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서 1
브래드 멜처 지음, 유소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운명의 서>가 작년 가을 미국에서 꽤 성공한 작품이란 걸 알고 있었기에 읽기 전, 기대는 매우 컸었다. 과연 책 소개글을 보면 프리메이슨 음모론에 전직 대통령들이 자문한 정치 스릴러까지 재미있을 요소가 충분해 보였다. 그러나 막상 실제 책을 읽어보니 기대보다는 못했다는 게 솔직한 감상이다. 프리메이슨 음모론은 요즘 유행하는 말로 '낚였다'는 생각이 절로 날 만큼 그 비중이 작았고, 솔직히 이야기의 주된 흐름과는 전혀 무관해 그야말로 변죽만 울린 셈이다. 단순히 말해 백악관과 국회의사당이 프리메이슨에 의해 건축되어 현재 워싱턴 D.C 지도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는 정도만 간략히 소개되는 정도고, 그마저도 빼버린다 해도 책 내용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프리메이슨 단원들이 그토록 숭배한다는 '운명의 서'는 아예 나오지도 않고. <운명의 서>의 또 하나의 강력한 축인 정치스럴러 면에서는 아주 실패하지는 않았지만, 쓸데없이 지나치게 복잡한 감이 있고, 적이 친구로-친구가 적으로 과도하게 반전을 시도함으로써 중구난방에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주인공은 라이언 매닝 현 미합중국 대통령의 젊은 보좌관 웨스 할로웨이다. 자신의 실수로 보좌관 중역이자 대학 때부터 대통령의 친구였던 론 보일과 대통령의 면담이 취소되자, 항의하는 론 보일을 달래기 위해 대통령이 개회사를 하기로 한 나스카 레이싱 장으로 향하는 리무진 안에 그를 태운다. 정식 면담 대신 차 안에서 못 한 이야기 나누라는 배려다. 대통령을 보려고 수많은 군중들로 북적대는 레이싱 경기장에 도착한 리무진에서 대통령과 보좌관들이 내리자마자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간다. 광신도 저격수인 니코가 총을 난사한 것이다. 다행히 대통령은 총에 맞지 않았지만 론 보일은 세 발의 총을 맞아 호송 도중 사망하고, 웨스는 뺨에 구멍이 뚫려 얼굴이 흉측하게 변해버린다. 그러나 얼굴의 상처도 잊은 채 웨스는 깊은 슬픔에 빠지는데, 자신 때문에 론 보일이 죽었다는 자책감 때문이다. 내가 론 보일을 리무진에 태우지만 않았더라면...암살 사건의 여파로 재선에 실패한 대통령과 웨스를 비롯한 보좌관들은 낙향하고 전직 대통령과 그 측근으로써 그럭저럭 살아간다. 8년 후, 매닝 대통령은 말레이시아에 초청 연설을 가게 되고, 충실한 대통령의 그림자 웨스도 따라가는데 그곳에서 볼 수도 없고, 봐서도 안 되는 한 인물을 보게 된다. 8년 전에 죽은 론 보일을. 론 보일 때문에 그토록 마음 아파했는데, 그가 살아 있었다니 하늘이 무너질 일이다.

 

여기까지가 초반부의 내용인데 독자를 상당히 몰입시키는 구석이 있다. 템포도 빠르고, 웨스가 느끼는 절절한 슬픔도 크게 공감이 간다. 하지만 작가 브래드 멜처는 그 이상 나가지 못했다. 구색은 다 갖췄지만 어딘지 치밀함이 결여된 스토리(예를 들어 모든 음모의 주모자로 알려져 웨스가 심혈을 기울여 찾던 삼인조의 정체는 두 다리 건너 전화 한 통화에 그들의 이름, 나이, 이력 등이 술술 나와버린다)가 뼈아프다. 전술했듯이 워싱턴 지도에 숨겨진 프리메이슨 상징들을 소개하고, 대통령이 풀던 크로스워드 퍼즐에 감춰진 암호까지 수록해 흥미를 돋구고 있으나, 결국 그 해답이란 것도 공허하고 플롯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한 채 미아처럼 혼자 떠돌고 있다. 배신과 배신, 음모와 음모로 점철된 복마전 같은 정치판을 소재로 한 소설이라 그런지 최후까지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지를 알 수 없는데, 너무 복잡하게 꼬다보니 앞에 공들여 만든 설정이 뒤의 반전과 어그러져 어설퍼 보이기도 한다. 한 마디로 싱싱한 회와 일등급 한우라는 최상급의 재료로 섞어찌게를 만들어버림으로써 재료들의 맛을 제대로 못 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좋지 않은 내용만 주로 휘갈겼는데, 미덕이 아주 없는 소설은 아니다. 먼저 실제 빌 클린턴, 조지 부시 두 전 미국 대통령이 감수했다는 전직 미국 대통령의 삶은 큰 흥밋거리가 된다. 알래스카에서 뉴욕까지 모든 도로를 전화 한 통화로 텅텅 비울 수 있을 정도로 세계 최고의 권력을 쥐고 있던 사람이 이제는 신호등 앞에서 빨간 불이면 멈춰야 한다는 그 권력무상의 쓸쓸함을 그럴듯하게 그리고 있는 점은 돋보이고 재미있다. 아마도 대통령 보좌관들에게도 많은 리서치를 한 듯 웨스가 대통령에게 느끼는 감정들-대통령의 영광이 나의 영광이다-이 잘 살아 있는 것도 칭찬할 만하다. 하지만 역시 <운명의 서>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대통령의 그림자로서 살아가던 웨스가 권력을 위해 속고 속이며 한없이 속이는 정치꾼들의 실체를 파악하고는 오로지 대통령에 의해, 대통령에 의한, 대통령을 위한 삶에서 벗어나 자아를 찾는다는 멋진 결말일 것이다. 너무 긴 감이 있고, 부족한 점이 많이 눈에 띄는 소설이지만 적어도 이 부분에서만큼은 작가가 멋지게 성공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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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7-04-14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감입니다^^;;;

하늘바람 2007-04-14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 전 못 읽어보아서 참고할게요 님

jedai2000 2007-04-15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대부분 아쉬운 점이나 좋은 점이나 사람이 보는 관점은 비슷한 것 같아요 ^^

하늘바람님...가볍게 시간 때우기로 보시면 나쁘진 않을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