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이라더니 정말 요즘은 도처에서 외국인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교통과 기술이 발전하니 세계가 한마을이나 다름없게 된 것이다. 이런 세계화 흐름에 발맞추어 절친한 친구 한놈이 국제 연애를 하고 있다. 중국 유학중에 만난 여자와 1년 넘게 교제를 계속하고 있는데, 주로 화상채팅을 통해 관계를 지속하고 있단다.

 

그런데 어제 마침내 그의 중국인 여자친구가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이 녀석이 어찌나 보고 싶었던지 오전11시부터 전화해서 나오라고 성화다. 친구 여자친구와 처음 상견례하는 자리니 나가야겠다 싶어 어쩔 수 없이 준비하고 나가서 동인천에 있는 인천 제2국제 여객터미널로 나갔다. 생전 처음 가보는 곳이었는데 그곳은 중국에서 들어오는 배의 승객들을 통관시키는 곳이었다.

 

몇 시에 오냐고 물었더니 오후 2시 배란다. 하도 어이가 없어 왜 이렇게 일찍 불렀냐고 했더니, 집에서 가만히 기다릴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쯤되면 화를 낼 기력도 없어진다. 우리는 3시간을 꼬박 기다렸다. 의자에 앉아 미셀 위가 골프 홀을 도는 모습을 시작부터 끝까지 지켜보니 힘이 축축 빠진다. 멍하니 기다리는 것만큼 사람 지치게 하는 일이 없다. 담배를 한갑은 피웠나보다.

 

터미널 밖에서 담배를 피고 있는데 말소리가 들려오길래 그쪽을 바라보았다. 시선이 머무는 곳에 중국 여인 두 명과 한국 남자 네 명이 있었다. 솔직히 무슨 사연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한국 남자들이 중국 여자 한 명을 잡아 끌며 어딘가로 데려가고 있었다. 다른 중국 여인은 끌려가는 중국 여인을 보며 애타게 무언가 말한다. 그러자 한국 남자 중 한 명이 '괜찮아. 괜찮아.' 하며 억지로 데려간다.

 

나는 원래 진부하기 짝이 없는 놈이라 뻔한 상상 밖에 하지 못한다. 돈을 벌러 온 중국 여자 두 명중 한 명밖에 필요가 없어 한 명은 내버려두고 가는 모양으로 보았다. 두 여자의 관계는 자매, 아니면 친구쯤 될 것이다. 한국 남자들이 데려가는 곳이 어딘지는 잘 모르겠다. 술집? 아니면 더 이상한 곳?

 

이별을 맞은 두 중국 여자는 구슬프게 울었다. 끌려가는 여자는 한참 멀리 사라지면서도 고개를 돌려 남은 여자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고, 남은 여자의 두 눈에도 눈물이 강물처럼 흘러내렸다. 마침내 저 멀리까지 사라져 다시는 볼 수 없는 곳으로 사라져 갈 때가지 끌려가는 여자는 한 번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마치 눈 속에 영원히 헤어진 자매 혹은 친구를 담아 두겠다는 의지로 보였다. 남은 여자의 눈물은 강물을 넘어 바다가 되었다. 오래된 옛시구절이 떠올랐다.

 

雨歇長提草色多     비 갠 강둑에 풀잎이 이들이들,

送君南浦動悲歌     남포에 임 보내니 슬픈 노래 북받치네.

大洞江水何時盡     어느 제 마르오리 대동강 푸른 물,

別淚年年添綠波     해마다 저 강물에 이별 눈물 더 보태네.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많은 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자유자재로 오고 가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크나큰 슬픔 역시 세계를 따라 움직이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이제 일본의 슬픔, 중국의 슬픔, 미국의 슬픔, 태국의 슬픔 등이 들어와 떠돌고 있다. 슬픔만은 수출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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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5-06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감입니다.

상복의랑데뷰 2006-05-06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지상의 시인가요?

BRINY 2006-05-06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지상의 送人이군요.

jedai2000 2006-05-08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맞습니다. 슬픔만은 수출하지 않는 세계화였으면 하고 바랄 뿐입니다.

상복의 랑데뷰님...밑의 브리니님께서 정확하게 설명해주셨네요.

브리니님...예. 제가 참 좋아하는 한시입니다. 읽어보다가 소름을 느꼈을 정도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