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순례
정태원 엮음 / 드림북스 / 1998년 8월
평점 :
절판


'세계적 문호들의 걸작 호러'라는 부제 밑에 쟁쟁한 이름들이 줄을 잇는다. D.H. 로렌스, 에밀 졸라, 찰스 디킨스, 헨리 제임스, 프로스퍼 메리메, 에드거 앨런 포,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루드야드 키플링, 프란츠 카프카, 기 드 모파상, 오노레 드 발자크, 바이라스 샤랑.....호오, 그렇단 말이지?


사실, 여름마다 공포 영화의 수위가 높아져가고 있는 요즘, 한 세기 전 문호들의 호러는 그다지 충격적이지 않다. 자극적인 공포를 원한다면 스티븐 킹을 읽는 것이 훨씬 낫지. 그러나, 문장의 좋고 나쁨을 가리기엔 내공이 부족한 나에게도 글이 뿜어내는 은근하고 우아한 힘이 느껴진다.


책을 여는 바이라스 샤랑의 '챠코와의 인터뷰'는 독특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단편이다. 여자들의 몸이 상반신, 혹은 하반신 뿐인 섬 라잔에서 살다 돌아온 챠코와의 대화에서 사랑의 본질에 대한 예리한 성찰을 보여준다. <반전>에 집착하는 영화계 때문에 모든 작품에 반전을 전제하는 요즈음의 독자에게는 조금 시시한 결론일 지 모르지만, 기억하시라, 작품은 아주 오래 전에 씌여졌음을! (그런데....사실 나는 바이라스 샤랑이란 이름이 낯설다. 누구지? 뭘 쓴 작가인거야? ^^;;)


여러 작품 중 제일 인상 깊었던 것은 프란츠 카프카의 '유형지에서'. 카프카 다운 상상력이 200% 발휘된 소재이다. 어느 곳이라 특정지을 수 없는 나라의 잔인한 사형기계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읽는 도중 몇 번이고 소름이 돋아 몸을 떨 정도로 힘이 넘쳤다. 책이 아니고서는 느끼기 힘든 전율이다.
대문호들의 음울한 외도를 들춰보고 싶은 독자라면 읽어볼 만 한 작품이지만...어쩌나, 품절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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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04-12-02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품절 상품을 뽐뿌질하는 건 패널티 있어야 함돠...

진/우맘 2004-12-03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빠떼루라도...^^;
 
[샘플]설화수 명의초 에센스 7ml 5개묶음
샘플
평점 :
단종


역시, 설화수였다. 고 품질, 그리고 고 가격.....TT


직장 선배가 샘플 하나 써보라고 건네 준 것을 받았다. 내가 좋아하는 설화수 샘플이기에 넙죽.^^
설화수, 엄마가 쓰던 것을 물려 받아(?) 몇 번 써봤는데.....우와....너무 좋았다. 둔감한 나도 피부가 변화하는 것이 느껴질 정도. 걸쭉할 정도로 진한 느낌이지만 유분 보다는 수분이 느껴지는 스킨 로션은 정말 최고였다.
그런데 이 날, 스킨 로션보다 더 마음에 드는 제품을 만났으니....바로 명의초 에센스. 작은 샘플을 아껴서 이틀동안 사용했는데, 정말이지 짱!


설화수 특유의 부드러운 한방 향(방판하는 지인에게 들으니, 설화수 전 제품은 아로마 테라피 효과까지 고려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설화수 제품의 향을 맡으면 기분이 좋아진다.)과 더불어 부드럽게 쏘옥 스며들었다. 당시 트러블이 좀 있었는데, 다음 날이 되니 거짓말처럼 보송보송한 피부로 변해 있었다.


오늘, 생각나서 들어와보니....ㅎㅎ 지금의 나로서는 엄두도 못 낼 가격이로군.^^ 변질을 우려했는지 작은 용기에 나누어 담은 새심함까지. 설화수, 기다려라. 언젠간 써주고 말테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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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etrain 2004-11-27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우...설화수 제품은 저도 샘플로만 써 봤는데요...인터넷에서 도는 샘플 몇개의 가격이 2만원을 호가하지요...ㅡ.ㅡ

nugool 2004-12-11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진짜 비싸구만요~~
 
꼬마 삼보 이야기 - 별하나 책하나, 명작 14 별하나 책하나, 명작 14
허문선 지음, 홍성지 그림 / 계림닷컴 / 2004년 1월
평점 :
품절


삼보 이야기는 다 아시죠? 어린 시절 처음 삼보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호랑이 기름으로 구운 핫케이크가 정말로 맛있을까?' 하는 생각에, 속이 메슥메슥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그 때의 불편했던 뱃 속이 이렇게 생생히 기억나는 것을 보면... ㅎㅎㅎ 책과 함께 어우러진 추억은 그 생명력이 정말 길고 탄탄하네요.
어릴 때 제가 별로였기 때문에 딸아이가 좋아할 거라는 생각은 전혀 못하고 무심히 읽어주었다가, 오랜만에 나오는 앵콜 요청에 깜짝 놀랐습니다.
'어? 무엇때문에 이렇게 열광하는 거지?'
책 속 이야기 구조를 찬찬이 되짚어 보니, 아이들을 끌어당기는 최강 요소, 반복과 리듬감이 구석구석 숨어 있네요. 거기다가 빼앗겼던 옷가지를 모두 찾아오는 스릴 넘치는 모험, 핫케익과 함께 든든하게 마무리되는 포만감까지. 지금 생각해보니 어린 시절 이 책을 싫어 했던 제가 특이한 어린이였던 것 같습니다.^^;;
특히 삼보 이야기는 "떡 하나 주면 안 잡아 먹지~"를 외치는 호랑이들이 등장하는 '해님달님'과 상당히 유사해서, 아이들이 더 친근감을 느끼는 듯 합니다.
촌스러울 정도로 환한 원색과 자유분방한 모습의 캐릭터들이 간결한 이야기에 잘 어울리는, 통통 튀는 그림책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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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아트 다빈치 art 13
장 뒤뷔페 지음, 장윤선 옮김 / 다빈치 / 2003년 10월
절판


빌 트레일러의 '발길질 하는 남자'. 언뜻 봐도 질나쁜 종이에 색연필과 포스터칼라로 그린 그림. 빌 트레일러는 노예로 태어났다가 남북전쟁 후 해방이 되었지만 평생을 소작인으로 살았단다. 나중에는 노숙자가 되었는데, 세상에나 85세에 갑자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서 죽기까지 3년동안 1500매가 넘는 작품을 남긴다. 도대체, 무엇이, 여든 넘은 노인에게 그림에 대한 강렬한 욕망을 불러 일으켰을까?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슬퍼지기도 하고, 즐거워지기도 하는 신기한 그림이다.

안나 제만코바의 작품. 나는 조지아 오키프의 꽃그림을 참 좋아하는데....이 외계식물의 확대판 같은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뭐라 할까...조지아 오키프의 꽃에서 강렬하고 거친 정수만을 뽑아 재현한 듯한, 그런 기분이 들었다.

모튼 바틀릿은 1909년에 태어나 여덟 살에 부모를 잃었단다. 이것이 어린 마음에 상처가 되었을까? 그는 여든 세살에 죽을 때까지 혼자 살았다. 사후 그의 집에서 15개의 인형이 발견되었는데, 모두 아기부터 열다섯 살 정도의 아이 인형으로, 옷과 가발, 액세서리, 별도의 머리 부분과 손, 발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스물 다섯 무렵부터 30년 동안 진행된 비밀스러운 인형 만들기....석고로 만든 인형의 크기는 등신대의 1/2 정도, 해부학 책까지 참조하여 치아 하나까지도 정확하게 재현했다 한다.

모튼 바틀릿은 인형에 직접 만든 의복과 액세서리를 착용시켜 '소파에 앉아서 책을 읽는 소녀', '발레 레슨을 하는 소녀' 등 시나리오에 맞춰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이 정도로 정교한 작품을 만들기까지의 고충을 생각해 보면, 혼자서 비밀스러운 인형놀이를 즐기는 이 사람의 치열한 외로움이...섬뜩하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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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아트 다빈치 art 13
장 뒤뷔페 지음, 장윤선 옮김 / 다빈치 / 2003년 10월
평점 :
절판


아르 브뤼트는 가공되지 않은, 순수 그대로의 예술이라는 뜻의 프랑스어다. 1945년 정신질환을 앓는 환자들의 창작작품을 지칭한 말로,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이들이 미술제도 바깥에서 창작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 되었다. '아웃사이더 아트'는 1972년 로저 카디널이 아르브뤼트를 영어로 번역한 것이다.  - 머리말 중 -



이 책을 통해 '아르브뤼트'라는 장르(?)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다. 질 좋은 종이에 큼직하고 풍부한 도판, 많지 않은 분량의 글은 수월하게 잘 읽힌다.
사실 나의 부족한 눈은, 제도권 안 화가들의 의도된 미숙함과 아르브뤼트 예술가들의 천진한 미숙함을 쉽게 가려낼 수 없었다. 게다가 '미술을 감상하는 법 = 많은 화가의 이름과 작품을 외우는 법'이라는 엉터리 공식이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머리 속 깊이 각인되어 있었나보다. 이 신선한 그림들이 전해오는 날것의 느낌 그대로를 즐기려 들지 않고 빌 트레일러의 작품을 보고서는 애써 키스 하링을 떠올리고, 매지 길이 그린 음울한 눈빛에서는 뭉크를 찾아내려고 덤벙댔다. 이후로도 계속 리히텐슈타인, 조지아 오키프, 클림트....머리 속의 빈약한 화가 색인들을 뒤지며 하나 하나 끼워 맞추려고 기를 썼다.



BANG~~~ 바보. ㅡ.ㅡ



완벽한 균형미, 붓자국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매끈한 화면, 금방이라도 살아 숨쉴 듯한 생생한 눈빛...그런 '명화'들에 경탄하기는 쉽다. 그러나, 그 명화를 그려낸 화가의 마음을 들여다 보는 것은 쉽지 않다. 그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미술사, 미술기법, 미술심리 등 수 많은 걸림돌을 걷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르브뤼트 예술가들의 작품에 다가서는 길에 장애물 따윈 없다. 빤히 들여다 보이는 거친 스트로크와 미숙한 붓놀림을 들여다보는 것 만으로도 그림을 그린 이의 마음이 느껴진다. 지루한 수업시간, 붙박혀 움직일 줄 모르는 시계와 싸우느라 만화주인공의 한삼자락에 촘촘하게 그려넣었던 무늬들이 책 속에 있었다. 윗사람에게 꾸중듣느라 울적하게 가라앉은 회의실, 낙서 속의 우울한 얼굴들이 바로, 여기, 책 속에 그대로 담겨 있는 것이다.
예술은 장식품, 혹은 지성을 뽐내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해 준 멋진 책이다.



아르 브뤼트 작품에는 타오르는 듯한 정열의 고양, 끝없는 창의성, 강렬한 도취감, 모든 것들로부터의 완전한 해방 같은, 인간이 예술에서 바라는 모든 것이 어떤 유명 예술가의 작품에서보다도 넘쳐 흐른다. 물론 광기도 함께. 하지만 광기를 품지 않은 예술을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니체의 말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머리 속에서 미친 듯이 춤추는 예술'이다. 여기서 확실히 해두어야 할 것은 '광기'라는 단어의 정확한 의미다. 누가 정신 병원의 창살 안과 밖, 어느 쪽이 미쳤다고 확실하게 말 할 수 있을까?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근거를 알고 싶을 뿐이다. - 머리말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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