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를 금하노라>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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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를 금하노라 - 자유로운 가족을 꿈꾸는 이들에게 외치다
임혜지 지음 / 푸른숲 / 2009년 9월
평점 :
최근 미수다의 루저 발언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신장이 180cm이하인 사람은 루저라는 것이 발언의 요지였다. 발언 당시 상황이 어떻건, 또한 발언 이후 일부 네티즌들이 보여준 파쇼적인 대응이 어떻건 간에, 그녀의 발언 자체엔 문제가 있었다. 젊은 세대의 생각 없는 삶의 단면을 고스란히 드러내준 사건이었다. 그녀는 우선 루저란 단어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키가 작은 사람을 배려하는 방식도, 외모가 삶의 전부가 아니란 이치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문제는 생각 없는 발언이 그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사실 나를 포함한,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그녀처럼 별 생각 없이 살아간다. 생각 없이 살다보니 머릿속에 개념이 들어있을 리 만무하다.
사실 개념을 탑재하기 위해선 먼저 비판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모두가 당연하게 여기는 생각, 모두가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는 생각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우리 사회의 바탕에 깔려있는 생각이 과연 옳은지 의심하고 비판하는 순간, 나만의 생각과 가치관이 탄생한다. 과연 돈이 삶의 행복을 규정하는 것일까, 외모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무엇일까, 나를 드러내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과연 학벌일까 등등. 사회의 주류적 가치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가치를 가지고 살아갈 때, 우린 개념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나를 포함한, 요즘 젊은이들이 무비판적으로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얼마 전에 들은 김용택 시인의 강의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얼마 전까지 시인은 전북 임실의 덕치 초등학교에서 2학년 학생들을 가르쳤다. 시인은 학생들에게 자세히 보는 방법을 주로 훈련시켰다고 한다. 무언가를 자세히 보게 되면 그 과정에서 사물(또는 사건)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는 데, 이 때 이해한 내용은 오롯이 내 것이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시인이 가르친 2학년 학생들은 기존의 개념이나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봤다고 한다. 작고 사소한 것을 진지하게, 진정성을 갖고 바라봤다. 이처럼 사물을 자세히 바라보게 되면 생각이 생겨나고, 생각은 또 다시 고민을 낳게 된다. 고민은 글쓰기 등의 과정을 통해 논리적으로 정리할 수 있다. 김용택 시인은 바로 '생각->고민->논리적 정리'의 과정이 곧 자신만의 철학이라고 설명한다. 철학이 밑바탕이 되면 그동안 살아왔던, 그리고 살고 있는 과정에 대한 신념이 생겨나고, 앞으로 살아갈 과정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된다. 결국 사물을 자세히 바라보는 것에서 자신만의 새로운 생각이 탄생하는 것이다.
하지만 시인은 불만이 많았다. 요즘 아이들은 자세히 바라보는 방법을 전혀 모른다고 했다. 또한 생각을 갖게 되는 모든 과정을 생략한 채 오직 정답만을 외우고 있다고 했다. 때문에 정답은 많이 알아도 직접 생각하고 고민하는 방법을 모르는 학생이 많다고 비판했다. 심지어 논술까지도 정답을 알려주는 한국의 교육 문화 속에서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자신만의 생각을 끄집어내는 일은 어쩌면 불가능한 임무처럼 보였다.
<고등어를 금하노라>는 세상의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은 채,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생활하는 가족의 이야기다. 주인공은 독일인과 결혼해 두 아이를 두고 있는 주부 임혜지씨. 겉에서 보기에 임씨의 가정은 여느 가정처럼 평범해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들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돈보다는 시간을, 순간의 안락함보다는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강요와 간섭보다는 자유와 존중을 우선시하는 삶을 실천해왔다. 세끼 식사를 온 가족이 함께하기 위해 직업적인 성공을 일부 포기했고, 돈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 소비를 최소화했으며,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난방과 온수, 자동차와 고등어를 포기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는 절대로 자신의 선택을 강요하지 않았다.”
임혜지씨의 삶은 고대 에피쿠로스학파의 삶을 연상시킨다. 에피쿠로스는 자신들을 아테네의 상업관계에서 제외시키고 독립을 누리는 대신 검소한 생활방식을 수용했다. 이는 임혜지씨의 삶도 다르지 않다. 남편과 아들의 머리를 25년간 직접 깎아주고 있으며, 웬만한 거리는 걷거나 자전거를 이용한다. 제철 음식을 사먹으며 쓰레기도 거의 남기지 않는다. “객관적으로 성공한 인생은 아니지만 나 스스로는 만족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진중하게 생각해보았는데, 내 인생이 편안한 가장 큰 이유는 돈이 없다는 것이다.”(P.21)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평가의 기준을 돈에 두는 한 나는 항상 패자로서 우울할 수밖에 없다."(P.23) 임혜지씨의 가족은 자본주의가 이식한 성공의 사고를 그대로 따르지 않았다. 오히려 자본주의의 성공 공식을 비틀어보고 의심하면서, 더 나은 자신들만의 행복 공식을 도출해냈다. 개념 있는 삶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가족이다.
육아에서도 임혜지씨만의 원칙은 이어지고 있었다. “핵가족 안에서 아이들을 사랑으로 기르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부모의 시간이 귀중하다고 생각했으므로 우리는 항상 돈 대신 시간을 선택했다.”(P.22) 부모의 돈이 아닌 시간을 받고 자란 아이들의 삶의 방식도 부모의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학교라는 거대한 사회에 적응하면서도 그 시스템의 노예가 되지 않는 것. 적성이 비슷한 아빠를 따라 도약하는 아들, 취향이 다른 부모 밑에서 자신의 고유성을 지켜내는 딸, 자긍심 지수를 학교 점수와 동일시하지 않는 현명함, 이런 점들이 모두 우리 아이들이 영재라는 증거다.”(P.81) 때문에 임혜지씨는 아이들 성적이 좋지 않다며 걱정하는 선생님들께 오히려 '얘들은 정서가 안정되어있으니 너무 심려하지마시라'달래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들이 자식 공부에 무관심한 것은 아니다. 다만 이들은 아이들에게 좋은 성적을 얻는 방법이 아닌, 삶의 열정을 심어주고자 한 것이 다를 뿐이다. 학력이 사람을 평가하는 제1척도가 되는 오늘날이지만, 임혜지씨는 “열정 없이 남 보기에만 그럴듯한 턱걸이 인생만 피해도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했다. 다른 건 몰라도 공부에 대한 열정이 없는 사람이 단지 성적이 된다고 해서 대학에 진학하는 것만큼은 가장 피해야 할 일이라고 아이들에게 누누이 강조했다.” (P.139) 이들은 단순하지만 기본적인 삶의 원칙에 충실했고, 때론 그 원칙이 사회의 주류적 가치와 배치될 때는 과감하게 주류 가치를 거부했다. 좋은 대학 나와야 성공한다는 주류 가치는 열정 없는 성공은 불행하다는 삶의 기본 원칙 앞에서 위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이들은 개인의 삶에서 에피쿠로스적 행복을 추구하지만, 동시에 함께 사는 사회의 변화를 위해선 혁명가적 실천을 추구한다.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온수 물 목욕을 최소화하고, 밤엔 따뜻한 물주머니를 안고 잔다. 원시림에서 벌목한 가구나 생활용품은 피하고 야채나 과일 씻은 물을 모아 화초에 물을 준다. 때론 자신의 삶이 지나치게 궁상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녀는 이내 생각의 방향을 바꾼다. “나는 품위 없이 사는 사람일까? 아니다. 몰락해가는 로마에서 우유에 목욕하는 귀족 여인네들이 품위 없는 사람이지, 에너지의 불평등한 분배에 항거하고 물질의 속박에서 자유롭기 위해서 목욕을 자제하는 것은 대단히 품위 있는 행동일 것이다.” (P.50)
물론 누군가가 물을 수 있다. ‘당신이 그렇게 궁상떤다고 세상이 바뀌기나 하나요?’ 이에 대한 임혜지씨의 답변이다. “세상은 앞에서 활약하는 주연들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뒤에서 배경을 이루는 보통 사람들에 의해 돌아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 주연이 아님을 부끄러워하는 대신, 이 ‘배경’의 위력을 항상 생각하며 ‘좋은 배경’이 되겠다는 뜻으로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며, 조용히 씨를 뿌리며 사는 일에 자부심을 가지기로 했다.” (P.71) 자본주의의 주류적 가치를 거부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임혜지씨 가족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이상적 가치의 실현을 위해 작은 실천을 해나간다. 개념 있는 삶의 실천적 버전이라고나 할까. 말 그대로 지행합일의 삶을 이들 부부는 살고 있다.
몇 년 전, 아내는 채식주의를 선언했다. 아내는 채식주의 선언 이유를 자세히 설명했다.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내가 사회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자신의 가치관을 실현하기 위해 무언가 행동을 한다는 것이 내겐 중요했다. 때문에 육식주의자인 나는 세상의 주류적 가치를 거부하고, 자신의 가치를 위해 행동하는 아내의 모습이 자랑스러웠다. 세상엔 명품 백을 사고 여름마다 화려한 휴가를 가는 사람도 있고 아프리카 기아 어린이를 돕고 환경 운동을 위해 캠페인에 나서는 사람도 있다. 두 부류 모두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삶이라는 점에선 같다. 하지만 난 후자의 삶이야말로 사회의 주류적 가치를 의심하고 자신만의 생각을 실천하는, 그래서 더 의미 있는 지성인의 삶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모든 사회에는 주류가 있고 지성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주류는 ‘주된 흐름’이란 말 그대로 전통을 이어가며 어제와 다름없이, 이웃과 다름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보편적인 다수이다. 그리고 지성인은 주류의 방향을 잡아주는 소수이다. 지성인은 개인의 양식에 따라 판단하고 이를 용기 있게 표현해 주류에게 방향을 제시한다.” (P.195) 지식이 많고 학벌이 좋아야 지성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생각을 갖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 아내와 같은 사람이야 말로 곧 세상을 바꾸는 지성인이라고 나는 굳게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