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차 계보 - 시발부터 쏘나타까지 Carlife Books 4
정리 외 지음 / 자동차생활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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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타, 폭스바겐, 현대자동차, 르노닛산미쓰비시, GM, 스텔란티스, 혼다, BMW, 아우디, 벤츠

 

작년(2023) 세계 자동차 판매 순위이다. 우리 현대차그룹이 전세계에 700만여대를 팔아서 토요타, 폭스바겐에 이어 3위라니 믿어지지 않는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들어온 차가 포드이고, 현대는 1967년부터 포드의 차를 조립해서 판매하던 회사에 불과했는데, 그 포드는 10위권에 들지도 못했다.

 

포드는 1903년에 설립되었고, 현대는 그로부터 64년 후에야 만들어졌다. 그런데 56년만에 훨씬 멀리 앞서 가고 있다. 대단한 현대, 대단한 한국이다.

 

1903년부터 1980년대까지 우리나라 자동차 역사를 꼼꼼하게 정리한 저자와 같이, 대단한 한국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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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자동차가 들어온 것은 고종황제의 어차 포드 T형이다. (그런데 포드는 1903A형을 처음으로 판매하기 시작하여 1908년에 T형을 시판했으니 다른 차인 듯) 자동차가 일반에 이용된 것은 일본과 합작한 오리이자동차상회가 1912년 포드 T형을 한 대 들여와 택시로 영업을 하면서부터다.

 

1961년 기아는 일본 혼다와 손잡고 모델 C-100을 들여와 처음으로 오토바이를 생산했다.

 

1962년 세바퀴 소형 화물차 K-360(마쓰다)을 시작으로 기아는 상용차 메이커로 자리 잡았다.

 

1962827일 준공식을 갖고 새나라 조립생산에 들어갔다. 일본 닛산의 1961년식 블루버드 P310형 부품을 도입해 조립한 차였다.

 

19665월 신진은 부평공장에서 조립 생산한 (토요타) 코로나를 선보였다.

 

2차 세계대전 후 일본의 각 자동차 메이커들은 생존하기 위해 선진 해외 메이커와 제휴하는 길을 택했다. 닛산은 오스틴, 이스즈는 힐만 그리고 히노는 르노와 합작했다. 토요타자동차공업은 한국전쟁에 따른 특수로 호황을 누리고 순수 국산기술의 승용차를 생산하기 위해 홀로 1950년경부터 개발을 시작하여 1953년 독자적인 엔진개발에 성공한다.

 

19675월 토요타의 최고급차인 크라운을 들여와 우리나라 고급차 시장의 문을 열었다.

 

196711월 소형차인 (토요타) 퍼블리카 생산에 들어갔다. 이로써 신진은 퍼블리카, 코로나, 크라운 등 소형차에서 중형차까지 고른 라인업을 갖추고.

 

퍼블리카는 오늘날 소형차 왕국 일본을 있게 한 출발점이다. (2기통 0.7L 28마력)

 

196712월 설립된 현대는 세계적인 자동차 메이커인 포드와 손잡고. 영국 코티나를 선택했다. 1968년 말에 등장.

 

1968년 아세아는 이태리 피아트사와 자본재 및 기술도입계약을 맺고 광주공장을 완공한 뒤, 19704월부터 피아트 124를 생산

 

19695월 신진자동차의 크라운에 대항해 현대는 독일 포드와 손잡고 포드 20M을 조립 생산했다.

 

1972GM코리아 부평공장에서 승용차 생산에 들어갔다. 이때 처음 내놓은 차가 시보레1700이다.

 

19731월 시장에 나온 레코드1900GM코리아가 신진 크라운의 후계차로 만든 새로운 중형 고급세단이었다. 레코드1900은 엔진, 보디 등 주요부품을 독일 오펠에서 모두 수입해 만들었다.

 

19751월 일본 마쓰다와 손잡은 기아가 파밀리아를 기본으로 한 배기량 1000cc도 안 되는 소형 승용차 브리사를 내놓았다.

 

1975GM코리아는 레코드 1900의 겉모양을 조금 바꾼 레코드 로얄을 내놓았다.

 

1976GM코리아는 시보레1700 뒤쪽을 왜건형으로 고친 캬라반. 앞모습을 바꾼 소형차 카미나.

 

1976년 첫 고유 모델 포니. 설계는 조르제토 쥬지아로. 미쓰비시의 4기통 1.3L 80마력 엔진.

 

1977년 새한자동차는 레코드 로얄의 겉모습을 바꾼 레코드 프리미어를 내놓았다.

 

1977년 대우가족인 된 새한자동차는 제미니를 내놓았다. 제미니는 독일 오펠이 만든 3세대 카데트를 일본 이스즈가 개량한 모델이다. 대우 르망의 뿌리가 되는 카데트는 GM이 월드카 계획에 의해 만들어진 차

 

1977년 현대 중형 모델 마크4

 

1978년 마크4에 맞서 새한 뉴레코드

 

1978년 새한 뉴레코드에 맞서 현대 독일 포드와 기술제휴로 그라나다 V6

 

1978년 새한자동차는 제미니의 뒷부분을 개조해 제미니 픽업 맥스

 

1979년 기아는 푸조와 손잡고 푸조604

 

1979년 기아 피아트132는 그 무렵 중형차 시장을 지키고 있었던 현대 코티나와 비슷하고 새한 뉴레코드보다는 좀 작은 크기였다.

 

1981년 기아는 미니버스 봉고 코치를 내놓았다. 기아가 제휴한 일본 마쓰다의 기술지원으로 탄생.

 

1982년 새한 제미니의 이름을 바꿔 맵시

 

1983년 대우 자체기술로 개발한 첫 엔진 XQ 맵시나

 

1983년 현대 첫 중형 고유모델 스텔라

 

1983년 대우 로얄 프린스/XQ

 

1985년 현대 국내 최초의 앞바퀴 굴림 엑셀

 

1986년 현대 앞바귀 쿨림 쓴 최고급 세단 그랜저

 

1986년 대우 월드카 르망 (오펠 카데트 베이스)

 

1987년 기아 월드카 프라이드 (마쯔다 개발)

 

1987년 기아 콩코드 (마쓰다 카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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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차 예찬 - 칼럼니스트 박규철의 자동차 미학 에세이
박규철 지음 / 가지출판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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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의 크기는 엔진의 실린더 수와 직결되어 있다. 실린더(기통)이 많으면 많을수록 엔진이 커지니 덩달아 자동차의 크기도 커질 수밖에 없다. 자동차의 실린더는 1개부터 20개까지 매우 다양한데 4기통이 주류이다.

https://namu.wiki/w/20%EA%B8%B0%ED%86%B5

 

3기통인 자동차는 대우 마티즈, 대우 티코, 쉐보레 더넥스트스파크(M400), 쉐보레 트레일블레이저, 쉐보레 트랙스, 쉐보레 말리부, 기아 모닝, 기아 레이, 기아 스토닉, 현대 캐스퍼, 폭스바겐 폴로, 미니 원, 볼보 XC40’ 등이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과거 2기통 이하의 자동차를 알게 되어 기쁘다. 특히 이 중에는 아직까지 판매되고 있는 차가 있으니 이탈리아의 피아트 50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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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시트로엥 2CV (1948) 2기통 375cc 9마력 최고시속 63km

독일 BMW 이세타 (1955) 1기통 247cc 12마력 최고시속 83km

이탈리아 피아트 500 (1957) 2기통 479cc 15마력 최고시속 95km

스웨덴 사브 96 (1961) 2기통 841cc 38마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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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다 사장, 샐러리맨의 천국을 만들다 - 인간 중심 유토피아 경영의 신화, 미라이 공업
야마다 아키오 지음, 김현희 옮김 / 21세기북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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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스페셜 야마다 사장 샐러리맨의 천국을 만들다.

https://www.youtube.com/watch?v=sbi2Ajo-8q8

 

2007년에 방영된 다큐멘터리를 보고 읽게 된 책이다. 설마하는 마음에 다큐에 방영된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서 읽었다. 오래전 영상이고 책이라서 그 사이에 미라이 공업이 망했을까 검색을 해보니, 창업자 야마다 아키오는 2014년에 별세했지만 회사는 여전한 것 같다.

 

연극을 했던 사람이 창업을 해서 성공한 비결은 한마디로 감동이었다. 관객을 감동시켰듯 사원을 감동시키면 회사가 성공하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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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은 모든 분야에서 프로가 되려는 무모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 사장도 사람이다. 그리고 사람은 모든 면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 자신의 일이라 생각하던 것을 나누어 사원에게 일정한 권한을 주고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해야 한다.

 

어느 정도 성장을 이루어낸 회사의 창업자는 카리스마 있는 경영자인 경우가 많지만, 그 능력을 다음 세대에게 연결하는 과정에서까지 성공하는 경우는 결코 많지 않다. 경영을 원활하게 계승하고 지속적으로 회사 성적을 이끌기 위해서는 창업자보다 더 카리스마 있는 2세대 경영자의 출현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일가친척들만 모여 있는 곳에서는 그런 인재를 찾는 일 자체가 무리다.

 

얼마 전 우리 회사에 입사한 사원은 이전 회사에서 과장으로 있으면서도 한번도 회사의 회계 내역에 관한 정보를 들은 적이 없는데 평사원으로 들어온 미라이 공업이 자신에게도 회계 정보를 공개하는 걸 보고 감동했다고 말했을 정도다. 사원들에게서 더 좋은 회사를 만들기 위한 건설적인 제안이 끊임 없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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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문화에 시동 걸기 - 자동차 이야기꾼 황순하의
황순하 지음 / 이가서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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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첫 차는 1세대 카렌스다. 10년 넘게 잘 타다가 사고로 폐차를 했다. 천만원 초반대의 가격에 7인승 가스차. 지금 생각해도 가장 가성비가 좋은 차다. 이후 가장 경제적인 모닝 가스차를 샀는데 다섯 식구가 고속도로를 이용할 때마다 겁이 났다. 그래서 다시 3세대 카렌스를 중고로 구입해 타고 있다. 이 카렌스가 개발된 비화를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어서 기쁘다.

 

요즘은 카렌스 같이 실용적인 RV, 왜건들이 모두 단종되어 쓸데없이 차고가 높고 비싼 SUV만 판을 치고 있다. 저자가 르노 세닉을 보고 카렌스를 만들었던 것처럼 르노 캉구와 같은 차를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슬라이딩 도어를 단 왜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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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초 마쓰다가 북미수출용으로 개발했다가 미국 레이건 정부의 강요에 의한 일본차 대미수출 자율규제에 의해 수출하지 못하게 된 121(국내명 프라이드)를 기아자동차가 생산하여 북미시장에 포드 페스티바란 이름으로 공급하게 된 것을 계기로 포드는 1984년 기아자동차 주식 10%를 취득하게 된다.

양질의 저가 소형차의 생산기지로서 기아자동차의 장점을 인식하게 된 포드는 페스티바에 이은 제2탄 북미시장의 소형 SUV 시장을 위한 새로운 콘셉트의 SUV를 생각하게 된다.

당시 가장 앞선 RV 시장이었던 미국에서도 SUV는 각진 스타일과 큰 엔진을 단 대형차들이 대부분이었고, 소형 SUV 시장은 스즈키 사무라이가 구형이라 독특해진 스타일과 저가를 무기로 소량 팔리고 있는 정도의 미개척 분야였다.

포드는 대가로 기아차 주식 50%를 요구하여 다국적 자본의 냉혹한 생리를 드러냈고, 당연히 기아차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기분이 상한 포드는 이 프로젝트를 포기하고 떠나버리게 되고

고민 끝에 최고경영진이 내린 결정은 독자개발이었다.

기아자동차는 당시 기술제휴선인 마쓰다의 323 언더보디를 가져와 현대자동차처럼 차량상체만의 독자모델을 만들어 프라이드 위 세그먼트인 준중형 시장에 진입하려 했다. 그러나 기아의 성장을 견제하고자 했던 마쓰다는 언더보디 제공을 거부

그 후 기아자동차는 독자모델이자 국내 최초의 언더보디 국산화 차종인 세피아가 개발될 수 있었다.

스포티지가 어려운 산고 끝에 훌륭하게 태어나 미국에서 호평을 받고 소형 SUV 시장의 잠재력이 확인되자, 1990년대 중반 포드가 다시 가아자동차에 스포티지의 자사 브랜드 공급을 요청. 기아가 거절하자 포드는 마쓰다와 공동개발에 들어가 비슷한 콘셉트의 SUV를 만들어 시판했다. 그 차종이 포드의 익스케이프이다.

 

나는 1996년 가을 파리 모터쇼에서 출품작들을 바삐 둘러보다가 르노 전시장에 놓인 모델을 보고 뭔가 짜릿한 느낌에 걸음을 멈추었다.

그 모델은 바로 르노가 콘셉트 카로 출품한 메간 세닉이었다.

기존 2박스 스타일의 투박한 밴이나 왜건이 아니라 앞쪽 엔진룸을 최소화하여 카울 포인트를 최대한 앞쪽으로 가져가 차체를 작게 하고도 실내공간을 최대한 확보하는 1.5박스 스타일 미니밴 승용차였다. 소형 승용차에 RV가 결합된 새로운 콘셉트였던 것이다.

당시 경영위기에 빠져 있던 르노는 이 차와 RV 콘셉트를 가미한 다른 승용 모델들의 연이은 히트로 경영부진을 극복하고 여세를 몰아 닛산까지 인수하게 된다.

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세피아 1.8L 언더보디의 7인승 콘셉트는 역시 연구소의 반대에 직면했다. 당시 일본에서 막 출시된 도요타의 입섬 7인승이 코로나 2.0L 언더보디를 기본으로 했으니 아무래도 7인승은 중형차 보디로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별 수 없이 크레도스의 언더보디로 혼다 오디세이와 유사한 중형 미니밴 개발 콘셉트로 변경되어 진행되고 있었을 때였다. 도요타에서 준중형 코롤라 1.5L 보디로 만든 소형 6인승 미니밴 스파시오가 일본 시장에 튀어나왔다.

결국 연구소 엔지니어들의 입이 닫혔고 자존심이 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스파시오가 입섬과 함께 카렌스의 기본설계에 많은 도움을 준 것은 물론이다.

 

<참고>

황순하 자동차칼럼리스트 유튜브 영상

https://youtu.be/HRGqfsL8NAc?si=wAR4Wx4MOBe84uB7

https://youtu.be/ELiL1AuXTGE?si=L478x40bV4_GwCV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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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자동차톡! - 자동차가 왜 좋으냐고 물어보는 당신에게
김우성 지음 / 미래의창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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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활에는 돈이 든다. 특히 자동차 수집이 취미라면 많이. 자동차는 대당 수천만원이 넘으니까. 아무리 싼 중고차라도 수십만원이 넘고, 진짜 오래된 중고차는 수천억이 넘는다. 이건희 회장은 1억원 이상의 차 수백대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고, 부르나이 왕은 수천대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부자라도 자동차를 모으는 것엔 한계가 있다. 이건희는 국내 1위의 회사를 소유했지만 자동차 회사를 만들었다가 실패했다. 부르나이 왕은 현대사회에선 용납되기 어려운 독재권력을 휘두르고 있으니 논외로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현실적인 방안은 무엇일까? 언뜻 떠오르는 건 자동차 대리기사와 자동차잡지 기자이다. 이 책은 바로 자동차잡지 기자가 썼다. 또한 대기기사와 자동차잡지 기자가 되지 않으면서도 자동차 취미생활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첫째, RC카를 사서 조종하는 것이다.

둘째, 이런 책을 읽는 것이다.

 

<밑줄>

북미나 유럽에서 왜건은 특히 엄마의 차로 명성을 쌓아왔다. 일반 세단과 같은 사이즈라 운전하기도 쉽고 실내공간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넓으니 더 없이 좋은 선택이었다. 어린아이 하나가 움직일 때마다 얼마나 많은 짐이 따라다녀야 하는지, 아이를 키워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기저귀 가방에 젖병에서부터 장난감, 인형, 야구 글러브, 축구공, 자전거, 그리고 만약을 대비해 챙여야하는 여분의 옷가지에 이르기까지. 아이들이 어리면 어릴수록 엄마는 정신이 없어진다. 아이를 학교에 태워주고 일터로 직행했다가 퇴근길에는 다시 학교에 들러 애를 태우고 집 앞 마트에 들러 장까지 한아름 봐야 하는 엄마들에겐 왜건은 누가 이런 기특한 물건을 만들었을까? 싶을 정도로 기막힌 차였다.

 

픽업을 이해하려면 미국사회와 미국인들의 생활상을 알아야 한다. 예컨대 퇴근길에 초대형 공구상에 들러 목재를 잔뜩 사다가 집 뒤뜰에 아이들 놀이집을 뚝딱 지어주곤 하는 그들의 생활방식. 혹은 수시로 온갖 기계를 한 아름씩 차에 싣고 와서는 꼬박 1년에 걸쳐 자동차 한 대를 손수 만들어내곤 하는 그들의 자동차 문화 같은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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