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원과의 산책
SY 몽고메리 지음, 김홍옥 옮김 / 다빈치 / 200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에 대해, 아무런 기대가 없었다. 뜻하지 않게 선물을 받아 책꽂이에 꽂아 놓고는 이 삼년 간 들춰보지도 않았다. 이유가 뭐냐고? 당연히, 재미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비소설을 재미있게 읽어 본 기억이 별로 없다. 게다가 과학 서적이라면...끙. 이 세 여성은 '인류학자'라고 불리고 있으니 과학서적 아닌가?
  헌데 잠은 안 오고, 마침 딱히 마음을 당기는 책도 없는 그런 밤에 '유인원과의 산책'이 눈에 들어왔다. 책을 집어든 지 30분도 안 되어 나는 비루테 골디카스라는 외우기 힘든 이름을 가진 여성의 삶에 퐁당 빠져 있었고, 다음 날 중반부에 접어들어서는 Mr 맥그리거라는 침팬지의 죽음 앞에 눈물을 펑펑 쏟고 있었다. 아! 과학서적(?)도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구나!!


  <유인원과의 산책>이 재미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도 제인 구달, 다이안 포시, 비루테 골디카스, 이 세 여성의 삶이 워낙 '소설 같이' 흥미진진 하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아무리 악극이 재미있어도 변사가 김을 빼면 관객은 심심해 지는 법. 이 세 여성의 삶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변사, 작가 몽고메리의 역량도 빼 놓을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다. 몽고메리는 가끔 '오버다...' 싶을 정도의 감성적인 문장을 천연덕스럽게 읊어 그녀들의 삶을 좀 더 비장하게 빛나도록 다듬는다. 각각의 장을 넘나들 때는 문체마저 변한다. 제인 구달을 얘기할 때는 침착하고 당당하게, 다이안 포시를 얘기할 때는 좀 더 비장하고 음험한 매력을 내뿜으며, 비루테 골디카스를 얘기할 때는 생기 있고 발랄하게.
  구성도 매우 탁월했다. 1부 양육자들, 2부 과학자들, 3부 여전사들로 나누어 각 부에서 세 여성의 삶을 조망하는 구성은, 지루해질 틈을 안 주면서도 명료한 정리를 가능케 했다.


  제인 구달. 침팬지와 함께 한 그녀의 삶은 꽤 유명하다. 인류학이나 환경보호 단체와 무관한 보통 사람들 중에도 그녀의 이름은 널리 알려져 있다. 당연히 세 여성 중에 제인 구달이 돋보일 것 같지만 사실, 책을 덮고 가장 강렬하게 남는 이름은 '다이안 포시'다. 충격적인 죽음(마운틴 고릴라를 지키다 살해당했다.)이 그녀의 삶에 오오라를 부여한 것인가? 비극적인 성장기, 만성 질환, 아버지나 다름 없는 루이스 리키와의 사랑, 제인 구달의 그늘에서 언제나 2인자였던, 살리에르적인 패배감. 그렇게 음울한 그림자 같은 인생에,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마운틴 고릴라 밖에 없었다. 결국 인간보다 고릴라를 우선으로 하고 광기 어린 보호 운동을 펼치다가 죽음에 이른 그녀에게서 카리스마라고 할까....정리 되지 않는 복잡한 감정(애증...연민...비난...존경)이 남았다. 아마, 저자도 그랬던 모양이다. 다이안 포시를 얘기할 때면 유독 변덕스럽고 유려한 문장을 펼치는 것을 보면.


  아직 한 권의 책을 무어라 비평할만한 능력이 못 되기에 페미니즘의 편에 서서 접근하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하지만, 그게 잘 안 됐다. 이 책은 얼핏 보면 세 여성 연구자의 위대함을 바탕으로 여성의 우월함을 찬양하는 듯 하지만, 사실 그 우월성 자체가 여성을 '자애롭고 민감하며 과학적이지 않은...' 그런 전형적인 모습으로 몰고 가는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세 제자를 발견해 낸 남자, 루이스 리키. 그의 존재가 배후에 강력하게 버티고 있다. 이 구도는 위대한 한 남성 아래 세 여자가 인정과 사랑을 받으려는 암투의 드라마 같다. 다이안 포시와 염문을 뿌렸다고는 하지만, 영락없이 한 아버지 밑에서 엘렉트라 컴플렉스의 화신이 된 세 자매의 투쟁으로 읽히는 것. 스승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감정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러한 인간적인 면모가 너무 부각되어 뒷맛은 좀 씁쓸하다. 


  여하간, 그녀들과의 산책은 매우 즐거웠다. 가끔은 가슴이 서늘하게 슬퍼지기도 했지만. 수피나, 플로, 디지트, 미스터 데이비드 그리어드, 미스터 맥그리거...그 수많은 유인원들과도 마치 친구가 된 듯하다. 인간, 유인원, 그리고 자연에 대해 어렵지 않게 깊은 사색을 한 행복한 시간이었다.
  1994년, 남은 두 여성의 삶은 과연 어찌되었을까? 그녀들의 저서와 근황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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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2004-07-07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좋습니다.


진/우맘 2004-07-07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미완성 2004-07-07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리에르적인 패배감을 안고 살았다는 다이안 포시....
심적으로는 모짜르트보다 살리에르를 더 이해합니다.
왜냐면 나는 살리에르를 알고, 살리에르도 내 마음을 알 수 있지만,
모짜르트는 2인자나 주변인의 마음을 헤아릴 순 없을테니까요.

님의 리뷰를 읽고 나니 마음이 조금 산란해집니다.
다이안 포시에 대한 글때문에요. 어쩌면 님의 리뷰때문에 일부러 이 책을 찾을 수도 있고,
이 리뷰때문에 일부러 이 책을 피할 수도 있어요.
같은 동질감을 느끼는 공감형성대보다 나름대로 한때 끝을 향해 치달았던
괴로움을 또 다시 맛보고 싶지는 않다는 두려움때문입니다.
아주 좋은 리뷰를 읽었어요. 잘 보았습니다.

비연 2004-07-07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잘 읽었습니다. 이 책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