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 치바 이사카 코타로 사신 시리즈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복싱팬이 아니더라도 이름 한번쯤은 모두들 들어보셨을 선수가 있으니, 그 이름 마이크 타이슨이다. 요즘이야 강간, 복역, 파산 등으로 인해 오점으로 얼룩진 인생을 살고 있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그는 그야말로 복싱의 신이었다. 대부분의 시합을 KO로 장식하며 '핵주먹'의 성가를 드높인 그는 나를 비롯한 초등학생들에게 강함의 대명사였다. 그런 그가 완벽하게 무너져 내린 건 2002년, 당시 세계 챔피언이었던 레녹스 루이스와의 대전이었다. 우연히 본 그 시합에서 내 어린 시절의 절대강자는 어찌나 맞았는지 매트에 누워 피눈물까지 흘리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복싱팬은 아니지만 당시 마음이 꽤 아팠었다. 추억의 한 부분이 날아가는 것이므로...

 

책과는 전혀 무관한 서두가 좀 길었는데, 이사카 고타로의 2005년작 <사신 치바>를 보고난 후 느낌이 마치 타이슨의 패배를 보는 듯했기 때문이다. 아, 얘도 무적은 아니구나. 불사신은 아니구나. 완벽하지는 않구나...하는 그런 느낌 말이다. 이사카 고타로는 신선하고 경쾌한 플롯과 퍼즐적인 구성, 재치와 유머, 기법 면에서의 재기발랄함 등이 어우러져 일본 청춘소설의 일약 희망으로 떠올랐다. 2000년 본격적인 데뷔 이후 매년 거의 2편에 가까운 작품을 모두 히트시키며 현재 전성기 중이다. 작년쯤에 우연히 <칠드런>이라는 작품을 보고 완전히 반해 버렸다. 이렇게 독특한 재미를 주면서, 비 거친 뒤의 햇살을 걷는 듯한 청명한 느낌을 아울러 주는 작품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넓게 보면 미스터리 소설의 범주로도 손색이 없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뒤로 늘 그의 작품을 더 보기만 바라왔는데 올해 한 달 사이에 무려 3편이나 출간됐다. <러시 라이프> <중력 삐에로> <사신 치바>가 그것이다. 유래없는 출간 러시인데, 2002년의 <러시 라이프> 2003년의 <중력 삐에로>보다 최근작인 <사신 치바>가 가장 떨어진다는 사실은 뼈아프다. 작가로서 정체되고 있다는 증거는 아닐지. 이런 식으로 발전없이 전매특허인 신선함과 경쾌함만을 내세워 매년 2권씩 발간한다면 점점 인기가 떨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빛나는 재능이 빨리 소진될까 두려운 것이다. 더군다나 한국에서의 상황은 더욱 끔찍하다. 비록 '찻잔 속의 태풍'이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붐을 타고 있으니,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한 달에 3권은 애교다. 이런저런 통로로 확인된 이사카 고타로의 신작이 올해 5권 더 나올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팬으로써야 물론 기쁘지만 작가의 앞날을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하다. 한 해에 같은 작가의 작품 8권을 보고 물리지 않을 사람은 없다. 더구나 원체 가벼운 스타일로 재기발랄하게 펜을 휘두르는 사람이니 그 스타일에 질리면 약도 없다. 이사카 고타로 같은 작가는 충분히 더 키워서 잡아먹을 수 있는 거위인데, 왜 배를 가르려고 안달인지 모르겠다. 과열 열기로 작가 하나 잡을 것 같다는 우려가 기우였으면 좋겠다.

 

<사신 치바>는 사고나 사건에 휘말려 목숨을 잃게 될 예정인 인간과 8일을 같이 보내며 최종적으로 그 인간을 죽일 것인가, 살릴 것인가를 결정하는 '사신 치바'의 여섯 개의 에피소드를 담는 연작 단편집이다. 하드보일드, 탐정소설, 연애소설, 로드무비 등의 여섯 개 장르를 넘나드는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다. 본의 아니게 악평을 한 꼴이 됐는데, 사실 형편없는 작품집은 아니고 재미있다. 다만 전작들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스타일은 <러시 라이프>보다, 주제의식이나 무게감에서는 <중력 삐에로>보다, 읽고나서의 시원함과 재미는 <칠드런>만 못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연작 단편집이라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보기도 했는데, <칠드런>에서 멋지게 해낸 작가의 실력을 보면 그건 아닌 것같다.

 

만약 이 작품으로 처음 이사카 고타로를 접한 사람이면 분명히 만족하실테고, 출간순서별로 꾸준히 읽어보신 분이라면 내 생각으로는 실망할 것이다. 전체적으로 약간씩 아쉬움이 남는 이야기를 그나마 여섯번째 이야기인 '사신 vs 노파'에서 작가의 장기인 퍼즐적 구성으로 상당 부분 상쇄한다. 2006년 월드컵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처럼 선방했지만 웬지 모를 아쉬움이 남는 그런 작품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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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7-08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약간 전작에 비해 그렇지만 나름 이 작가의 스타일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상복의랑데뷰 2006-07-08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보지를 못해서... ^^ 일단 칠드런부터 읽어봐야겠네요.

jedai2000 2006-07-09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FTA반대물만두님...저도 FTA반대자입니다. ^^ 이사카 고타로의 재능이야 뭐 어디가겠습니까. 다만 <사신 치바>는 작가의 작품 중에 중하위권에 위치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작품들이 많이 나올테니 기대해보자구요. ^^

상복의 랑데뷰님...출간 순서대로 읽으셔도 좋구요. <칠드런>은 개인적으로는 가장 좋아하는 이사카 고타로의 작품입니다. 읽고나서 가장 상쾌했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