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유어북] 당신의 책을 골방에서 광장으로 


[한겨레] [ <한겨레21> 창간10돌 기념 ]
 
 
지식과 정보와 감동을 이웃과 함께… ‘프리유어북’과 함께 방방곡곡 책나눔운동을 펼칩니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쯤 꿈꾸었을 겁니다. 바다를 건너온 유리병 편지를 받거나 기구를 타고 날아온 엽서를 만나는 신나는 일들을. 도무지 불가능해 보였던 일들이 가능해집니다. 태평양 아닌 인터넷의 바다 속으로, 편지가 아닌 한권의 책을 띄우십시오. 책장에 갇힌 당신의 책에 발을 달아주십시오. 새로운 주인을 찾아 떠나는 흥미로운 책의 여행을 지켜보십시오. 지식과 정보와 감동을 나누십시오. 창간 10돌을 맞아 <한겨레21>과 프리유어북(www.freeyourbook.com)이 펼치는 새로운 사회문화운동에 동참하십시오. ‘책에게 자유를’. -편집자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햇살이 귓가를 간질이는 어느 봄날 나른한 당신, 공원의 벤치에 앉는다. 그런데 옆엔 웬 책이 한권 놓여 있다. 주인 없는 책인가 싶어 펴보니 낯선 글귀가 눈에 띈다.

미국인 혼베이커로부터 시작된 운동

“이 책은 분실된 것이 아닙니다. FYB(Free Your Book)운동에 동참하는 어떤 사람에 의해서 자유를 얻고 홀로 세상을 여행하는 중입니다. 어떤 이유에서 이 책이 당신의 손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궁금하시다면 ‘www.freeyourbook.com’에 접속하세요” 사이트에 들어가 책에 쓰인 고유번호를 입력하니 책의 처음 주인이 나온다. “지난 겨울 며칠 밤을 못 자게 만든 책입니다. 소중히 다뤄주세요.”

프리유어북 운동은 인터넷 시대에 책을 가지고 벌이는 유쾌한 숨바꼭질이다. 읽고 싶은 책을 찾아 뒤지는 보물찾기다. 책이 맺어준 인연으로 사람과 세상과 만나는 일이다.

이 운동은 2001년 3월 론 혼베이커(37)라는 한 미국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소프트웨어 회사를 운영하고 있던 그는 어느 날 흥미로운 사이트(www.phototag.com)를 발견했다. 싸구려 카메라들을 친구 또는 낯선 이에게 건네주고 사진을 한장씩 찍으라고 한 뒤 필름이 다 떨어지면 그것을 처음 주인의 주소로 돌려보내는 것이었다.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자신의 터질 듯 비좁은 책장을 돌아본 순간, 그의 머릿속이 반짝~ 빛났다. “카메라 대신 책을 풀어놓자.” 생각해보니 인터넷이라면 세상에 내놓은 책이 어디에서 누구에게 읽히고 있는지도 추적할 수 있었다.

책을 풀어놓기 전 인터넷에 책이름과 고유번호를 등록하고 라벨을 다운받아 표지 안쪽에 붙이면 그 다음 사람이 이를 열어보고 인터넷에 다시 접속한다는 구상이었다. 사람들이 이 취지를 이해하고 선의와 부지런함으로 책을 대하기만 한다면 가능한 일이었다.

현재 혼베이커가 만든 사이트(www.bookcroosing.com)에는 22만779명이 회원으로 가입해 89만3715권의 책을 ‘해방’시켰다. 북크로싱 운동으로 지금껏 자유를 얻은 책 가운데 20~25%가량만 여행을 계속하고 있지만 하루에 300명 이상 가입하고 있으므로 전망은 밝다. 지금만 해도 웬만한 도서관 하나를 채울 만한 양의 책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북크로싱 운동이 태평양을 가로질러 우리나라에서도 시작되고 있다. 한국에 이 운동의 씨앗을 뿌린 사람은 미국 유학생 출신의 김정호(37)씨다. 지난해 말 한 인터넷 매체를 통해서 북크로싱운동을 접하고 운동의 취지에 깊이 공감해 독자적인 사이트를 개설하기로 결심했다. 밤낮이 따로 없는 두달간의 준비기간 끝에 북크로싱 운동은 ‘프리유어북’이라는 새 옷을 입고 한국에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이 사이트가 세상의 빛을 보게 된 데는 김정호씨와 더불어 동고동락을 같이한 친구들 이정식(37), 한주희(31)씨의 공이 누구보다 컸다.

현재 이 운동은 프랑스·이탈리아·독일·영국·벨기에·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 등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해외 사이트들을 둘러보면 이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세계 어디서나 비슷한 구석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남자친구가 사서이기 때문에 공짜로 책을 빌릴 수 있는데도 굳이 책을 갖다놓고 찾아오기 위해 일주일에 세번씩 우체국에 들른다는 35살의 미국인, 여러 번 읽은 책과는 도저히 이별하긴 힘들지만 용기를 내 책들을 방면하고 있다는 30대 캐나다 여성, 책이 팔리는 걸 좋아하지만 책을 공유하는 것 역시 더없이 기쁘다는 작가 등 책을 사랑하고 책을 통한 만남을 소중히 여기는 이들이 이 운동에 중독돼가고 있다.

책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사게 된다

혹 이런 책나눔 운동이 책은 공짜로 얻는 것이라고 인식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지금까지 이 운동에 동참했던 이들은 모두 고개를 젓는다. “프리유어북에 동참하게 된 뒤로 나는 책을 더 많이 읽고 더 많은 책을 삽니다. 나는 아예 동네독서모임까지 가입하게 됐습니다.”(캐나다 오타와에 사는 빌)

오히려 서점이 더 앞장서기도 하는데, 이탈리아 피렌체의 ‘레게르 페르’(Leggere Per)라는 서점이 그렇다. 시몬 실리아니(Simone Siliani)라는 시의원의 제안에 따라, 피렌체시는 2002년 12월 이 서점의 협찬을 받아 3천권의 책을 공공에 풀었다. 이탈리아판 프리유어북운동인 ‘자유로운 교환의 책장 운동’(Scaffale of the free one sacmbio)이 시작된 것이다. 현재 이 서점은 프랑스에 있는 분점에도 이 운동을 퍼뜨려 파리 북크로싱운동의 거점으로 자리잡고 있다.

김정호씨는 다른 나라에서 활발하게 벌어지는 북크로싱운동을 지켜보며 이 운동이 인터넷을 매개로 책을 교환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오프라인으로 번져나갈 것이라고 전망한다. “유럽이나 미국의 경우 단지 온라인상에서 책을 주고받는 일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같은 지역의 사람들끼리 독서토론클럽 등을 만들어 정기 모임을 갖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진화하고 있습니다. 인터넷 문화가 고도로 발달한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진화 과정의 속도와 폭이 훨씬 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골방에서 나온 책들을 통해 사람들의 광장을 만드는 일이야말로 프리유어북운동의 지향점이다. 이제, 당신도 책에게 자유를 선사하는 일에 동참할 때다.

책 ‘방생’할 준비 됐나요?프리유어북(FYB)에 동참하려면 이렇게 하세요1단계- 회원등록 이 운동의 첫걸음은 회원등록으로부터. 프리유어북(www.freeyourbook.com)에서 정해진 절차에 따라 가입을 하고 나면 책장 속 책들을 ‘방생’할 준비가 된 것이다.

2단계- 새 책 등록 미지의 독자와 나누고 싶은 책을 골라 사이트에 등록한다. 책에 관한 기본정보(책이름·저자·ISBN 번호 등)를 입력하면서 책에 얽힌 사연이나 독후감도 올린다. 등록을 마치면 자동으로 고유번호(FYB NO.)를 받게 된다. 이 번호는 책의 주민등록번호와 마찬가지.

3단계- 책에게 자유를 FYB 사이트가 제공하는 라벨을 다운받아 이를 프린트한 뒤 책의 속표지에 붙인다. 책 놓을 장소를 정한 뒤 고유번호와 함께 누가, 언제, 어디에 책을 놓아두는지를 라벨에 적는다. 책을 두고 온 뒤 날짜와 장소를 사이트에 입력한다.

4단계- 책을 찾아라 등록된 책들은 전국 지역별로 분류돼 있다. 사이트의 ‘책을 찾아라’(북헌팅)는 새로운 주인을 찾아 세상을 여행하고 있는 책들에 대한 정보를 지역별로 제공한다. 지도상에서 특정 지역을 클릭하면 그 지역에서 등록된 책들과 여행하고 있는 책들에 대한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다. 이제 보물찾기를 하듯이 책을 사냥하는 일만 남았다.

5단계- 찾은 책 등록 사이트에 올려진 정보를 통해, 또는 우연히 발견한 책을 등록하는 것. 찾은 책의 라벨에 붙어 있는 고유번호(FYB NO.)를 입력한 뒤 책을 발견한 일시·장소·발견한 경위 등을 입력한다. 이렇게 제3자에 의해 책이 발견되면 그 정보는 처음에 책을 해방시킨 사람에게 자동으로 통보된다.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21   2004-03-11 21: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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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4-03-27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운동이다. 하지만 서가에 줄줄이 꽂힌 책을 바라볼 때마다 배부르고 뿌듯한 나같은 인종은...당분간 동참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서가에 꽂아놓는 이유가 단순히 소유욕 하나만은 아니다. 난 장기기억력이 매우 딸려서, 책을 읽고 얼마 안 가 지은이, 주인공 이름, 줄거리를 몽땅 잃어버리기 일쑤이다. 하지만, 가끔 책등이라도 봐주면 그 어설픈 기억의 끈을 좀 더 오래 잡고 있을 수 있다.

연우주 2004-03-27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희망님 서재에서 봤는데요, 멋진 것 같아요~ 저도 네이버 클럽 가입했는데 가입 후 단 한 번도 안 갔다는...^^

비로그인 2004-03-27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나중엔 동참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직은 실천하지 못할거 같아요. ^^;; 그래도 참 좋은 운동인거 같습니다.

마립간 2004-03-27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괴델을 좋아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책을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괴델은 (대학에 있어서도 하겠지만) 도서관에서 빌어 읽으면 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책이 남에게 빌려주면 마치 내 아이가 딴 집에 가 있는 것처럼 신경이 쓰여서 빌려가는 사람이 책을 소중하게 여기고 확실하게 돌려준다는 확신이 없으면 빌려 주지 않습니다. 이런 성격때문에 도서관을 제외한 다른 사람에게 책을 빌어 읽은 적도 매우 적습니다. 제가 너무 강퍅하죠. 집안의 장식으로 사용한다고 해도 뭐 가격대비 괜찮고요. (서가에 책 꽂아 놓고 배불러하는 진/우맘님과의 공통점 발견!) Free Your Book! 매우 매력적이기는 한데......

마냐 2004-03-27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진/우맘님과 같은 인종인데...자꾸, 집이 좁아지는 느낌이라 곤혹...그래도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중생인지라...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