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몇 안되는 한국사람 집에 놀러갔는데 그들은 다 빵을 집에서 직접 만들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 집에서는 치즈케잌을 얻어먹었고 다른 사람 집에서는 케잌시트 -케잌의 기본이 되는 폭신한 빵.
여기에 생크림 등으로 데코레이션하면 멋진 케잌이 된다- 를 얻어먹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은 초코머핀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놀라워하는 내게 사람들이 말하길 여기는 빵이 주식이라 모든 집에서 다 빵을 굽는다
는 것입니다. 마들렌, 쿠키 등 모든 것을 대체로 만들어 먹고 있고 재료도 동네 슈퍼에서도 다 팔고 있고,
또 쉽다네요. 한국에서라면 그 무슨 귀찮은 일을! 하며 일소했을텐데, 여기서는 솔깃할 수 밖에 없었요. 그
이유인즉슨 우선, 동네에서 소문난 빵집 두군데를 갔는데 그 종류의 빈약함이라니! 여기는 빵 안에 소가
들어간 빵은 없답니다. 종류가 패스트리나 크로와상, 바게뜨, 마들렌, 쿠키정도 밖에 없어요. 슈퍼에 가면
맛없어보이는 식빵과 설탕범벅이 된 도너츠 정도가 더 있긴 합니다. 케잌도 있는데 한국에서의 그런 케잌
이 아니고 타르트와 버터크림케잌밖에 없어요. 여긴 생크림케잌은 없어요.-누군가는 생크림은 아마 일본
인의 작품같다는군요. 최소한 미국의 작품은 절대 아닙니다- 그리고 그런 빵이나 쿠키들마저도 너무 달거
나 딱딱하거나 해서 도저히 맛있는 한국 빵에 길들여진 내 입맛을 자극하기엔 역부족이랍니다. 그러던차
에 얻어 먹은 빵들은 한국 제과점과는 비교할 수 없을지 몰라도 이 곳, 미국의 빵집들보다는 훨씬 나았습
니다.
주위 사람들의 격려(?)에 힘입어 빵틀과 쿠키팬을 사고, 밀가루와 전분등 각종 재료를 사서 드디어 오늘!
신랑 친구 부인을 초빙해 와서 케잌 시트 만들기를 배웠습니다. 레시피 대로 하면 된다고 하나, 그래도 거
품을 얼마만큼 내야 하는지 등 직접 보는게 아무래도 나을 것 같아 이사를 며칠 안 남기고 있어 바쁜 그
녀를 모셨지요. 그리고 완성된 케잌시트!!! 색깔도 예뻤고 맛도 나름대로 괜찮았답니다. 이제 성공!!!
선무당이 사람잡는다던가요? 여기서 몇 년씩 산 다른 사람들도 아직 가지고 있지 않은 제빵기 -케잌이나
쿠키, 머피, 마들렌 등은 다 오븐으로 합니다- 까지 사서 내친김에 식빵까지 만들고 있으니 -이건 지금 제
조중이라 아직 성공여부를 모릅니다. 자그마치 4시간이나 걸린다고 레시피에 써 있는데 의심은 좀 가나
기다려보는 수 밖에- 이제 우리집은 당분간 넘쳐나는 빵들에 파묻혀 살아야 할 지 몰라요. 쿠키틀에 마들
렌틀까지 샀으니 말예요. 아, 급한 제 성격은 정말이지 하나 성공하고 또 사는게 아니라 해보기도 전에 다
왕창 사고 말았어요.
근데 혹시 아세요? 저희집에서 빵 좋아하는 사람은 저밖에 없다는 사실을요. 케잌시트도 제가 다 먹었고,
아마 식빵도 그러할걸요? 이쯤 되면 음모론이 나올만도 하겠지만 저는 어디까지나 이제 곧 유치원에 가
게 될 딸의 점심 도시락을 샌드위치로 싸주려면 식빵을 직접 만들어야겠다는 충심의 발로임을 엄숙히 공
언하는 바입니다. -이 동네는 점심 도시락을 싸가야 하더군요. 다른 미국 동네 사정은 모르지만요-
한국에 다시 가면 열심히 빵을 집에서 구울까요? 아님 다시 맛있고 푹신한 제과점의 솜씨에 감탄하며 모
든 기구들을 오븐속에 쑤셔넣은 채 맛난 제과점 순례에 바쁠까요? 여하튼 여기서는 열심히 만들어 먹을
생각입니다. 혹시 아나요? 제 솜씨가 좋아지면 우리 가족이 빵을 좋아하게 될른지요. 나중에 여러분들에
게도 만들어 선물 드릴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