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
아사다 지로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선배의 추천으로 아사다 지로의 <칼에 지다>를 읽을 기회가 있었다. 장편소설에 익숙하지 않았던 나였지만, 두 권으로 구성된 <칼에 지다>를 읽고 당시 엄청난 감동을 받았었다. 그 날 이후 아사다 지로는 내 베스트 작가 중 한 명이 되었다. 그런 아사다 지로가 신작을 냈다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하지만 조금 찜찜하기도 했다. 이번에 새로 나온 작품은 그의 전작 <칼에 지다>와 분위기가 너무 달랐다. <칼에 지다>에서 느껴진 비장하고 장중한 느낌은 그의 신작소설에서 가벼움과 유머로 바뀌어 있는 듯 했다. 조금 주저하며 책을 집었다. <쓰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


책의 발상은 그다지 신선하지 않다. 죽은 사람이 자신의 생에 대한 미련을 느끼지 못하고 다시 이승으로 돌아온다는 내용이 기둥 줄거리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들은 자신이 살아있을 때 느끼지 못했던 깨달음을 얻게 된다. 삶은 너무 사랑해서 신을 속여야만 했던 시지프스 신화가 연상된다. 죽은 후에야 무언가를 깨닫는다는 이야기는 메멘토 모리, 항상 죽음이 네 옆에 있음을 명심하라는 깨달음의 경구를 떠오르게 만든다. 그렇다. 아사다 지로의 전작 <칼에 지다>도 혁신적인 소설은 아니었던 것처럼, <쓰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도 새롭지 않은 소재와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아사다지로의 힘이 발휘된다.


비장한 남성미로 무장한 <칼에 지다>도 비평가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감정 과잉의 소설이었다. 아사다 지로 소설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 바로 이야기의 감정 과잉을 통해 독자의 눈을 사로잡는다. 분출하는 감정이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독자는 아사다지로의 이야기를 허구로 인식하고 감동을 받는다. 뭐랄까. 쇤베르크와 같은 모더니즘 계열의 선구적인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도 가끔 라디오에서 나오는 뽕짝의 축축한 가사에 가슴이 젖어드는 경험과 비교할 수 있을까. 때문에 아사다 지로의 이야기엔 김훈 소설에서 느껴지는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한 번 <쓰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을 드라마로 각색한다고 생각해보자. 곳곳에 뚫려있는 구성의 구멍과 비현실적인 설정에 곤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점을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아사다 지로는 곳곳에 있는 구멍과 비현실적인 공간에 부여된 자유를 적절하게 이용해 독자의 감정 샘을 꼬챙이로 마구 찔러대기 때문이다. 나에게 아사다 지로의 작품은 일종의 동화(fairy tale)이다. 그것도 아주 매력적인.


<쓰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도 아사다 지로의 능력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다는 설정의 진부함은 저승의 공간을 공무원 조직으로 표현한 기발한 상상력이 메워준다. (환생의 과정도 유쾌하다.^^) 때문에 죽음은 슬프면서도 유쾌한 상황으로 바뀌고 여기서 아사다 지로는 자신의 능력을 이용, 독자를 울리고 웃긴다. 마치 양 손에 울음과 웃음이라는 줄을 잡고 상황에 맞게 적절히 놓았다 끌어당겼다를 반복하고 있는 듯하다. 이야기의 흡입력은 현재 최고의 인기 일본 작가로 꼽히는 오쿠다 히데오를 넘어선다는 생각마저 든다.


다만 감정 샘을 찌르기 위해 아사다 지로가 설치해놓은 덫들이 이번엔 전작처럼 성공적이지는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덫으로 독자의 관심을 사로잡으려면 완벽한 위장과 근처에 오면 단번에 휘잡을 수 있는 수단 못지않게 독자를 끌어당길 수 있는 미끼가 필요하다. 그것이 고기던 사탕이던 말이다. 하지만 이번 <쓰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이 놓아 둔 미끼는 덫 안에 들어와 한 방에 사로잡히게 만들 정도는 못된다고 생각했다. 주인공들이 이승으로 돌아와 깨달음을 얻게 되는 상황이 내 가치관 밖에 존재했기 때문일까. 가령, 10년 넘게 혼자 남자를 사랑하면서 절대 그 말을 하지 않는, 그럼에도 후회하지 않는 주인공의 여자, 어머니의 바람을 알면서도 아버지가 친부가 아님을 알면서도 인생을 관조하는듯한 아이, 자신을 버린 부모님을 너무나 쉽게 용서하는 아이 등 환생 후 쓰바키야마가 겪어야 하는 상황이 달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진 것이다. 물론 아사다 지로의 화려한 말발에 쉽고 재밌게 읽히긴 하지만 <칼에 지다>를 읽었을 때 느꼈던 감정의 응어리는 없었다. 특히 쓰바키야마가 자신의 전 여자 친구를 찾아가서 나누는 대화 장면은 내가 혐오해 마지않는 왁스 노래의 지질한 가사를 듣는 듯해서 매우 불편하기까지 했다. 만약 아사다 지로의 신작이 나온다면 난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이번 작품에서 아쉬운 점이 있었지만 그의 스토리텔러로서의 출중한 능력은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의 실망에도 아사다 지로의 다음 소설이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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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2008-08-21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물을 뽑아내는 최루성 작품도 많죠. 철도원 등. 감정은 종종 기복을 주는 쪽이 정신적으로도 건강에 좋은 것 같습니다. 리뷰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