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리베로
홍명보 지음 / 은행나무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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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그 사람을 보여주듯, 글 또한 쓴 사람의 모습이 어느정도 묻어나게 되어 있다. 영원한 리베로의 글들도 그러했다. 요만큼의 오버도 없이 담담하고 성실한 글. 화려한 기교는 없지만 기본에 충실한 글. 쉽게 읽히지만 마음에 묵직한 여운을 남기는 그 글들은 홍명보가 잔디 위에서 보여주던 든든한 플레이와 무척 닮아있다.많은 선배들이 계신데 내가 이런 책을 펴내도 될 지 모르겠다며 머뭇거리는 그의 겸손함도 진솔한 글들을 한층 더 가치 있게 하였다.

크게 자극적이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하지만 별 지루함 없이 끝까지 읽어내릴 수 있었던 것은 문장 하나하나에 진실함이 배어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좋은 질의 종이에 보기 좋은 사진들이 적소에 배치된 편집도 한 몫 했다. 홍명보의 귀여운 아기 사진같은 것도 재미있었지만, 중간에 크게 들어간 황선홍의 미소도 정말 압권이다.

결정적으로 적시에 출간된 책이다. 국민 모두가 월드컵이라는 축제에 홀려 있는 요즘, 축구, 게다가 우리의 우상이 된 축구 선수의 자서전이라니...누가 찬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도 5월 출간 직후에 이 책을 읽었다면 이 정도로 칭찬을 늘어놓지는 않았을 것이 자명한 일이다. 별도 한 두 개쯤은 뺐겠지.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은 하지 않으련다. 오랜만에 기분 좋은 사람냄새에 푹 취한 이 기분을, 그런 어설픈 냉철함으로 깨고 싶진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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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듦에 대하여 - 여성학자 박혜란 생각모음
박혜란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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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큰 기대 없이 한가할 때 펴들기 좋은 책이다. 많은 이들이 공감할만한 얘기, 그것도 자신이 나이먹어가며, 살아가며 체험한 얘기들을 술술 풀어놓는 저자의 입담은 제법 구수하다. 하지만 그냥 '공감'에서 끝나고 만다. 책 한 권에서 늙어감에 대한 해결책을 찾으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묵직한 화두 하나쯤은 던져주어도 좋으련만.

그리고, 수필집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이 책 또한 용두사미격이다. 이것 저것 제목과 걸맞는 담론을 풀어 내는 것 까진 좋았는데, 왜 마무리가 저자가 해외에 다니면서 여성학을 강의한 사례와 느낀점으로 매듭되는지? 제목과 흐름을 깨는 애매한 결말이 책을 읽으면서 그나마 느꼈던 사소한 고민마저 흐릿하게 휘저어 놓는다.

노전 생활이 없듯이, 노후 생활이라는 것도 없다...사람은 어느 순간 노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나이 먹어가는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쉽게 엮어낸 점은 참 좋았는데... 덮고 나서는 책보다는 박혜란이라는 사람 자체에 대해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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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 (양장)
이케다 가요코 구성, C. 더글러스 러미스 영역, 한성례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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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내용에 대한 사전지식은 있었지만, 분량에 대한 사전지식은 없었던 관계로...처음엔 조금 당황스러웠습니다. 책을 사서 버스를 기다리는 10분 동안에 다 읽어버렸거든요. 메일 한 통 분량이 책 한 권으로 꾸며지다니...책을 읽는 시간 자체를 즐기는 편이라, 함량 미달의 내용을 상술로 펴낸 것이 아닌가 잠시 불쾌했습니다. 하지만 내용을 반추해보고, 이야기 책이라기 보다는 한 권의 시집이거나 그림동화책이라고 생각하니 그제서야 책이 조금은 달리 보이더군요. (하이쿠 모음도 책이 되는데 뭘...)

책이 담고 있는 메세지는 당연히 '사랑'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제목과 책 전반에 흐르는 분위기에서 느껴지는 거창한 세계애나 인류애보다는 좀 더 구체적인 '자기애'가 주요 메세지라고 느껴지는군요. '나는 먹을 것 입을 것 걱정이 없으니 참 행복한 사람이로구나...어, 내가 세상 사람들의 1/100 안에 해당되는 것을 누리고 있다니...대단한걸.' 하는 조금은 이기적인 쾌감, 거기에서 비롯된 자기애가 세상에 대한 애정보다는 우선해서 느껴지니까요.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런 자기애야말로 더 넓고 많은 대상을 향한 애정들의 기본이 아닐까요.

'20명은 영양실조이고 1명은 굶어죽기 직전이고 그러나 15명은 비만입니다' 상당한 충격을 전해주는 문장입니다. 이제까지는 세계 각지에서 굶주림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가난 구제는 나랏님도 못한다네~'하고 태연하기만 했거든요. 하지만 이 한 줄의 문장이 그 어떤 캠페인보다도 더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그들의 굶주림은 나랑 상관 없는 일이라던 무심함이 부끄러워지고, 그들의 먹을 것을 빼앗아 먹고 살이 오른 듯 제 자신이 굉장히 탐욕스러운 속물로 느껴지더군요.

무심함과 부끄러움, 그 둘 사이엔 굉장히 큰 차이가 있겠죠. 지금 당장 굶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보탬이 못 될지라도, 점차 많은 사람들이 그런 마음을 가지고, 시간이 더 흐른다면 결과는 분명히 달라질 것입니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표지에 박힌 책들은 별로 달가와하지 않는 편입니다. 내가 동심을 버리고 속물이 된 건지, 잘 팔리니까 급조한 가짜가 많은 건지, 그런 책들을 읽고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거든요. 세계가...를 읽고도 솔직히 굉장히 감동했다던가, 세계관이 바뀌었다던가 하는 큰 변화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메일 자체가 원체 발상의 전환을 유도하는 참신한 내용이고, 책의 구성이나 편집이 깔끔하고 예뻐서 그런대로 괜찮았다...싶네요.

'중학교에 다니는 우리 큰딸아이의 담임선생님은...'하고 책이 시작되죠. 정말 중학생 정도의 친구들, 예민한 마음이 세상에 자꾸 상처 입는 시기의 친구들에게 적극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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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빨개지는 아이
장 자끄 상뻬 글 그림, 김호영 옮김 / 열린책들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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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구분지어 말하자면, 전 장 자크 상페의 글 보다는 그림의 팬입니다. 글도 좋지만, 그림이 없는 그의 글은 상상이 안 되는걸요. 아무렇게나 쓱쓱 그려낸 것 같이 자유와 기지가 느껴지는 오밀조밀한 삽화들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언제나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고물거리고 있는 아기의 주먹을 펼쳐보는 기분이 들어요.

동심의 흐름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을 적절한 순간에 들여다볼 수 있는 능력은 아무에게나 있는 것이 아닐겁니다. 특히나 나이 먹어 어른이 되어서도 그런 능력을 유지하기는 정말 어렵겠지요. 하지만 꼬마 니콜라를 처음 봤을 때의 감동이 얼굴 빨개지는 아이에서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을 보면, 상페는 그 어려운 일을 어찌어찌 해나가고 있는 것 같네요. 책을 다 덮고 나면, 잠시 푹 쉬었다는 개운함이 느껴지는 참 예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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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물고기 무지개 물고기
마르쿠스 피스터 지음, 공경희 옮김 / 시공주니어 / 199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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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너무 예뻐서 몇 번이고 아이에게 사 주려고 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너무 어려운 내용 아닐까?'하는 우려 때문에 계속 미뤄만 왔습니다. 하지만, 직장 선배님이자 육아 선배님께서 책의 내용을 꼭 완전히 이해해야하는 것은 아니라고, 그림이 예뻐서 보다 보면 생각이 커지면서 내용에도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고, 지금은 아이의 수준에 맞춰 쉽게 이야기 해주는 것도 좋을 거라고 조언해주시더군요. 그 말에 힘을 얻어 어제 아이에게 사다주었는데요, 반응이 아주 좋네요.

아직 사고가 단순한 아이를 위해 무지개 물고기가 잘난척 할때는 크게 '흥~', 얄미운 목소리로 '싫어! 이걸 왜 널 주니!'하고 억양을 강조해서 들려주니 무지개 물고기가 나쁜 행동을 한다는 걸 깨달은 듯 '때치'를 해주더군요. 문어 할머니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그림이 워낙에 정서를 잘 반영하여 그려진 때문에, 따로 부연 설명을 안 해도 엄숙하고 신비롭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 제 눈에도 보였습니다.

나중에 무지개물고기가 은빛 비늘을 나누어주자 자기도 신이 나서 '이거도(얘도) 주고, 이거도 주고, 이거, 이거도 주고' 난리예요. 모두 행복해진 다음에는 무지개 물고기가 착해졌으니까 쓰다듬어 주라고 했지요. 그림책의 그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또 그림만으로도 아이가 특정한 정서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숙지하게 해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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