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에 얽힌 내 추억은 고등학교 1학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때 처음 커피를 파는 곳, 커피숍이란 곳을 갔다. 거기서 첫 미팅을 했는데, 미팅에 대한 기억은 거의 나지 않는다. 오직 기억나는 건 그 날 먹었던 콜라의 가격. 실제 슈퍼에서 파는 캔 커피를 버젓이 내놓고는 만 원에 가까운 가격을 받고 있었다. 그야말로 칼만 안 들었지 강도가 따로 없었다. 커피숍의 비싼 가격에 당시 난 미팅에 집중할 수 없었다. ‘이 돈을 내고 이걸 먹어야 하는걸까' 라는 의구심부터 ‘아버진 밖에서 힘들게 돈을 버시는데 아들놈은 커피숍에서 비싼 콜라나 사먹고’하는 자책까지 온갖 잡생각이 들었다. 내가 당시 갔던 커피숍 이름은 '보디가드'. 이같은 커피숍은 80년대 말 처음 등장했다. 해외여행의 자유화로 원두 커피가 국내에 소개됐다. 커피숍은 당시 원두 커피를 이용, 아메리카노, 모카, 카푸치노와 같은 다양한 커피를 팔며, 다방과의 차별화를 실시했다. 세련된 인테리어에 고급 커피를 판다는 이미지는 젊은 층을 끌어들였고 커피숍은 삽시간에 확산됐다. 물론 어렸을 적부터 ‘커피 마시면 머리 나빠진다’는 얘길 무수히 들어온 내가 아메리카노가 뭐고 모카가 뭔지 알 턱이 없었고, 그저 콜라를 비싸게 판다는 사실이 날 언짢게 했다.


하지만 대학 입학과 함께 나도 커피숍 문화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커피숍에 앉아 친구들과 이런 저런 수다를 떠는 재미는 비싼 콜라의 충격을 희석시켜버렸다. 당시엔 모두가 커피숍을 즐겼다. 앉아서 두세시간 넘게 수다 떨기엔 커피숍만한 장소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다방이 처음 생겼을 때도, 대화를 나누기 위해 다방을 찾은 사람은 꽤 많았다. 그 시절 다방은 예전 사랑방을 대체한 공간이었다. 당시 직업을 구하지 못한 지식인들은 다방에 모여 시간을 보냈고, 예술가들은 다방에서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며 창작활동을 했다. 실제로 충무로가 영화의 메카가 된 것도 당시 충무로에 태극다방이라는, 종로 다방보다 저렴한 다방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결국 다방이 커피숍으로 대체됐을 뿐, 50년대 식자층의 모습이나 2000년대 대학생의 모습은 다를 바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고등학교 때 받은 커피숍에 대한 충격은 사실 내 무지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당시 난 장소 대여료, 더 엄밀히 말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 사용료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콜라를 비싸게 먹었기 때문에, 추운 겨울에도 콧물 흘리지 않고, 추위에 떨지도 않으며 편하게 미팅을 할 수 있었단 점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무지를 깨달은 이후 6~7000원짜리 콜라에 익숙해졌고, 더 이상 커피숍에서 음료를 마시며 밖에서 고생하는 아버지를 떠올리지 않았다.


하지만 내게 커피숍은 순수한 대화의 공간이었다. 이는 곧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지 않음을 의미한다. 난 커피가 써서 싫었다. 입사 첫 해 그런 날 보고 팀장이 한 마디 했다. “쓰면 설탕 타 묵어~” 하지만 회사에 들어온 이상 커피를 계속 거부할 수 없었다. 어른들의 세상에서 커피는 필수품이었다. 회의를 할 때도, 거래처 손님을 만날 때도, 심지어 상사와 개인 면담을 할 때도 커피는 빠지지 않았다. 그 사이 커피숍은 외국계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으로 변해있었고, 출근하는 회사원들의 손엔 커피가 들려있었다. 대한민국의 커피사랑은 거부할 수 없는 도도한 물결이었고, 그 때부터 나도 쓴 커피를 억지로 마시기 시작했다. 커피가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커피를 사랑했다. 물론 다양한 이유가 있었겠지만, 적어도 초창기엔 커피가 근대화된 서구의 문물이란 점이 한국인을 매료시켰다. 서구의 근대화가 건국 목표처럼 여겨지던 시기, 많은 사람들이 근대화된 서구인이 되기 위해 커피를 마셨다. 물론 처음부터 쓴 커피를 좋아했던 건 아니다. 미군부대 인근에선 인스턴트커피를 마시는 것이 선진 문화를 즐기는 것이라며 쓴 커피를 코를 잡고 마시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몇몇 어른들은 커피를 몸에 좋은 쓴 한약 정도로 생각하기도 했다. 또는 팀장의 조언대로 대부분이 엄청난 양의 설탕을 타서 마셨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커피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 예전 보다 훨씬 많아졌다. 하지만 문화적 상징으로서, 커피가 지닌 매력 역시 아직까지 무시할 수 없다. 1900년대 초, 커피는 모던보이와 모던 걸의 전유물이었다. 다시 말해 커피는 신식 문물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그 시절, 그들이 마셨던 쓴 커피는 단순한 커피를 넘어선 문화였다. 100년이 흐른 지금도 상황은 비슷하다. 4,000원짜리 점심을 마시고 5,000원짜리 커피를 마시기 위해 줄을 서있는 사람들. 여전히 커피는 구별 짓기의 문화적 척도로 작동하고 있다. 다방 커피를 마시는 사람과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구별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제 다방은 윤락 행위의 장소로 전락했다. 대화를 나누기 위한 커피숍도 테이크아웃 커피 앞에 자취를 감추고 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건 커피에 대한 사랑이다. 가격에 놀라고, 쓴 맛에 찡그렸던 나도 지금은 커피를 즐겨 마시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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