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이머즈 하이 1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박정임 옮김 / 함께(바소책)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일본의 손꼽히는 베스트셀러 작가 요코야마 히데오의 2003년 작품. 세계 최대의 항공기 추락 사건을 맞아 취재 전쟁을 벌이는 지방신문사의 기나긴 일주일이 박력있게 펼쳐진다. 1권 256쪽, 2권 248쪽이라는 극악의 분권으로 이토록 재미있고 좋은 책의 접근을 원천적으로 차단해 버린 출판사의 무신경에 화가 날 정도다. 그러나 분권으로 상한 마음을 너그럽게 용서해준다면 이보다 재미있는 책은 쉽사리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평생 일선 취재기자로 남고 싶었던 고참 기자 유키가 520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항공기 추락 사고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총괄데스크가 되면서 긴장감은 고조된다. 사건의 경중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 부장 기자들의 정치싸움과 특종을 터뜨리고 싶은 욕심에 불만이 고조된 부하 기자들 사이에서 유키는 고군분투하기 시작한다. 국내에 소개된 전작 <사라진 이틀>을 보신 분들이라면 요코야마 히데오가 조직안에서 벌어지는 암투를 얼마나 잘 그리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클라이머즈 하이>에서는 조직내 파워게임을 그리는 작가의 솜씨가 더욱 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왼쪽 페이지 첫째줄을 읽고 있던 눈이 순식간에 오른쪽 페이지 맨 아래줄로 움직여버린다. 놀라운 흡입력이다.

 

항공기 사고가 기둥 줄거리라면 산을 좋아하는 친구 안자이와의 우정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아들과의 반목과 화해를 그리는 것이 보조 줄거리이다. 기나긴 취재 전쟁을 끝내고, 결국 인생의 의미를 깨닫는 유키의 모습이 감동적이다. 단 두 작품을 읽어보았을 뿐이지만 작가의 취향이 짐작이 가는데, 미스터리의 얼개를 빌려 감동적인 인간 드라마를 추구하는 것이 작가의 장기라고 할 수 있겠다. 감동적인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눈물을 참기 힘들 것이다. 무엇보다 요코야마 히데오는 중년남성의 심리 묘사에 탁월함을 보인다. 일만 알고 살아온 인생이지만 가족도, 보람도, 명예도 잃은 중년남성의 자조와 비탄의 정서를 누구보다 예리하게 포착한다. 그러나 결국 그의 주인공들은 참된 인생의 의미를 깨달으며 지난 날을 따뜻하게 바라보게 된다. 저무는 꽃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묘사할 줄 아는 작가다.

 

다만 감동에 치우쳐 마무리가 작위적일 정도의 감동 일변도로 흐르는 것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사라진 이틀>에서도 이 점에 불만을 가진 독자들이 많았다. 무언가 그럴듯한 미스터리가 있는 것처럼 독자를 끌고 가다가 결국 한바탕 눈물로 마무리짓는다는 것이다. <클라이머즈 하이>에서도 이런 불만에서는 자유롭지 못할 것 같다. 하지만 결말 직전까지의 놀라운 박진감은 진도 7의 메가톤급 지진의 한복판에 있는 것 같았다. 작가 요코야마 히데오는 12년 동안 기자로 재직했던 경험이 있다. 그래서 신문사의 모습을 이토록 정확하게 써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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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3-16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는 미스터리가 아닌 휴머니즘을 바탕에 둔 인생 자체가 미스터리라는 시각인 것 같아요.

한솔로 2006-03-17 0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잇, 보관함에 있는 걸 장바구니로 끄집어내야겠군요ㅎ

jedai2000 2006-03-17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동감입니다..^^;; 인생 자체가 미스터리라는 시각이 심포 유이치랑 웬지 비슷한 거 같습니다.

한솔로님...재미있습니다.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