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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의 노래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칼의 노래>에 너무 깊이 반했나보다. 아니면, <밥벌이의 지겨움>에서 느낀 보수적이고 마초적인 모습이 예상 외로 진하게 각인되어 버렸거나.
나는 작가에게 나쁜 독자였다.
그의 문장은 여전히 유려했지만, "싫다"는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나는 끊임없이 단점만을 찾아내고, 모든 것의 속내를 의심했다.
책 속에서 여러 번 불거지는 단어들이 미웠다. <시즙>이 연상시키는 섬뜩한 장면에 미간이 지끈거렸고, 과하게 등장하는 오줌, 밑살, 사타구니, 젖봉우리에 가슴이 답답했다. 의도한 바일것이다. '자연의 것 그대로라 아무렇지도 않다. 탄생의 비의를 담은 고귀한 단어들인데 뭐가 문제라고 그러나?'하고 힘주어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한 답답함은, 때아니게 등장한 비화와 아라의 동성애 장면에서 짜증으로 치솟기도 했다.
나는 책에게도 나쁜 독자였다.
책장을 들추기도 전에, 나는 이미 <현의 노래>에 원하는 바를 규정지어 놓았다.
<칼의 노래>에서의 호젓하고 초연한 분위기를 다시 맛보고 싶은 터였다. 말을 과하게 아껴 미욱하게까지 보이는 인간 이순신의 환영이 우륵에게서 되살아나기를 바라고 있던 것이다.
그런데 초반부터 등장한 순장 장면의 충격과, 반복되는 전쟁과 살육, 여기저기 튀는 골수와 살점에 어안이 벙벙했다. 현은, 도리어 칼보다 잔인한 것이란 말인가? 이게 아닌데....이게 아닌데....
그러나 정말 아닌것은, 머리 속에 책의 절반은 세워두고 그 틀에 책을 끼워맞추려는 나였다.
뒷맛이 씁쓸하다. 책을 읽으며 한 작가를 마음에서 떨어내는 일은 쉽지도, 유쾌하지도 않은 경험이었다.
갖가지 역설과 중의와 반어로 점점 노회해져가고 있는 작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결코 간과할 수도 없는 작가를, 당분간은 좀 멀리하는 것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