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칩 쿠키 살인사건 한나 스웬슨 시리즈 1
조앤 플루크 지음, 박영인 옮김 / 해문출판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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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칩 쿠키 살인사건>은 앙증맞은 제목과 진저브레드맨 쿠키를 사용한 귀여운 표지가 먼저 눈길을 끄는 작품입니다. 제목과 표지만 봐도 웬지 편안한 분위기의 작품이라는 예상이 되시죠. 그렇습니다. 이 작품은 영국과 미국 등지에서 추리소설의 소장르 중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코지 미스터리(Cozy Mystery)라는 장르를 차용하고 있습니다. 코지는 사전적 의미로 기분 좋은, 따뜻한, 아늑한,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답니다. 살인과 범죄가 등장하는 추리소설을 기분 좋고 편하게 읽는 것이 가능할 리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초콜릿칩 쿠키 살인사건>을 읽으시면 좋겠네요.

 

출판사 설명에 따르면 코지 미스터리란 추리소설에서 흔히 보이는 잔혹한 살해 장면들을 배제하고, 이웃간에 밥숟가락은 몇 개를 놓고 사는지도 다 아는 작은 소도시에서, 밝고 명랑한 주인공이 우연히 사건에 휘말려 좌충우돌하다 사건을 해결해내는 장르를 말한다고 합니다. 코지 미스터리의 기원은 역시 애거서 크리스티를 들 수 있겠습니다. 그녀의 무수한 명작 중 특히 미스 마플이 등장하는 작품들이 코지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네요. 마을 노처녀들과 벽난로가에서 수다를 떨다가 시덥잖은 대화 중에 단서를 잡고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미스 마플의 특기니까요. 또한 크리스티의 라이벌, 도로시 세이어즈의 작품들에서 흔히 보이는 로맨스도 코지 미스터리의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미네소타주의 레이크 에덴이라는 소도시에 살고 있는 한나 스웬슨이 작품의 주인공입니다. 그녀는 '쿠키단지'라는 이름의 쿠키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나이는 혼기 꽉 찬 서른이라 엄마한테는 늘 결혼하라는 잔소리를 듣고 삽니다. 두 여동생은 미모가 특출난데 비해 외모적으로는 별로 매력이 없는지라 남자들한테 그다지 인기도 없고요. 물론 본인도 연애에 별로 집착하지 않습니다. 평소와 같이 이른 아침에 출근하던 한나는 자신의 카페에 유제품을 납품하는 배달원이 차안에서 총에 맞아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한나는 자신의 바로 아래 동생 안드레아의 남편이자 경찰로 일하고 있는 빌의 승진을 위해 살인사건 조사에 발벗고 나섭니다.

 

짧은 내용 소개만으로도 어떤 분위기일지 짐작이 가시겠죠. 한나는 조사에 임할 때 특출한 추리력이나 우수한 두뇌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편하게 볼 수 있는 코지 미스터리의 특성상 고도의 두뇌싸움은 등장해서는 안될 테니까요.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낸 마을 사람들과의 수다를 통해 진실에 접근하는 한나. 예를 들어 살해 현장에서 발견된 스티로폼 컵에 묻은 분홍 립스틱 자국을 조사해 보니 미혼모로 어렵게 살고 있는 화장품 외판원이 그 립스틱을 판매한 것으로 밝혀집니다. 그 외판원은 한나의 막내 동생 친구입니다. 외판원의 집에 가서 화장품 몇 개 팔아주면서 분홍 립스틱을 사간 사람이 누구냐, 살살 구슬러 봅니다. 그렇게 밝혀진 분홍 립스틱을 사간 여자는 마을 고등학교 미식 축구 코치의 아내입니다.

 

이런 식으로 조금씩 단서를 얻고, 용의자를 한정해 범인을 잡는 과정이 알기 쉽게 그려집니다. 머리를 격하게 굴리지 않아도 책만 쭉 따라가다 보면 범인이 밝혀지기 때문에 퍼즐식의 본격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분은 좀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가볍고, 편안하고, 기분 좋게가 모토인 코지 미스터리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보실 것을 충고드리고 싶네요. 결혼하라고 성화인 엄마의 잔소리나, 한나의 외로운 처지를 상쇄시켜주는 애완 고양이, 드레스나 화장품에 대한 수다, 나중에는 삼각 관계 로맨스까지 등장해 남성보다는 여성의 취향에 맞을 작품으로 보입니다. 작품 중간중간에는 한나가 만드는 쿠키의 레시피까지 따로 소개될 정도랍니다. 실제로 코지 미스터리를 쓰는 대부분의 작가가 여성이고, 독자도 여성이라고 하네요.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위해 밝은 미래를 포기하고 시골로 내려와 쿠키를 만드는 한나의 조수, 리사나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물건을 싸게 팔면서도 받는 사람의 자존심을 위해 원래 문제가 있는 물건이었다고 선의의 거짓말을 하는 드레스 가게 주인 등 등장하는 인물 모두가 밝고 따뜻한 인물들이라 기분 좋은 독서를 할 수 있지요. 물론 그만큼 현실감은 엷어집니다만. 사실 <초콜릿칩 쿠키 살인사건>에 나오는 따뜻한 사람들보다는, 여자의 피부를 벗겨 옷을 만드는 <양들의 침묵>식의 범죄가 더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 50페이지를 읽을 때까지 수 명의 사람이 잔인하게 죽어 나가는 추리소설에 지치신 분들이라면 가볍게 읽어볼 만한 작품입니다. 가볍고, 기분 좋고, 편안하게 말예요. 그러나 그만큼 가볍고, 단순하고, 무난하다는 약점도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책 자체에 오타도 많고, 편집상의 실수도 많이 보여 약간 실망스럽네요. 표지만 이쁘고 본문에는 오타가 많은 책은 얼굴은 예쁘지만 머리가 빈 미인과 마찬가지라는 지적을 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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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5-22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별 세개는 짜요 ㅠ.ㅠ 이거 시리즈가 나왔음 바란다구요^^;;;

jedai2000 2006-05-22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 세 개면 평균 아닌가 싶습니다. ^^ 저는 평균 정도의 작품이라 평작 별 세 개를 줬구요. 평균작 정도의 느낌인 이 작품에 별이 과도하게 붙으면 만에 하나 제 글을 읽고 이 책을 읽을 독자분들께서 실망하실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뭐야 별 4~5개라더니 뭐 이래, 하면서 말예요. 오히려 별이 3개인데 비해 재미있었어, 이런 식으로 반응을 할걸 기대하고 준 거예요.

시리즈가 나왔으면 좋겠지만, 요즘 해문출판사에서 너무 소식이 없어 솔직히 별 기대는 안되네요. 그래도 꼭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

상복의랑데뷰 2006-05-23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개인적으로는 별 세 개가 적당하다고 봅니다. 내용도 무난하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는 것 같지는 않고, 무엇보다도 오탈자의 정도가 너무 심해요. 교열을 안본게 아닐까 하는 느낌까지 들더군요.

jedai2000 2006-05-24 0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나오는데 보통 몇 개월 이상 걸리는 것 같던데, 교정. 교열은 안보고 그 시간에 무엇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별점에 관해서는 요즘 제가 쓰는 리뷰글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가급적이면 별점을 빼려 합니다. 좀 폭력적이라는 생각도 들고, 별점 선정 기준도 애매하고요. 그런데 알라딘은 별점 없이는 등록이 안되니. 쩝. 어쩔 수 없이 나름 최대한 공정하게 주려 노력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