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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세전 ㅣ 창비교양문고 6
염상섭 지음 / 창비 / 1993년 10월
평점 :
품절
3.1 ‘만세 전’의 겨울이 시간적 배경이다. '나'(이인화)는 동경(도쿄) 유학생으로 경성에 있는 아내가 위독하단 전보를 받고, 신호(고베), 하관(시모노세키), 부산, 김천을 거쳐 경성에 도착한다. 아내의 장례를 치르고 다시 일본을 향해 출발한다.
아내가 죽을 것 같다는 전보를 받고 “아직 죽지는 않은게로군!”, 죽기 직전의 아내를 두고 “어서 끝장이나 났으면!”, 죽은 아내에 대해 “하나를 낳아 놓으니까 신진대사로 하나는 가야지요.”라고 말하는 남편이다.
가족에 대해서도 그런 생각을 하니, 민족과 민중에 대한 인식 역시 지극히 개인적이다.
물론 일제강점기인 1924년에 출간된 소설이란 점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일제의 탄압으로 처음엔 연재가 중지되었으니까. 작가 염상섭이 일본 유학 중에 만세운동을 주도했다가 구속된 점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만세전의 주인공 이인화는 채만식 태평천하의 주인공 윤직원 영감처럼 비판을 하기 위해 만든 인물은 아닌 것 같다. 그럼 이인화를 이해해 달라는 말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이인화)를 이해하기 힘들다.
지금 우리 사회에 나는 만족하는가? 만족한다면 이유는 특별한 불이익을 받지 않아서일 것이다. 그러나 불만을 갖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들은 불이익을 받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밑줄>
부부간에 서로 믿는다는 것은 결국 사랑한다는 말이지만, 사랑한다는 것도 극단에 가서는 남이 나를 사랑하거나 말거나 저 혼자의 일이다. 저 사람이 받지 않더라도 자기가 사랑하고 싶으면, 자기가 만족할 데까지 사랑할 것이다. 사람에게는 사랑할 자유도 있거니와 사랑을 하지 않을 자유도 있다. 부부간이라고 반드시 사랑하여야 한다는 법이 어디 있을까.
나는 그 소위 우국지사는 아니나 자기가 망국백성이라는 것은 어느 때나 잊지 않고 있기는 하다. 학교나 하숙에서 지내는 데는 일본사람과 오히려 서로 통사정을 하느니만큼 좀 낫다. 그러나 그외의 경우의 고통은 참을 수 없는 때가 많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망국백성이 된 지 벌써 근 십년 동안 인제는 무관심하도록 주위가 관대하게 내버려 두었었다. 도리어 소학교 시대에는 일본 교사와 충돌을 하고 퇴학을 하고 조선 역사를 가르치는 사립학교로 전학을 한다는 둥, 솔직한 어린 마음에 애국심이 비교적 열렬하였지마는, 차차 지각이 나자마자 일본으로 건너간 후에는 간혹 심사 틀리는 일을 당하거나 일년에 한번씩 귀국하는 길에 하관에서는 부산, 경성에서 조사를 당하고, 성이 가시게 할 때는 귀찮기도 하고 분화기도 하지만는 그때뿐이요, 그리 적개심이나 반항심을 일으킬 기회가 적었었다.
덕의적 이론으로나 서적으로는 무산계급이라는 것처럼 우리 친구가 되고 우리 편이 될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실제에 그들과 마주 딱 대하면 어쩐지 얼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다. 혹은 그들에 대한 혐오가 심하여지면 심하여질수록 그 원인이 그들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는 논법으로, 더욱더욱 그들을 위하여 일을 하여야 하겠다는 결론에 이르게 될지는 모르나, 감정상으로 그들과 융합할 길이 없다는 것은 아마 엄연한 사실일 것 같다.
소위 구제니 자선이니 하는 것은 향기 있고 아름다운 말이나 행위로 알지만, 실상은 사회가 병들었다는 반증밖에 아니 되고, 그 어느 구석에든지 이기적 충동이 있다고 보이는데요.
인생의 이상이란 것은 나는 생각해 본 일도 없습니다마는, 구태여 말하자면 자기를 위하여 산다 할까요. 하지만 결코 천박한 이기주의로 하는 말은 아닙니다.
순사나 헌병이라도 조선인보다는 일본인 편이 나은 때가 많다. 일본 순사는 눈을 부라리고 그만둘 일도, 조선 순사는 짓궂이 뺨을 갈기고 으르렁대고서야 마는 것이 보통이다. 계모 시하에서 자라난 자식과 같은 심보다. 불쌍한 처지에 있는 사람끼리 만나면 피차에 동정심이 날 때도 있지마는, 자기 자신의 처지에 스스로 불만을 가지고 자기 자신에 대한 증오가 심하면 심할수록 자기와 똑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 더 밉고 보기싫어서 그런가 보다. 혹시는 제 분풀이를 여기다 하는 것일 것이다.
생각하면 조선사람이란 무엇에 써먹을 인종인지 모르겠다. 아침에도 한잔, 낮에도 한잔, 저녁에도 한잔, 있는 놈은 있어 한잔, 없는 놈은 없어 한잔이다. 부어라! 마셔라! 그리고 잊어버려라! 이것만이 그들의 인생관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