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독서
김경욱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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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좋아하세요? 별로라고요? 왜요? 좋은 작품을 쓰는 훌륭한 작가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전 소설을 참 좋아해요. 김훈의 소설도 좋아하고 성석제나 김영하의 것도 좋아하고. 김훈이요? 처음엔 쉽게 읽히진 않았어요. 그런데 계속 그의 작품을 읽다보니 문장이란 한정된 공간에 깊은 사고를 빽빽하게 담아내는 그의 능력이 놀랍더라고요. 물론 성석제나 김영하처럼 타고난 이야기꾼은 아니지만요. 사실 이야기꾼하면 김탁환을 빼놓을 수는 없겠죠. <불멸의 이순신>, <리심>, <혜초> 등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불어넣는 능력이 대단하거든요. 요즘 나오는 신인작가들요? 전 별로에요. 얼마 전 여자 박민규란 평가를 받았던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있죠? <무중력 증후군>인가? 기대가 컸는데 실망스러웠어요. 기술적으론 참 깔끔했는데 이야기에 담겨있는 생각의 깊이가 너무 얕더라고요. 나이요? 아네요. 나이의 문제는 아닐거에요. 서른이 안 된 김애란의 소설에선 노회한 철학가의 숨결이 느껴질 때가 많거든요. 최근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김중혁은 별로였어요. 오히려 박형서의 작품이 느낌은 비슷하면서도 훨씬매력적이었죠. 윤성희요? <감기>의 그 윤성희? 제 취향이 아니에요. 오히려 내공이 2% 부족한 이기호의 소설에 더 애착이가요.  

 

      그럼 어떤 소 설과 소설가를 좋아하냐고요? 음. 상당히 어려운 질문인데요. 소설을 고를 때 제가 제일 중시하는 기준으로 그 질문에 대한 답을대신할게요. 전 이야기란 포장 뒤에 숨은작가의 철학을 가장 중시해요. 추상적이죠? 저도 더 구체적인 표현이 떠오르지 않네요. 이런거에요. 인간의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주는 소설. 이게 참 어려운거거든요. 왜냐면 삶과 세상이라는 것이 불투명한 껍질에 겹겹이 쌓여있거든요. 때문에 우리는 삶과 세상의 알맹이를 쉽사리 보지 못해요. 가끔은 알맹이를 둘러싼 포장지의 모습에 현혹되기도 하고요. 그럴 때 소설가란 영웅이 등장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계몽적으로 설파하는 철학자와 달리 소설가는 이야기란 은유를 통해우리에게 알맹이란 진실을 보여주죠. 전 그런진실을 보여주는 소설이 좋아요. 그런데 요즘 소설들을 보면 대부분이 삶의 표피에 대해서만 주절거리는 것 같아요. 소설가라면 표피를 꿰뚫어 볼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한데 요즘 소설은 누구나 볼 수 있는 것들에 대해말발만 세운다는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제가 괜찮은 작가 하나를 소개하려고 해요. 이제 어느덧 중견작가네요. 김경욱. 최근에 그가 단편집을 냈어요. <위험한 독서>.

       예전에 <누가 커트코베인을 죽였는가>란 소설을 읽고 극찬을 한 적이 있었어요. 스토리가 참 흡입력이 있으면서도 이야기 뒤에 작가의 메시지가 은근하게 숨어있어요. 여기서 은근하다는 것이 중요한데, 때론 메시지에 집착하는 소설의 경우 등장인물이나 사건 등을 통해 너무대놓고 작가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럴 땐 소설의 매력이 반감되죠. 하지만 김경욱의 소설은 달라요. 그래서 전 그의 소설을 수수께끼 풀 듯 읽어요. 흥미로운 이야기를 음미하는 것 못지 않게 즐거운 일이라고나 할까요? 상징이라는 수수께끼 속에 그의 메시지가 숨어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위험한 독서>에 실린 단편하나를 살펴볼까요? ‘달팽이를 삼긴 사나이’는 경제적 어려움에 부인이 대리모를 하게 되는 젊은 부부가 나옵니다. 짧은 분량이지만 아내가 대리모 역할을 하는 것에부정적이던 주인공이 자연스레 상황에 적응해가는 모습이 등장해요. 반면 막상 대리모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던 아내는 거부감을 느끼게 되고요. 근데 흥미로운건 이야기 중간 중간에 달팽이가 끊임없이 등장해요. 주인공은 달팽이를 잔인하게 죽이면서 이상하리만큼 달팽이 퇴치에 집착하죠. 누구든 달팽이 에피소드를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어요. 전 헤밍웨이의 소설을 떠올렸어요. <무기여 잘있거라>에서 등장하는 개미씬있죠? 한치 앞을 보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이 뜨거운 불구덩이를 향해 달려가던 개미에게 오버랩됐었는데요. 김경욱의 소설에서도 마찬가지였어요. 이렇게 김경욱의 소설엔 상징이 많이 숨어있어요. 그런점에서 그의 소설은 상당히 모더니즘적이라고 볼 수 있죠. 그래서 일부 독자는 상징이 불편할 수도 있어요. 이야기가 갑자기 끝나는 느낌이 들 수도있고, 직접적이지 않은 얘기 전달 방식에 당혹스러울 수도 있고요.

       쓸데 없이 말이 길었죠? 김경욱 소설의 강점은 또 있어요. 이야기가 상당히 디테일하고 흥미롭다는 얘기는 했죠? 근데 거기에 더해 스토리 중간 중간에 담긴 작가의 생각이 드러나는데, 그 생각의 깊이가 놀라워요. 기본적으로 삶에 대해 실존주의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데, 그러한 사고를 문장으로 표현해내는 능력도 탁월하고요. 한 번 살펴볼까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태어난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죽음의 방식뿐이라고 그는 스스로를 위로했다. 죽음이야말로 상투적인 삶이 선사하는 유일한 미스터리였다. (중략) 사랑이야말로 죽음을 경험할 수 없는 삶이 허락한 유일한 불꽃놀이였다.”” (황홀한 사춘기) // 문장이 위험하고 불결했다면 숫자는 뻔뻔하고 가증스러웠다. (게임의 규칙) // 늙어버리면 열정적 사람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 같았다. 그녀는 죽음의 냄새를 풍기는 열정적 사랑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또 다른 죽음의 형식을 꿈꾸고 있었다 (공중관람차 타는 여자)”” 어때요? 전 실존주의적 염세성을 듬뿍 담고 있는그의 문체가 참 좋아요. 어때요? 읽어보고싶은 마음이 드나요?

       단점은 없냐고요? 음. 원래는 전혀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위험한 독서>를 읽으면서-<누가 커트 코베인을 죽였는가> 부터 본 그의 단편 소설이 다른 문학잡지를 포함해서 스무 편 가까이 되면서 느끼는건데-한 가지 아쉬운 점이 생겼어요. 너무 정제되어 있다고나 할까. 자기 만의틀이 너무 견고하게 잡혔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소재도 다양하고 글의 형식도 자유롭게 변주하고자 노력하는데 소설을 읽으면 읽을수록 작품을 세련되게 표현하는 그만의 패턴이 읽혔어요. 그런 그를 평론가 서영채는 기계라고 표현했더군요. (참고로 서영채씨의 의도와는 180도 다른 의미로 제가인용한겁니다.) 너무나 적확한 표현이에요. 소설쓰는 기계. 그는 오차가 없어요. 대부분의 단편이 수준 이상의 퀄리티를 유지하고 있으며, 구성이나 문체 모두 군더더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깔끔해요. 계몽주의 시대를 풍미했던 이성의 강력한 힘이 소설을 지배하고 있다고나 할까요? 때문에 그의 글에서 영국 신사의 냉철함은 느껴지지만 아프리카 원주민의 강렬함은 느껴지지 않아요. 실존주의적 태도를 견지하는 작가의 글에서 모더니즘의 정수를 느낀 것도 전부 이 때문이겠죠. 물론 서영채는 그를 ‘진화하는 소설기계’라 지칭했어요. 물론 진화는 하죠. ‘황홀한 사춘기’나 ‘맥도날드 사수 대작전’은 기존의 그의 소설집에선 절대 맛볼 수 없는 작품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소설의 변화도 기계의 틀 안에서 이뤄져요. 때문에 그 진화가 새로움으로 크게 와닿지 않는 것이죠. 전 진심으로 김경욱씨가 기계의 틀을 벗어나길 바라요. 물론 기계의 틀을 벗어나는 순간 소설의 질이 들쑥날쑥 할 수도 있겠고요. 군더더기가 있는 작품도 나올 수 있겠죠. 하지만 기존에 그가 써오던 작품을 훨씬 뛰어넘는 독특한 작품이 나올 수도 있는거에요. 기계의 틀을 벗어나는 것이 진정한 진화가 아닐까 싶어요.

       스펜서 호스트의 ‘얼룩말 이야기꾼’에 이런 우화가 나와요. 얼룩말의 세계에 얼룩말의 언어를 할 줄 아는 샴고양이가 등장해요. 샴고양이는 그들의 언어로 얼룩말의 경계를 낮추고 그들을 쉽게 잡아먹죠. 겁에 질린 얼룩말들은 유령이 나타났다며 두려워하죠. 이 때 얼룩말 이야기꾼이 등장해요. 그는 얼룩말 말을 할 줄 아는 샴고양이 이야기를 구성중이었죠. 그런 그에게 얼룩말의 언어를 구사하는 샴고양이가 나타났어요. 하지만 얼룩말 이야기꾼은 다른 얼룩말과 달리 속지 않았어요. 오히려 뒷발로 샴고양이를 죽입니다. 내용은 썰렁하죠. 근데 여기엔 제가 생각하는 소설가의 역할이 잘 드러나있어요. 실제로 세상은 얼룩말의 말을 하는 샴고양이 만큼이나 우리를 현혹시키고 기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많은 일반인들은 예상하기 힘든 기만의 세상을 맞닥뜨리다보면 유령이 나타났다고 두려워하는 얼룩말들처럼 부정확한 대응을 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소설가가 얘기해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얼룩말의 외피 뒤에 숨어있는 샴고양이의 진실을 말이죠. 김경욱은 분명 그런 작가에요. 사회적 구조의 문제, 인간의 실존적 부조리 등에 천착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 약간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항상 그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답니다. 좋은 소설의 매력, 이제 조금 알겠어요? 그럼 다시 답해보세요. 어때요? 소설 좋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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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틀키드 2009-10-30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어요~~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