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 (양장)
이케다 가요코 구성, C. 더글러스 러미스 영역, 한성례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의 내용에 대한 사전지식은 있었지만, 분량에 대한 사전지식은 없었던 관계로...처음엔 조금 당황스러웠습니다. 책을 사서 버스를 기다리는 10분 동안에 다 읽어버렸거든요. 메일 한 통 분량이 책 한 권으로 꾸며지다니...책을 읽는 시간 자체를 즐기는 편이라, 함량 미달의 내용을 상술로 펴낸 것이 아닌가 잠시 불쾌했습니다. 하지만 내용을 반추해보고, 이야기 책이라기 보다는 한 권의 시집이거나 그림동화책이라고 생각하니 그제서야 책이 조금은 달리 보이더군요. (하이쿠 모음도 책이 되는데 뭘...)

책이 담고 있는 메세지는 당연히 '사랑'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제목과 책 전반에 흐르는 분위기에서 느껴지는 거창한 세계애나 인류애보다는 좀 더 구체적인 '자기애'가 주요 메세지라고 느껴지는군요. '나는 먹을 것 입을 것 걱정이 없으니 참 행복한 사람이로구나...어, 내가 세상 사람들의 1/100 안에 해당되는 것을 누리고 있다니...대단한걸.' 하는 조금은 이기적인 쾌감, 거기에서 비롯된 자기애가 세상에 대한 애정보다는 우선해서 느껴지니까요.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런 자기애야말로 더 넓고 많은 대상을 향한 애정들의 기본이 아닐까요.

'20명은 영양실조이고 1명은 굶어죽기 직전이고 그러나 15명은 비만입니다' 상당한 충격을 전해주는 문장입니다. 이제까지는 세계 각지에서 굶주림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가난 구제는 나랏님도 못한다네~'하고 태연하기만 했거든요. 하지만 이 한 줄의 문장이 그 어떤 캠페인보다도 더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그들의 굶주림은 나랑 상관 없는 일이라던 무심함이 부끄러워지고, 그들의 먹을 것을 빼앗아 먹고 살이 오른 듯 제 자신이 굉장히 탐욕스러운 속물로 느껴지더군요.

무심함과 부끄러움, 그 둘 사이엔 굉장히 큰 차이가 있겠죠. 지금 당장 굶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보탬이 못 될지라도, 점차 많은 사람들이 그런 마음을 가지고, 시간이 더 흐른다면 결과는 분명히 달라질 것입니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표지에 박힌 책들은 별로 달가와하지 않는 편입니다. 내가 동심을 버리고 속물이 된 건지, 잘 팔리니까 급조한 가짜가 많은 건지, 그런 책들을 읽고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거든요. 세계가...를 읽고도 솔직히 굉장히 감동했다던가, 세계관이 바뀌었다던가 하는 큰 변화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메일 자체가 원체 발상의 전환을 유도하는 참신한 내용이고, 책의 구성이나 편집이 깔끔하고 예뻐서 그런대로 괜찮았다...싶네요.

'중학교에 다니는 우리 큰딸아이의 담임선생님은...'하고 책이 시작되죠. 정말 중학생 정도의 친구들, 예민한 마음이 세상에 자꾸 상처 입는 시기의 친구들에게 적극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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