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여름, 축섬(Chuuk Island)에 다녀왔다. 가기 전, 아무도 축에 대해 알지 못했다. '뭐 뚝섬 간다고?' '쿡섬?' 이름부터 생소한 축섬은 미크로네시아 연방에 소속된, 연방에서 가장 큰 섬이다. 축은 원주민 언어로 '산' 이란 의미다. 산이 많아 축섬이란 이름이 붙여졌는데, 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인들이 축섬을 ‘트럭’이라고 잘못 부르게 되면서 트럭섬으로 외부에 더 많이 알려져있다. 축으로 가는 항공편은 단 하나다. 괌에서 컨티넨탈 에어라인을 타고 1시간 정도 가면, 축 공항에 도착하게 된다. 공항엔 축 원주민들이 많이 모여있다. ‘다들 괌에서 오는 가족들을 기다리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들은 그냥, 심심해서, 사람 구경하러 공항에 나와 있는 것이다. 왜일까? 축에는 오락 거리가 부족하다. 축에는 TV나 인터넷이 없다. 전기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다. 일도 없는데 오락 거리도 없다. 하여 이들은 공항을 어슬렁거리며, 축을 찾은 외국인들에게 호기심을 보이는 것이다. 축섬 원주민들의 생활은 우리가 사고하는 패러다임 밖에 존재한다. 우리의 상식은 축섬에서 통하지 않는다.


축섬에 도착한 첫 아침. 일어나 커텐을 열자, 강한 햇살과 햇살을 머금은 새파란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축섬의 강렬한 첫 인사였다. 이국적인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자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촬영을 준비하는 데, 마침 멀리서 노랫소리가 들렸다. 판자촌같이 허름한 집 앞에서 나는 소리였다. 축섬의 원주민 하나가 마당의 긴 야자나무 사이에 해먹을 메어놓고 그곳에 누워 한가로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참 평화롭군’이라고 생각하고 섬 주변 촬영에 나섰다. 두 시간쯤 촬영하고 그곳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판자집 주변의 풍경은 두 시간 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었다. 축의 시간은 멈춰버린 것일까. 무성한 야자나무 잎, 집 주변에서 놀고 있던 꼬마 아이 둘, 마당에 누워 잠을 자는 누렁이, 그리고 해먹에 누워 노래를 부르던 사내까지. 그랬다. 월요일 오전 10시부터 12시사이, 서울의 직장인들이 가장 바쁘게 움직이던 시간에, 축의 한 사내는 해먹에 누워 두 시간 동안 노래만 부르고 있었다.(아무 것도 안 하고, 노래만 했다. 그것도 누워서!!) 해먹에 누워 노래를 부르는 축의 사내에게 시간은 의미가 없었다. 축 섬 주민들은 언제나 느긋했다. 그들은 처음부터 일할 필요가 없었다. 해먹에 누워있다 보면 야자 나무에서 열매가 떨어진다. 떨어진 열매 속엔 풍부한 탄수화물이 들어있다. (빵과 비슷한 맛이다) 빵으로 허기를 채운다가 가끔 다른 음식이 먹고 싶으면, 바다에 들어가 고기나 게를 잡는다.


축 섬의 주민들은 여유롭다. 축 섬에는 한국해양연구원 부설 연구소가 있다. 그곳에서 축섬 주민이 10명 정도가 일을 하고 있는데, 그들은 누군가가 시키지 않으면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창문 한 곳을 가리키며 ‘창문을 닦으라’라고 지시하면, 한 나절 동안 같은 창문만을 닦는다. 그들은 노동이란 개념을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한 번에 3가지 이상의 일을 시키면 안 된다. 축섬 주민들은 갑작스럽게 많은 일을 시키면 너무 당황해 눈물을 보이기 때문이다. 반드시 한 번에 한 가지만 시켜야 한다. 일을 부려먹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에게 호의적이다. 사교적이고 항상 밝다. 연구소 직원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노동' 이란 개념이 머릿속에 없듯, '경쟁'이란 단어도 없다. 모두가 형제고 친구다. 간혹 길거리에서 외국인을 만날 때면, 이들은 오래 전 친구를 만난 것처럼 손을 흔들며 반가워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축도 변화하고 있다. 모르몬교 선교인단이 들어와 건물을 세우고 외국의 지원을 받아 도로를 설치하고 있다. 작은 식료품 가게나 시장들도 들어서고 있다. 다시 말해 축에도 자본주의의 바람이 조금씩 불어오고 있다. 이제는 축섬 친구들도 해먹에 누워 마냥 노래만 부를 수는 없다. 실제로 일을 하고 돈을 벌고 싶어 하는 축섬 친구들이 늘어나고 있다. 해양연구원에서 일하는 축 친구들을 부러워하는 주민들이 상당히 많다고 한다. 교육 시설도 늘어나고 있다. 전 세계 스킨스쿠버 마니아들이 몰리면서 커다란 리조트도 생겼다. 이제 축 주민들도 일을 통해 새로운 행복을 찾고자 한다. 하지만 아직 일거리가 부족한 상태다. 실업과 문맹이 사회의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축 섬이 다른 ‘보통’의 나라처럼 되기엔, 아직 나아가야 할 길이 멀다. 하지만 외국의 차관을 받아 한 번에 급격한 변화를 축에 가져다줘서는 안 된다.


후루타 야스시의 <앨버트로스의 똥으로 만든 나라>는 미크로네시아 연방 인근에 위치한 작은 섬나라 나우루에 관한 이야기다. 나우루는 축과 달리 앨버트로스의 똥이 인광석으로 변하면서 부유한 국가가 됐다. 외국과의 교류도 많아졌고, 다양한 편의시설이 생겨났다. 하지만 그들의 생활 방식은 축 주민들과 다를 바 없었다. 해먹 위에서 두 세 시간 노래 불렀고, 심심하면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았다. 축 섬의 주민들은 자연의 환경에서 자연의 생활을 이어갔다면, 나우루의 주민들은 문명의 환경에서 자연의 생활을 이어간 셈이다. 하지만 나우루의 주변 환경과 생활 방식의 간극에서 나우루의 비극이 시작됐다. 외국의 자본이 급격히 유입됐고, 자원을 통해 번 돈은 흥청망청 소비됐다. 자원이 고갈되면서, 나우루는 점점 가난해져갔다. 하지만 생활 습관은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그들은 일하지 않으며 돈을 펑펑 써댔다. 결국 나우루는 엄청난 해외 부채를 지게 됐다. 그 사이 정치적 부패와 혼란은 이어졌다. 환경이 아무리 급격히 변해도 생활 습관은 한 번에 바뀔 수 없다. 때문에 앨버트로스의 똥이 가져다 준 급격한 변화가 나우루의 비극을 가져오게 됐다.


축 섬에는 축 원주민과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사는 한국인이 한 분 계신다. 10년 넘게 살면서 그 분의 생활 습관은 이미 축 원주민이 된 지 오래. 얼굴과 행동도 축 주민처럼 평화롭고 느릿느릿하다. 현재 세 명의 자녀를 두고 있는 데, 세 자녀 모두 한국말을 못 한다. 그래서 물었다. '애들 데리고 한국에서 몇 년간 살 생각은 없으세요? 그래도 한국말을 배우면 좋잖아요?' 그러자 그 분은 이렇게 답했다. ‘나도 데리고 가고 싶죠. 근데 한국은 초등학생들도 시험보고 엄청 치열하다면서요. 여기서 살던 얘들이 거기 가면 적응이나 할 수 있겠어요. 환경이 너무 급격하게 변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엄두가 안 나더라고.’ 축 섬의 느긋한 생활 습관이 한 순간에 치열한 도시 생활 습관으로 변할 수는 없다. 때문에 축 섬도 서서히 변해야 한다. 한 순간에 서울의 경쟁을 도입한다면, 축 주민의 생활은 황폐해질 수밖에 없다. 한국해양연구원 부속 연구소에서 흑진주를 양식중인 한 연구원은 '자원이라고는 없는 축도 흑진주를 통해 부유해졌으면 좋겠다' 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 분의 바람대로 축 주민들도 적당한 소득을 통해 어느 정도 일도 하면서, 축 특유의 여유로움은 완전히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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