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 플래츠
윌리엄 랜데이 지음, 최필원 옮김 / 북앳북스 / 2006년 7월
평점 :
절판


 

메인 주 베르세일스의 경찰서장인 벤 트루먼은 우울하다. 경찰서장이라는 높은 직함인데 왜 우울하냐고? 시골이라 마을 인구라봐야 몇 명 안 되고, 경찰서도 전 직원이 자기까지 합쳐 2명에 불과한데. 게다가 얼마 전에는 치매에 걸려 고통받던 어머니마저 음독자살했다. 이런 시골에 쳐박혀 희망없는 인생을 마감해야 하는 걸까. 고민하던 차에 벤은 인생의 전기가 될 만한 일에 맞닥뜨린다. 대도시 보스턴의 검사 로버트 댄지거의 시체가 베르세일스에서 발견된 것이다. 발견자는 벤 트루먼 자신. 그러나 그는 보스턴 검찰국의 압력에 밀려 수사에는 참여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 이때 우연히 알게 된 인물이 전직형사 켈리. 켈리는 벤에게 조목조목 수사의 요령을 알려주고, 이에 감탄한 벤은 은퇴한 노형사 켈리에게 다시 한번 수사에 대한 열정을 심어준 다음 그를 베르세일스 경찰서 부서장에 임명하고, 보스턴으로 함께 떠난다. 아이는 집을 나서야 어른이 되고, 어른은 여행을 떠나야 남자가 되기 때문에.

 

보스턴의 미션 플래츠라는 도시. 길거리 어딘가에서 묵직한 중저음의 힙합 음악이 들려올 듯한 전형적인 흑인 갱단의 동네다. 이 곳을 지배하는 세력은 해럴드 블랙스턴이라는 두목을 정점으로 뭉친 '미션 파시'라는 마약 조직. 벤은 해럴드가 10년 전, 경찰 살해 사건의 용의자였지만 무죄방면 됐고, 최근 댄지거가 수사를 재개하려 했다는 것을 밝혀낸다. 벤은 유사 아버지 같은 존재인 켈리와 그녀의 딸 캐롤라인(미션 플래츠의 검사로 재직하고 있다)의 도움을 받아 수사에 나선다. 더 나은 인생을 위하여...

 

실제 검사 출신이라는 윌리엄 랜데이의 처녀작이다. 첫 작품이라는 걸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해 영국 추리작가협회에서 수여하는 신인상을 받았다. 이 정도 글이 되는 사람이 지금까지 왜 검사를 하고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과거와 현재의 사건을 오가는 이야기는 촘촘하며, 문장도 유려하고, 결말에는 충격적인 반전까지 갖췄다. 데뷔작에서 이미 제임스 엘로이 풍의 하드보일드한 분위기(사회 정의를 실시한다는 명목 하에 자행되는 경찰들의 위악적인 폭력이 특히 그렇다)와 문장력, 스콧 터로를 연상시키는 법조계의 풍경들과 반전을 보여주고 있으니 장래가 촉망된다고 할 수밖에. 그런데 사실 언급한 대가들의 느낌이 너무 강해 이제 첫 작품을 낸 신인작가만의 개성은 조금 흐릿해 보여 약간 아쉽기도 하다. 그래도 첫 작품에서 이런 공인 받은 대가들의 느낌을 줄만큼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를 잘 이해하고, 능란하게 이끌어나가고 있음은 칭찬해야 마땅할 것이다.

 

<미션 플래츠>의 최대 매력은 아마도 반전일 것이다. 이런 결말을 상상할 사람은 아마 한 명도 없었을 듯. 충격이라는 말로도 모자란 감이 있다. 다만 등장인물들의 행적에 관한 정보를 독자에게 사실상 제공하지 않으면서 반전을 터뜨리기에, 공정하다고 할 수는 없겠다. 뒤로 갈수록 어, 어? 어! 하게 되지만 결국 독자가 절대 미리 알아챌 수 있게끔 단서를 주지 않았기에 가능한 반전이므로 아쉬움이 제법 남는다. 하지만 이 점을 제외하면 간만에 보는 탄탄한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등장인물들은 조금도 허황되지 않고, 심지어 악역에게도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그럴 듯한 이유를 쥐어줌으로써 단순한 선악의 이분법의 함정을 벗어난다. 특히 비밀을 간직한, 노련한 형사 마틴 기튼스와 피해의식에 젖어있는 훌리오 베가 전직 형사의 캐릭터 묘사가 좋은데, 개인적으로는 켈리의 매력에 포로가 되었다. 때로는 아버지처럼, 때로는 인생 선배로서, 때로는 경찰의 모든 수법에 통달한 노회한 형사로서 켈리는 벤을 교육시키고 성실하게 돕는다. 연인으로 발전하게 된 벤과 캐롤라인의 관계보다 오히려 켈리와의 우정이 훨씬 흡족하게 읽혔다.

 

장점만 가득 하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그러나 분명히 매력 있고 완성도가 높은 소설이다. 생생한 등장인물들의 성격과 과거의 사건을 둘러싼 현재의 흥미로운 공방전, 한없이 우울한 결말까지, 처녀작이라는 걸 감안하면 오히려 대단한 수준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신인작가 윌리엄 랜데이를 미국 미스터리 스릴러의 미래라고 불러도 과히 부족함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잘 모르겠지만, 믿을 만한 것 같아요. 부서장님께서도 그러셨잖아요. 그는 내게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스스로 위험한 길을 택했다고 말이예요."

켈리가 신음을 토했다. 흠.

"다 털어놓을 걸 그랬어요. 그들도 경찰인데, 그들에게까지 숨길 필요는 없잖아요."

"그런 소리 말게. 우리는 보스턴 경찰청 소속이 아니야. 우린 우리 수사만 하면 되는 거라고. 자넨 그저 원하는 만큼만 들려주면 돼. 그들도 우리에게 모든 걸 다 털어놓고 있진 않으니까. 진정한 법 집행의 세계에 들어온 걸 환영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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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솔로 2007-01-18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꽤 괜찮은 스릴러인데 다소 찬밥 취급을 받은 거 같아요. 무엇보다 문장이 꽤나 매력적이었어요.

물만두 2007-01-18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아까운 작품이죠.

jedai2000 2007-01-18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솔로님...꽤 괜찮죠. 아주 수준급이예요. 제2작은 미국에선 나왔는데, 우리나라 출판사에서는 시장성이 별로라 어려울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궁금한데...

물만두님...작년에 비교적 사장된 작품 중 가장 아깝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