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벽하게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 2007년에 출간된 책만을 포함하며, 당연히 국내에 출간된 모든 미스터리를 읽지는 못했습니다.

 

 

5위.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 이사카 고타로 

 





 

 

 

 

 

대학 신입생이 된 나는 난생 처음 자취를 시작한다. 이삿짐을 힘겹게 옮기고 자, 이제부터 옆방에 인사를 가자고 결심한 나는 옆방에서 잘 생긴 청년을 만난다. 어쩌다 보니 이 청년과 친해져서 서로 마실도 오가는 사이가 됐는데, 어느 날 청년이 기묘한 제안을 하는 게 아닌가. 저 끝방에 사는 부탄 남자 도르지에게 사전을 선물하고 싶다며 서점을 털잔다. 사전이 얼마나 한다고 도둑질까지 해야 하지, 고민하다가도 어느새 청년의 박력에 말려들어 서점 뒷문을 모델 건을 들고 지키는 나. 이 작품에는 두 개의 시간 축이 있는데, 여기서부터가 현재의 이야기고 또 하나는 2년 전의 이야기다. 2년 전의 이야기는 애완동물을 취미로 잔인하게 살해하는 3인조 인간쓰레기와 엮이게 되는 몇 명의 청춘들이 주인공이다. 이 두 이야기는 한 챕터마다 번갈아가며 진행되다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하나로 만난다. 이런 구성의 대가였던 빌 벨린저의 수법을 고스란히 흉내 낸 이 작품의 결말에서야 우리는 왜 사전 하나 때문에 서점을 털어야 했는지, 뒷문은 왜 꼭 지켜야 하는지의 이유를 알게 된다. 늘 독특한 구조와 신선한 이야기, 청량한 뒷맛으로 이름 높은 이사카 고타로의 작품으로 전작들의 장점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지만 전작들과 달리 우울하고 가슴 아린 마무리를 보여준다.

 

 

4위.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 - 와카타케 나나미 

 




소박하고 평범한 일상에서 미스터리 요소를 뽑아내 흥미와 몰입감을 돋우는 '일상의 미스터리' 계열 작품. 건설회사의 사보 편집장이 된 와카타케 나나미(작가와 동명으로 설정했다)는 매월 한 편씩 들어갈 소설을 선배인 소설가에게 의뢰한다. 하지만 선배는 집필을 고사하고 익명 작가 한 명을 소개시켜주는데 다행히 익명 작가는 펑크도 없이 매달 소설 하나씩을 보내준다. 4월부터 다음 해 3월까지 총 12편의 이야기는 2월에는 발렌타인 데이, 4월에는 벚꽃놀이 등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 속에 담겨 있는 미스터리를 소재로 하고 있어 전반적으로 따뜻하고 흐뭇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하지만 모든 연재가 종료되고 익명 작가와 편집장 나나미가 조우하는 결말에서는 그렇게 녹록치만은 않은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눈을 크게 뜨고 찾아보면 소소한 우리네 일상에도 보석 같은 미스터리가 얼마든지 숨어 있다는 걸 흥미롭게 보여주는 단편집으로 몇몇 단편은 한국인이 이해하기 어렵지만 사소한 부분 하나하나까지 치밀하게 짜내려가 인상적인 결말을 만들어낸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3위. ZOO - 오츠 이치 

 




열일곱 살에 데뷔한 천재 작가 오츠 이치의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단편집. 총 10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으며 호러, 유머 미스터리, SF, 일종의 잔혹 동화를 비롯해 수록작들 모두가 다채로운 색깔을 보여준다. 전편이 약간은 어두운 색깔로 채색된 듯한 느낌이라 다 읽고 나면 우울해질 수도 있지만 이토록 다양한 이야기들을 거의 다 매끈하게 뽑아낸 오츠 이치의 재기와 역량만큼은 인정받아야 할 것 같다. 가장 추천하고 싶은 이야기는 남매가 영문도 모르고 철창으로 막힌 독방에 갇히면서 시작하는 'Seven Rooms'. 아직 어린 꼬마인 남동생은 몸이 작아 배수구를 통해 옆방으로 이동할 수 있는데, 역시나 일곱 개의 방에는 잡혀온 사람들이 하나씩 감금되어 있다. 매일 한 명씩 희생자들을 전기톱으로 해체하는 살인마의 손에서 남매의 운명은 어떻게 될런지 지켜보시라. 그밖에 부자 노인이 잠을 깨보니 칼을 맞아 피를 한바탕 흘리고 있었다는 '혈액을 찾아라'라는 작품은 읽는 내내 폭소를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웃기지만 범인의 정체는 완벽한 본격 미스터리의 방법으로 드러난다. 수록작 모두 독특한 맛을 가진 재미를 보장한다. 

 

 

2위. 살육에 이르는 병 - 아비코 다케마루 

 




<살육에 이르는 병>은 무언가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한 남자가 체포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곧 몇 달 전으로 되돌아가 정신에 병이 든 이 남자가 살육에 이끌리게 되는 혼란스런 심리와 여성 희생자들을 천천히 물색해 살인을 저지르는 과정이 자세하게 묘사되며, 어딘지 수상한 행동을 일삼는 이 남자를 의심하는 그의 가족 중 한 명의 여성이 나름대로 조사를 벌이는 모습이 교차된다. 마지막으로 은퇴한 형사가 우연히 이 사건에 말려들어 범인을 추격한다. 이 세 명의 시선으로 진행되는 이 작품은 뒤로 갈수록 긴장이 고조되다 충격적인 결말로 매조지된다. 뛰어난 반전과 엽기적인 살인 행각의 가감없는 묘사로 화제를 끈 작품이지만 단순히 눈길을 끌기 위해 처절한 살육 장면을 그렇게 길고 자세하게 그렸다고 보기는 힘들다. 실상 이 작품은 현대 일본 사회와 가정이 한 사람의 정상적이고 온전한 성인 남성을 길러내기 힘든 구조적 모순을 가지고 있다는 주제의식을 그것과 호응하는 훌륭한 반전을 통해 공감가게 그려내고 있다. 그동안 많은 미스터리 소설을 보았지만 주제를 이렇게 잘 살려주는 트릭, 트릭을 이렇게 훌륭하게 뒷받침해주는 주제를 가진 작품은 흔치 않았다. 그렇다고 결코 딱딱한 작품은 아니며 반전의 '깜짝쇼'만으로도 충분히 즐길 만한 작품이다.

 

 

1위. 이름없는 독 - 미야베 미유키 

 




<누군가>에 이은 평범남 탐정 스기야마 사부로 시리즈 제2작. 원래는 도저히 추리소설에 쓸 수 없을 정도로 무난하고 사람 좋은 삼십대 남자에 불과하지만, 다행히(?) 재벌의 딸과 결혼함으로써 어느 정도 특별한 설정을 부여받은 스기야마다. 그는 장인이 소유한 거대 그룹 이마다 콘체른의 사보 팀에 편집자로 근무하며 병약하지만 상냥한 아내, 토끼같이 사랑스런 딸과 함께 행복한 일상을 살고 있다. 유일한 걱정이라면 이 행복이 언젠가는 깨질지도 모른다는 고민에 자다가도 한번씩 식은땀을 흘리는 것뿐. 전작 <누군가>에서는 장인의 운전사가 자전거 뺑소니로 죽은 사건과 우연히 맞닥뜨리게 되면서 본의 아니게 탐정 일을 하게 되지만 <이름없는 독>에서는 훨씬 더 심각한 무차별 독살 사건을 조사하게 된다. 편의점 음료수병에 독약을 주입해 닥치는 대로 희생자를 늘려나가는 무서운 범죄다. 스기야마의 고생은 이것만이 아니다. 온갖 사악한 독으로 똘똘 뭉쳐 있는 듯한 겐다라는 임시직 여직원과 대결도 펼쳐야 한다. 사회파 미스터리의 거장 미야베 미유키의 끝없는 저력이 또 한번 입증되었다. 현대 사회의 모든 부분을 병들게 만드는 인간이 내뿜는 독이란 무엇인가를 탐구하는 걸작이다. 인간의 끝없는 이기심과 욕심이 독처럼 환경뿐 아니라 사회 전체를 오염시켜 가고 있는 현실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힘이 있다. 그야말로 독 그 자체인 겐다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낸 것만으로도 성공작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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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 2008-01-21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두권밖에....................;;;;

보석 2008-01-21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읽었습니다!(어쩐지 뿌듯) 근데 페이퍼 제목은 '서양'이 아니라 '동양'이나 '일본'으로 바꿔야 할 것 같은데요.^^

jedai2000 2008-01-21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플시즈님...^^ 기회 되시면 다 읽어보셔요

보석님...-_-;; 그러네요. 얼른 수정했습니다. 바로 밑에 서양 편이 있죠. 근데 서양은 거의 미국이고, 동양은 다 일본이라 좀 그렇기도 하네요 ㅎㅎ

쥬베이 2008-01-21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위 빼놓고는 다 읽었어요^^
<이름없는 독>은 출간되자마자 샀는데, 아직 못 읽었답니다.
제다이님 추천이시니, 엄청 기대 되네요^^

jedai2000 2008-01-22 0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쥬베이님...저도 무척 아꼈다 본 책인데 과연 실망을 시키지 않더군요. 아주 좋은 작품이라 생각하는데 쥬베이님께서도 만족하심 좋겠어요 ^^

bongbong 2008-05-26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zoo의SEVEN ROOMS 굉장하지않나요^^

jedai2000 2008-05-27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븐 룸>이 젤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심지어 54세이신 저희 어머님도 재미있어 하셨다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