁자에 놓였으며, 독일 수상인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처칠, 무솔리니, 히틀러와 마찬가지로 이 책을 소장하고 있었다. 심지어 워털루 전투에서의 패배 직후 나폴레옹의 마차에서도 발견되었다. 마키아벨리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인간은 배은망덕하고 변덕스러우며 가식적이고 위선적이며 비겁하고 탐욕스럽다고 할 수 있다마키아벨리의 책은 종종 현실적이라고 불린다. ‘대부’, ‘하우스 오브 카드’, ‘왕좌의 게임은 모두 기본적으로 16세기 이탈리아에서 저술한 이 작품에 대한 다양한 각주이다.

대커 컬트너 교수는 응용 마키아밸리즘 분야의 최고 전문가이다. 이 미국인 심리학자는 기숙사에서 여름 캠프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지배권을 위해 자유롭게 경쟁하는 일련의 환경에 잠입했다. 그는 사람들이 처음 만나는 바로 이런 종류의 장소에서 시대를 초월한 마키아벨리의 지혜가 온전히 드러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그는 실망했다. ‘군주론이 처방한 대로 행동한다면 캠프에서 바로 쫓겨나게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켈트너의 발견에 따르면 권좌에 오른 것은 가장 친절하고 공감을 잘하는 사람들이었다. 가장 친근한 자의 생존이다.

켈트너는 이미 권력을 갖게 된 뒤에 받게 되는 영향도 연구했다. 세 명의 지원자로 이루어진 소규모 그룹의 한명은 그룹 리더로 무작위 배정되었고 그룹이 함께 나누어 먹을 쿠키 5개가 남긴 접시를 가지고 왔다. 모든 그룹은 접시에 하나의 쿠키를 남겼지만(예절의 황금률) 대부분의 경우 네 번째 쿠키는 리더가 급하게 먹어치웠다.

켈트너와 그의 팀은 값비싼 자동차가 심리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는 또 다른 연구를 수행했다. 이 실험에서 첫 번째 피험자들은 낡은 미쓰비시나 포드 핀토를 횡단보도 방향으로 운전해갔다. 모든 운전자가 자동차를 멈췄다. 연구의 2부에서는 피험자들이 멋진 메르세데스 벤츠를 운전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45퍼센트가 정지하지 않았다. 자동차가 비쌀수록 도로상의 매너는 더 거칠어진다.

운전자의 행동을 관찰한 켈트너는 그것이 무엇을 생각나게 했는지를 깨달았다. ‘후천적 소시오패스라고 하는데, 19세기에 심리학자들이 처음으로 진단한 유전되지 않는 반사회적 성격장애이다. 머리에 타격을 받아 뇌의 주요 부위가 손상되면 발생하는데, 이를 통해 가장 좋은 사람을 최악의 마키아벨리안으로 만들 수 있다. 알고 보니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이와 동일한 경향을 나타냈다. 그들은 말 그대로 뇌손상을 입은 사람처럼 행동한다. 보통사람보다 더욱 충동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무모하고 오만하며 무례하다. 뿐만 아니라 배우자를 속이고 바람을 피울 가능성이 더 높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지 않으며, 그들의 관점에 관심을 보이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그들은 더 뻔뻔스럽고 종종 영장류 사이에서 인간을 구별할 수 있는 하나의 얼굴 현상을 나타내지 않는다. 얼굴이 붉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2014년 연구에서 세명의 미국 신경학자는 경두개 자기자극 기계를 사용해 권력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인지 기능을 검사했다. 권력을 가졌다는 느낌은 공감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정신적 과정인 미러링(mirroring)을 방해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항상 미러링을 한다. 누군가 웃으면 당신도 웃는다. 누군가 하품을 하면 당신도 하품을 한다. 그러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이런 경향이 매우 약하다. 이는 마치 플러그가 뽑힌 것처럼 자신들이 더 이상 동료 인간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지 않는 것과 같다.

수많은 연구에 따르면 권력의 영향 중 하나는 타인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게 만든다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권력을 가지고 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게으르고 신뢰할 수 없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더 크다. 그들에게는 감독과 감시, 관리와 규제, 검열과 명령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또한 권력은 당신을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고 느끼게 만들기 때문에 당신이 이 모든 감시를 담당해야 한다고 믿게 될 것이다. 권력을 갖지 못하면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난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힘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자신감도 훨씬 떨어진다.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기를 주저하고 집단에서 스스로를 더 작아 보이게 만들며 자신의 지능을 과소평가한다.

권력자들에게 이러한 망설임은 편리하다. 자기 의심은 사람들이 반격할 가능성을 낮추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어리석은 것처럼 대하면 그들은 스스로 어리석다고 느끼기 시작할 것이다. 이는 통치자들로 하여금 다음과 같이 추론하게 만든다. ‘대중은 너무 멍청해서 스스로 생각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비전과 통찰력을 가진 내가 책임을 맡아야 해하지만 진상은 정확히 그 반대가 아닌가

19세기 영국의 역사가 액턴경은 다음과 같은 언급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권력은 부패하는 경향이 있고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대커 켈트너는 이를 권력의 역설이라고 일컫는다.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리는 가장 겸손하고 친절한 사람을 선택해 우리를 이끌도록 한다. 그러나 그들이 정상에 이르면 권력은 종종 그들의 가슴이 아닌 머리로 곧장 들어가버린다. 그후 그를 몰아내는 일에 행운이 따르기를.

 

호모 퍼피는 타고난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심리학자들은 우리가 정당하다고 생각한다면 약간의 불평등도 인정한다고 강조한다. 겉으로 공정해 보이는 한 그렇다. 대중에게 당신이 더 똑똑하거나 더 낫거나 더 신성하다는 것을 납득시킬 수 있다면 책임자의 자리가 타당하며 반대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정착 생활이 시작되고 불평등이 심화됨에 따라 족장과 왕은 자신이 신민들보다 더 많은 특권을 누리는 이유를 정당화해야 했다. 유목민족의 족장들이 모두 겸손했던 것과 달리 이제 지도자들은 잘난 척을 하기 시작했다. 왕은 자신이 신성한 권리에 의해 다스리고 있다거나 그 자신이 신이라고 선언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장점(merit)’ 논리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누가 큰 장점이 있는지 어떻게 결정할까? 은행가 아니면 청소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잘 만들어낼수록 자신의 몫은 더 커진다. 사실 문명의 진화 전체를 자신의 특권을 정당화하는 새로운 이론을 지속적으로 고안해 낸 통치자들의 역사로 볼 수 있다.

 

왜 사람들은 일주일에 40시간 동안 금속이나 종이조각 혹은 은행 계좌에 숫자 몇 개를 추가하는 대가로 우리가 사무실이라고 부르는 우리에 숨죽이고 갇혀 있을까? 청구서를 무시하거나 세금을 내지 않으면 벌금이 나오거나 수감된다. 이것을 기꺼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당국은 당신을 뒤쫓을 것이다. 돈은 허구일 수 있지만 매우 실제적인 폭력의 위협이라는 강제력을 갖는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뻔뻔함은 매우 유리한 속성이다. 수치심에 개의치 않는 정치인은 다른 사람들이 감히 시도할 수 없는 일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대담한 행동은 대중매체가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현대사회에서 보상으로 돌아온다. 뉴스는 비정상적이고 터무니없는 것을 집중 조명하기 때문이다. 이런 유형의 세상에서 정상에 오르는 것은 가장 친절하고 공감력이 큰 사람이 아니라 그 반대인 사람이다. 오늘날의 세상에서는 가장 뻔뻔한 자가 살아 남는다.

 

자본주의자와 공산주의자 모두 사람들을 행동으로 이끌 수 있는 방법은 당근과 채찍 두가지 뿐이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자본주의자들은 당근(돈이라고 읽는다)에 의존한 반면, 공산주의자들은 주로 채찍(처벌이라고 읽는다)에 의존했다. 모든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양쪽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한 가지 기본 전제는 사람들 스스로 동기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세계 최초의 비즈니스 컨설턴트 중 한 명인 프레더릭 테일러는 약 100년 전 노동자가 고용주에게 가장 원하는 것은 무엇보다 높은 임금이다라고 주장했다. 테일러는 공장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가동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성과를 최대한 정확하게 평가해야 한다는 개념을 전제로 한 과학적 경영기법의 창안자로 명성을 떨쳤다.

프레더릭 테일러 이후 100여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서로의 내재적 동기를 대거 훼손하느라 바쁘다. 142개국에서 23만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주요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실제로 직장에서 업무에 참여한다고 느끼는 비율은 13퍼센트에 불과하다.

 

(네덜란드 가정건강돌보미 조직 뤼트트조르흐 창립자 요스 드 블록)의 견해에 따르면 직원은 자신의 업무가 어떻게 수행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내재적 동기를 가지고 있는 전문직이자 전문가이다. “내 경험에 따르면 대체로 관리자들은 아이디어가 거의 없다. 그들은 지시를 잘 따르고 시스템에 스스로를 맞추기 때문에 일자리를 얻는다. 대단한 비전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다. 그들은 높은 성과 리더십과정을 수강한 뒤 갑자기 자신이 대단한 혁신가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회사 인력은 100명에서 500명으로 늘어났고, 변속기 포크 시장의 50퍼센트를 차지하게 되었다. 핵심 부품의 평균 생산시간은 11일에서 단 1일로 단축되었다. 경쟁사들이 저임금 국가로 사업장을 이전할 때 파비(프랑스 자동차 부품 생산사) 공장은 유럽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동안 조브리스트(파비 CEO)의 철학은 아주 단순했다. 직원을 책임감 있고 신뢰할 수 있는 존재로 대하면 실제로 그렇게 될 것이다. 심지어 그는 그것에 관한 책도 저술했는데, 책의 부제는 사람들이 선량하다고 믿는 회사이다.

 

10개국의 부모 12,000명을 대상으로 한 최근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교도소의 수감자들이 대부분의 아이들보다 야외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시간대학의 연구원들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1981년에서 1997년까지 18퍼센트 증가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숙제를 하느라 보낸 시간은 145퍼센트 증가했다.

오늘날 네덜란드에서 육아에 투자하는 시간이 1980년대보다 150퍼센트 이상 증가했다. 오늘날 미국에서 일하는 엄마는 1970년대의 전업주부보다 더 많은 시간을 아이들과 함께 보낸다. 교육정책 입안자들이 순위와 성장을 압박하기 시작하면서 학부모와 학교는 시험과 그 결과에 집중하게 되었다.

교실이나 수업이 없는 학교를 상상해보라. 숙제나 성적 평가도 없다. 교감과 팀 리더들이라는 계층 구조가 없으며, 자율적인 교사로 구성된 팀들만 존재한다. 사실 책임은 학생들의 몫이다. 이 학교에서 교장은 아이들에게 회의 공간을 내줘야 하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사무실에서 쫓겨난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아이들을 모두 받아주는 이 학교의 이름은 아고라이다.

영국 서퍽에 있는 서머힐스쿨은 1921년부터 아이들에게 많은 자유를 믿고 맡길 수 있음을 입증해왔다. 매사추세츠의 서드베리밸리스쿨도 마찬가지이다. 1960년대 이후 수천 명의 아이들이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뒤 만족스러운 삶을 영위했다.

문제는 우리 아이들이 자유를 관리할 수 있느냐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자유를 부여할 용기가 우리에게 있는지의 여부이다.

 

오늘날에도 토레스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시민 참여 예산을 운영하고 있다. 15,000명의 시민이 의견을 제시하고, 매년 초 시 전역 560곳의 장소에서 위원회가 열린다. 누구에게나 제안서를 제출하고 대표를 선출할 기회가 주어진다. 시민들은 세수입 수백만 달러를 어느 곳에 배정할 것인가를 함께 결정한다.

이보다 더 큰 일화는 1989년 브라질의 대도시 포트투알레그리라는 도시에서 예산의 4분의 1을 대중에게 맡기는 전례 없는 조치를 취하면서 시작되었다. 10년 뒤 브라질 전역 100여 곳 이상의 도시에서 따라했으며, 다시 세계 전역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2016년까지 뉴욕시에서 세비야, 함부르크에서 멕시코시티에 이르는 1,500여곳의 도시가 참여 예산을 제정했다.

 

공산주의는 적어도 공식적인 정의에 따르면 수백년 동안 성공적인 체제였으며, 구소련과 유사하지 않다는 점이다. 사실 우리는 매일 그것을 연습한다. 당신은 식탁에 앉아 있고 소금이 손에 닿지 않는 곳에 놓여 있다. “소금 좀 건네주세요라고 말하면 누군가 무료로 소금을 건네준다. 인류학자들은 이것을 일상적 공산주의라고 일컫는다. 인류는 공원과 광장, 음악과 이야기, 해변과 침대를 공유하면서 이런 종류의 공산주의에 열광한다. 아마도 이런 관대함의 가장 좋은 예는 가정일 것이다. 전 세계의 수십억 가정이 공산주의 원칙에 따라 구성되어 있다. 부모는 자신의 소유물을 아이와 공유하고 능력껏 기여한다.

 

오늘날까지 알래스카 영구 기금 배당금은 전적으로 무조건적이다. 이는 특권이 아니라 권리이다. 그 덕분에 알래스카 모델을 구식 복지국가의 정반대가 된다. 일반적으로 당신은 먼저 자신이 아프거나 장애가 있거나 지원을 받아야 할 만큼 충분히 궁핍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그리고 당신에게 아무런 희망이 없다는 것을 증빙하는 수십 개의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이런 종류의 시스템은 사람들을 슬피고 무기력하며 타인에게 의존하게 만드는 반면, 무조건적인 배당금은 완전히 다르다. 이는 신뢰를 키워준다.

대부분의 알래스카 사람들은 배당금을 교육과 아이들에게 투자했다. 기금은 고용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았으며 빈곤을 크게 감소시켰다.

 

노르웨이 숲에는 세계에서 가장 이상한 교도소 중 하나가 있다. 감방이나 철장을 볼 수 없으며, 권총이나 수갑으로 무장한 교도관도 볼 수 없다. 할렌 교도소의 수감자에게는 바닥 난방을 갖춘 개인 전용 방이 주어진다. 텔레비전과 욕실, 주방이 있다. 도서관, 암벽등반 연습용 벽, 음악 스튜디오까지 완비하고 있다. 바스퇴위 일부 수감자들은 직장으로 출퇴근하기도 한다. 할렌과 바스퇴위는 평온한 공동체이다. 바스퇴위의 소장인 톰 에버하르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사람들을 쓰레기처럼 대하면 그들은 쓰레기가 될 것이다. 인간처럼 대하면 그들은 인간처럼 행동할 것이다

노르웨이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재범률을 자랑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미국의 교도소는 가장 높은 재범률을 보이는 시스템 중 하나다. 미국에서는 수감자의 60퍼센트가 2년 뒤 다시 교도소로 돌아가지만 노르웨이의 경우는 20퍼센트에 불과하다.

노르웨이 교도소의 수용비용은 유죄판결 건당 평균 6151달러나 된다. 이는 미국의 약 2배에 이른다. 그러나 전과자들의 범죄 횟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노르웨이 법 집행기관은 1건당 71,226달러를 절약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 중 더 많은 이들이 일자리를 구하므로 정부의 지원이 필요 없고, 이들이 납부한 세금으로 정부는 67,086달러를 추가를 절약할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희생자 수가 감소한다는 것이다. 그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노르웨이 교도소 시스템은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것의 2배 이상을 절약하는 결과로 돌아온다.

 

당신이 가끔 속임수에 넘어가게 되리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편이 훨씬 낫다고 그녀(마리아 코니코바)는 말한다. 그것이 우리가 평생 다른 사람을 믿는다는 사치에 지불하는 조그마한 대가이다.

 

우리가 음식을 좋아하는 것은 음식이 없으면 굶어죽기 때문이다. 우리가 돕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서로가 없으면 우리는 말라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좋은 일을 하면 기분이 좋은 것은 그것이 실제로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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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는 사람
베른트 하인리히 지음, 조은영 옮김 / 윌북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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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자이자 달리기 선수인 베른트 하인리히(Bernd Heinrich 1940~)의 과학책, 달리기책, 자서전이다. Bernd라는 이름이 뜻이 곰처럼 강한(bern+hard강한=Bernhard Bernd)인데,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독일계이고, 운명적으로 생물학자이다. 전작 우리는 왜 달리는가60대에 쓴 책인데, 이건 80대에 쓴 책이니 두 책을 비교하는 재미가 있다. 과학자에게 신은 자연이다.

 

<밑줄>

우리는 타고난 달리기 선수다. 이게 현존하는 호미니드 중에서도 인간을 고유하게 만드는 점이다(도구를 만들어 썼다는 이유로 유인원보다 우월하다 할 수도 없고, 생각하는 존재라는 이유로 다른 동물보다 우월하다고 할 수도 없다). 발자국은 그 주인의 행동은 물론이고 체형에 대한 간접적인 기록이기도 하다. 나는 가볍게 쌓인 눈 위에서 달릴 때와 걸을 때 남은 흔적을 비교해보았다. 화산의 얇은 응회암층에 보존된 인간 이전 사람들의 발자취와 완벽하게 일치했다. 고대 호미니드들은 걷는 건 물론이고 정말 달릴 수 있었다. 그들이 현재의 달리기 선수와 전혀 달랐다고 가정할 이유도 없다.

추위에 민감한 점, 털이 없는 몸, 두껍고 부스스한 머리카락, 특히 땀을 다량으로 흘리는 것과 같은 인간의 특징을 생각해보면, 우리는 달리도록 태어났고 뜨거운 기후에서 기원한 게 분명하다.

 

달리기는 식량을 구하고 포식자에게서 도망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암컷과 수컷 모두에게 유익하다. 이 능력은 인간이 수백만 년 전 형편없는 사냥꾼으로 시작해 대형 고양잇과나 갯과 동물들이 죽인 사체를 먹고 살던 아프리카의 너른 벌판에서 특히 장점으로 여겨졌다. 나는 이 인류 진화의 요람에서 독수리들이 하늘에서 맴돌다가 포식자가 죽인 사체로 내려오는 모습과 한낮의 열기를 견디지 못한 사자가 먹이를 앞에 두고도 그늘에서 쉬는 장면을 수시로 보았다. 땀을 흘리는 능력이 있었기에 우리는 독수리가 가리키는 살육의 현장으로 뛰어갈 수 있었고, 먹이를 지키는 맹수가 없는 짧은 틈을 활용할 수 있었다. 더위를 견디고 뛰어다니는 만큼 더 많이 먹이를 구해 자손들을 먹일 수 있었고, 그 결과 땀을 흘리는 반응이 선택됨과 동시에 물에 접근하기 쉬워야 했을 것이다.

인간과 다른 동물(많은 새를 제외하고)의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인간의 아기는 무력할 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몸이 크고 부모가 쉽게 옮길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몸에는 이동할 때 아기가 들러붙을 수 있는 두꺼운 털이 없다. 그러므로 어린 생명은 보호가 필요했고 어미가 아기를 돌봐야 했다. 그 바람에 먹을 것을 구해올 사람이 필요해졌고, 주거지는 물론이며 음식을 제공할 능력과 의지가 있는 짝을 선호하게 되었다. 최근까지도 많은 부족에서 남성은 영양의 일종인 일런드나 쿠두 같은 대형 먹잇감을 구해와 자신이 훌륭한 사냥꾼임을 입증하지 못하면 결혼을 허락받지 못했다. 이는 아마 현대에 와서는 외식, 자동차, , 넉넉한 통장 잔고같이 가족을 부양할 잠재력을 나타내는 조건들로 대체되었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생물학적으로 역사의 훨씬 이전부터 같은 종족이었으며 진화적으로 선택된 사냥꾼이다.

 

우리는 가치 있는 존재가 되려 애쓰고, 사회적 존재로서 스포츠 팀, 가문, 나라처럼 자신보다 큰 가치가 있는 무언가의 일부가 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제는 그 가치를 글로벌한 세상에서 우리 모두가 속한 자연으로 보면 어떨까? 자연을 사랑하고 원하며 지키기 위해 어떤 일이라도 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까? 그러기만 한다면 자연은 영원히 장엄하고 아름답게 우리를 하나로 묶어줄 것이다.

어린 시절 메인주에서 다닌 굿윌학교에서의 나의 가치는 일요일 예배 전 흰 셔츠를 빨아 다림질하고, 교회와 저녁 공부 시간 전에 주기도문을 외우고, 고등학교 조회 시간에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는 것에 있었다.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았다면 이내 혼란스러웠겠지만 우리는 따라야 할 확실함을 찾아 헤매는 젊은이들이었기에 아무 의문도 제기하지 않았다. 특히 아웃사이더였던 나는 더 큰 압박을 느꼈다. 모든 것이 그저 막막하기만 하고 논리를 거부한 채 불투명해 보였다. 자연이 곧 신이라는 사실을 진작 배웠더라면 덜 외롭고 덜 불안했을 것이다. 아마 진작 자연에 대한 이해와 헌신을 자처하는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제 여든 번째 생일을 치른 나는 더는 과거처럼 달리기 선수도, 과학자도 아니다. 허나 나는 내가 바라던 꿈의 대부분을 이루었다. 달리기 선수와 과학자로서의 역할은 최근까지도 내 관심과 에너지를 차지했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더 관심을 쏟지 못한 점은 미안하게 생각한다. 평생 독행하고 긴급한 과제에 감정을 억누르며 지낸 바람에 가족과 친구들 사이에서 느낄 수 있는 삶의 충만함을 놓치고 살았다. 인생의 마지막 단락을 쓰며 이제 내가 달려야 할 새로운 경주는 더 깊이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임을 다시금 느낀다.

 

내 죽음으로 숲속에서 잔치를 열고 싶기도 하다. 거기서 울트라 마라톤 결승선에 차려진 만찬처럼 모든 것의 출발점인 자연으로 되돌아가는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모두와 공짜 맥주를 나누고 싶다. 내 마지막이 축하의 자리가 되면 좋겠다. 많은 이름과 명언이 새겨진 테이블을 둘러싸고 예전에 그랬듯 사람들이 마음과 악기로 연주하는 록 음악이 울려 퍼지면 좋겠다. 나를 둘러싼 토양은 미국밤나무가 자라는 데 좋은 거름이 될 것이다. 그 자리를 찾은 모든 이들이 근처에서 묘목 한 그루씩을 찾아 집에 가져가 심어도 좋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웨스트브룩 로드를 거치고 텀블다운 산의 산자락을 지나 웨브 호수를 한 바퀴 뛰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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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만든 50개 주 이야기 - 이름에 숨겨진 매혹적인 역사를 읽다
김동섭 지음 / 미래의창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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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어릴 땐 선망의 대상이었고, 지금은 원망의 대상이다. 특히 트럼프가 전세계 나라를 향해 관세전쟁을 벌이는 것을 보면서.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그 덕분에 미국에 대한 관심이 많이 생겼다. 특히 미국 지명에 대해. 여러 책들을 살펴보았는데 이 책이 특히 어원에 관련해서는 최고로 자세한 것 같다. 많은 도움을 받았다. 저자께 감사.

 

 

<밑줄>

 

카르티에는 지금의 캐나다 뉴펀들랜드 어귀에 도착해 자신이 명명한 세인트로렌스강을 따라 일대를 탐험했다. 그곳에서 원주민들과 조우한 카르티에 일행은 원주민들이 자신들의 마을을 가리키며 카나다Canada’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 것을 듣게 된다. 카르티에는 그 말이 원주민의 땅을 가리키는 말로 마을을 뜻한다. 드 라살은 강을 따라 내려가 미시시피강의 어귀에 도달한 후 자신이 탐험한 지역을 프랑스 왕령으로 선언했다. 그는 귀국해 자신이 발견한 이 땅을 루이지애나라고 명명하고 루이 14세에게 바쳤다.

 

영국이 북미 대륙으로 진출해 개척한 최초의 식민지는 엘리자베스 1세에게 바친 버지니아였다.

 

영국 국교회로부터 박해를 받던 분리파는 신앙의 자유를 위해서 영국을 떠날 것을 결심한다. 마침내 16208102명의 순례자가 영국의 플리머스 항을 떠났다. 약 두 달 후, 그들은 애초에 가기로 계획했던 버지니아보다 훨씬 북쪽 지방인 코드곶Cape Cod(현재의 매사추세츠주 연안)에 상륙했다. 그리고 그곳을 자신들이 떠나온 영국의 플리머스 항의 이름을 따라 플리머스라고 명명했다.

 

미국 동북부에 위치한 뉴욕주는 뉴욕이라는 세계 최대의 도시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지방은 본래 아메리카 인디언들 중에서도 델라웨어족, 모히칸족, 이로쿼이족 같은 가장 강력한 부족들이 정착해서 살던 곳이었다.

 

네덜란드인들은 지금의 맨해튼섬에도 정착해 요새를 짓고 도시를 세웠다. 이들은 인디언 추장과 협상해 24달러가량의 물품이 든 상자 두 개로 맨해튼 섬을 구입했다. 1625, 네덜란드인들은 이곳을 뉴암스테르담이라고 부르며 정착해갔다.

 

영국인들이 네덜란드인들을 몰아내고 맨해튼을 차지한다. 당시 영국의 국왕 찰스 2세는 이 땅을 자신의 동생인 요크 공의 이름을 따서 뉴욕으로 바꾸어 불렀다.

 

맨해튼이라는 이름은 원래 이 지방에 살던 알곤킨족의 언어로 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현재 맨해튼에서 가장 유명한 월스트리트Wall Street는 과거 네덜란드인들과 인디언들 사이에 충돌이 잦던 지역이었다. 네덜란드인들은 공격을 막기 위해 이곳에 휴전선처럼 섬을 가로지르는 울타리()를 세웠는데 이것이 월스트리트의 기원이다.

 

1660년에 영국에서 왕정이 복고되자 찰스 2세는 프랑스에서 본국으로 돌아온다. 찰스 2세는 망명 당시 자신을 지지해준 저지섬 주민들에게 감사하다는 뜻으로 미국 동부에 새로 개척한 식민지의 이름을 뉴저지 식민지Province of New Jersey로 지었다.

 

뉴햄프셔주의 이름은 영국의 햄프셔 지방에서 유래했다. 이 지방을 처음으로 탐험한 사람들은 영국인들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프랑스의 샹플랭 같은 탐험가도 이 지방을 거쳐 갔다. 이주 초창기에는 영국인들이 많이 들어왔지만, 뉴프랑스의 붕괴 이후 퀘벡에 살던 프랑스인들이 대거 이주했다. 그 결과 미국의 50개 주 중에서 프랑스계 주민들의 비중이 높은 주이기도 하다.

미국의 북동부 지방에 최초로 정착한 사람들은 네덜란드인이었다. 코네티컷주도 1614년 네덜란드의 탐험가 아드리안 블록에 의해 처음 발견됐다. 블록은 이 지방을 탐험하고 알곤킨족의 언어로 코네티컷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이는 바다로 흘러가는 큰 강 옆의 초원이라는 의미다.

 

펜실베이니아주에 처음으로 정착한 사람들은 스웨덴 사람들이었다. 스웨덴 사람들은 지금의 필라델피아 근처에 정착하고 이 지방을 뉴스웨덴이라고 불렀다. 이후 이 지방은 네덜란드에 넘어갔다가 결국 영국의 식민지가 됐다. 원래는 영국의 요크 공작이 이곳을 통치했으나, 1681년 찰스 2세가 윌리엄 펜Wiliam Penn에게 이 지방의 개척권을 허가해준다. 동부의 다른 주 이름은 당시 영국 군주들의 이름이나 지명에서 유래한 경우가 많지만, 펜실베이니아는 식민지를 개척한 윌리엄 펜의 이름에 을 의미하는 라틴어 ‘Silva’ 그리고 을 의미하는 ‘-(n)ia’가 붙어서 만들어진 이름이다.

 

필라델피아Philadelphia라는 말은 그리스어 사랑Phila’형제adelpphos’가 합쳐진 것으로 우애를 의미한다.

 

펜실베이니아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는 피츠버그다. 본래 이 도시는 프렌치-인디언전쟁 때 프랑스군이 전략적 요충지에 세운 뒤켄Duquesne 요새에서 생겨난 곳이다. 하지만 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은 이 요새의 이름을 당시 영국의 수상이었던 윌리엄 피트William Pitt를 기념해 피츠버그로 바꿨다. 미국의 역사는 역시 승자의 역사임을 또 한번 볼 수 있다. 만약 프랑스가 이 전쟁에서 승리했다면 뒤켄빌Duquesneville(뒤켄의 도시)이 되지 않았을까? 물론 발음은 영어식으로 듀케인빌이 되었을 것이다. 이 이름은 피츠버그에 있는 듀케인대학교에 여전히 남아 있다.

 

메릴랜드 식민지는 찰스 1세 때 건설되었기에 찰스 1세의 왕비인 앙리에트 마리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마리Marie의 영어식 이름이 메리Mary.

 

볼티모어Baltimore는 영국의 조지 캘버트 볼티모어Goerge Calvert Baltimore 남작의 이름을 따라 1729년에 세워졌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최대 도시인 찰스턴Charleston찰스의 도시라는 뜻의 찰스 타운Charles Town’에서 따온 지명이다.

캐롤라이나Carolina찰스의 땅이라는 의미의 라틴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자면, 영국 왕의 이름에 등장하는 찰스Charles, 프랑스 왕실에 자주 보이는 샤를Charles, 스페인 왕실의 카를로스Carlos 그리고 신성로마제국(독일)의 카를Karl이라는 이름은 모두 프랑크 왕국(서기 5세기 말 서게르만족의 한 부족인 프랑크족이 서유럽 지역에 세운 왕국)의 황제였던 샤를마뉴 대제(독일명 카롤루스)’에서 나온 이름이다. 유럽의 군주들은 부강한 나라를 꿈꾸며 서로마 제국의 위대한 군주의 이름을 그들의 후손에 남겼다.

 

뉴잉글랜드는 미국 북동부의 6개 주, 즉 매사추세츠, 로드아일랜드, 코네티컷, 버몬트, 메인, 뉴햄프셔를 포함하는 지방이다. 이 지방을 통틀어 가장 큰 도시가 바로 매사추세츠의 주도인 보스턴이다. 매사추세츠주는 하버드대학교나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 같은 교육 기관이 많은 주로도 유명하다. ‘매사추세츠라는 말은 원주민인 나바호족의 언어로 큰 산 옆의 초원혹은 큰 언덕 위에라는 뜻이다.

 

1732, 조지아에 정착한 영국인들은 당시 영국 왕 조지 2세에게 식민지 건설을 위한 헌장을 요구했다. 조지 2세는 독일에 뿌리를 둔 하노버 왕조 출신의 국왕이었다. 조지아주의 이름은 조지 2세의 이름을 따 만들어졌다.

 

메인Maine이라는 이름의 어원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먼저 프랑스의 노르망디 남쪽 지방인 멘Maine에서 왔다는 설이다. 프랑스계 주민들이 이 지방에 먼저 정착했고, 북쪽에는 프랑스 영토였던 퀘벡주가 가까이 있으니 설득력이 있다.

 

뉴올리언스 도시 이름은 루이 15세의 섭정인 오를레앙 공의 이름에서 따왔다. 프랑스어 누벨오를레앙Nouvelle Oreléans을 영어로 옮긴 것이 뉴올리언스다

 

루이지애나의 주도인 배톤루지Baton Rouge에도 프랑스의 흔적이 남아 있다. 배톤루지는 붉은 칠을 한 나무 말뚝이라는 촉토우 인디언 말을 프랑스어로 옮긴 것이다. 프랑스어로 배톤Baton’막대기’, ‘루지rouge’붉은을 뜻한다.

 

오하이오는 이로쿼이 부족의 언어로 좋은 강을 의미한다. 이 지역에 정착한 프랑스인들은 오하이오를 프랑스어로 본 리비에르Bonne Rivière(좋은 강)’라고 옮겼다. 주 이름 중에서 인디언들의 언어에서 온 것들은 대개 강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 많다. 프랑스가 북미에서 영국을 제압했다면 오하이오주의 이름은 본 리비에르주가 될 수도 있었다.

 

오하이오주 남서부 도시, 신시내티의 이름에도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 처음 정착민들이 들어왔을 때 이 도시의 이름은 로잔트빌Losantville이었다. 그런데 1790년에 로마의 정치인 킨키나투스Cincinnatus(기원전 519-430)의 이름을 본떠 신시내티로 도시의 이름을 바꾸게 된다(킨키나투스의 영어 발음이 신시나투스).

 

버몬트Vermont는 프랑스어로 푸른vert+mont’이라는 뜻이다. 프랑스 발음으로 읽으면 베르몽이다.

 

버몬트의 주도 몬트필리어Montpelier는 인구가 불과 7천 명밖에 안 되는 곳으로, 미국의 주도 중에서 가장 작은 도시다. 몬트필리어라는 이름은 남프랑스의 몽펠리에Montpellier에서 왔다.

 

일리노이라는 이름은 이 지방의 원주민인 일리노이족에서 왔다.

시카고Chicago는 본래 영어식 발음으로 읽으면 치카고라고 발음해야 한다. 하지만 이 도시의 이름을 정한 사람들이 프랑스인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발음대로 지금까지 부르고 있다. 시카고의 본래 뜻은 원주민인 알곤킨족의 언어로 야생 양파가 많은 여우 서식지혹은 스컹크 냄새가 나는 고얀 곳이라는 뜻이다.

위스콘신이라는 이름은 알곤킨족의 언어에서 나온 말이다. 그런데 프랑스인 탐험가들은 이를 메스쿠싱Meskousing이라고 옮겨 적었고, 철자를 잘못 옮겨 위스콘신Ouisconsin이라고 기록했다. 지금 위스콘신의 철자는 이를 영어식으로 적은 것이다. 메스쿠싱이란 말은 마이애미 인디언의 말로 붉다라는 의미다. 이 지방의 소도시 위스콘신델스에 있는 붉은 사암을 보면 메스쿠싱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위스콘신주는 우리가 흔히 먹는 선데Sundae’ 혹은 선디아이스크림이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아이스크림을 일요일 아이스크림Sunday Ice Cream’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신성한 주일의 이름이 들어갔다고 해서 마지막 철자 하나만 바꾸어 선데 아이스크림이 된 것이다.

 

미시간은 오지브와족의 언어로 큰 물혹은 큰 호수를 뜻하는 미시가마Mishigama에서 나왔다. 이 지방을 처음으로 탐험한 프랑스인들이 이를 미시간Michigan이라고 옮겼다. 만약 영국인들이 이 지방을 발견했다면 프랑스어의 ‘ch’는 영어의 ‘sh’와 같기 때문에 ‘Mishigan’이라고 옮겼을 것이다. 오대호 주변에 있는 주들 중에는 유난히 Mi’로 시작하는 이름이 많은데, 대부분 원주민의 말에서 온 지명이다.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정리해보자.

미시간Michigan: 큰 물

미주리Missouri: 구름이 낀 물의 색

미시시피Mississippi: 진흙탕 물

미네소타Minnesota: 하늘 빛을 띤 물

미시간주는 엄청난 면적의 오대호와 맞닿아 있다. 위의 지명에서 공통분모를 보면 Mi’가 아메리카 인디언 언어로 을 뜻하는 말임을 알 수 있다. 고대 고구려어에서도 물을 라고 한 것으로 보아 우리 조상과 북미 인디언들 사이에 연결고리가 있을 수 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미시간주에서 가장 큰 도시 디트로이트Detroit는 세계 굴지의 자동차 회사 제너럴모터스의 본사가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 도시의 이름은 1701년 프랑스의 탐험가인 앙투안 드 라 모트 카디악이 세운 데트루아Détroit 요새에서 나왔다. ‘데트루아는 프랑스어로 호수와 강이 교차하는 해협을 의미하며, 이를 영어로 읽으면 디트로이트가 된다.

 

캐딜락Cadillac’이라는 미국의 고급 자동차 브랜드 이름을 한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 자동차의 이름이 바로 디트로이트를 세운 카디악(영어식 발음으로는 캐딜락)의 이름에서 나온 것이다.

 

아이오와주의 이름은 아이오와족의 이름과 아이오와강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아이오와주의 주도이자 가장 큰 도시는 디모인Des Moines이다. 영어라기에는 발음이 생소하고, 무슨 뜻인지 짐작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프랑스어를 아는 사람들은 이 도시의 이름이 수도사들을 의미한다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디모인을 프랑스어로 읽으면 데 무안이다. 중부 지방을 개척하고 도시를 세운 사람들이 프랑스인이므로 이런 이름이 붙은 것이다.

 

미시시피라는 이름은 원주민인 오지브웨이족의 말로 큰 강이라는 뜻이다.

 

미시시피주에서 가장 큰 도시 잭슨은 미국의 제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에서 따온 이름이다.

 

앨라배마라는 이름은 크리크족의 한 부족인 앨라배마족의 말에서 나왔다고 한다.

 

아칸소주는 철자와 발음이 특이하다. ‘Arkansas’를 발음하면 알캔자스가 될 것 같은데 발음은 아칸소다. 사실 ‘Arkansas(아칸소)’‘Kansas(캔자스)’가 인접한 지방인 것처럼 명칭의 뿌리도 동일하다. 아칸소는 캔사족의 말로 강 하류에 사는 사람들의 땅이라는 뜻이다. 미시시피강의 상류에는 캔자스주가 있고, 하류에는 아칸소주가 있으니 지명과 지역이 일치한다. 아칸소에서 마지막 ‘s’를 발음하지 않는 것은 프랑스어에서 마지막 자음을 발음하지 않기 때문이다. 발음이 어려운 까닭에 아칸소의 주법에는 아칸소라는 발음을 정확하게 명시하고 있다.

 

50개 주 중에서 유일하게 인디언의 나라라는 의미를 가진 인디애나주는 이렇게 탄생했다. 물론 인디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이 개척한 새로운 땅이라는 뜻으로 그런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인디애나 지방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은 유럽인은 프랑스의 탐험가 로베르 드 라살이었다.

 

초기에 이 지방을 개척한 프랑스인들의 흔적도 몇몇 대학 이름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공대로 유명한 퍼듀Purdue대학교에서 퍼듀는 중세 프랑스어로 신에게Pour Dieu, For God’라는 의미다. 주로 신에게 맹세할 때 쓰는 말로, 프랑스어 발음은 푸르디외. 그리고 대학 미식축구로 유명한 가톨릭 계열의 노터데임Notre Dame대학교의 이름은 성모마리아를 의미하는 프랑스어 노트르담Notre Dame, Our Lady’에서 나왔다

 

켄터키라는 이름은 원주민 인디언들의 말에서 왔다는 설이 있다. 그 유래는 여러가지인데, 어떤 이들은 이로쿼이족의 언어로 내일의 땅을 의미하는 ‘Ken-tah-ten’이라는 말에서 왔다고 하며, 또 다른 쪽에서는 피의 강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버번Bourbon은 프랑스의 부르봉 왕조의 부르봉을 영어로 읽은 것인데, 독립전쟁 당시 미국을 도와준 프랑스에게 감사하는 의미로 켄터키주의 카운티 하나를 버번이라고 이름 붙였고, 이 지역에서 난 위스키를 버번위스키라 부르게 됐다.

 

켄터키주와 프랑스의 인연은 도시 이름에서도 찾을 수 있다. 켄터키주에서 가장 큰 도시 루이빌Louisville은 프랑스 루이 16세의 이름을 따서 만든 것이다. 미국 중남부 지방에서 ‘-ville’로 끝나는 이름의 도시들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이는 식민지 개척 초기에는 없었던 이름이다. 독립전쟁 이후, 특히 중남부 지방에서 ‘-ville’이라는 이름의 도시들이 많이 생겨났다. 프랑스어로 도시를 의미하는 이 말은 독립전쟁 때 군대를 파견해 미국을 도운 프랑스에 대한 동경과 우호의 상징으로 많은 지역에서 사용됐다. 테네시주의 네시빌Nashville, 아칸소주의 파이에트빌Fayetteville(독립전쟁 때 프랑스군의 사령관이었던 라파이에트La Fayette의 이름에서 왔다), 플로리다의 잭슨빌Jacksonville 같은 중남부 도시들이 그 예다.

 

미네소타의 주명은 원주민인 다코타족의 언어로 흰 거품 물혹은 하늘 빛을 띤 물이라는 뜻이다. 1만 개의 호수가 있는 이 지방과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또한 미네소타주의 북부에는 북미 최대 강인 미시시피강의 발원지가 있다.

 

미주리강의 이름은 강 근처에 살던 미주리부족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미주리족은 자신들의 언어로 우에메수리타Ouemessourita’라고 불렸는데, 이는 카누를 가진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미네소타, 미시시피 같은 주명 속에 들어 있는 mi’가 물과 관련이 있는 것처럼, 미주리주의 이름에도 물과 관련된 카누라는 뜻이 들어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미주리주에서 가장 큰 도시는 세인트루이스Saint Louis. 세인트루이스는 13세기에 프랑스 국왕이었던 루이 9세의 이름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네브래스카라는 발음에서부터 아메리카 인디언들 언어의 느낌이 난다. 네브래스카는 주 전체를 흐르는 플랫강을 부르는 원주민들의 말에서 유래했는데, 그 말의 뜻은 평평한 강이다. 다른 중부의 주들처럼 이 지방도 최초의 탐험가는 프랑스인들이었고, 그들은 이 땅을 루이지애나에 편입시켰다. 네브래스카는 남북전쟁 당시에는 주로 승격되지 못하다가 전쟁이 끝난 다음 주로 승격됐다. 그래서 링컨에게 감사하는 뜻에서 주도의 이름을 링컨으로 정했다.

 

미국에는 같은 이름을 가졌지만 남북과 동서로 분리된 주가 6개 있다. 동부의 버지니아주와 웨스트버지니아주, 사우스캐롤라이나와 노스캐롤라이나 그리고 중부의 사우스다코타와 노스다코타가 그런 주들이다. 여기서 다룰 사우스다코타주는 미국 중북부에 위치한 주다. 다코타주는 1889112, 남북으로 분리되어 같은 날 미합중국의 일원이 됐다. 다코타라는 말은 원주민의 언어로 우리는 친구라는 뜻이다. 원래 이 지방에는 7개의 원주민 부족이 살고 있었는데, 서로 전쟁을 하지 말자는 서약을 맺었다. 그러나 훗날 이 지역에서 이주민과 원주민 간에 심각한 갈등이 일어난 것을 보면, ‘우리는 친구라는 지명이 슬프고도 모순되게 느껴진다.

 

촉토족의 언어로 붉은 사람들이라는 뜻을 가진 오클라호마주는 20세기 초에 합중국에 들어온 막내 주에 속한다.

 

테네시는 이 지방에 살던 체로키족의 언어로 마을을 뜻하는 테나시Tenasi’에서 나온 말이다.

 

테네시주의 멤피스Memphis는 기원전 2200년까지 이집트 고왕국의 수도였던 멤피스에서 따온 이름이다. 멤피스는 그리스식 이름이며, 이집트인들은 이를 하얀 담이라는 뜻의 이네브 헤지Ineb Hedj’라고 불렀다. 이후 신왕국 시대에 다시 이곳이 이집트의 수도가 되면서 오래 가면서 변하지 않는이라는 뜻의 멘 네페르Men nefer’로 이름이 바뀌었고, 이 명칭에서 그리스어 멤피스가 나왔다.

 

애리조나라는 이름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주로 스페인어와 관련된 것이 많다. 스페인어 황무지Zona arida’에서 왔다는 주장이 있고, 북부 스페인의 소수어인 바스크어로 좋은 참나무Aritz ona’에서 왔다는 설도 있다. 스페인과 멕시코를 거쳐 미국의 영토로 편입된 애리조나주는 48번째로 미연방에 합류한 주다. 알래스카주(49번째)와 하와이주(50번째)를 제외하면 가장 늦게 가입했다.

 

플로리다 식민지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식민지다. 1513년 스페인의 탐험가 후안 폰세 데 레온이 이 지방을 발견하고 이곳을 플로리다라고 불렀다. 플로리다는 꽃의 축제를 의미하는 스페인어 파스쿠아 플로리다Pascua Florida’에서 나왔다. 스페인어에서 파스쿠아Pascua는 부활절을 의미하며, 플로리다Florida는 꽃을 뜻하는 플로라Flora에서 나온 말이다.

 

플로리다의 최대 도시 마이애미Miami는 인디언 말로 부드러운 물이라는 뜻이다.

 

광산업 로비스트인 조지 윌링이 광산 개발에 투자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쇼쇼니족의 말 ‘E Dah Hoe(에 다 호)’를 가지고 와 이 말의 뜻이 보석의 땅이라고 퍼뜨리고 다녔다. 하지만 이곳에서 유용한 광물이 발견되지 않았고, 윌링의 실망도 컸다. 이미 아이다호라는 말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간 뒤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시간이 흘러 이 지역에서 정말로 광물이 발견되었고, 지금은 아아디호에서 금, , 구리 등 많은 광물이 채굴되고 있다. 아이다호의 주도이자 최대 도시인 보이시Boise는 프랑스어로 을 의미하는 ‘Bois(부아)’에서 온 말이다.

 

몬태나는 스페인어로 을 의미한다.

 

네바다라는 말은 라틴어의 ‘Nivea’에서 온 말로, ‘눈으로 덮인이라는 뜻의 스페인어가 그 어원이다.

 

뉴멕시코의 주도 산타페는 스페인어로 신성한 믿음이라는 뜻이다.

 

포틀랜드 남쪽에는 주도 세일럼Salem이 있는데, 세일럼은 히브리어로 평화를 뜻하는 샬롬에서 온 말이다.

 

텍사스는 이 지방의 원주민인 카도족의 말로 친구를 의미하는 타이샤를 스페인어로 옮긴 것이다. 미국은 자신들을 불러준 친구의 땅텍사스를 멕시코와의 전쟁으로 합병했다. 그리고 주의 공식 모토를 우정으로 정했다. 친구의 땅을 빼앗았지만 친구와의 우정을 지키고 싶다는 의미를 내비치다니 아이러니하다.

 

텍사스주의 최대 도시 휴스턴은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다음으로 큰 도시다. 휴스턴은 텍사스 개척의 영웅 샘 휴스턴의 이름을 딴 지명이다. 샘 휴스턴은 텍사스 공화국 시절에 대통령을 지낸 인물로, 1836년 텍사스 독립전쟁에서 멕시코의 산타 안나 장군을 생포하여 텍사스의 독립을 받아냈다. 텍사스 독립의 아버지로는 스티븐 오스틴도 빼놓을 수 없다. 오스틴은 미주리에서 300가구를 이끌고 텍사스에 정착한 텍사스 개척의 아버지다. 그의 이름은 텍사스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 오스틴시에 남아있다.

 

유타Utah라는 말은 유트Ute 인디언들의 말로 산에 사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미국의 수도에는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의 이름이 남아 있다. 그런데 워싱턴이라는 이름은 수도 외에도 무려 미국의 88개 지역에서 사용되고 있다. 미국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지명이라 할 수 있다.

 

워싱턴주에서 가장 큰 도시는 시애틀이다. 이 지명은 위대한 인디언 추장인 시애틀의 이름에서 나왔다.

 

미국 50개 주의 모양을 보면 중동부의 주들은 강이나 산맥 같은 지형으로 주의 경계가 자연스럽게 확정되었지만, 서부는 경계가 직선으로 된 주들이 많다. 콜로라도주와 이번에 소개하는 와이오밍주가 완벽한 직사각형의 모양이다. 그만큼 이곳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산악 지대와 드넓은 초원 지대가 많다는 말이다. 와이오밍이란 말은 알곤킨족의 언어로 대초원의 땅을 의미한다. 주도이자 와이오밍 최대 도시 샤이엔Cheyenne도 이 지방의 원주민 샤이엔족의 이름에서 나왔다.

 

캘리포니아는 원래 뉴스페인이라고 불렸던 지역이다. 캘리포니아는 스페인의 한 소설에 등장하는 섬의 이름이다. 16세기 스페인의 소설가 가르시 로드리게즈 데 몬탈보의 작품 에스플란디안의 모험에는 가공의 섬 칼라피아가 나온다. 칼라피아 왕비가 통치하던 이 섬은 금과 진주가 많고 검은 피부의 미인들이 살고 있는 곳이었다. 소설의 내용대로 된 것일까? 실제로 1848년 캘리포니아에서 황금이 발견되었고,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황금을 찾아 서부로 달려갔다.

 

콜로라도는 스페인어로 붉은 빛을 띠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알래스카는 에스키모족인 알류트족의 언어로 섬이 아닌 땅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흔히 이 지방에 사는 사람들을 에스키모라 부르지만, 막상 그곳에 사는 원주민들은 자신들을 인간이라는 의미의 이누이트라고 부른다.

 

하와이Hawaii라는 이름은 이 지방의 원주민 언어로 고향을 뜻하는 오화히Owhyhee’를 영어로 옮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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