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혐오자 밀리언셀러 클럽 6
에드 맥베인 지음, 김재윤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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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달 전이었죠. 무더웠던 6월 6일 우리는 슬픈 소식을 전해 들어야 했습니다. 바로 현존하는(했던) 경찰 소설의 거장 에드 맥베인이 타계했다는 소식이 그것이었죠. 에드 맥베인은 1926년에 태어나 2005년에 사망했으니 향년 79세였네요. 천수를 누린 셈이지만 애독자로서 여전히 아쉬움이 남네요.

 

에드 맥베인은 평생 5개의 이름으로 거의 100편 가까운 소설을 썼습니다. 당대의 많은 작가들처럼 그도 싸구려 범죄소설 잡지에 단편들을 팔면서 작가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미국 하드 보일드, 범죄 소설에서 <블랙 마스크>같은 펄프매거진의 역할이 얼마나 컸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1956년 맥베인은 독특한 형식의 경찰소설을 발표합니다. 향후 50년 넘는 세월동안 그의 이름을 불멸의 것으로 만들어 준 '87관서 시리즈'의 첫 작품을요. 그 작품이 바로 <경찰 혐오자>입니다. '87관서 시리즈'는 가공의 도시 이솔라의 87번가에서 벌어지는 강력 범죄들을 해결하는 경찰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후 맥베인은 50편 넘는 '87관서 시리즈'와 30편 가까운 변호사 '매튜 호프 시리즈', 주정뱅이 탐정 '커트 캐넌'시리즈 등의 작품을 발표합니다. 영화 시나리오도 가끔 썼는데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의 <새>의 각본도 그가 썼습니다. (히치콕과의 사이는 매우 안 좋았다고 하네요). 또한 그의 작품은 타계한 일본의 거장 구로자와 아키라에 의해 영화화되기도 했습니다.

 

<경찰 혐오자>는 타는 듯이 무더운 한여름, 87관서의 형사가 연속 살해되는 사건을 해결해내는 형사들의 이야기입니다. 동료 형사가 3명이나 피살되자 경찰의 명예를 위해, 또 동료들의 원한을 갚기 위해 분투하는 87관서 형사들의 활약상이 멋지게 펼쳐집니다.

 

에드 맥베인은 종래의 추리소설, 고립된 공간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지면 명탐정이 등장해 명쾌하게 해결한다는 내용에 반감이 있었습니다. 현실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나면 명탐정은 폴리스 라인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니까요. 실제 살인사건을 수사할 수 있는 사람은 형사들이고, 그 형사들은 팀을 이뤄 조직적으로 수사해 나가며 진실에 접근해 나갑니다.

 

바로 이런 현실감 넘치는 경찰 수사를 추리소설에 처음으로 도입한 게 에드 맥베인입니다. 그의 작품에서는 87관서의 16명 형사가 모두 주인공입니다. 물론 중심 인물이자 가장 뛰어난 형사는 스티브 카렐라 형사이지만 다른 형사들도 카렐라 못지 않습니다. 16명의 형사가 공통된 사건을 맡아 발로 뛰며, 증인을 만나고, 증거를 조사하며, 때로는 엉뚱한 가설을 내놓고, 어쩌다 결정적인 단서를 발견하기도 하는 등의 현실적인 경찰 수사가 정교하게 묘사되는 것입니다.

 

16명의 형사는 50년의 세월동안 죽기도 하고, 은퇴하기도 합니다. 낯선 형사가 전출을 오기도 하고요. 데뷔작 <경찰 혐오자>에서 열혈 총각인 스티브 카렐라 형사는 시리즈가 진행되면서 2명의 아이 아버지가 됩니다. '87관서 시리즈'는 이렇게 각각의 캐릭터가 생명을 가지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동감 넘치는 작품들이었습니다. 다시 볼 수 없는 게 아쉬울 뿐이죠...

 

<경찰 혐오자>과 국내 출간된 몇몇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에드 맥베인은 범죄 소설의 거장이었습니다. 동시대의 누구보다 박진감 넘치는 대화(dialogue)장면을 쓸 줄 알았고, 작품에 등장하는 분위기 묘사는 최강이었습니다.

 

특히 날씨 묘사가 훌륭하죠. <경찰 혐오자>에서도 이솔라를 휘감고 있는 끈적끈적하고 무더운 날씨의 묘사는 책을 읽고 있는 사람마저 지치게 만듭니다. 칼로 찌르듯 파고드는 무더운 날씨 속에 경찰 연속 살해는 출구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 압도적인 더위의 묘사로 인해, 독자들은 미궁에 빠진 사건의 답답하고 찜찜한 기분에 한층 더 빠져듭니다. 독자는 심리적으로 더 답답해지는 거죠. 마지막 장면, 사건이 시원하게 해결되고, 날씨 마저 시원하게 풀립니다. 이 때의 카타르시스는 정말 대단합니다. 그간의 질식할 듯한 더위와 수수께끼 두 가지가 확 풀리면서 여름날 소나기 같은 시원한 느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소설에서 등장하는 배경과 분위기의 묘사들로 독자들을 쥐락펴락하는 테크닉을 에드 맥베인은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50년 가까이 지속된 '87관서 시리즈'의 역사 속에는 참으로 많은 것이 있었습니다. 현대 경찰소설의 한 획을 그은 작품이었으며, 형사라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변화를 통해 인간에 대해 고찰해 보는 인간 드라마였으며, 작품에서 베트남 전쟁의 상흔을 가진 범죄자가 등장하기도 하는 등 미국 사회의 병리 현상을 비추는 거울의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다시는 스티브 카렐라 형사를 비롯해 마이어 마이어 형사, 버트 클링 형사 등의 이름을 볼 수 없겠군요. 하기야 반 세기 가까이  온갖 사건들을 해결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87관서의형사님들...모두 그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사진 왼쪽이 에드 맥베인, 세 번째 아내와 함께...

영국추리작가협회가 수상하는 평생공로상(다이아몬드 단검상)을 수상한 1998년 사진.

그는 영국과 미국의 추리작가협회의 평생공로상을 모두 수상한 작가 중 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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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11-13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많은 작품들을 볼 수 있었음 좋겠어요 .ㅠㅠ

거친아이 2005-11-13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분도 계셨군요..또 첨으로 알았네요..유명한 분인 듯 싶은데..제겐 유명한 분이 아니시네요..이것도 읽어보고 싶네요..^^ 리뷰 잘 읽었어요..

jedai2000 2005-11-13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그러게요. 작품이 55편인데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 건 손꼽으니 아쉬운 노릇입니다. 더군다나 '87관서 시리즈'는 시리즈 물의 재미를 최대한 살린 작품인데 말예요...

거친아이님...에드 맥베인은 경찰, 범죄 소설에선 거장급의 레테르가 붙은 작가입니다. 읽는 맛이 대단한 작가죠. <경찰 혐오자>부터 한 번 시작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