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제과에 입문하여 너무 의욕적으로 머핀과 쿠키와 마들렌과 브라우니를 만들다보니 드디어
몸살이 났습니다. 의욕이 넘쳐 우리 가족이 먹을것만 만드는게 아니라 이사가는 신랑 친구 집에도
머핀과 마들렌을 만들어다 주고, 같은 아파트 윗층에 사는 아는 한국인 집에도 브라우니 만들어다
주고, 심지어는 친하지도 않은 아파트 세탁소의 한국인 아줌마한테도 머핀과 브라우니를 만들어
갖다주다보니 주말에 냉방이 지나치게 잘 된 마켓 다녀온 후로는 영 열이 나고 온 몸이 쑤시는게
만 이틀을 꼬박 드러누워있었습니다. 그 동안 저희 가족은 라면과 와플로 식사를 연명했지요.
오늘, 몸이 좀 나은듯해서 지난 주말에 김치를 담아볼까 해서 한국 마트에 가서 사온 -아파서 냉장
고 안에 쑤셔박혀있던- 배추와 무와 기타 재료를 가지고 한국서 가져온 '나물이' 의 요리책에 나온
통배추 절이는 방법과 포기김치 담그는 법을 경전삼아 거기 나온 대로 김치를 담았습니다. 이놈의
급한 성격은 아파도 여전해서 오뉴월 염천에 내복껴입고 겨울용 머플러까지 목에 감고는 김치를
담았지요. 지난주의 제과의 성적은 나름대로 우수해 먹을만한 맛이 났는데, 김치는 오늘 담가놓은
것이라 익어봐야 맛을 알 수 있어서 잘 모르겠네요. 근데 솔직히 맛이 없을것 같아요. 처음이기도
하고, 또 고추가루가 너무 매워 나물이의 레시피보다 고추가루는 적게, 설탕은 많이 넣었더니 색깔
이 영 허연게 먹음직스러워 보이지가 않네요. 그리고 배추는 나물이가 6시간을 절이래서 물론 중
간에 상태를 보긴 했지만 잘 모르겠어서 그대로 6시간을 절였더니 좀 짜게 절여졌거든요.
어쨌건, 맛은 차치하고 처음으로 혼자 힘으로 김치를 담가보니 이젠 제가 정말 아줌마가 된 것 같
다는 생각이 확 듭니다. 결혼한 여자를 아줌마라고 부른다면 저는 7년전에 아줌마가 되었지요. 근
데 자기 나이 먹는 것은 잘 모른다고, 저는 아직도 제가 어린애같기만 하거든요. 뭐든지 척척 하는
아줌마의 이미지와, 제대로 할 줄 아는 것도 별로 없고 덤벙대고 희생과 봉사와는 거리가 먼 제 이
미지가 잘 겹쳐지지 않아서인지도 모르고요. 어쨌건 맛은 없겠지만 자신감은 생겼습니다. 이렇게
한달에 한번씩 담다보면 한 2~3년 하면 저도 계량하지 않고도 눈으로만 슬쩍 봐도, 손가락으로 살
짝 찍어먹어만 봐도 대충 다 아는 경지에 이르지 않을까요? -너무 과하고 헛된 욕심인가요?-
어쨌건 제 자신의 변신에 저도 무척이나 놀라고 있는 이즈음입니다. 고생을 해봐야 철들고 인간된
다더니, 한국에서라면 얻어다 먹고 사먹었을 제가 매일 앉아서 머핀굽고 김치 담그고 하다니요. 물
론 사 먹을 곳도 마땅찮고, 같이 놀 친구도 없고, 갈 곳도 없어서 하고 있긴 하지만요. 이러다가 귀
국할 때는 저는 살림의 대가가 되어있을지도 모릅니다. 아예 장도 담가먹을지도 모르지요. 그럼 그
때는 갈 곳도 많고, 만나서 수다 떨 친구가 많아도 살림에 전념하고 있을까요? 그건 모르겠네요.
제 다음 목표는 제빵입니다. 제과와 제빵의 차이는 발효가 없고 있고의 차이래요. 제과는 발효가
없는것, 제빵은 발효가 있는 것이라네요. 케잌은 발효과정이 없으므로 빵같아 보여도 제과랍니다.
물론 딸아이가 노래하는 생크림케잌도 만들어봐야겠지만 궁극적으로 최종목표는 제빵을 집에서
하는 것이예요. 단팥빵과 기타 등등요! -너무 좋아하는 찹쌀도너츠도요!!! 그런건 여기선 절대 먹
을 수 없으니까요. 참, 생크림케잌은 동네에선 안팔지만 차타고 40분쯤 가면 있는 유기농매장
Whole food에는 있더군요-
아~ 저의 변신이 물론 생활인의 입장에서야 바람직하지만, 그 동기가 갈 곳 없고, 만날 사람 없어
서라는 것은 좀 슬프군요. 이제는 이사간 신랑 친구 부인이 말하기를 겨울엔 해가 3시 좀 넘으면
진다는군요. 그럼 정말 밖에 잘 못 나가니까 -지금은 해가 길어서 8시에 져요. 여긴 해지면 밖에 나
가는게 위험한 동네예요. 총기사고도 많고. 일주일에 겨우 한두번 뉴스보면 항상 총맞아 죽은 사람
들 얘기가 나오곤하죠. 식당에서, 차고에서, 심지어는 버스안에서- 혼자 놀 거리를 만들래요.
아, 올 겨울이 지나면 저는 아마 제빵에도 성공해있을지도 몰라요. 우울한 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