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중일기 범우문고 239
이순신 지음, 이민수 옮김 / 범우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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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만큼 극적인 영웅의 삶을 산 사람이 있을까? 젊은 시절 내내 능력과 노력에 비해 낮은 지위에 그쳤다. 전쟁 초에 탄환을 맞았으나 죽지 않았다. 연전연승을 거뒀으나 모함을 당해 사형에 처할 위기를 맞고, 그 사이에 모친상을 당했다. 백의종군해서는 누가 보아도 죽을 싸움에서 극적으로 이기고, 그 사이에 아들이 전사했다. 적장이 죽자 내분으로 후퇴하는 적을 섬멸하면서 전사했으니 불패의 신화를 남긴 것이다.




진도 앞바다 전투에선 죽을 수밖에 없었는데 살았고, 남해도 앞바다 전투에선 죽을 일이 없었는데 자살을 했다. 명량해전은 신의 뜻이었고, 노량해전은 인간의 뜻이었다. 그래서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다.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마라’는 말을 남긴 것이다.




김훈은 <난중일기> 속 이순신의 문체를 빌려다가 <칼의 노래>를 썼다고 한다. 내가 <칼의 노래>를 읽지 않았으면 <난중일기>을 읽지도 않았을 것이다. 좋은 책은 다시 좋은 책을 부르는 징검다리이다. 이순신을 만나게 한 김훈에게 고맙다.  (범우사판 <난중일기>는 편역본이다. 완역본을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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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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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를 읽으면서 전쟁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이순신은 일본해군하고만 싸운 것이 아니라, 조선왕 선조와도 명나라 군대와도 조선 군대와도 조선 백성들과도 싸웠다. 적군만 벤 것이 아니라 도망가는 아군도 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자 일본해군은 본국으로 돌아갔다. 승전하면 큰 자리 주리라 약속했던 사람이 죽었으니 더이상 전쟁을 벌일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돌아가는 일본군을 쫓아가 죽였다.




전쟁이 벌어지면 죽어나가는 건 아군이든 적군이든 백성들뿐이다. 임진왜란·정유재란의 선조도 병자호란의 인조처럼 싸움 한번 하지 않고 깔끔하게 항복해야 백성들에겐 더 나은 것 아니었을까? <남한산성>에선 백성들에게 결사항전을 명령하지 않았던 인조와 <칼의 노래>에선 정 반대의 행동을 하는 이순신을 같은 작가가 그렸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전쟁이 벌어지면 우리들에게 필요한 지도자는 인조일까 이순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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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기별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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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김훈을 읽고 있다. <남한산성>으로 시작해서, <칼의 노래>, <자전거 여행1·2>, 그리고 바로 이 <바다의 기별>을 읽었다. <남한산성>과 <칼의 노래>는 소설이고, <자전거여행1·2>는 여행기이고, <바다의 기별>은 중수필이다. 같은 중수필일 듯한 <밥벌이의 지겨움>과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를 아직 읽어 보지 못했지만 <바다의 기별>에서 대충 김훈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김훈은 사람을 어느 쪽으로 편가르는 것을 싫어하고, 나 역시 그게 옳지 않다고 생각하나, 언어로 표현하려면 아나로그의 세상을 디지털로 편 가를 수밖에 없다. 이점을 전제로 조심스레 편을 가르자면, 김훈은 합리적인 보수주의자이다. 고종석 같은 괜찮은 보수주의자, 자유주의자를 만난 느낌이다.  


김훈의 강의를 듣다가 ‘경험해보지 않은 것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장인어른의 말씀을 듣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비슷한 말씀이었다. ‘가부장적, 남성우월적, 현실적’인 그의 생각은 그의 삶과 경험 속에서 형성된 듯했다. 그러나 ‘경험한 것에 대해서만 말해도 안된다.'  왜냐면 경험한 것에 집착하게 되면 주관에 몰입하여 객관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 장인어른의 경우는 전쟁 중에 죽은 사람들을 보았다. 따라서 전쟁의 아픔을 누구보다도 잘 아신다. 하지만 그 아픔 때문에 일상에도 늘 전쟁 중에 계신다.  


로쟈는 김훈을 허무주의자로 규정했다. 내가 규정한 합리적 보수주의자보다는 그의 말이 더 맞는 것 같다. <바다의 기별>에서 발췌한 다음 구절에 따르면 말이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듯이, 우리말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과학적이고 훌륭한 말이라고는 나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건 학교가 가르치는 거짓말이에요. 학교는 학교를 유지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가르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어요. 이것은 나쁜 일은 아니에요. 학교는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가르치지만 직업에는 정말 귀천이 없을까? 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면 대학을 왜 다녀. 그러나 학교는 또 그렇게 가르칠 수밖에 없는 거예요. 나는 그것을 나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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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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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 이강석, 행정실장 이강복, 두 사람은 쌍둥이였다. ······ 설립자 이사장이 이준범이고, 아마도 그 쌍둥이 아들들이 이강석과 이강복인 모양이었다.

- 전형적인 족벌사립학교




“이 사람 참 말 길게 해야 알아듣는구만. 원래는 큰 거 한 장인데 안사람이 서울 조카애의 친구라서 작은 거 다섯 장으로 하겠다는 거예요. 이달 안으로 행정실에 제출하세요. 수표는 안됩니다.”

- 교사채용 조건으로 금품을 요구




말 끝에 수위는 빙그레 웃었다. 말투 자체는 공손했으나 강인호의 귀에는 ‘신경쓰지 말고 어서 꺼져, 인마’처럼 들렸다.

- 수위도 내막을 잘 알고 있으나 밝히지 않는다




“참 나, 어디서 이런 씹새가 굴러왔어? 너 지금 누구 훈계하냐? 경찰서에서까지 나온 거 못 봤어? 지금 학교가 발칵 뒤집혔는데 너 말고도 줄서 있는 선생들 많아!”

- 신규교사를 함부로 대하는 행정실장




“당신들 이렇게 날 해고할 순 없어!” ······ “밖의 저 사람 누굽니까? 왜 그러시는 거죠?” ······“내가 전에 충고하지 않았나요? 그거 알아서 뭐 하시려고요?”

- 학교의 비리를 알린 죄로 해고당한 교사, 영문을 몰라 묻는 신규교사, 동료교사가 잘려나가도 미동조차 하지 않는 교사




“교장선생님은, 서간사도 아시다시피 이 지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점잖고 훌륭한 분인데, 어떻게 귀머거리 애 말 하나만 믿고 그분에게 경찰서로 갑시다, 합니까”

- 경찰도 한패




최수희 장학관은 성폭행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 “우리 소관이 아니네요”

- 교육청도 한패




시청 사회복지과 장과장은 ······ “학교 일인데 교육청으로 가셔야지”

- 시청도 한패




시의원 몇명이 성폭행으로 성추행으로

- 시의원도 한패




담임목사가 ······ “우리 성도 가운데 두 사람이 지금 큰 고통 중에 있습니다 ······ 남자니까! 사춘기 가슴 빵빵한 아이들 보고 ······ 그럴 수 있는데!”

- 목사도 한패




“성폭행의 경우에는 외음부 외에도 다른 신체부위에 멍이나 상처가 함께 있는 경우가 많아 식별하기가 쉽습니다. ······ 다른 멍자국이나 신체의 상처는 전혀 없습니다.

- 의사도 한패




“유리 할머니도 합의서를 내셨대”

- 가해자와 피해자가 합의, 피해자를 돕던 사람들에게 이제 가해자가 역공할 차례




판사의 선고가 끝나고 수화통역사가 마지막 숫자와 함께 집행유예라는 것을 알리자

- 변호사, 판사도 한패




보수언론들은 ‘연약한 처녀의 몸으로 자신보다 몸집의 큰 남학생들에게 폭력을 당한 그녀는 여기저기 타박상을 입고 눈이 찢어졌으며 대인공포증에 시달리고 있어 상당한 후유증이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 가해자와 피해자를 바꿔버리는 보수언론도 한패




진실이 가지는 유일한 단점은 그것이 몹시 게으르다는 것이다. 진실은 언제나 자신만이 진실이라는 교만 때문에 날것 그대로의 몸뚱이를 내놓고 어떤 치장도 설득도 하려 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진실은 가끔 생뚱맞고 대개 비논리적이며 자주 불편하다. 진실 아닌 것들이 부단히 노력하며 모순된 점을 가리고 분을 바르며 부지런을 떠는 동안 진실은 그저 누워서 감이 입에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세상 도처에서 진실이라는 것이 외면당하는 데도 실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면 있는 것이다.

- 불행한 결말에 대한 작가의 변론




사립학교 교장, 행정실장 형제가 학생들을 집단적으로, 지속적으로 성폭행하여 학생들이 자살을 했는데도 그 학교 교사, 수위, 그 지역 경찰, 교육청, 시청, 시의원, 목사, 변호사, 판사, 언론이 다 한패로 비호한다. 물론 일부 교사, 시민단체, 목사, 진보언론, 인권위 등에서 피해학생을 돕지만 중과부적이다.




이 소설의 결말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불편해한다. 현실은 비극이지만 소설에서 희극이 되어 준다면 사람들이 희망을 가지게 될텐데라는 불만이다. 하지만 작가는 단호하다. 예술에 비극이 많은 이유는 비극이 찜찜함, 즉 혼란을 주기 때문이고 그것이 진정한 희망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독자들의 감정이입을 위해선 소설의 주인공은 독자들과 같은 소시민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2009년 9월 전국국어교사 강연회에서)




나는 소설 속 주인공과 비슷한 사건을 겪고서 해직을 당했다가 복직했다. 그 과정을 소설로 묶어낼 마음이 있었으나 가해자들의 명예훼손 역공도 두렵고, 더 두려운 것은 내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소설 속에서 제대로 형상화되지 않았다고 서운해 할까봐 감행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도가니>에는 내가 쓰고 싶었던 대부분의 에피소드가 담겨있다. 다만 매우 중요한 플롯이 빠져있다. 그건 바로 노조의 힘으로 승리를 얻어낸다는 점이다.




작가가 <무진기행>에서 발상하여 <도가니>를 썼듯, 나도 훗날 이 <도가니>의 속편에 해당하는 소설을 쓰고 싶다. 앞서 <도가니>를 읽고 힘들어했던 많은 독자들이 위해 진실이 거짓을 이기는 결말을 만들어 주고 싶다. 다만, 소설 속에 형상화될 내 주변 사람들의 원망을 없애거나 피하는 방법에 대해 공지영씨의 특강을 먼저 듣고 나서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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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배 2010-02-03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상적이구나. 네가 겪은 어려운 일을 다시 돌아보며 공정택 같은 이들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같이 마음손 잡고 이 되먹지 않은 시대를 잘 살아가자꾸나.

신나 2010-04-14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승훈이형 여기까지 왕림하시다니 영광입니다. 감사감사

신나 2010-04-14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고로 이 소설 우리학교 국어과에서 추천도서로 올렸는데 관리자가 허락을 안하더군요. ㅋㅋ
 
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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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5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장별로 화자가 다르다. 그 중 남편의 시각과 목소리로 펼쳐지는 3장 <나, 왔네>에서만 동일시, 몰입을 할 수 있었다. 좀 지나친 건의일 수 있으나 각 장별로 나눠서 출판했으면 어떨까 싶다. 그래서 독자가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서술자를 골라 읽게 말이다. 총 만원이니까 각 이천원씩 사서 읽을 수 있게... 

아무튼 3장은 눈물을 흘리면서 읽었다. 우리 아버지는 어머니랑 함께 외출하실 때 항상 저만치 앞서 가셨다. 처음엔 별로 보기 좋지 않았는데, 다른 집 부부도 그런 경우가 많길래 부부사이란 게 원래 그러려니 했다. 나도 결혼을 해 보니 신혼 초 이후에는 손도 안 잡을 뿐더러 나란히 가지도 않게 되었다. 두손 꼭잡고 나란히 걷는 부부를 보면 왠지 부부가 아니라 불륜처럼 보이고... 

그러나 이 책을 보고 얻은 교훈이 있다면, 아내랑 걸을 때 나란히 걷든가, 최소한 뒤에서 걸어야 겠다는 거다. 음, 이건 농담이고, 남자들이 많이 읽고 반성을 했으면 좋겠다. 우리 장인어른에게도 조심스레 권해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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