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위험한 경제학 1 - 부동산의 비밀 ㅣ 위험한 경제학 1
선대인 지음 / 더난출판사 / 2009년 9월
평점 :
금융위기로 세계 경제가 큰 침체에 빠져있던 지난 가을, 엄마는 조심스럽게 아파트 이야기를 꺼냈다. "지금 아파트 값이 많이 내려갔던데 지금 너 사는 집 전세 빼고, 은행에서 대출 좀 받아서, 아파트 하나 사두는 게 어때? 지금이 기회인 거 같은데." 엄마 말에 난 잠시 당황했다. 당시만 해도 사람들은 금융위기가 언제 끝날지 몰라 불안해하고 있었다. 전문가들도 나서서 '이럴 때는 무리하게 투자하기 보다는 가만히 있는 게 낫다'고 말하던 때였다. 그래서 단호하게 거절했다. 1년이 지난 요즘, 엄마는 나만 보면 1년 전을 떠올리며 안타까워하신다 "요즘 집값 다시 오르는 거 봐라. 그 때 엄마 말 듣고 좀 사놨으면 얼마나 좋았냐. 이젠 올라서 사고 싶어도 못 산다. 아까워서 어째~" 아쉬워하던 엄마에게 한 마디 건넸다. "엄마, 근데 이제 아파트 사서 재미 보는 시댄 지났어. 아파트에 거품이 많이 껴있었으니까 앞으론 떨어질 거야." 내 말에 엄만 피식 웃었다. "흥, 거품이니, 이제 곧 떨어지느니 하는 말은 10년 전부터 나오던 얘기다."
지금도 난 엄마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혹시나 나의 이론적 지식보다는 엄마의 체험적 지식이 더 정확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최근에 우리 집 근처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생겼다. 2,000세대는 넘는 단지였다. 처음엔 '저 정도 공급이면 그래도 주변 아파트 가격이 좀 떨어지겠지' 싶었다. 그런데 새로 생긴 아파트의 32평 가격이 무려 10억 원에 달한다는, 전세도 3억이 넘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가격이었다. 가계의 평균 소득 대비 10억이란 가격은 턱없이 높았다. 과연 10억짜리 집을 쉽게 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마도 은행 융자를 끼고 구입한 투기 수요가 대부분일 것이다. 바꿔 말하면 한국에선 금융위기의 공포가 채 가시기도 전에, 활발한 부동산 대출이 이뤄지고 있다는 의미다. 금융위기에도 한국의 부동산 불패 신화는 사라질 줄 몰랐다.
일반적으로 경기가 좋아지면, 은행들은 대출 기준을 낮춘다. 그러면 돈이 시중에 많이 돌게 된다. 동시에 경기 호황은 사람들에게 풍요감을 심어준다. 사람들은 주식과 부동산 가격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전망한다. 신용 공급도 늘어나 투자도 쉬워진다. 이 때 과잉거래가 발생하고, 투기가 시작된다. 투기는 자산 가격에 거품을 가져온다. '친구가 부자가 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큼 사람들의 안락과 판단력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은 없다'는 말처럼 자산 가격의 상승은 더 많은 투자금의 유입을 불러온다. 이제 투자를 움직이는 동력은 광기로 돌변한다. 하지만 거품은 항상 터지기 마련이다. 거품은 그 의미 자체로 지탱할 수 없는 가격변동이나 현금흐름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경기가 하강 국면에 들어서면 다시 대출 기준이 엄격해진다. 시중에 화폐가 줄어들게 되고, 경기는 더욱 얼어붙는다. 경기가 둔화되면 부동산 가격의 상승률이 대출금리보다 낮아지게 되고 부동산을 팔려는 사람이 늘어난다. 부동산 가격은 자연히 떨어지게 되고, 거품은 꺼진다. 이게 바로 거품이 꺼지는 일반적인 모델이다. 그럼에도 한국의 부동산에는 경제학의 일반적인 모델이 적용되지 않는다.
왜 일까. 그 답은 바로 현 정부의 정책에 숨어있다. 한 마디로 떨어지는 부동산 가격을 정부가 인위적으로 막고 있다는 것이다. 분명 부동산 거품이 꺼지는 징후들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먼저 지방을 포함한 수도권의 미분양 아파트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국민경제와 가계의 평균적인 체력에 비해 아파트 가격이 너무 높아, 아파트 거래량은 급감하고 있다. 수도권으로 유입되는 인구는 줄어들고 있다. 그럼에도 아파트 공급을 늘어나고 있다. (그동안 지어왔던 아파트 물량도 곧 쏟아질 예정이다.) 여기에 세계 경제는 여전히 금융위기의 여파로 얼어붙은 상태다. 물론 부동산 거품이 급격하게 꺼지게 되면 한국 경제는 크게 휘청할 수밖에 없다. 특히 한국처럼 건설사가 은행 대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건설사의 도산은 은행의 파산까지 불러올 수 있게 된다. 때문에 거품이 꺼지는 속도를 조절할 필요는 있다.
하지만 문제는 현 정부가 아예 거품 자체를 그대로 유지시키려고 한다는 사실이다. 우선 부동산 거래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재건축 규제기준을 완화하고 종부세 등의 세금을 감면했다.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한 규제를 완화한 것이다. 또한 정부가 건설사들의 대규모 미분양 아파트를 구입해줬다. 대한주택보증이 2조원을 들여 환매조건부 방식으로 미분양물량을 매입하게 해준 것이 대표적이다. (P.169) 건설사에 대한 대대적인 지원도 이뤄졌다. 게다가 금리를 낮추고 가계의 담보대출기간을 연장해줬다. 가계의 부동산 투매현상을 막기 위해서였다. 부동산 관련 대출을 늘려, 부동산 값 폭락을 막겠다는 의민데, 한 마디로 국민이 빚을 내게 해서 아파트 값을 유지시키겠다는 것이다. 덕분에 가계 대출 잔액은 외환위기 직후 165조 8,000억에서 648조 3,000억으로 늘어났다. 결국 정부는 한편으로 부동산 가격은 떨어지지 않을 것이란 신호를 계속 보내면서, 다른 한 편으로 부동산 대출을 쉽게 해주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경기가 둔화된 상황에서도 신용 공급이 줄어들지 않고 부동산 가격은 떨어질줄 모른다.
‘여보 우리도 열심히 일해서 애가 학교 갈 즈음엔 10년만 열심히 허리띠 우리 작은 집이라도 하나 장만합시다' 라는 이야기는 현실에선 통용되지 않는다. 월급을 열심히 모아도, 죽기 직전에 나야 간신히 집을 구입할 수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아파트 값 상승으로 1년치 월급을 벌었다는 얘길 들으면 그나마 일하고자 하는 의욕도 사라진다. 물론 건설 경기가 전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거품을 한 방에 제거하는 일은 정권 차원에서도 쉽지 않다는 것 안다. 하지만 서민 경제를 외치는 정부라면, 다른 건 몰라도 부동산 가격의 안정만큼은 1순위로 해결해야 하는 것 아닐까. 앞으로 몇 년 뒤, 엄마가 내 앞에서 자신의 경험 지식을 자랑하며 '그 때 네가 내 말 안 들어서 지금 이 모양 이 꼴로 살고 있는 것 아니냐' 고 탄식하는 일만큼은 없었으면 한다.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판단한 사람들이 광기에 휘말려 판단한 사람들보다 잘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비정상적인 요구는 아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