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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늘 그렇듯 자정쯤 잠들어 새벽 일찍 깨었다. 신문을 넘기다 보니 흥미로운 기사가 눈길을 끈다. 내용은
이렇다. 미국 뉴욕의 쿠퍼 휴잇(Cooper-Hewitt) 박물관에서 열리는 전시회인데 '나머지 90%를 위한 디자인'.
하루 2 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수십억의 사람들을 위한 디자인이라는 것이다. 이 자그마한 기사에
관심이 쏠린 이유는 바로 며칠 전 책장을 덮은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때문이었
다. 전시회에서 큐-드럼(Q-Drum)이라는 물 운반(최대 75ℓ)을 쉬이 할 수 있는 원통 모양의 컨테이너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린이가 줄로 끌 수 있을 만큼 부드럽게 굴러간다는 설명과 실제 흑인
아이가 끌고 가는 사진이었다. 자, 그렇다면 전시회 사진 속의 아이와 이 책 표지 아이의 상황은 얼마나
차이가 나는 것일까? 그 극명한 대조와 공존하는 세계의 푸른새벽을 맞고 있는 나의 상황은 어떤지도
말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는 제쳐놓고 책 표지의 아이처럼 기아와 재난에 허덕이는 아이에게 정작
필요한 큐-드럼을 쥐여주어야 할 일은 우리의 몫이 아닐지 자문하고 있었던 것이다.
- 기아, 소리조차 낼 수 없는 죽음
그렇다. 한쪽에서는 차고 넘쳐 다이어트를 한다거나 과식 탓에 건강까지 해치고 있으나 지구 반대편
혹은 가까이 있는 누구는 ㅡ 특히 어린이들! ㅡ 모자라고 헐벗어 급기야 그것으로 죽어가고 있다. 이미
알고 있으나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실을 장 지글러는 책에서 극명하게 말하고 있다. 전쟁보다 기아로
죽어가는 사람이 많은 세상이나 기아보다 전쟁에 더 관심이 많다. 어느 것이 우선일 수는 없으나 둘 다
관심 받아 마땅한 대상임은 틀림없다.
미국이 생산할 수 있는 곡물 잠재량만으로도 전세계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고, 프랑스의 곡물생산으로
유럽 전체가 먹고 살 수 있는 전세계적 식량과잉의 시대에 수많은 어린이 무덤이 생겨난다는 사실을 우
리는 과연 제 정신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16쪽)
- 기아에 관해 쉽고 다양하게 접근
더 많은 사람이 알아야 하는 문제 중 하나인 기아. 정작 중요한 것은 이런 것인데 도무지 쓸모없는 문
제에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는 사실은 반성해야 할 것이다. 막연하게만 생각하던 기아문제를 저자가 아
들에게 말해주는 방식으로 쉽게 풀이했다. 기아가 자연적인 수단으로 과잉인구를 조절하고 있다는 자
연도태설을 말하는 이들의 무의식에는 인종차별주의(특히 백인우월주의)가 담겨있다. 즉, 자신들은 절
대 굶어 죽지 않음을 자신만만해 하는 것이다. 더구나 이 주장을 말한 이가 종교인이라는 사실! 기아는
다만 의례 일어나는 현상 중 하나로 치부하고 있다. 또 안다고 해도 적극적으로 해결하지 않는 관심 밖
의 일이다.
- 간단하지 않은 기아문제①
기아에 허덕인다. 그렇다면, 음식을 주면 괜찮지 않으냐는 답변을 흔히 떠올릴 수 있다. 그러나 음식을
조달하는 것만이 문제해결이 아니며 전문인력 공급이 시급한 과제이다. 오래도록 굶주려 몸의 소화기
관 등이 제 기능을 못하므로 함부로 음식을 먹으면 오히려 독으로 작용한다. 전문 의료인 등을 비롯해
약품 등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관심이 필요하다. 책을 읽으며 후원금의 투명성 여부에 대해 논란이
있었던 월드비전도 떠올랐다. 정치 등과 관련한 문제로 기아는 쉬운 문제가 아니기에 쉽게 풀어갈 수도
없었다.
가난한 낙농국가의 이들은 죽기만을 기다리지는 않았다. 소용돌이가 있는 곳에는 혁명이 있듯 아옌데
와 상카라의 이야기가 상징하는 바가 크다. 칠레의 아옌데는 다국적 기업인 네슬레와 미국의 닉슨 대통
령 보좌관 헨리 키신저 그리고 CIA가 군부쿠데타를 도와(조정) 결국 아옌데를 살해한다. 살해된 이유
는 그의 대통령 공약 때문이었다. 15세 이하 아이들에게 하루 0.5리터 분유를 무상으로 배급하겠다는
것으로 대통령이 되었던 것이다. 또 부르키나파소의 상카라는 소아과 의사출신의 정치인으로 4년 만에
식량 자급자족이 가능한 국가를 만들었으나 역시 외국세력의 조정을 받은 자국 군부에 의해 살해된다.
고결한 자들의 나라라는 뜻의 부르키나파소는 결국 고결하지 못한 나라에 그들의 희망을 강탈당한
것이다.
- 간단하지 않은 기아문제②
기아가 생기는 원인에 대해 생각해 본적조차 없다. 아니 후원만 하면 될 것이라는 근거 없는 희망만을
가졌을 뿐이었다. 원인 모를 기아와 낙관적이기만 한 희망.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것이 내가 이 책을 읽
기 전의 의식이었다. 한마디로 무지하다. 지금도 크게 나아진 바는 아니나 기아라는 꽤 복잡한 문제에
얽힌 세계의 현상은 알았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막연한 희망은 버리고 세계가 안고 있는 또 다른 문제
임을 간파하고 대처해야겠다.
그 대처란 것은 구호활동을 한다는 것은 아니나 현실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으로 알게 된
사실을 알리자는 것이다. 만나는 이들에게 한 번씩만 말해도 또 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만이라도 전파하
는 것이다. 저자는 직접적인 활동도 하며 책으로 또 한 번 전하고 있듯 나는 소심하게나마 전하고자 한
다. 어떠한 사실을 인식한다는 일은 생각보다 쉽고도 어려운 일임을 새삼 느낀다.
- 실종된 인간애의 재확인
세계를 구성하는 아니 주도하는 의식은 무엇인가. 그것이 무엇이냐에 따른 결과만 보아도 축복이 될
것인지 저주가 될 것인지 알 수 있다. 전쟁, 기아, 환경오염, 권력의 남용….원한다면 그 방향으로 향
하는 기차를 갈아타면 될 것이나 문제는 폭주기관차처럼 서지 않고 무모하게 달리기에 해결이 어
렵다. 적어도 개인의 힘보다는 국가나 이념집단 혹은 부나 권력을 가진 이들이 개입하는 것이 빠르다.
그러나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는 사실이 언제나 걸림돌이 되어 진행을 더디게만 한다.
실종된 인간애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찾아낼 것인가. 왜 학교에서는 이런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
을까. 이 책을 읽었다 해도 역시 막연한 것은 많다. 자꾸만 생기는 의문과 분노는 조금씩 사그라지겠지
만 더는 기아가 그저 못하는 나라의 가엾은 일만이 아님을 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제목에서 묻듯 왜 세
계의 절반은 굶주리는지 인식하는 것은 상식의 연장이 아니며 곧 인간애의 재확인이다. 그렇다면, 그래
도 아직은 희망에 기대어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쉽게 쓴 내용임에도 그 내용의 소리없는 외침이 무거워서 기아를 가볍게 여긴 내 마음을 무너뜨린다.
한 번에 너무 깊게 생각에 빠질 필요는 없다. 아는 만큼 기억하고 이를 조금씩 풀어가야겠다. 북한과 가
까운 곳의 굶주리는 사람을 생각해 보는 일도 잊지 말아야겠다. 크리스마스나 신년에만 그럴 것이 아님
을 반성한다. 문제는 역시 언제나 실천이며 의식의 전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