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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나의 점수 : ★★★☆ (별3개반)
제목에 끌렸던 책 그리고 에쿠니 가오리와 만난 두 번째 책.
<나의 작은 새>가 웨하스 비스킷처럼 편하게 씹어먹었을 수 있었다고 하자면 이 책은 다크 초콜릿 속
에 든 생크림을 맛보는 느낌이었다. 나는 단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삶을 초콜릿에 비유하자면 다크 초
콜릿이길 바란다. 그러나 학창시절을 떠올리면 그때의 싱그러움은 아마도 내 다크 초콜릿 속에 감춰져
있던 생크림 부분이었으리라.
여고생 여러 명의 이야기가 단편처럼 흩어져있는 말하자면 옴니버스 형식이다. 그러나 눈에 띄는 형식
보다는 기억에 대한 단편집이라고 부르고 싶다. 학창시절이 언제 지나가 버렸는지, 나는 길을 가다 마
주치는 여고생의 모습이 낯선지 오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부럽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나고 보니 그렇
게나 지겹던 교복도 그리워진다.
한 교실의 여섯 여학생은 친구이다. 보이는 모습은 모두 같은 교복에 수다나 떨고 멋을 내며 깔깔거리
는 것 같지만 각자의 사정이 있다. 내가 학교 다닐 때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라 조금 낯설지만 희미해진
기억에서 찾아낸 기억의 단편은 가끔 너무도 선명했다.
기억이란 그런 것일까. 사라져서 어딘가 꼭꼭 숨어있다가도 술래에게 발각되면 나타나는 그런 것.
작가의 글은 손가락이 시릴 듯 투명하지만 객관적인 느낌이다. 책 속의 인물에게 동화되기보다 내 기억
을 찾고 있는 시간이 많았다. 제목을 정말이지 잘도 표현했다. 엄마와의 데이트, 주말부부, 혼자만의 세
상에 빠진 친구는 내게도 속했던 부분이었다.
기억은 사실 끝이 없다. 자꾸만 사라져도 삭제되는 것이 아니라서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선명해지기도
하며, 어떤 날은 하나의 시선, 소리, 냄새만으로도 살아나게 마련이다. 그런 수많은 기억은 앞으로도 쌓
일 것이다. 그러니 예전의 기억이 조금 사라진다 해도 그것은 슬픈 일이 아니다. 오히려 당연하다.
그러나 그렇게 사라질 기억이어도 그 순간만큼은 늘 절실하다. 오늘도, 이 순간도 그렇다.
이 책은 성장소설 같지만 뚜렷한 실체보다는 희미한 기억 저편을 더듬는다. 후반부의 마무리는 조금 아
쉬운 부분이었다. 조금 다급하게 마무리한 느낌. 작가는 그냥 그렇게 보여주고는 또다시 사라진다.
이제 두 권의 책을 만났지만 두 권으로 느껴지는 작가의 책은 가독성은 좋지만 늘 여운을 남긴다. 아마
도 그래서 앞으로도 찾아 읽어야 할 것 같다. 나는 에쿠니 가오리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녀의 감성을
느끼고 싶다. 차가운 손가락이지만 결국 따뜻해지는 온기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기억과 만난
어느 지점에서 어쩌면 우린 손을 맞잡았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