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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발론 연대기 1 - 마법사 멀린
장 마르칼 지음, 김정란 옮김 / 북스피어 / 2005년 12월
평점 :
품절
■ 또 다른 신화를 원한다면 켈트신화를.
어린 시절 만화와 책으로 접한 아더왕 이야기는 켈트신화였다. 그러나 그리스·로마 신화에 비해서는
덜 알려졌었는데 요즘 북구신화 등에 관한 책이 나오고 있다. 그만큼 이제 사람들은 또 다른 신화를 원
하고 있는 것이다. 작년에 나온 이 책은 장 마르칼이 여러 판본을 통합해서 쓴 책이니 신화 모음집이라
봐도 무방하다. 영국에 살았던 켈트인의 신화. 즉, 누구나가 알고 있는 아더왕 이야기를 통해 많은 재미
를 선사한다.
켈트신화는 그리스·로마 신화처럼 예쁘고 낭만적으로 다듬어지지 않은 투박한 매력을 갖고 있다. 우리
는 켈트인을 야만인이라고 하지만 그들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이상할 것이다. 그러나 역시 기독교가
섞여있는 것을 보면 시간이 지나면서 역사 속에서 개입된 것으로 추측된다. 사실 켈트족은 기독교 이전
에는 문자를 남기지 않았다.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레 기독교의 역사와 합쳐진 부분이 있었을 것이며
그로 인해 더 다채로워졌을 것이다.
예를 들어 아더왕에서 원탁의 빈자리 하나는 자격이 있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공석으로 두기로 하는
데 이는 마치 예수가 요셉에게 잔을 주며 식탁을 만들고 그중 한 자리는 자격이 있는 순결한 자가 올 때
까지 비워두라고 하라는 것과 비슷하다. 사실 나는 성경을 정독하지 않아서 정확하게는 말하지 못하겠
지만 대략 그렇다는 말이다.
■ 아발론과 아더 그리고 엑스칼리버.
제목의 '아발론'은 '사과나무 섬'이라는 뜻으로 저승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낙원을 의미한다. 이
아발론의 주인은 아더(기원후 500년경 살았던 실존인물)의 누이 모르간이다. 신화에 따르면 아더왕은
이곳 아발론에서 영생을 누리고 있는데 세상이 그를 다시 필요로 할 때를 기다리고 있다고 전해진다.
또한, 유명한 검 '엑스칼리버'는 '위험한 번개'라는 뜻이며 아더왕의 검이다. 그가 이 검을 뽑은
장면은 대부분이 알고 있는 대로이다.
■ 1편 마법사 멀린은 누구인가.
마법사 멀린도 아더처럼 실존인물이다. 그러나 아더와 동시대를 산 것이 아니라 육십 년 정도 뒤의 인
물이라 한다. 즉, 멀린도 신화가 따로 있으나 아더왕 전설에 통합된 것이다. 그의 탄생을 보며 예수의
탄생이 절로 떠올랐다. 순결한 처녀였던 멀린의 어머니는 악마의 술수로 임신이 되었고 악마와 인간사
이의 아이가 마법사 멀린이다.
그렇다면, 왜 1편은 멀린의 이야기일까. 생각해보니 실제로는 멀린은 아더보다 후대의 인물이나 신화
가 통합되면서 아더를 이끌어주고 지지해줄 절대적인 인물이 필요했으며 그래서 멀린을 택한 것이라
생각된다. 영화 <반지의 제왕>을 떠올려보면 쉽게 수긍이 갈 것이다. 영화의 백색의 마법사 간달프처
럼 멀린은 위대한 마법사이며 아더의 탄생을 처음부터 보는 인물이다. 예언자 멀린!
또 재미있는 것은 아발론 연대기에서는 다른 신화처럼 신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인간이지만
신과 대등한 능력을 가졌다. 그러나 인간이기에 감정의 기복이 있다. 현명한 마법사 멀린조차도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 미쳐버린다. 멀린의 탄생부분부터 더 흥미롭게 읽었는데 사실 이 책은 두께에 비해 아주
빨리 읽을 만큼 재미있다.
■ 신화가 갖는 의미.
이 책은 외형적인 줄거리와 사건, 인물만 따라가도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가끔 멈추게 되는 페이지를
만난다면 또 다른 의미를 찾아내거나 부여하는 때일 것이다. 신화를 읽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것일 것이다. 신화, 그 이름만으로도 내면이 풍부해지는 느낌이다.
사실 신화는 뚜렷한 한 명의 저자가 없이 시간이 흐르면서 살이 덧붙여지고 의미가 변형된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는 모두 인간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역사는 이긴 편의 기록이라 하듯 신화
도 마찬가지로 당시 사회의 지배계급의 중심이 된 자들의 이야기다.
또 이런 이야기를 읽고 떠올리며 사람들은 희망을 생각한다. 무조건적인 희망일 수도 있겠지만 그 속
에는 지혜와 용기가 들어 있으니 의지를 강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하겠다.
■ 책을 덮으며.
전 8권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권마다 소제목을 달고 있는데 빨리 읽고 싶다. 북구신화에 관한 책이 여
러 개 나왔는데 켈트신화에 관한 책을 찾는다면 이 책을 보라고 권한다. 또한, 저자 장 마르칼의 사진을
볼 때마다 느끼지만 그 자신이야말로 마법사처럼 생겼다. 저자의 열정이 탄생시킨 책을 읽으며 감사함
을 느꼈다. 모험, 환상 등이 기막히게 이어지는 하나의 큰 흐름이 느껴진다.
각 신화는 그 민족을 대변한다. 우리의 단군신화나 다른 신화들도 그러한데 유럽 하면 그리스·로마 신
화 만의 관점으로 그들을 이해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최근의 움직임은 북구 신화 쪽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며 이제 우리는 켈트 신화까지도 접할 기회가 왔다. 그것도 부담없이 재미있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