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가붕가레코드의 지속가능한 딴따라질
붕가붕가레코드 지음 / 푸른숲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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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밴드의 삶을 그린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우울을 지울 수 있길 기대했다.

우리 땅에서도 음악하면서 배가 고프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를 했다.

제목이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내용은 제목과 달랐다.

다만 '장기하와 얼굴들', '브로코리 너마저'와 같은 성공한(?) 인디밴드들의 처음 모습을 살피는 재미는 있다.

예술가를 공무원으로 채용하는 혁명이 있지 않는 한,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을 기대하는 건 무리인가?

 

덧붙임 : 장기하가 서울대 출신이라는 건 이 책을 읽고서 알았다. 먹물에 대한 편견일까 '싸구려 커피'의 짠한 느낌이 반감되었다. 결국 예술이 지속가능하려면 믿는 학벌이 있어야 하는가?

 

<밑줄>

먹고살 걱정이 없다면 뻥이다. 한때 취업을 했던 덕원은 전업으로 음악을 하기로 마음먹은 후에도 가끔 농담 반 푸념 반 정기적으로 월급 나오는 직장에 대한 미련을 털어놓고는 한다. 곰사장, 나잠 수, 김 기조 역시 붕가붕가레코드를 먹고살 일로 생각하고 매진했던 적은 없다.

이럴 때 큰 도움이 되어주는 것이 학벌이 좋다는 점이다. '지금 좀 놀아도 나중에 잘될 수 있을 거야'라든가 '이거 그만둬도 딴 일 할 수 있다' 하는 생각은 생계에 대한 고민을 미뤄줄 수 있는 여유를 갖게 한다. 유학파의 등장이라든가 평등주의 정권에 의해 잃어버린 10년이라고는 해도 여전히 권력을 쥐고 있는 이들 다수는 학벌 좋은 이들이고, 여전히 학벌은 미래 수익을 보장하는 데 한국사회에서 가장 잘 듣는 약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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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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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조의 요조, 기타등등을 읽고 나서, 요조가 왜 요조란 별칭을 썼을까 궁금해서 읽게 된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하지만 이번 정차역은 별로. 다음은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역으로 출발. 독서는 충동이다.  

 

<밑줄>

서로 속이면서, 게다가 이상하게도 전혀 상처를 입지도 않고,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듯, 정말이지 산뜻하고 깨끗하고 밝고 명랑한 불신이 인간의 삶에는 충만한 것으로 느껴집니다.

 

뭐 재미있는 책 없어? 빌려줘요.

저는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라는 책을 책장에서 골라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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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게 살아라
로타 J. 자이베르트 외 지음, 유혜자 옮김 / 김영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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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에 갔다가 우연히 집어든 책. 다 읽지 못해서 거금(?) 900원이나 주고 중고로 구입했다. 그러나 끝으로 갈수록 실망만... 단순하게 살라는 게 아니라 효율적으로 살라는 말이었다. , 그저 그런 처세술 책이었던가.

 

<밑줄 쫙>

사실 인간은 원래 단순한 동물이다. 동물원이나 천연 방목장에서 우리와 많이 닮았다는 원숭이를 관찰해 보면, 그들이 장시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빈둥거리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순하다는 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좋았는데...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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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n 스티브 잡스
제프리 영 외 지음, 임재서 옮김 / 민음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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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2014/12/18 15:07   http://blog.hani.co.kr/jinwoongyong/46334

영화를 보면 미국 사람들은 자기 집 차고에서 차를 직접 수리합니다. 차고가 단지 주차장의 역할만 하는 게 아니라 차를 수리하는 카센터의 역할을 합니다. 물론 미국은 카센터가 우리처럼 집 가까이에 있지도 않고 수리비가 비싸서 자가 정비를 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꼭 그런 이유 때문이라기보다는 미국인들이 주체적이라서 그런 것 아닐까요? 내 것은 내가 수리한다는 자세 말입니다.

 

꼭 자동차뿐만이 아니라 차고에서 여러 가지를 수리합니다. 심지어 차고 판매(garage sale)라 하여 집에서 쓰다만 물품들을 차고에서 팔기까지 합니다. 이처럼 차고는 미국인들에겐 주차장, 수리점, 판매점의 다용도공간입니다. 현재 주가 총액으로 세계 1위인 애플도 미국의 어느 가정집 허름한 차고에서 시작했다는 사실이, 차고가 단지 차고에 불과하지 않다는 단적인 사례입니다.

 

주말이면 주민들은 차고 작업대에서 소일하며 지냈다. 스티브는 무료함을 떨치고 무엇인가를 배우고 싶은 마음에 혼자 기웃거렸다. 그러면 그들이 스티브를 차고로 불러 놀게 했다 ... 모든 주택의 차고에는 스티브에게 기꺼이 한수 가르쳐 주려는 기술자들이 있었다. 스티브는 방과 후 그 차고들에 있는 박스 속에서 예비 부품들이나 못 쓰게 된 장치들을 꺼내 분해했다 ... 차고에서 취미로 기기를 설계하는 사람들과 프로젝트나 실험을 준비하는 고교생 ... 스티브는 페르난데스와 워즈가 만드는 컴퓨터에 깊은 관심을 가지면서부터는 페르난데스의 차고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 애플의 사무실인 허름한 차고 ... 차고에서 컴퓨터를 만드는 작은 회사 - <아이콘 스티브 잡스 제프리 영 씀, 민음사 냄 >”

 

스티브 잡스가 죽은 후에도 애플은 여전히 건재합니다만 이건희가 일어나지 못하는 삼성은 침몰하고 있습니다. 그런 까닭은 미국은 가정마다 차고에서 새로운 스티브 잡스들이 끊임없이 재탄생되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특목고니 자사고니 하는 곳에서 단 한명의 이건희만을 쥐여 짜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창조 경제'란 말은 마치 정의롭지 않던 시절 '정의 사회 구현'을 들고 나온 것처럼 이 사회가 얼마나 획일적이고 수동적인지를 자인하는 꼴입니다. 진정 창조적이 되고 싶다면 각 가정이 차고가 있는 집에서 아이들을 키울 수 있도록 정부가 제도를 마련해줘야 합니다. 차고가 아닌 자사고는 차버리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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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거부 그 후 - 졸업장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 유스리포트 YOUTH REPORT 1
한지혜 외 지음 / 교육공동체벗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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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는가?

행복하기 위해!

그럼 행복이 무엇인가?

출세? 성공? 일용할 양식?

대졸 학력이 아니면 출세니 성공은커녕 일용할 양식조차 얻기 힘든 게 우리 사회의 현실이니 사람들은 살기 위해 행복을 위해 대학입시에 매몰한다. 그런데 과연 그게 정답일까? 물론 정답이란 게 애초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현실적인 모범답안이라고 치자. 하지만 그 모범답안이란 게 결코 정답은 아니라는 점도 함께 기억해야 한다.

 

<밑줄 쫙>

대학거부선언 당시 우리를 향해 노골적인 거부감을 표현했던 몇몇 사람들은 우리가 아픈 기색을 내비치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물어뜯을 것이다. “거봐! 내가 대학거부하면 쓰레기 된다고 했지!”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건 너무 잔인하다. 왜 모두가 아픈 세상에서 우리만은 야호하면서 밝아야 하지?

반대로, 대학을 가지 않아도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는 어른들도 있다. 그들의 말을 그대로 믿어선 곤란하다. 그 사람들은 대부분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다. 심지어 명문대 출신일 가능성이 높다. 내가 만났던 교사들을 포함해 주변 어른들도 그랬다. 대부분 386세대였다. 나는 그들로부터 대학 안 가도 된다”, “학력은 아무것도 아니다”, “대학 졸업장은 살아가는 데 소용이 없다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듣고 살았다. 하지만 내가 졸업장 없이 부딪혀 본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여전히 한국 사회는 학력과 학벌의 체계로 공고하게 짜여져 있다. 자신들이 살아 보지 않은 삶에 대해 현실은 이렇다라고 단정 지어서는 안 됐다.

나의 선택을 후회한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대학거부 이후의 삶을 단정 짓고 미화하는 게 싫을 뿐이다. 대학을 안 가도 똑같은 삶의 조건이 주어지는 것처럼 행복한 삶을 자신 있게 장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공갈빵을 한가득 사 먹어야 한다. 누군가의 행복은 함부로 장담해 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이런 식의 장담 역시 우리에게 성공적인 삶을 강요하는 다른 버전의 압박에 불과하다.

헛된 희망을 심어 주거나 우리의 불행을 통쾌해하는 대신 가위를 들고 가시를 잘라 나가는 작업을 함께할 수는 없는 걸까? 중고등학교가 대학만을 좇지 않고 원래의 목적을 되찾을 수 있도록 노력할 순 없을까? 이력서의 학력 기재란을 없앨 수는 없을까? 대학을 선택하지 않아도, 선택하지 못해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먹고살 수는 없는 걸까? 원래는 대학을 가는 길과 안 가는 길, 양쪽 모두 곧고 평행하게 존재해야 하는 길이다. 대학은 수많은 선택지의 하나로 존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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