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강화
이태준 지음, 임형택 해제 / 창비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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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고전과 제대로 만나다.

 글쓰기의 고전으로 칭송되는 이태준의 <문장강화>를 제대로 읽어보기로 다짐한 것은 상당히 오래되었
다. 그러나 사실 글쓰기나 책읽기에 관한 책은 많이 읽는 편이 아니어서 차일피일 미루다 늦게 잡았다.
그러나 많은 후회를 했다. 역시 고전은 고전이었던 것이다.

쫓기는 생활 속에서도 책은 손에서 놓지 않으려 노력했는데 서평만은 항상 늦어졌다. 지난달에 읽고 이
제야 쓰려니 조금은 걱정이다. 또 그야말로 마구잡이식으로 갈겨서 정리하고 있던 차에 가뭄에 단비오
듯 이 책의 제목을 보며 차근히 써보자고 마음을 다잡고 쓰기로 한다.


예문의 풍부함과 우리글의 아름다움.

 이태준은 구인회의 한 명으로 구보씨인 박태준, 독특한 이상, 김기림 등과 함께 활동했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서도 구인회 멤버들의 글을 예문으로 만날 수 있다. 이 책의 특징 중 하나로 예문의 풍부함을 결
코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손에 잘 잡히지 않았던 우리 고전을 돌아보며 시나브로 읽어야겠다는 생각
아니 읽고 말아야겠다는 의욕이 뭉게뭉게 피어났다. 박태원을 읽으면서 이상의 소설도 만나야겠다고
계획하고 미루고 있었는데 다시 자극이 되었다.


우리 고전(古典)이 고전(苦戰)을 면치 못하는 이유.

 또한, 우리 고전의 아름다움이 극명하게 빛을 발하지 못하는 이유에 관해 되새겨 보았다. 나부터도 관
심이 있다 하면서도 정작 손이 가지 않는 이유는 내가 편독이 심해서가 아니었다. 현대적인 시도가 과
연 얼마나 적극적으로 행해지고 있는지를 의심해봐야 한다. 우리조차도 읽지 않는 고전을 세계로 번역
해서 나가기란 어려운 일이다. 한글의 아름다움이야 세계인들도 알지만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되도록
번역하는 작업은 작가가 창작하는 것만큼 뼈를 깎는 일이기 때문이다.

 가까운 예로 책에 예로 나온 <춘향전>을 이야기해보기로 한다. 이태준은 지적한다. 왜 춘향전이 널리
읽히지 못하는지를.


한 사람이 목청을 돋우어 멋지게 군소리를 넣어가며 읽으며, 여러 사람이 듣고 즐긴다. 독자가 아니라
연자(演者)요 청중이다. 독서와는 거리가 먼 낭독 연기를 위해 씌어진 대본이다. (105쪽)



 운문과 산문의 구별이 되지 않게 3·4조, 혹은 4·4조 글이 대부분인데 산문보다는 운문 쪽에 가깝게,
또 운문은 아니고 낭독문체에 가까운 글이나 의식적으로 다듬어졌기에 독자와 거리가 먼 글이 되었다.
또 과장이 심하다는 특징이 있는데, 이는 마치 극과 비슷한 점이다. 극도 생각보다 많이 읽히지 않는다
는 것 역시 마찬가지로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러는 동시에 그 과장이 특징이기에 독자에게 약간의
 거부 내지는 낯설음을 주는 것이다. 현실감이 희박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대신 그를 지지하는 마니아
에게는 무엇보다도 그것이 매력일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 생각에는 그 특징을 없애자는 것이 아니고 좀 더 쉽게 풀어써야 한다는 것이다. 글이란 것이 어렵기
만 하다면 또 시대와 동떨어져 있다면 이미 그것은 글의 죽음을 면할 수 없다. 우리의 고유문화인 고전
을 높이 평가하면서 세계에서도 인정받고 싶다면 먼저 우리부터 손이 가게 하여야 된다는 말이다. 그때
가 오면 세계에서도 인정할 것이다. 세계의 기준 정확하게 말한다면 서양의 기준에 맞게 맞추자는 뜻이
결코 아니다. 바로 우리만의 글을 있는 그대로의 원형에서 자꾸만 풀어내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태준이 말하는 내용 중 기억에 남는 몇 가지.

 이태준이 이 책을 쓰고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우리에게 많은 도움이 된다. 읽으면 읽을수록 글
쓰기란 허투루 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느낀다. 처음부터 끝까지 좋은 내용이 많아서 공부하듯 읽고
싶었다. 옆에 두고 열심 익혀야 하는 책이었다. 포스트 잇에 깨알처럼 적으며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팔
이 아프겠다는 생각도 했다. 적은 것은 책상 안쪽에 붙여두었고 간단한 한 줄의 글은 탁상달력에 써두
기도 했다. 그가 말하는 새로운 문장법이란,


첫째, 말을 짓기로 해야 한다. (글짓기가 아니라 말짓기라는 것을 더욱 선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둘째, 자신만의 문장작법이어야 한다.
셋째, 새로운 문장을 위한 작법이어야 한다.



 물론 책 몇 번 읽는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지만 방향을 제시했으니 그에 따른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겠
다. 그리고 저자가 강조한 것 중 퇴고에 관한 글이 인상적이었다. 안도현의 유명한 짧은 시 <너에게 묻
는다>는 석 줄이지만(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너는/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강렬하다.
이 시는 안도현이 100번 이상을 고쳐 써서 지은 결과이다. 우리는 그것을 느끼지 않고 다만
시만을 느끼고는 한다. 물론 시는 그렇게 느끼면 되나 글쓰기에서 퇴고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새
겨볼 일이다. 나 역시도 글을 쓰면 다시 확인하기는 하나 지나고 나면 고칠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리고 수필의 요점 중 하나가 기억에 남는다.


음영을 관찰해야 한다. 어떤 보잘것없는 사람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도 다 인생의 음영이 있다.
겉으로 드러난 사실보다 음영으로 움직이는 것을 표현해주는 데 현묘한 맛이 있다. (217쪽)



 개인적으로 수필에 관심이 있다. 수필이란 굳이 작가가 아니어도 일기나 웹상에서 적는 글로 표현된다.
결국, 내면을 돌아보는 것만큼 음영을 관찰해내는 일도 중요한 것이다. 억지로 꾸민 글은 잠시다. 늘 관
찰하는 태도만이 나만의 것으로 쌓여갈 수 있다.


글쓰기의 하찮음 혹은 어려움.

 글을 쓸 일이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뜻밖에 많다. 그리고 누구나 글을 쉽게 쓸 수 있는 시대에 사는 우
리는 그만큼 관심이 많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상당한 도움이 됨을 인정한다. 글쓰기에 관한 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꼭 읽어볼 책으로 추천한다. 아마도 읽게 되면 꼭 한 권쯤 소장하고 싶은 욕심이
날 거로 생각한다.

 끝으로 글쓰기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는 다소 상투적인 말이 떠오름을 지울 수 없다는 사실이 서글프
지만 그래도 책의 겉표지에 있는 지우개 달린 노란 연필을 보며 필승을 외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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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7-18 13:42   좋아요 0 | URL
어머나... 연탄재, 저 시가 100번이상 고친 시라니...
전 요즘 한번 쓰고 업댓하고는 다시 들여다보지도 않는데 ㅠㅠ...
이래서야 좋은 글쓰기랑은 거리가 멀겠죠.
늘 관심있다고 외치면서 행동은 정반대.
저도 필승! 외치고 갈게요. 인생의 음영을 잘 관찰하고 그리는 성숙한 글을 쓸수 있도록!

은비뫼 2007-07-20 04:32   좋아요 0 | URL
저도 놀랐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역시 글쓰기란 어렵구나라고 생각도 했습니다.
노력 없이는 나아갈 수 없으니까요. 그런 글을 너무 날로 먹으려고 한 걸 후회했죠. :)
체셔고양이님, 만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