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조로운 일상만 반복될 것 같은 수영장에서도 가금은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언젠가 어떤 아주머니는 수영모자와 물안경만 쓰고 샤워장을 나왔다. 샤워하느라 벗어놓은 수영복은 그대로 샤워기 조절 레버 위에 걸쳐둔 채였다. <중략> 다들 비슷비슷한 모습이어서 누가 조금 전 소동의 주인공인지 금세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 태연하게 풀을 향해 걸어나오던 그 아주머니의 검은 사타구니와 늘어진 젖무덤만은 뇌리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은 슬프다고도, 그렇다고 우습다고도 할 수 없는 기묘한 이미지였다. <중략> 왜 하필 그때였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후로도 모욕을 받거나 궁지에 몰리면 여지없이 그 이미지가 집요하게 점멸하였다. 그러는 바람에 나는 모욕을 되갚아주거나 궁지를 탈출할 기력마저 잃어버리곤 하였다. 얼굴도 없이 오로지 몸통만으로 된 그 이미지는 마치 무슨 토르소 조각 같았다. 위기의 국면, 모멸의 순간마다 그 토르소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뭘 그 정도 가지고 그래? 힘 내라구! <중략> 토르소는 또 말했다. 나도 내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그렇게 뛰쳐나가기 전까진 나도 멀쩡한 인간이었다구. 너 따위의 머릿속에 토르소로 남기는 싫었다구. <후략> --- '오빠가 돌아왔다' 너의 의미 中 ---
'도날드 닭'을 그린 이우일의 그림이다. 저 그림과 글을 보고 나는 교훈을 하나 얻었다. 아니, 결의를 다졌다는 표현이 더 맞으려나? "혹여나 수영복을 잊고 풀에 나가는 사태를 맞더라도, 누군가의 머리 속에 위기와 모멸의 토르소로 남으면 안 되겠다!" -.- 내 머리 속은 나도 이해 못하겠다. <샤워장을 나서기 전엔 꼭 수영복을 체크하자> 뭐, 그런 것도 아니고...
여하간, 저 그림은 왠지 슬프다. 고대 다산을 상징하는 미의 여신상과 같은 외형을 하고 있지만, 이젠 아무도 저런 모습을 아름답고 풍요롭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말 슬픈 토르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