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심리학 - 천 가지 표정 뒤에 숨은 만 가지 본심 읽기
송형석 지음 / 청림출판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 대한민국은 심리학을 읽고 있다. 알라딘 인문 서적 베스트셀러 1위~25위 중 무려 9권이 심리학 관련 타이틀을 달고 있다. 네이버의 인문/교양 베스트셀러 순위에도 1위가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이고, 1위에서 25위 사이에 무려 12권의 심리학 관련 책이 올라있다. 제목도 다양하다. 심리학 초콜릿, 심리학이 연애를 말하다, 심리에세이, 괴짜심리학 등등. 여기에 영화로 보는 심리학, 그림심리치유에세이, 몸짓으로 보는 심리학, 그리고 남자들의 문화심리학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서점 어느 곳에서나 새로 나온 심리학 서적을 소개해놓은 부스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지난주에는 우연히 두 편의 심리학 서적을 접하게 되었다. 올 해 심리학은 분명 인문/교양 출판 부분에서 두드러지는 하나의 트렌드였다. 그렇다면 왜 지금 대한민국은 심리학에 몰두하고 있을까.


질문과 함께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돈에 대한 철학적 성찰로 유명한 게오르그 짐멜(Georg Simmel)이었다. 짐멜은 <대도시와 정신적 삶>이란 논문을 집필한 바 있는데, 이는 대도시란 삶의 공간이 인간의 정신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 지 살펴본 연구다. 철학자 강신주에 따르면 공간은 우리가 살아가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오히려 공간에는 인간을 길들여서 그에 맞는 인간형을 만들어내는 힘이 있다.(<상처받지 않을 권리>) 그렇다면 자본주의 이후 등장한 도시란 공간은 인간의 정신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우선 농촌과 달리 도시는 훨씬 더 다양하고 강렬한 자극을 쏟아낸다. 때문에 도시의 삶은 낯선 곳으로의 여행처럼, 일상 자체는 농촌의 삶보다 훨씬 역동적이고 흥미롭지만 몸과 마음을 쉽게 지치게 만든다. 동시에 외부의 환경도 예전보다 훨씬 빠르게 변한다. 농촌에서의 일이 매년 톱니바퀴 돌아가듯 반복적이었다면, 도시의 일은 급격하게 변하고 그에 대한 빠른 적응을 요구한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동시에 과거 농촌의 삶에는 개인적인 삶의 공간이 매우 좁았다. 김 씨네 개똥이와 박 씨네 순이가 손이라도 잡게 되면, 다음 날 온 마을에 두 사람의 로맨스에 대한 소문이 돌게 된다. 하지만 도시는 개인에게 충분한 자유의 공간을 제공한다. 아파트에 사는 옆집 주인과 인사 한 마디 나누지 않아도, 살아가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 대도시의 군중에는 분명 익명성이 존재한다. 하지만 자유에 따른 대가도 분명 존재한다. 바로 고독이다. 타인에 대한 무관심은 사색의 자유와 함께 자신의 속내를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의 부재도 함께 가져왔다. 때문에 현대인은 자기 자신과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하게 됐고, 자연히 내 안의 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게 됐다. 농촌에 살던 개똥이는 이웃집 순이에게 고민을 털어놓았지만, 현대인은 심리학에게 정신적 멘토 역할을 부탁하고 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와 대도시가 등장한 지 한참이 지난 지금 심리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일까. 난 신자유주의와 전 세계적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짐멜이 지적한 도시적 삶의 특징이 훨씬 더 강화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전 세계에 불어 닥친 금융위기로 회사의 분위기도 급격하게 변화했으며, 그에 따른 조직원들의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사회 곳곳에서 유명인의 자살과 죽음, 심각한 범죄와 노동자들의 파업, 그리고 정치적 혼란이 이어졌다. 개별 사건만으로도 개인의 정신적 삶에 충격을 주기에 충분한 뉴스들이었다. 짐멜은 도시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자극에 견디며 살기 위해 현대인들은 ‘급변하는 외부 환경에 대해 심장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머리로 반응하게 됐다’고 지적했지만, 최근에 벌어진 사건들은 무감각한 현대인들의 심장을 자극할 정도로 강렬했던 것이다. 이처럼 개별 도시인들이 겪는 심리적 혼란은 예전보다 훨씬 커졌다. 하지만 개인 간의 교류는 예전보다 훨씬 삭막해졌다. 심지어 같은 회사 내에서도 예전과 같은 선후배간, 동기간의 인간적인 교류가 이뤄지지 않는다. 누가 정리해고 대상에 오를지 모를 상황에선 모두가 경쟁자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심리적 위안을 제공해줄 마지막 보루인 가정마저도 최근 들어 급격하게 흔들리고 있다. 이제 현대인의 마음은 폭풍우가 휩쓸고 지나간 황무지가 되었다. 무수한 상처에도 어떠한 위안을 받지 못한다. 자연히 사람들은 심리학과 치유에세이를 찾게 된다. 책을 통해서라도 마음의 상처를 위로받고자 한다. 오늘 날 현대인들이 심리학 관련 서적을 찾는 이유다.


이번 주말, 두 개의 심리학 서적을 만났다. 처음 만난 책은 <두 번은 사랑하지 못하는 병>이다.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농촌에서의 삶은 집단적인 유대관계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남녀의 개인적인 관계(사랑)에 대한 관심이 분산될 수 있었다. 하지만 파편화된 인간관계 속에서 외롭게 살아가는 도시인들에게 사랑은 심리적 상처를 위로받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자연히 사랑에 대한 관심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도시인의 정서적 토대가 예전보다 훨씬 불안해진 상황에서 정서의 교감이 필수적인 사랑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실제로 <두 번은 사랑하지 못하는 병>에는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듣거나 볼 수 있는 상황이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책은 사랑의 장애가 되는 여덟 가지 요소-무감각, 불안, 상실, 편력, 중독, 금기, 트라우마, 오해-를 이야기하고 그에 대한 극복 방법을 모색한다. 테라피스트인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각 요소에 관한 케이스가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일종의 사례연구인데, 저자는 자신을 찾아온 환자들의 자세한 이야기를 통해 왜 우리가 쉽게 사랑 방해 요소를 갖게 되는지 설명하고 있다. 책은 모든 상황을 간단하게 재단하고 단순한 해결 방안을 제공해주는 카운슬러용은 아니다. 오히려 한 편의 연애소설 같은 사례 소개를 통해 각각의 문제에 대한 독자들의 개인적인 고민을 제공한다. 동시에 사랑에 실패했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내 안의 문제점을 돌아보게 만든다.


반면 두 번째 만난 <위험한 심리학>은 <두 번은 사랑하지 못하는 병>보다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무한도전에 출연한 적이 있는 정신과 전문의가 쓴 책으로,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람들-명령하듯 대하는 사람, 대화의 초점이 타인에게 가는 걸 못 참는 사람, 자기 얘기만 하는 사람, 로봇 같은 사람, 의심 많은 사람, 항상 뭔가를 해달라는 사람, 속을 알 수 없는 사람 등등-의 마음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전달한다. 주변 사람 몇 명을 떠올리거나 내 안의 어두운 면모를 객관화하며 읽는다면 훨씬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다만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몇 가지 유형으로 정의하다보니 상황을 쉽게 단순화하는 아쉬움이 있다. 또한 각각의 유형을 설명하기 위해 지나치게 많은 사례들을 소개하다보니 각각의 사례들이 파편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차라리 <두 번은 사랑하지 못하는 병>처럼 각 유형에 관련된 사람의 이야기를 좀 더 깊이 있게 소개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럼에도 사회생활을 하며 쉽게 만날 수 있는 유형들이 소개되어 있어, 실제 생활에 쉽게 적용해볼 수 있다는 장점은 있다. (다만 왜 이 책의 제목이 위험한 심리학인지는 모르겠다. 참고로 책의 내용은 전혀 위험하지 않다.)


개인적으로 심리학 서적에 대한 관심이 반갑지만은 않다. 그만큼 이 시대의 도시인들은 더 많은 심리 치유를 원하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다만 사회가 주입한 사고에 따라 오직 취업관련 실용서적만 읽던 사람들이 서서히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적어도 사회가 만든 성공 스토리가 개인의 내면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는 사실은 깨달았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제 한 단계 더 나아가길 바란다. 단순한 심리 치유를 넘어, 현대 도시인들이 내면적으로 상처 받는 원인이 무엇인지, 그리고 계속되는 상처를 막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고민할 수 있어야 한다. 심리학에 대한 관심이 개인적인 심리 치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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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발로땅을딛고 2011-03-30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참 좋습니다. 통찰력이 돋보여요. 저도 강신주 선생님의 글 잘 읽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