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최고의 화제작이 될 거라는 소문이 무성했던 봉준호 감독의 신작. 사실 영화 <괴물>에 대해서는 웬만한 설명은 불필요한데, 그도 그럴 것이 이미 1000만 명이 보았기 때문이다. 인구 5000만 명이 안 되는 나라에서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왕의 남자> <괴물>까지 천만 영화가 벌써 4편째이다. 다리가 멀쩡해 극장까지 갈 수 있는 사람이면 거의 다 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텐데, 이러한 몇 편의 장사 되는 영화의 ‘싹쓸이’에 대해서는 좋다, 나쁘다의 의견이 갈리는 모양이다. 개인적으로 <괴물>을 보고 든 생각은, 아직도 이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 중에 다리가 불편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꼭 보고 오시라는 거다.


아무리 언론에서 좋다고 떠들고, 극장이 수백 개가 넘어 독점이네 어쩌네 해도 결국 영화의 판단은 관객이 한다. 보기에 재미 있으면 몰려가서 보는 거고, 재미 없으면 때려 죽여도 안 본다. 와이드 릴리즈로 초반에 재미를 봐도 영화 자체에 힘이 없으면 개봉 첫 주가 지나면 바로 힘이 빠지기 마련이다(<태풍><한반도> 등). 위에 언급한 4편의 천만 영화는 그 나름대로 완성도를 갖추었고, 그 많은 관객에게 소구하는 바가 있었기에 그 정도 장사가 된 것이다. 그걸 갖고 영화계 안에서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은, 한 번도 흥행 못 해본 놈이 질투하는 꼴이나 다를 바 없다.


한강 변에서 매점을 하며 지리멸렬하게 살아가는 가족이 변종 괴물과 싸운다는 단순한 이야기 구조를 가진 이 영화에서 가장 훌륭한 점은 역시 ‘괴물’의 존재일 것이다. 봉준호 감독 이하 스태프들은 이 작품에서 전세계 어느 나라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기술적 성취를 보여주었다. 물론 괴물의 CG 제작은 뉴질랜드 특수효과 회사가 맡았다지만, 영화 안에서 튀지 않게 유기적으로 묶어낸 것은 분명 한국 제작진의 성과일 것이다. 비주얼만 강화된 단순한 괴수 영화로 보는 사람도 분명 있을 테지만, 만약 영화의 성취가 정말 발전된 비주얼에만 그쳤다는 말에 수긍한다 하더라도 그것 자체로 칭찬받을 일이다. 예를 들어 돈이 넘쳐나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이 정도 기술력의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겠는가. 영화의 특수효과에 사용되는 기술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기술력은 많은 경험을 통해 노하우가 축적되는 것이다. <괴물>로 인해 한국영화계는 기존의 기술적 한계를 한발자국 뛰어넘은 것으로 보인다. <괴물>을 만드는 데 성공한 기술의 자신감으로 앞으로 더 발전된 비주얼의 SF영화, 특수효과 영화 등이 나올 길을 개척해낸 것이다.

 

그렇다고 <괴물>이 단순한 흥행 영화의 조건만을 갖춘 것은 아니다. 봉준호 감독의 작품답게, 그만의 고유한 영화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감독은 전작 <살인의 추억>에서도 형사 스릴러의 내러티브 속에 80년대의 시대적 아픔, 거대한 권력구조가 자행하는 인위적인 어둠(등화관제)에 무기력하게 스러져 가는 여성들, 형사들의 모습을 그려 잊지 못할 슬픔을 관객들에게 안겨준 바 있다. 한마디로 장사도 되면서, 할 말도 다 하는 시네마 아티스트의 면모를 보여준 것인데, <괴물>에서도 봉준호 감독만의 시각은 존재하고 있다. 괴물의 탄생 배경과 괴물이 발생시킨다고 추정되는 바이러스의 처리 문제를 둘러싼 미국의 개입이나, 누구나 알 수 있는 뻔한 진실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정부의 모습, 소외 당하고 핍박 받는 처지의 힘없는 소시민의 정서를 그림으로써 보는 동안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특히 후반부, 미군 추방을 외치며 시위를 벌이는 시위대의 요란뻑적지근한 모습은 부조리에 항거하는 시위가 최근 들어 진실성을 잃고 거의 '이벤트'로 전락하고 만 풍경을 그럴싸하게 풍자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살인의 추억>에서는 쭉 흘러가는 흥미로운 이야기 속에 메시지를 드러나지 않게 잘 삽입했다면, <괴물>에서는 너무 대놓고 메시지를 설파해 흥이 좀 떨어지는 면모는 있다. 뻔한 흥행 영화 이상의 것을 보이고 싶어했던 감독의 고민이 영화의 균형잡기에 약간 어색함을 준 형국이라고나 할까.

 

배우들의 연기가 영화의 결을 한층 더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개인적으로 한국 영화 사상 최고의 연기를 꼽으라면 언제나 두 편의 영화가 떠오른다. <살인의 추억>의 송강호가 그중 한 편인데, 이번 작품에서도 단백질이 부족해 약간 지능이 떨어지는, 그러나 처절한 부성애를 보여주는 박강두 연기로 관객을 웃기고 울린다(나머지 한 편의 영화는 <공공의 적>의 설경구). 그러나 이번 작품의 최고수훈갑은 역시 변희봉 선생과 고아성이 아닐까 싶다. 그동안 살아온 체제에 순응하면서도, 가족에 대한 애정으로 괴물과 맞서 싸우는 변희봉 선생의 잊지 못할 명연기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카리스마를 발산했던 고아성은 정말 대단했다. 특히 괴물의 등을 밟고 하수구 위에 매단 줄로 뛰어오르는 장면의 고아성은 최근 한국 영화를 보면서 그만큼 흥분했던 적이 없었을 만큼 인상적이었다. 박해일과 배두나도 몫을 충분히 했고. 배두나는 마지막 활쏘기 결정타에서 제대로 멋졌다. 역시 영화는 배우가 살아야 사는 법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했었다.

 

나는 이 영화를 보는 걸 진심으로 즐겼고, 대단히 만족했다. 현서(고아성)가 살아남기를 애타게 바랐고(손에 땀이 찰 정도였다), 박강두(송강호)의 눈물에 같이 눈시울이 붉어졌으며, 익숙한 한강변에서 괴물이 활개칠 때는 공포감을 느꼈으며, 교각을 꼬리로 감아 이동하는 괴물의 모습에서는 탄성을 질렀고, 괴물과 맞서 싸우는 가족들의 모습에서 더할 나위 없는 흥분을 느꼈다. 근 몇 년 사이 이렇게 만족한 영화는 없었다. 봉준호 감독은 또 한 번 성공했으며, 당분간 국내에서 흥행과 비평 양면에서 그와 대적할 감독은 없어보인다. 개인적으로는 애정을 넘어 흠모까지 하게 됐다. 꼭 한 번 뵙고 싶을 정도이다. 이 정도의 영화는 한 두 사람의 재능 만으로 이뤄진 게 아니다. 운과 떄가 맞아야 나오는 게 아닐까. <괴물>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별점: ★★★★ 1/2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페일레스 2006-08-19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옆에 낑겨서 박수 좀 보내겠습니다. 흐흐. -_-)b

2006-08-20 1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jedai2000 2006-08-20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일레스님...같이 박수 쳐요 ^^

상복의 랑데뷰님...죄송합니다. 요즘 핸폰이 완전 맛이 가서요. 지금 문자 보고 전화 드렸는데 안 받으시네요. 꼭 사고 싶네요. 부탁드립니다.


하늘바람 2006-08-20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멋진 리뷰네요

jedai2000 2006-08-21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님...어이쿠.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 과찬이시지만 기분 좋네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