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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정이 없다, 란 소리를 참 많이 들었다. 정은 따뜻함이니, 정이 없다는 말은 그만큼 차가운 인간이란 의미다. 내게 정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엄마, 아내, 동생. 그러니 정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도 쉽지 않다. 가끔 엄마의 말에 반박이라도 하려면, 어느새 엄마는 ‘니가 6살 때 말이지’ 로 시작하는 오래된 근거를 끄집어낸다. 엄마의 얘기를 요약하면 이렇다. 어느 날 집 앞 동네를 지나고 있는 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웅성웅성하고 있더란다. 엄마가 가서 살펴보니 한 아이가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 울고 있었던 것. 주위 사람들은, 뒤집어진 자전거와 아이를 일으켜 세우며 ‘주변에 엄마 안계시나’ 라며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 또래의 아이를 둘이나 둔 엄마는 놀라서 달려갔다. 역시나 얼굴에 찰과상을 입고 우는 아이는 내 동생이었으며, 뒤집어진 자전거는 내 자전거였다. 놀란 엄마는 주변 사람들에게 고맙다고 말을 하며 주변을 살폈다. 근데 넘어진 동생 주변의 인파 사이에서 낯익은 꼬마아이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고 한다.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 꼬마, 바로 나였다. 동생이 넘어져 울고 있는데, 주변 어른들이 ‘이 아이 엄마 안계시냐’ 며 웅성거리고 있었는데, 형이란 아이는 행인들 무리에 파묻혀 남의 일 구경하듯 서있었던 것이다. ‘넌 정말 어렸을 때부터 정이 없었어.’

     안타깝게도 정 없는 내 모습의 가장 큰 피해자는 부모님이다. 우리나라의 대부분 아들들이 그러겠지만, 난 부모님께 살가운 말 한 번 건네지 않는다. 오랜만에 집에 가서 ‘아버지 요즘 일이 많이 힘드시죠?’ ‘엄마, 요즘 건강은 괜찮아?’라고 말하면 좋으련만, 고작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곤 ‘엄마 배 안 고파’ ‘아빠, 이제 가야 되요’가 전부다. 그렇다고 부모님 방에 살짝 들어가 무뚝뚝하게 ‘엄마 용돈 써’ ‘아빠, 이 영양제 함 드셔보셔’라고 말하는 유형도 아니다. 결혼 후에는 예전처럼 자주 뵙지도 못하는데, 여전히 내 행동은 사춘기를 막 지나고 있는 중학생과 다를 바 없다. 일요일이면 아버지는 성당에 사시다시피 한다. 일요일에야 겨우 쉴 수 있는 아들은 아버지의 얼굴을 자주 뵙지 못한다. 안타까운 아버지는 아들이 미사 보러 성당이라도 올 때면, 어떻게 서든 짬을 내 아들에게 다가와 자주 만나지 못하는 그리움을 쏟아낸다. 손도 잡고 다 큰 아들의 얼굴도 만지고 싶어 하는 눈치다. 하지만 아들은 매몰차다. ‘오늘도 하루 종일 바쁘시네요? 점심은 아침을 늦게 먹어서요. 그럼 갈게요.’ 아들의 입에선 언제나 ‘갈게요’다. 그놈의 ‘갈게요.’ 뭐가 그리 바쁜지.

     소설가 김연수의 <청춘의 문장들>을 읽으며 부모님 생각에 눈시울을 붉혔다. 매우 낯선 경험이었다. 조선후기 실학자 이덕무가 쓴 <사람답게 사는 즐거움>을 읽던 김연수가 눈물을 흘리던 부분을 읽다가 벌어진 일이었다. <사람답게 사는 즐거움>은 생선 먹을 때는 젓가락으로 뒤집고, 손에 음식이 묻어도 빨지 마라 등의 에티켓을 적은 딱딱한 책이다. 그런데 수많은 금기 사항 을 얘기하다 갑자기 이덕무가 어머니가 살아계실적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야기하며 ‘지금은 네 분 숙부가 다 작고하고 어머니도 세상을 떠나셨으며, 아버지만이 홀로 계시는데, 때로 그 일을 말씀하실 때마나 눈물을 흘리지 않으신 적이 없었다’라고 말하는 부분이 나온다. 하지만 아버지가 눈물을 흘릴 때 옆에서 함께 눈물을 흘렸을 이덕무를 상상하는 김연수의 글을 보자, 그 무덤덤한 한 문장 ‘어머니도 세상을 떠나셨으며’가 그렇게 슬플 수가 없었다. 건조한 문장 위로 정없는 아들에 홀대 당하는 우리 부모님의 부재가 순간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덕무가 쓴 에티켓은 전부 어머니가 그에게 하시던 말씀이었다. 결국 이덕무는 어머니가 하신 말씀을 하나하나 적으며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슬퍼했던 것이다. “폐병이란 것은 기침병이다. 지금도 슬픈 생각에 고요히 귀기울이면 우리 어머니의 기침소리가 은은히 여태도 귀에 들려온다. 황홀하게도 사방을 둘러봐도 기침하는 내 어머니의 그림자는 또한 볼 수가 없다. 이에 눈물이 솟구쳐 얼굴을 적신다. 등불에게 물어봐도 등불은 말이 없는 것을 어이하리”


     이덕무는 어머니의 기침소리를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렸다. 깨어났다 죽어도 다시 들을 수 없는 그 소리. 그 문장을 읽으며, 난 엄마가 세상에 없을 때 엄마의 어떤 모습을 그리워할까 생각했다. 아들에게 밥을 주기위해 부엌에서 수선을 떨던 엄마의 얼굴이 가장 많이 보고 싶지 않을까. 일본의 하이쿠는 5.7.5의 음수율을 가진 정형시인데, 여기엔 매미소리 은유가 많이 나온다고 한다. ‘한적함이여/ 바위에 스며드는/ 매미소리야’라는 식이다. 다음은 하이쿠에 대한 김연수의 설명이다. 삶의 여백이자 죽음의 적막을 언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어 귀를 때리는 한여름 매미소리를 역설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매미소리가 천지를 울리다가 문득 멈춘 상태. 그 찰나적인 상태가 바로 견딜 수 없는 삶의 여백이자 죽음의 적막이니까’ 아. 고작 17음자로 죽음을 얼마나 탁월하게 형상화해낸 문장인가. 그렇다. 죽음은 적막이다. 부모님이 떠나시면, 엄마의 경망스런 웃음도, 아빠의 이유 없는 짜증도 다신 들을 수 없다. '밥먹고 가라' 며 붙잡는 엄마의 말도, '자주 집에 들르라' 는 아빠의 말도 모두 침묵 속에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풍수지탄이라. 이덕무의 글을 읽으며 부모님의 부재를 떠올렸고, 하이쿠에 묘사된 적막의 공포에서 죽음의 슬픔을 느꼈다. 정이 없는 내 행동이 부끄러워진 것은 물론이다.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있는 데, 한 아저씨가 내 옆에서 러닝머신을 하고 있던 학생에게 다가왔다. 둘은 부자지간이었다. 아버지는 주름이 깊게 팬 게 나이가 꽤 많아 보였다. 조용히 늦둥이에게 다가온 아버지가 말한다. “OO야. 아빠는 찜질방에서 기다릴테니까 끝나면 와. 같이 샤워하자” 하지만 아들은 러닝머신에 달린 TV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한다.  

“나 늦게까지 할 거야”  

“언제까지 할 건데?”  

“몰라. 늦게까지 계속 할 거야”  

아버지는 자신을 쳐다보지도 않는 아들을 잠시 멍하게 바라보더니.  

“늦게까지 한다고?”  

“응”  

“알았어”  

아버지는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한 30분이 더 지났을까. 실제로 내 옆 학생은 늦게까지 운동을 하고 있었다. 샤워를 하러 들어가는 데 아까 봤던 아저씨가 무료한 표정으로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아니 그냥 자전거에 앉아 러닝머신을 하는 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의 씁쓸한 표정과 주름을 보는 데, 이상하게 가슴이 너무 아렸다. 어쩌면 그렇게 익숙한 광경인지. 아버지의 주름살 위로 내 아버지의 얼굴이 덮쳐졌다. 간이고 심장이고 다 내주고, 그저 자식들 주변을 맴돌 뿐인 부모님들. 그들의 얄궂은 운명이 슬펐다. 그 날 결국 그 아버진 아들과 샤워를 함께 할 수 있었을까. 시간 나면 가장 먼저 아버지와 목욕탕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적막이 찾아오면 가고 싶어도 못 가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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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에 얽힌 내 추억은 고등학교 1학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때 처음 커피를 파는 곳, 커피숍이란 곳을 갔다. 거기서 첫 미팅을 했는데, 미팅에 대한 기억은 거의 나지 않는다. 오직 기억나는 건 그 날 먹었던 콜라의 가격. 실제 슈퍼에서 파는 캔 커피를 버젓이 내놓고는 만 원에 가까운 가격을 받고 있었다. 그야말로 칼만 안 들었지 강도가 따로 없었다. 커피숍의 비싼 가격에 당시 난 미팅에 집중할 수 없었다. ‘이 돈을 내고 이걸 먹어야 하는걸까' 라는 의구심부터 ‘아버진 밖에서 힘들게 돈을 버시는데 아들놈은 커피숍에서 비싼 콜라나 사먹고’하는 자책까지 온갖 잡생각이 들었다. 내가 당시 갔던 커피숍 이름은 '보디가드'. 이같은 커피숍은 80년대 말 처음 등장했다. 해외여행의 자유화로 원두 커피가 국내에 소개됐다. 커피숍은 당시 원두 커피를 이용, 아메리카노, 모카, 카푸치노와 같은 다양한 커피를 팔며, 다방과의 차별화를 실시했다. 세련된 인테리어에 고급 커피를 판다는 이미지는 젊은 층을 끌어들였고 커피숍은 삽시간에 확산됐다. 물론 어렸을 적부터 ‘커피 마시면 머리 나빠진다’는 얘길 무수히 들어온 내가 아메리카노가 뭐고 모카가 뭔지 알 턱이 없었고, 그저 콜라를 비싸게 판다는 사실이 날 언짢게 했다.


하지만 대학 입학과 함께 나도 커피숍 문화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커피숍에 앉아 친구들과 이런 저런 수다를 떠는 재미는 비싼 콜라의 충격을 희석시켜버렸다. 당시엔 모두가 커피숍을 즐겼다. 앉아서 두세시간 넘게 수다 떨기엔 커피숍만한 장소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다방이 처음 생겼을 때도, 대화를 나누기 위해 다방을 찾은 사람은 꽤 많았다. 그 시절 다방은 예전 사랑방을 대체한 공간이었다. 당시 직업을 구하지 못한 지식인들은 다방에 모여 시간을 보냈고, 예술가들은 다방에서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며 창작활동을 했다. 실제로 충무로가 영화의 메카가 된 것도 당시 충무로에 태극다방이라는, 종로 다방보다 저렴한 다방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결국 다방이 커피숍으로 대체됐을 뿐, 50년대 식자층의 모습이나 2000년대 대학생의 모습은 다를 바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고등학교 때 받은 커피숍에 대한 충격은 사실 내 무지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당시 난 장소 대여료, 더 엄밀히 말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 사용료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콜라를 비싸게 먹었기 때문에, 추운 겨울에도 콧물 흘리지 않고, 추위에 떨지도 않으며 편하게 미팅을 할 수 있었단 점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무지를 깨달은 이후 6~7000원짜리 콜라에 익숙해졌고, 더 이상 커피숍에서 음료를 마시며 밖에서 고생하는 아버지를 떠올리지 않았다.


하지만 내게 커피숍은 순수한 대화의 공간이었다. 이는 곧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지 않음을 의미한다. 난 커피가 써서 싫었다. 입사 첫 해 그런 날 보고 팀장이 한 마디 했다. “쓰면 설탕 타 묵어~” 하지만 회사에 들어온 이상 커피를 계속 거부할 수 없었다. 어른들의 세상에서 커피는 필수품이었다. 회의를 할 때도, 거래처 손님을 만날 때도, 심지어 상사와 개인 면담을 할 때도 커피는 빠지지 않았다. 그 사이 커피숍은 외국계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으로 변해있었고, 출근하는 회사원들의 손엔 커피가 들려있었다. 대한민국의 커피사랑은 거부할 수 없는 도도한 물결이었고, 그 때부터 나도 쓴 커피를 억지로 마시기 시작했다. 커피가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커피를 사랑했다. 물론 다양한 이유가 있었겠지만, 적어도 초창기엔 커피가 근대화된 서구의 문물이란 점이 한국인을 매료시켰다. 서구의 근대화가 건국 목표처럼 여겨지던 시기, 많은 사람들이 근대화된 서구인이 되기 위해 커피를 마셨다. 물론 처음부터 쓴 커피를 좋아했던 건 아니다. 미군부대 인근에선 인스턴트커피를 마시는 것이 선진 문화를 즐기는 것이라며 쓴 커피를 코를 잡고 마시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몇몇 어른들은 커피를 몸에 좋은 쓴 한약 정도로 생각하기도 했다. 또는 팀장의 조언대로 대부분이 엄청난 양의 설탕을 타서 마셨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커피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 예전 보다 훨씬 많아졌다. 하지만 문화적 상징으로서, 커피가 지닌 매력 역시 아직까지 무시할 수 없다. 1900년대 초, 커피는 모던보이와 모던 걸의 전유물이었다. 다시 말해 커피는 신식 문물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그 시절, 그들이 마셨던 쓴 커피는 단순한 커피를 넘어선 문화였다. 100년이 흐른 지금도 상황은 비슷하다. 4,000원짜리 점심을 마시고 5,000원짜리 커피를 마시기 위해 줄을 서있는 사람들. 여전히 커피는 구별 짓기의 문화적 척도로 작동하고 있다. 다방 커피를 마시는 사람과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구별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제 다방은 윤락 행위의 장소로 전락했다. 대화를 나누기 위한 커피숍도 테이크아웃 커피 앞에 자취를 감추고 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건 커피에 대한 사랑이다. 가격에 놀라고, 쓴 맛에 찡그렸던 나도 지금은 커피를 즐겨 마시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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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사는 30대 신혼 부부, 조씨와 유씨. 맞벌이를 하는 이들은 대부분의 점심을 밖에서 해결한다. 잦은 야근으로 저녁 역시 집에서 먹는 경우가 별로 없다. 주말에도 자주 외식을 한다. 설거지를 극도로 싫어하는 남편 조씨의 강력한 요청 때문이다. 집에선 가끔 술을 마시는 정도. 식료품 구입비보다 주류 구입비가 더 많은 때도 있다. 하지만 부인 유씨는 잦은 외식으로 조미료 섭취가 늘어나면서 건강에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고, 아침만이라고 집에서 챙겨먹자고 주장했다. 이에 남편 조씨는 일주일에 한 번 집안일 해주는 아주머니를 고용하는 조건으로 응했다. 덕분에 2-3주에 한 번씩은 대형 할인 마트에서 장을 본다.


보통 장보기는 두부, 계란 코너에서 시작해 고도리 방향으로 돈다. 두부는 마파두부 양념과 함께 산다. 세상에서 달걀 후라이를 가장 좋아하는 신랑 조씨 때문에 계란은 꼬박 꼬박 구입한다. 다음은 야채와 과일코너. 가끔 아침 대용으로 먹을 수 있는 호박을 사거나, 그나마 신랑 조씨가 먹는 야채 오이, 연근 등을 선택한다. 과일을 좋아하는 아내 유씨는 포도, 키위, 오렌지를 구입한다. 이 때 식이섬유 섭취에 관심이 없는 신랑 조씨는 육류 코너의 붉은 살코기를 구경한다. 하지만 아내 유씨는 육류 코너를 지나, 생선 코너의 연어를 장 바구니에 넣는다. 스낵코너에서는 술안주로 마른 김이나 다시마, 쥐포 등을 사고, 곧바로 술 매대로 향한다. 보통 와인 한 병에 수입 맥주 6캔을 산다. 쾌변을 중시하는 부부답게 우유, 두유, 쾌변 요구르트 등 유제품은 꽤 많이 산다. 보통 한 번 장볼 때 드는 비용은 약 9-10만 원 선. 한 번 장을 보면 2주 가까이 먹는다.


저널리스트이자 사진가인 피터 멘젤의 <헝그리 플래닛-세계는 지금 무엇을 먹는가>를 읽고난 뒤, '나는 지금 무엇을 먹고 있는지' 확인해봤다. 식탁에 올라온 음식은 다양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식탁위의 반조리식품은 우리 부부가 화학조미료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는 점을 말해줬다. 또한 술, 군것질, 안주 등이 일주일간 먹는 음식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보아, 결혼 전에 비해 건강 상태가 나빠졌음을 짐작해볼 수 있었다. 비만 부부가 될 흔적도 엿보인다. 연근, 계란후라이, 생선 구이 등을 제외한 반찬 등을 시댁과 처가에서 얻어먹는다는 사실에서, 독립은 했지만 여전히 부모님에게 의존하는 우리 사회 젊은 부부의 모습도 엿볼 수 있다. 종종 밖에서 밥을 먹는다는건, 곧 사회가 젊은 노동자들을 빡빡하게 굴리고 있다는 의미도 된다. 이처럼 한 가족의 식탁엔 많은 정보가 담겨있다. 때문에 피터 멘젤은 식탁 위 음식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책은 각 국의 평범한 가족의 식탁을 덤덤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식탁위의 일상적인 음식은 현재 지구상 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 사는 두도씨 가족은 일주일치 식품으로 트렁크 가득 장을 보고, 바쁜 일상에서도 식사 시간의 즐거움을 지키려고 애쓴다. 내전으로 도시 전체가 굶주리던 시절을 너무나 잘 기억하기 때문이다. 사라예보에 사는 두도씨 식탁 위에는 동유럽 내전의 아픔이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차드 난민촌에 사는 아부바카르씨 가족은 세 끼 모두 배급받은 곡식으로 아이쉬를 먹는다. 아이쉬는 걸쭉한 죽을 꾸덕꾸덕하게 응고시킨 것이다. 식료품가게는 워낙 비싸 번 돈으로 음식을 사먹긴 어렵다. 브레이드징 난민촌의 식탁에선 절대 빈곤의 이야기가 곧 현실이다. 반면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 사는 레비스 씨 가족은 한 달에 패스트푸드 음식 구입에만 65,000원 가까이 지출한다. 당연히 가족에게 닥친 가장 큰 문제는 고도 비만이다. 차드와 미국의 식탁은 전지구적인 양극화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영국에 사는 베인톤씨 가족은 일주일 양식의 대부분을 반조리 냉동 피자나 주스 박스로 채운다. 반조리 식품의 확산은 ‘빠르고 편하게’를 외치는 사회의 단면이다. 고도화된 자본주의 사회는 식사를 입이 행복한 시간에서 단순히 배 채우는 시간으로 전락시켰다. 베이징에 사는 둥씨 가족은 까르푸에서 장을 보고 맥도날드를 즐겨 먹는다. 중국 전통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모습은 식탁 위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배급 카드를 통해 음식을 분배 받는 쿠바의 코스타씨 가족. 하지만 해외 친척이 보내주는 돈으로 국영 마켓에서 비싼 식료품을 추가로 사야만 한다. 쿠바의 사회주의 역시 유토피아를 건설하진 못했다. 바다표범을 직접 사냥해 단백질을 보충하는 그린란드의 매드센 가족의 식탁은 아직까지 문명이 오염시키지 않은 자연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지나친 식사로 배가 부르기 전에 젓가락을 놓는다는 의미의 ‘하라 하치 부’를 강조하는 오키나와 노인들의 식탁에서 장수의 비밀을 엿볼 수 있다. 말 그대로 식탁 위에는 국제 정세와 사회 변화, 환경 문제 그리고 사회 문제에서 개인의 건강 문제까지 인류의 모든 이야기가 담겨있다.


에필로그를 보니 이 책은 일본 NHK-TV 다큐멘터리 취재 차 이스탄불로 날아가며 시작됐다고 한다. 실제로 책을 읽는 내내 책의 내용을 TV 프로그램으로 제작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제작비가 문제겠지만) 예전에 프리미어리그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고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방송은 모두에게 익숙한 축구 이야기를 시작으로 프리미어리그에 불어닥친 신자유주의의 바람과 그에 저항하는 축구팬들의 열정까지 이야기를 확장시키고 있었다. 전 세계를 지배한 신자유주의. 그 전까지 귀에 딱지가 생기도록 듣던 말이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는 너무나 큰 이야기였고, 사람들의 피부에 와닿지 않는 말이었다. 때문에 당시 방송은 프리미어리그라는 구체적 공간의 변화를 통해 커다란 이야기를 우리가 살아 숨 쉬는 공간의 일상적인 이야기로 바꿔놓은 것이었다. 사람의 뇌는 작은 것에 쉽게 반응을 보인다. 때문에 세계적인 양극화라는 큰 단어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한편, 차드 주민의 빈곤과 미국인들의 비만이 갖는 의미는 쉽게 이해한다. 인도의 빈곤을 만날 듣는 것보다, <슬럼독밀리어네어>에 비친 주인공의 열악한 삶이 훨씬 가깝게 다가온다. 그런 점에서 <헝그리플래닛>은 전 세계의 식탁 사진을 통해 매우 방대하고 심도 있는 이야기를 암시해준다. 자연스레 우리의 사고는 전 세계의 식탁에서 전 지구적 사회 문제까지 확장된다. <헝그리플래닛>의 강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조씨 부부의 식탁 역시 이야기의 층위를 확장시킨다. 조씨의 경우 건강을 위해 식이섬유 섭취를 늘여야 했고, 신부 유씨 역시 조미료를 줄이기 위해 가급적 집안에서 식사를 해야 했다. 또한 결혼한 자식들 밑반찬 해주느라 고생하는 부모님들을 생각해, 힘들더라도 직접 반찬을 만들어 먹어야 한다. 그말인즉슨, 회사일 못지 않게 집안일에도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의미고, 이는 다시 신랑 조씨의 설거지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적어도 밑반찬 만드는 데 큰 힘을 보태지 않을 거라면, 신랑 조씨는 설거지라도 적극적으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 그게 싫다면 신랑 조씨는 좋아하는 달걀 조림을 직접 해먹어야 할 것이다. 음식은 결국 인간의 가장 밀접한 생활이다. 때문에 '세계는 지금 무엇을 먹고 있는가'란 단순한 질문은 모든 이야기로 확장될 수 있다. <헝그리 플래닛>이 전한 식탁 이야기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물론 세계 양극화건, 조씨네 설거지 문제건, 이야기를 확장시켜나갈 주인공은 바로 독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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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여름, 축섬(Chuuk Island)에 다녀왔다. 가기 전, 아무도 축에 대해 알지 못했다. '뭐 뚝섬 간다고?' '쿡섬?' 이름부터 생소한 축섬은 미크로네시아 연방에 소속된, 연방에서 가장 큰 섬이다. 축은 원주민 언어로 '산' 이란 의미다. 산이 많아 축섬이란 이름이 붙여졌는데, 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인들이 축섬을 ‘트럭’이라고 잘못 부르게 되면서 트럭섬으로 외부에 더 많이 알려져있다. 축으로 가는 항공편은 단 하나다. 괌에서 컨티넨탈 에어라인을 타고 1시간 정도 가면, 축 공항에 도착하게 된다. 공항엔 축 원주민들이 많이 모여있다. ‘다들 괌에서 오는 가족들을 기다리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들은 그냥, 심심해서, 사람 구경하러 공항에 나와 있는 것이다. 왜일까? 축에는 오락 거리가 부족하다. 축에는 TV나 인터넷이 없다. 전기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다. 일도 없는데 오락 거리도 없다. 하여 이들은 공항을 어슬렁거리며, 축을 찾은 외국인들에게 호기심을 보이는 것이다. 축섬 원주민들의 생활은 우리가 사고하는 패러다임 밖에 존재한다. 우리의 상식은 축섬에서 통하지 않는다.


축섬에 도착한 첫 아침. 일어나 커텐을 열자, 강한 햇살과 햇살을 머금은 새파란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축섬의 강렬한 첫 인사였다. 이국적인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자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촬영을 준비하는 데, 마침 멀리서 노랫소리가 들렸다. 판자촌같이 허름한 집 앞에서 나는 소리였다. 축섬의 원주민 하나가 마당의 긴 야자나무 사이에 해먹을 메어놓고 그곳에 누워 한가로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참 평화롭군’이라고 생각하고 섬 주변 촬영에 나섰다. 두 시간쯤 촬영하고 그곳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판자집 주변의 풍경은 두 시간 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었다. 축의 시간은 멈춰버린 것일까. 무성한 야자나무 잎, 집 주변에서 놀고 있던 꼬마 아이 둘, 마당에 누워 잠을 자는 누렁이, 그리고 해먹에 누워 노래를 부르던 사내까지. 그랬다. 월요일 오전 10시부터 12시사이, 서울의 직장인들이 가장 바쁘게 움직이던 시간에, 축의 한 사내는 해먹에 누워 두 시간 동안 노래만 부르고 있었다.(아무 것도 안 하고, 노래만 했다. 그것도 누워서!!) 해먹에 누워 노래를 부르는 축의 사내에게 시간은 의미가 없었다. 축 섬 주민들은 언제나 느긋했다. 그들은 처음부터 일할 필요가 없었다. 해먹에 누워있다 보면 야자 나무에서 열매가 떨어진다. 떨어진 열매 속엔 풍부한 탄수화물이 들어있다. (빵과 비슷한 맛이다) 빵으로 허기를 채운다가 가끔 다른 음식이 먹고 싶으면, 바다에 들어가 고기나 게를 잡는다.


축 섬의 주민들은 여유롭다. 축 섬에는 한국해양연구원 부설 연구소가 있다. 그곳에서 축섬 주민이 10명 정도가 일을 하고 있는데, 그들은 누군가가 시키지 않으면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창문 한 곳을 가리키며 ‘창문을 닦으라’라고 지시하면, 한 나절 동안 같은 창문만을 닦는다. 그들은 노동이란 개념을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한 번에 3가지 이상의 일을 시키면 안 된다. 축섬 주민들은 갑작스럽게 많은 일을 시키면 너무 당황해 눈물을 보이기 때문이다. 반드시 한 번에 한 가지만 시켜야 한다. 일을 부려먹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에게 호의적이다. 사교적이고 항상 밝다. 연구소 직원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노동' 이란 개념이 머릿속에 없듯, '경쟁'이란 단어도 없다. 모두가 형제고 친구다. 간혹 길거리에서 외국인을 만날 때면, 이들은 오래 전 친구를 만난 것처럼 손을 흔들며 반가워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축도 변화하고 있다. 모르몬교 선교인단이 들어와 건물을 세우고 외국의 지원을 받아 도로를 설치하고 있다. 작은 식료품 가게나 시장들도 들어서고 있다. 다시 말해 축에도 자본주의의 바람이 조금씩 불어오고 있다. 이제는 축섬 친구들도 해먹에 누워 마냥 노래만 부를 수는 없다. 실제로 일을 하고 돈을 벌고 싶어 하는 축섬 친구들이 늘어나고 있다. 해양연구원에서 일하는 축 친구들을 부러워하는 주민들이 상당히 많다고 한다. 교육 시설도 늘어나고 있다. 전 세계 스킨스쿠버 마니아들이 몰리면서 커다란 리조트도 생겼다. 이제 축 주민들도 일을 통해 새로운 행복을 찾고자 한다. 하지만 아직 일거리가 부족한 상태다. 실업과 문맹이 사회의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축 섬이 다른 ‘보통’의 나라처럼 되기엔, 아직 나아가야 할 길이 멀다. 하지만 외국의 차관을 받아 한 번에 급격한 변화를 축에 가져다줘서는 안 된다.


후루타 야스시의 <앨버트로스의 똥으로 만든 나라>는 미크로네시아 연방 인근에 위치한 작은 섬나라 나우루에 관한 이야기다. 나우루는 축과 달리 앨버트로스의 똥이 인광석으로 변하면서 부유한 국가가 됐다. 외국과의 교류도 많아졌고, 다양한 편의시설이 생겨났다. 하지만 그들의 생활 방식은 축 주민들과 다를 바 없었다. 해먹 위에서 두 세 시간 노래 불렀고, 심심하면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았다. 축 섬의 주민들은 자연의 환경에서 자연의 생활을 이어갔다면, 나우루의 주민들은 문명의 환경에서 자연의 생활을 이어간 셈이다. 하지만 나우루의 주변 환경과 생활 방식의 간극에서 나우루의 비극이 시작됐다. 외국의 자본이 급격히 유입됐고, 자원을 통해 번 돈은 흥청망청 소비됐다. 자원이 고갈되면서, 나우루는 점점 가난해져갔다. 하지만 생활 습관은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그들은 일하지 않으며 돈을 펑펑 써댔다. 결국 나우루는 엄청난 해외 부채를 지게 됐다. 그 사이 정치적 부패와 혼란은 이어졌다. 환경이 아무리 급격히 변해도 생활 습관은 한 번에 바뀔 수 없다. 때문에 앨버트로스의 똥이 가져다 준 급격한 변화가 나우루의 비극을 가져오게 됐다.


축 섬에는 축 원주민과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사는 한국인이 한 분 계신다. 10년 넘게 살면서 그 분의 생활 습관은 이미 축 원주민이 된 지 오래. 얼굴과 행동도 축 주민처럼 평화롭고 느릿느릿하다. 현재 세 명의 자녀를 두고 있는 데, 세 자녀 모두 한국말을 못 한다. 그래서 물었다. '애들 데리고 한국에서 몇 년간 살 생각은 없으세요? 그래도 한국말을 배우면 좋잖아요?' 그러자 그 분은 이렇게 답했다. ‘나도 데리고 가고 싶죠. 근데 한국은 초등학생들도 시험보고 엄청 치열하다면서요. 여기서 살던 얘들이 거기 가면 적응이나 할 수 있겠어요. 환경이 너무 급격하게 변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엄두가 안 나더라고.’ 축 섬의 느긋한 생활 습관이 한 순간에 치열한 도시 생활 습관으로 변할 수는 없다. 때문에 축 섬도 서서히 변해야 한다. 한 순간에 서울의 경쟁을 도입한다면, 축 주민의 생활은 황폐해질 수밖에 없다. 한국해양연구원 부속 연구소에서 흑진주를 양식중인 한 연구원은 '자원이라고는 없는 축도 흑진주를 통해 부유해졌으면 좋겠다' 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 분의 바람대로 축 주민들도 적당한 소득을 통해 어느 정도 일도 하면서, 축 특유의 여유로움은 완전히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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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김인국 신부를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앞으로 삼성 관련 수사가 어떻게 진행될 것 같냐는 질문에 신부님은 다음과 같은 말로 우려를 표현했습니다. “삶에 관성이란 것이 있잖아요. 병폐와 비리를 조금씩 감추고 힘 센 사람일수록 봐주고 하던 삶의 관성을 생각할 때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질까 하는 염려가 많습니다.”


그 순간 신부님의 삶의 관성이란 말이 제 가슴을 둔탁하게 때리더군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참 무서운 말입니다.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에 삶의 역사가 축적된 방식대로 어떤 행동이 이뤄진다니요? 그 때 나타난 삶의 관성은 내가 살아온 길이고 방식일 것입니다. 실제로 나이 든 선배들의 행동 중에는 의식하지 못한, 삶의 관성이 만들어낸 행동이 대부분이지 않을까요? 이런 점에서 삶의 관성이란 말은 사회 초년병인 제가 가볍게 듣고 넘기기에는 크고 무거운 말이었습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이제 2년이 되어 갑니다. 하지만 벌써 제 삶에 조금씩 삶의 관성이 형성되어 감을 느낍니다. 부모님과 대화하면서도 불필요한 말, 논리에 어긋난 말들이 거슬리기 시작하고, 아내가 제 말을 이해하지 못했을 경우 조급증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입사 전 순수하고 열정적인 생각들이 점차 뜨내기의 순진함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비정규직과 88만원세대의 울부짖음이 일의 일부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아마 2년간 잠시 멈춰 서서 나 자신을 응시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혼자 생각해 봅니다.


그 와중에 좋은 책을 만났습니다. 정신과 전문의이자 저명한 칼럼니스트 정혜신씨가 이웃사촌 전용성씨의 그림을 보고 생각한 것들을 정리한 책, <정혜신의 그림에세이, 마음 미술관>. 정혜신씨는 심리 상담의 경험에서 비롯된 방대한 지식과 인문학적 사고를 더해 만들어진 커다란 생각들을 일상의 용어로 쉽게 풀어쓰고 있습니다. 가볍게 보면 한 칼럼니스트의 일기처럼 여겨질 수도 있지만, 그 안에 담겨진 내용의 진중함은 그 어떤 철학책보다 무겁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전 처음으로 책에 포스트잇 플러그를 붙여보았습니다. 가끔 삶의 질주에서 벗어나 읽고 싶은 글 옆에 말이죠.


나를 응시할 기회가 없어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사회가 만든 삶의 관성을 얻을 뻔 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정혜신씨의 책은 생각 없이 폭주하던 제 삶을 잠시 멈춰 세워준 정류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은 잠시 나에 대해 생각해보라고 여러 번 이야기 합니다.


언젠가 공항에 나란히 서 있는 두 대의 비행기를 본 기자들이 어떤 게 ‘진짜’ 에어포스 원이냐고 물었습니다. 관계자의 답변은 이렇습니다. “에어포스 원은 대통령이 타고 있을 때만 에어포스 원이다”

그렇게 당연한 사실을 깜빡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무리 삶의 스펙이 화려해도 그 속에서 나를 놓치면 그건 대통령이 타지 않은, (에어포스 원이 아닌) 각종 첨단시설이 완벽하게 갖춰진 그저 커다란 비행기일 따름입니다. 무늬만 에어포스 원입니다. (진짜 에어포스 원 中)

‘한편’이라는 부사가 소설이나 영상문법에서 세련되게 쓰이는 경우는 드뭅니다…….(중략) 개연성이나 맥락이 휘발되면서 어느 정도의 수준 하락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일상에서 ‘한편......’이라는 말은 심리적으로 사람을 거침없게 만듭니다. 일관성이 없는 것과는 조금 다른 차원에서, 이전에 내가 한 말이나 행동의 논리적 연결에 대한 강박으로부터 자유롭게 합니다. (한편…….中)

변화가 단골 화두로 떠오를 수밖에 없는 격랑의 시기에 저는 ‘내 세상’을 선물처럼 먼저 속주머니 깊숙이 챙겨 넣습니다. (내 세상 中)



나란 존재는 나를 둘러싼 수많은 존재 덕분에 규정될 수 있습니다. 때문에 나를 성찰하기 위해선 내 주변의 것들에 대한 관심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마음 미술관>에는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 외에 나를 보여줄 수 있는 많은 것들에 대한 정혜신씨의 생각이 담겨있습니다. 그 생각은 ‘실존주의’, ‘해체주의’ 철학 같은 지식이 아닙니다. 단지 제 생각의 연못에 던져진 작은 돌과 같은 존재일 뿐입니다. 정혜신씨의 생각을 통해 나도 내 자신을 돌아보고 나를 둘러싼 사람과 세상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됩니다.


유대인들은 인간의 재능을 여덟 가지로 분류한다지요. 언어, 수리, 음악, 미술, 체육, 인간 친화, 자연 친화, 자기 성찰. 놀라운 것은 ‘자기 성찰’을 재능으로 본다는 사실입니다. 하긴 자기 성찰은 다른 재능들이 정상 작동하도록 만드는 데 꼭 필요한 것이기도 하니, 그렇게 본다면 자기 성찰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절대 파워를 갖춘 강력한 재능임에 틀림없습니다. (아름다움의 힘 中)

저도 꼭 자기성찰이란 강력한 재능을 얻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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